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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437화 (437/1,214)

437화. 적을 유인하다

잠시 맞붙어 싸우던 중 용단이 갑자기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귀하의 재주들은 빈승도 거의 다 본 듯하군요. 비장의 수법 같은 것이 없다면 이제 빈승이 그 재주들에 답례를 좀 하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심협은 내심 답답해졌다. 그는 용각추를 완전히 제련했지만, 현재의 수련 경지로는 결국 이 보물의 모든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렇다 보니 용단을 일격에 물리칠 수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선아의 안위가 마음에 걸려 법단 쪽 변화를 눈여겨볼 수밖에 없어 더더욱 이 싸움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그가 시선을 살짝 옮기는 순간, 용단이 기다렸다는 듯 웃음을 뚝 그쳤다. 그의 몸에 갑자기 잔물결이 일렁이더니 곧 귀매(鬼魅)처럼 희미하게 흐려졌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다음 순간 번쩍 하고 심협 뒤에 나타났다.

그가 한 손을 철썩 내리치자 손바닥 한가운데에 붙어 있던 자색 부적 위의 폭(爆)이라는 글자가 갑자기 맹렬하게 번득였다. 그리고 뒤이어 귀가 멀 것 같은 폭발음이 울렸다.

퍼펑!

뒷목에서 뜨거운 불빛이 터져 나오면서 팔현경이 드리운 빛의 장막이 부서졌고, 심협은 이 강력한 충격에 그대로 날아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의 뒷목은 온통 피범벅이었고, 분홍색 육막(肉膜)에 싸인 채 마디마디 하얀 목뼈가 어렴풋이 드러나 무척 처참했다.

용단은 고개를 들어 올리려 애쓰는 심협의 목뼈가 곧 부러지려는 것을 보고는 승리의 기쁨에 물들어 곧장 한쪽 발로 심협의 등을 세게 밟았다.

“시주, 이런 꼴이 되었으니 더는 함부로 움직이지 마시지요. 그대의 혼백을 빈승이 온전히 거둬야 하니 말입니다. 어쨌거나 온전치 않은 혼백이라면 사존께서 괴롭히시는 재미가 줄어들 것 아닙니까? 아무래도 신혼이 충만해야 시주께서도 점천등(点天燈: 고대의 가혹한 형벌 중 하나)의 즐거움을 누리실 수 있고, 비로소 자신의 신혼이 조금씩 타들어가는 것을 보며 진정 생명이 꺼져간다는 게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잔혹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으면서 손에 든 인혼장을 심협의 뒤통수에 대고 꾹 눌렀다.

한데 용단은 말을 마치자마자 문득 눈앞의 풍경이 몇 번 깜빡이더니 시야가 조금 흐릿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심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승리의 기쁨을 너무 일찍 만끽하면 민망해지는 법이지.”

용단은 깜짝 놀라 물러나려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법력의 운행이 갑자기 멈췄고, 온몸이 굳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뒤이어 그의 눈앞에서 안개가 걷히는 듯하더니 진상이 드러났다.

심협은 여전히 그의 발아래 밟혀 있었지만 땅에 엎드려 있는 것이 아닌 하늘을 보고 누워 웃음기를 띤 채 정면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그의 명치 아래에는 뜻밖에도 온몸이 유백색이고 한가운데에 엷은 자색을 띤 커다란 불가사리 한 마리가 엎드려 있었다.

이 불가사리는 초롱초롱하고 커다란 두 눈으로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눈에는 억울함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사실인즉, 심협은 진즉 백성을 불러내 그의 환술로 천기를 가림으로써 용단을 속였다. 용단은 자신이 심협에게 중상을 입힌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그의 폭렬부는 위력이 만만찮아 팔현경의 빛 장막을 깨뜨린 것은 맞지만, 부적의 위력 역시 소진되어 심협을 전혀 상하게 할 수 없었고, 심협은 그가 방심한 틈을 타 정신부로 용단을 묶어 놓은 것이다.

“시주의 능력과 계략이 이리도 대단하니 차라리 우리 성련법단에 들어…….”

용단은 웃음기를 거두며 재빨리 입을 열었으나,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갑자기 용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느새 몸을 일으킨 심협이 손을 크게 휘두르자 용각추가 금빛용으로 변하여 순식간에 용단의 가슴팍으로 돌진했다.

푹!

눈 깜짝할 사이 핏방울이 후드득 뿜어져 나오면서 용각추가 힘도 들이지 않고 용단의 심장을 곧바로 꿰뚫었다.

용단은 두 눈을 부릅뜨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꼿꼿하게 굳은 채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심협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네놈과는 쓸데없이 말을 섞고 싶지도 않다.”

말을 마친 그는 손을 뻗어 잔뜩 겁을 집어먹은 채 자기 가슴에 엎드린 백성을 토닥였다.

“겁먹을 것 없다. 이번에 네 덕에 살았구나. 나중에 답례하마. 우선 돌아가거라.”

