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6화. 공평하지 않은 하늘의 뜻
둥!
마지막 천고(天鼓)가 울리자, 거대한 네 개의 얼굴이 오그라들기 시작했고, 동시에 생김새도 더욱 또렷해지면서 차츰 안개 사이로 온전한 몸이 드러났다.
금갑천장과 달리 이 네 명의 집법천병들은 상반신을 드러내고 머리를 풀어헤친 채, 한 손으로는 뱀을 다루며 다른 한 손으로는 항마법기를 들고는 금강역사처럼 눈을 부릅뜬 채 아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아미타불.”
고승 무리는 이 광경을 보고 너도나도 두 손을 합장했다.
“이 날이 마침내 왔도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임달의 눈빛은 복잡했다. 그 속에는 설렘과 감격도 있었고, 분노와 울분도 있었으며, 두려움 역시 있었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신묘한 범음 소리가 천지간에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집법천병들의 몸에도 따라서 법력 파문이 일며 십(十)자로 엇갈린 법진 문양이 나타났다.
심협은 호흡이 살짝 가빠오면서 문득 공기의 흐름이 눈에 띄게 정체되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 천지는 마치 허무의 공간에 뒤덮인 것처럼 사위가 한순간 극도로 조용해졌다.
이 순간에는 백소천 등의 싸움도 잠시 멈추었고, 모든 사람의 이목이 하늘 높이 떠오른 집법천병에게 집중되었다.
이때, 네 명의 집법천병이 칠흑 같은 두 눈을 굴리며, 각자 손에 들고 있던 항마저 등의 법기를 임달의 머리 위 하늘에서 서로 엇갈려 한데 맞부딪쳤다.
쨍!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져 적막을 깼다.
허공에 떠 있던 법진이 갑자기 핏빛을 발하면서 묵직한 굉음이 울리더니, 기둥처럼 굵직한 검은 벼락이 순식간에 구름을 뚫고 하늘에서 거세게 쏟아져 내렸다.
이미 진선기에 들어선 임달의 두 눈에도 기이한 광채가 스쳤다. 그가 재빨리 양손을 몸 앞에서 빠르게 결인하고 두 팔을 하늘로 휘두르자, 온몸을 뒤덮은 붉은 보광이 하늘로 치솟아 벼락과 격렬하게 맞부딪쳤다.
콰앙!
폭발음에 이어 검은 벼락이 붉은 보광을 단숨에 깨부수고는 조금의 지체도 없이 계속해서 떨어져 내렸다.
심협의 눈동자가 미미하게 졸아들었고, 임달은 하늘의 노여움과 사람들의 원망을 산 자라 그에게 닥친 뇌겁의 위력은 심협이 당시 꿈속 금빛 대전에서 맞닥뜨렸던 것보다 곱절은 더 강했다.
임달은 이를 악물고 다시 결인하여 하늘을 향해 휘둘렀다.
삽시간에 그의 몸에 있던 수백의 흉악한 귀면들이 연달아 시커먼 빛을 토해냈다. 검은 빛은 서로 합쳐져 집법천병에 뒤지지 않을 만큼 거대한 몸집을 가진 검은 귀물로 변하더니 손에 든 귀두창(鬼頭槍)을 하늘을 향해 불쑥 내찔렀다.
콰르릉!
천겁이 변하여 만들어진 검은 벼락과 임달이 꺼낸 귀두창의 끄트머리가 맞부딪치자, 우렛소리가 터져 나왔다. 무수한 검은 번개줄기가 맞부딪힌 곳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이 광경은 마치 하늘에 커다란 검은 꽃 한 송이가 피어나 한들한들 흔들리며 반짝이는 것같아 보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폭발의 여운에 겹겹이 거센 바람이 수십 리나 불어닥쳐 순식간에 천지영기를 깡그리 쓸어버렸다.
그때, 손바닥을 소매 사이에 감추고 있던 심협이, 갑자기 손톱으로 손바닥을 그었다. 갈라진 손바닥에서 튄 선혈은 그에게 이끌려 허공에서 혈부(血符)로 변하더니 하늘에 떠 있는 혈정 연화대를 향해 곧장 날아갔다.
연화대에 가까워졌을 무렵, 혈부의 빛이 거세게 번쩍였고, 허공에서 맹렬하게 불타오르며 진홍색 화염으로 변해 혈정 연화대를 집어삼켰다. 그러자 혈정 속에 갇혀 있던 순양검배가 갑자기 격렬하게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심협은 순양검배와의 연결고리가 다시 만들어진 것을 느끼고 크게 기뻐하며 즉시 순양검결을 운공했다. 이어서 강보를 밟으며 몸을 큰 폭으로 흔들었고, 손바닥을 홱 끌어당겼다.