백성은 가볍게 ‘네’ 하고 대꾸할 뿐이었다. 육지에서 그녀의 능력은 크게 떨어져서 매번 심협의 부름을 받을 때마다 그녀는 늘 어떻게 해야 빨리 돌아갈 수 있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심협은 령술로 그녀를 돌려보낸 뒤, 곧장 몸을 날려 곧바로 선아가 있는 법단 아래에 이르렀다.

“선아 사부님,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곧 구해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가 손을 휘두르자, 순양검배에서 화염이 솟구쳐 올랐다.

한데 검광이 막 법단을 찌르려는 순간, 하늘에서 한 줄기 핏빛이 내려와 법단 앞을 가로막았고, 순양검배는 그 위를 때리며 요란한 소리와 함께 튕겨나왔다.

심협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이제 막 네 번째 천겁의 공격을 버텨낸 임달이 노기등등한 눈으로 그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쓸모없는 놈. 한낱 출규기 수사조차 처리하지 못하다니…….”

임달은 차갑게 내뱉더니, 손으로 자기 뱃가죽을 두드렸다. 그러자 피부의 어느 한 부분이 불룩 튀어나오더니 흉악한 귀면 하나가 곧바로 피부의 속박을 뚫고 뛰쳐나왔다. 그의 몸에서 분리되어 나온 순간, 귀신의 얼굴은 붉은 빛을 띤 검은 귀기로 흐릿하게 변하여 곧장 용단의 몸뚱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심협은 이 광경을 보고 즉시 손목을 돌려 그쪽을 향해 휙 하고 휘둘렀다. 그러자 순양검배가 쏜살같이 날아가 단칼에 검은 귀기를 베어버렸다.

검은 귀기는 순식간에 둘로 갈라졌으나, 놀랍게도 전혀 줄어들지 않은 기세로 용단의 몸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용단의 몸이 한 차례 경련했다.

“크윽!”

용단은 낮은 고함을 내지르며 바닥에 꼿꼿이 일어나 앉았다. 옷의 구멍은 그대로였으나 가슴의 상처는 이미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의 종아리에 붙어 있던 정신부는 오래되어 부식된 것처럼 순식간에 검게 물들어 곧 잿더미로 변했다.

“감히…… 네놈이 감히! 내 오늘 반드시 네놈을 죽이고 말 것이다!”

용단은 숨을 몇 번 크게 몰아쉰 뒤, 고개를 돌려 심협을 바라보고는 눈에서 분노의 불길을 뿜어내며 포효했다.

“이건 또 무슨 수법이람?”

심협은 이것이 임달선사가 시전한 모종의 빙의법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용단은 여전히 용단 자신인 채로 ‘부활’한 듯했다.

미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틈도 없이 용단이 달려들었다. 그가 휘두른 인혼장에는 검은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가 별안간 순수한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심협은 용각추를 움켜쥐어 검은 법장(法杖)을 막아냈다.

쾅!

검은 법장은 격렬하게 진동했고, 표면에 검은 먼지가 일렁였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곧바로 호흡을 차단해버린 탓에 심협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때 용각추에서 금빛이 홀연히 번득이더니, 심협이 미처 작동시키기도 전에 불꽃처럼 치솟아 표면에 내려앉은 검은 먼지들을 순식간에 불살라버렸다.

심협은 남은 손으로 낙뢰부를 틀어쥐고 앞을 향해 휙 하고 휘둘렀다.

꽈르릉!

눈처럼 새하얀 빛이 앞에서 번쩍이면서 팔뚝만 한 번개가 내리꽂혔다.

이를 본 용단은 마치 갑주를 입은 것처럼 시커먼 빛을 몸 밖으로 내뿜었다.

하얀 번갯불은 검은 빛으로 된 갑주에 떨어지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폭발했고, 수많은 새하얀 번개줄기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번갯불 아래의 용단은 몸에는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흥! 나는 사존께 법신(*法身: 불교에서 말하는 득도한 자의 ‘영원의 몸’)의 도움을 얻었으니 네 모든 공격은 가려운 곳을 긁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죽어라!”

용단은 차게 웃으며 손에 든 검은 법장을 세게 내리 눌렀다.

순간, 심협은 엄청난 힘에 몸이 짓눌리는 것을 느끼고는 어쩔 수 없이 힘을 거두고 재빨리 물러났다.

“달아날 생각 마라!”

용단은 심협이 물러나는 것을 보고 크게 소리치며 또다시 쫓아왔다.

한편, 이 무렵 임달은 다른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는 여전히 천겁의 위력을 한참 얕잡아보았고, 자신이 그동안 쌓아온 죄업들을 과소평가 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모든 악인(惡因)은 전부 악과(惡果)가 되는 법. 오늘이 바로 그때였다.

우르릉! 꽝!

구천(九天) 너머에서 한 차례 맹렬한 우렛소리가 들려와 사막 전체를 세차게 뒤흔들었다.

그 우렛소리는 마치 하늘의 분노와 같았지만, 네 집법천병의 표정은 여전히 무덤덤했고, 그들은 손에 든 항마저를 다시 서로 맞부딪쳤다. 십자법진에는 천둥번개가 한데 모여 검은색과 은색이 교차된 벼락 기둥이 맺혔다.

임달은 이 광경을 바라보며 또다시 악다구니를 퍼부은 뒤, 쉬지 않고 양손으로 결인을 했다. 그러자 그의 온몸에서 귀면들이 서로 앞다투어 소리를 질러댔고, 그들의 입에서는 핏빛 안개가 솟구쳐 나와 서로 뒤엉키면서 금세 3층짜리 법당 양식의 반투명한 건물을 이루었다.

임달은 법당 안에 가부좌를 튼 채 양손을 합장하고 주문을 외웠는데, 뜻밖에도 불타가 명당(明堂)에 높이 앉아 있는 모습과 흡사했다.

콰앙!

검은색과 은색 벼락 기둥이 응결되어 마침내 법진을 내리쳤고, 이에 법당은 큰 충격에 휘청였다.

가장 먼저 불당 꼭대기가 벼락에 맞아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바로 뒤이어 꼭대기 층 처마가 무너지면서 들보가 사방으로 날아갔고, 그 아래층 기왓장마저 춤추듯 날아다녔다. 다음으로 복도 기둥이 터져나가 마지막 층 처마까지 완전히 재가 되었다.

그 안에 단정히 앉아 있던 임달은 낮게 고함을 내지르며 뜻밖에도 불문의 사자인(*獅子印: 불교의 수인 중 하나)을 맺고 하늘의 벼락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그의 몸 바깥에 흐릿한 빛이 맺혀 몸길이가 수십 장에 이르는 붉은 사자로 변했고, 이 미친 듯한 사자는 포효하며 하늘로 솟구쳐 올라 벼락과 맞부딪쳤다.

둘은 잠시 팽팽하게 대치했지만, 곧 사자의 몸은 마디마디 뇌광(雷光)에 산산조각이 났고, 임달의 몸도 두 가지 색 번갯불에 파묻혔다.

잠시 후, 번갯불이 사그라들자 임달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그는 여전히 가부좌를 튼 채로, 아무런 외상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오직 몸 바깥을 덮은 불광만 조금 어두워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어두워진 불광 속에 검붉은 기운이 조금 줄어들고 황금색 빛깔이 조금 늘어난 상태였다. 만약 그가 정말 모든 뇌겁을 이겨내고 살아남는다면 속세의 때를 전부 씻어내고 다시 태어날 가능성이 높았다.

귀도(鬼道)에서 선적(仙籍)에 오르는 것, 이것이 정말 백귀온신대법의 마지막 길인지도 모른다.

임달은 흥분한 눈빛으로 손을 뒤집어 어두운 금빛의 단약을 꺼내 입속에 털어 넣고는 씹지도 않고 꿀꺽 삼켰다.

“크흐흐…… 크하핫! 하하하하!”

그는 세 번을 광소(狂笑)하더니 광장에 새로 늘어난 시신들을 다시 한번 훑어보고는 양손을 또다시 결인했다.

그가 양팔을 휘두르자 몸에서 수많은 귀면이 입을 쩍 벌리고 혼백을 맹렬히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수사들의 혼백이 하나둘 시신에서 분리되어 나와 잔뜩 겁에 질린 채 임달의 몸을 향해 날아갔다.

이 수행자들의 혼백은 평범한 백성들보다 훨씬 강한 만큼 잡아먹은 뒤 얻게 될 이점도 훨씬 컸다. 조금 전 뇌겁을 견디느라 소모했던 것들을 완전히 보충할 수 있을 터였다.

한데 혼백들이 임달의 몸에 있는 귀면들의 입속으로 떨어지려는 순간, 문득 염불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중생다난, 아불자비, 아미타불(衆生多難, 我佛慈悲, 阿彌陀佛).”

웅장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키가 1장쯤 되는 석각경당(*石刻經幢: 돌에 불교 경문을 새긴 것)이 하늘에서 내려와 쿵 하고 광장 바깥쪽에 떨어졌다. 그리고 한 사람의 그림자가 그 옆에 번쩍 나타났다. 손으로는 법결을 맺은 채 몸에 불광을 휘감은 그는 바로 백소천이었다.

땅에 떨어지면서 경당 표면이 삽시간에 환한 빛을 발했고, 금색 글자들이 하나씩 그 위에서 춤추듯 날아 나왔다가 다시 연이어 바닥에 떨어졌다. 글자들은 마치 자갈처럼 광장으로 이어지는 금빛 대로를 깔았다.

“와, 왕생주! 네놈이 감히!”

임달은 한눈에 그 경문의 내용을 알아보고는 벌컥 화를 내며 백소천에게 공격을 퍼부으려 했다.

그런데 그때, 하늘에서 다시 우렛소리가 울리면서 다섯 번째 뇌겁이 곧 떨어질 기미를 보였다. 이에 임달은 어쩔 수 없이 서둘러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집중해 하늘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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