그러자 순양검배에 불길이 맹렬히 치솟더니 검끝을 곧장 하늘로 향하고 연화대와 강하게 충돌했다.
쩌적!
혈정 연화대의 오므려져 있던 꽃잎이 충격에 부서져 나가면서 수정가루로 변해 사라졌다. 순양검배는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아 허공에서 몸을 빙글 돌리더니 심협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 돌아갔다.
임달은 첫 번째 천겁에 맞서느라 정신이 팔린 바람에 그쪽을 신경 쓸 겨를이 없어 심협이 비검을 되찾는 것도 막지 못했다. 그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뇌겁의 위력에 놀란 참이었는데, 심협이 소란을 피우자 벌컥 화가 치밀었다.
“용단! 당장 저놈을 죽여라. 육신은 뼈를 꺾어 재로 만들되, 신혼은 모두 멸하지 말고 3할은 남겨두어라! 본좌가 겁을 다 겪고 나면 그때 벌할 것이다!”
“명에 따르겠습니다.”
용단법사가 손바닥을 세우며 답하더니 곧장 몸을 날려 심협에게 달려들었다.
막 순양검배를 소환하고 뒤이어 선아를 구하려던 심협은 뒤에서 울리는 바람소리에 돌아보지도 않고 사월보를 운공하여 몸을 슬쩍 피했다.
용단선사는 사람 뼈로 만든 하얀 선장(禪杖)을 손에 쥐고 있다가 심협과 엇갈려 지나는 순간 갑자기 손바닥을 뒤로 뻗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그의 손바닥 한가운데에는 핏빛 금(禁)자가 나타났다. 한데 심협의 옷자락에 닿지도 않았는데 그 속에 보이지 않는 금제의 힘이 그 몸을 잡아당겼다.
심협은 몸이 뻣뻣이 굳어버렸다. 그리고 그가 벗어날 틈도 없이 용단이 쥐고 있던 백골 선장이 불쑥 튀어나와 그의 미간을 짚었다.
퉁!
심협의 미간에서 가벼운 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그의 눈앞에는 더 이상 아득한 사막이 아니라 춘화현성의 풍경이 펼쳐졌다.
주위에는 말과 수레가 줄을 이었고, 물건을 사라고 외치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며, 온갖 소리가 복잡하게 뒤섞여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했다.
“서방님.”
뒤에서 가벼운 외침이 들려왔다.
심협이 의아해하며 돌아보니 옆에 마차 한 대가 서 있었다. 그 안에서 아리따운 용모에 머리를 틀어 올린 여인이 휘장을 걷어 올리고 몸을 내밀었다.
“다 사셨으면 어서 돌아가시지요. 우리 성 밖에 답청놀이도 가야 하잖아요.”
온화하고 수려한 용모……. 섭채주!
심협은 망연히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고는 그제야 자기 손에 먹음직한 빙당호로(*氷糖葫芦: 산사나무 열매 등을 꼬챙이에 꿰어 설탕물을 발라 굳힌 것)가 한 꼬치 들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 어.”
그는 어리바리하게 대꾸하고는 마차 앞으로 가 끌채를 붙잡고 마차에 뛰어오르려 했다.
바로 그때, 마치 사자의 포효소리처럼 웅장한 목소리가 갑자기 울려 퍼졌다.
“심협!”
이에 심협은 눈을 번쩍 떴다.
춘화현성의 아련한 풍경, 섭채주의 온화하고 아리따운 미소…… 그 모든 것은 일장춘몽처럼 사라졌고, 사방에는 순식간에 사막의 전장이 펼쳐졌다.
“심형, 식몽요(食夢妖)를 조심하게!”
백소천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방금 전에도 그가 불가의 사자후(獅子吼)로 심협을 깨운 것이다.
심협은 그제야 용단선사가 들고 있던 인혼장(引魂杖) 끄트머리에 키가 3촌밖에 되지 않는 반투명한 소인(小人)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래턱과 두 귀 끝은 뾰족하고 길었으며, 입에는 생선가시 같은 날카롭고 작은 이빨들이 빼곡했는데, 미간에서 뻗어 나온 사람 모양의 허상을 물어뜯고 있었다.
물어뜯기고 있는 것은 놀랍게도 심협의 혼백이었다.
심협은 순간 간담이 서늘해져서는 곧장 의식을 집중했다. 그러자 순양검배가 빠르게 스쳐 지나며 소인을 동강 내버렸다.
이에 용단선사는 눈을 부라리며 손에 든 인혼장을 앞으로 불쑥 내찔렀다. 인혼장 끝부분에서는 날카로운 하얀 빛이 뿜어져 나와 심협의 미간을 향해 곧바로 날아들었다.
거의 동시에 심협의 머리 위에 팔현경(八懸鏡)이 떠올라 여덟 줄기 빛의 장막을 사방에 드리웠다.
인혼장의 하얀 빛은 빛 장막에 충돌하고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폭발하면서 그대로 튕겨져 나가 용단에게로 날아갔다.
이 모습을 본 용단은 눈에 이색(異色)을 번득이며 곧바로 뒤로 물러서서 몸을 피했다.
심협이 곧장 쫓아가려는데 갑자기 우르릉하는 무겁고 둔탁한 소리가 하늘에서 다시 엄습해왔다.
두 번째 뇌겁이 강림한 것이다.
그전보다 훨씬 더 굵은 검은 벼락 기둥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왔다. 그 속에는 가닥가닥 실오라기 같은 은빛 광흔이 감돌았다. 위력 또한 이전의 몇 배에 이르렀다.
임달은 하늘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감히 정신을 딴 데 팔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가 고승들을 불러온 것은 그들의 공덕과 기운을 자신과 섞어 아홉 번째 뇌겁, 그러니까 가장 사납고 위험한 뇌겁의 위력을 분담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앞의 여덟 뇌겁은 홀로 충분히 저항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보아하니 자신이 천겁의 위력을 과소평가한 것이 분명했다. 이런 식이라면 전력을 다해도 일곱 번째 뇌겁에도 견뎌내지 못할 터였다. 그렇다고 이 고승 선사들의 공덕과 기운을 미리 사용한다면 아홉 번째 뇌겁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겁을 무사히 겪어내기 위해 백여 년간 공을 들였건만, 이런 뜻밖의 상황이 일어날 줄이야!
‘빌어먹을 놈의 천도. 사심이 없다 하지 않았느냐! 한데 어찌하여 내게는 이리도 가차 없이 맹공격을 퍼붓는 게야! 이리 불공평한데 하늘의 뜻이라고 자처한단 말이냐!’
임달은 침을 탁 뱉으며 속으로 욕설을 퍼붓고는 양손을 다시 결인하고 하늘을 향해 휘둘렀다.
저편에 귀기가 응집되어 만들어진 거대한 귀물은 마치 선마법상(仙魔法相)처럼 우뚝 서서 손에 든 거대한 귀두창을 다시 휘둘러 세차게 밀려오는 벼락을 찔렀다.
귀두창 끝에서 검은 빛줄기들이 뿜어져 나와 벼락과 한데 뒤섞이며 동시에 폭발했다.
꽈광!
온 하늘에 천둥번개가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폭발했고, 검은 안개가 하늘로 세차게 솟구쳐 올랐다가 흩어져 하늘 위는 마치 종말이 온 것처럼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거대한 귀물의 손에 들린 장창은 번갯불에 부러졌고, 은빛 번개줄기들이 떨어지는 비처럼 쏟아져 내리면서 온몸에 구멍이 뚫린 귀물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처참하기가 이를 데 없는 모습이었다.
임달이 손을 이리저리 흔들자,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귀물의 몸이 흩어져 자욱한 안개로 변해 되돌아오더니 다시 그의 몸에 붙은 흉악한 귀면에 흡수되어 뱃속으로 돌아갔다.
두 번째 뇌겁도 무사히 버텨낸 임달은 두 손으로 앞쪽 허공을 누르는 시늉을 하며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그가 아래를 훑어보니 서역의 여러 승려들이 데리고 온 호법승들은 이미 대부분 도륙을 당했다. 그러나 자신의 부하들도 적잖이 죽고 다쳐 지금은 보산과 용단을 포함해 겨우 일곱 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중 세 사람은 남은 호법승들을 추격했고, 보산과 부하 하나는 백소천과 싸우는 중이었으며, 또 하나는 귀장 조비극을 막아서고 있었다. 용단은 홀로 심협과 싸우는 중이었다.
용단은 임달이 현임 연신단 성주에게 배신당하고 서역으로 도망온 뒤 거둔 수제자이자 심혈을 쏟아 기른 자였기 때문에 실력도 가장 강력했다.
심협은 팔현경으로 몸을 보호하면서 순양검배와 용각추를 조종해 쉬지 않고 공격했고, 용단은 점점 밀리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심협은 상대방이 아직 모든 실력을 발휘하지 않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