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435화 (435/1,214)
  • 435화. 요승(妖僧)

    심협은 그 자신과 비검 모두 임달이 풀어놓은 광풍에 3척이나 뒤로 밀려난 뒤에야 임달선사가 놀랍게도 대승 초기 수사라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가까스로 몸을 가눈 뒤 법단 위의 선아를 올려다보던 그는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초조해졌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선아부터 구하고 보자.’

    결심을 굳힌 그는 곧장 사월보를 시전하여 법단을 향해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체내 법력이 솟구쳐 나와 순양검배에 주입되었다. 그는 검 안에 있는 홍련업화가 솟구쳐 나오도록 온 힘을 다하면서 검날 바깥에 화염 날을 한 겹 응집시키고는 법단을 향해 있는 힘껏 내찔렀다.

    그때, 커다란 고함이 들려왔다.

    “어리석은 놈! 고집을 부려 죽음을 자초하다니!”

    분노에 찬 임달이 손을 들어 허공에 결인하더니 철썩 내리쳤다.

    그의 소매 사이로 붉은 빛을 띤 검은 살기가 미친 듯이 쏟아져 나와 시커멓고 거대한 안개 소용돌이로 변하더니, 공중에서 빙빙 돌며 내려와 심협을 그대로 휘감고 순식간에 백 장 밖으로 벗어났다.

    검은 안개 속에서는 투명하게 빛나는 핏빛 연꽃이 나타나 한 줄기 혈광을 뿜어내 순양검배를 휘감고 꽃의 중심부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사방의 연꽃잎을 오므려 순양검배를 그 안에 가둬버렸다.

    심협은 순양검배와의 연결이 끊어진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당장 더욱 난처한 것은 사방의 검은 안개 소용돌이 속에서 음살(陰煞)의 기운이 자신을 향해 쉬지 않고 덮쳐온다는 것이었다. 이 음살의 기운은 마치 파도처럼 한 번 또 한 번 그의 몸과 혼백을 씻어내, 마치 얼음 구덩이에 떨어진 것처럼 온몸이 뼛속까지 시려왔다.

    한편, 광장의 수많은 호법승들은 금세 태반이 죽거나 다쳤고, 남은 이들도 이제 몇 합을 버티지 못할 지경이었다.

    보산선사는 두 사람을 더 이끌고 백소천을 공격했다.

    백소천은 귀장의 도움 덕에 한동안은 열세에 처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을 구하러 갈 겨를은 없었다.

    높은 단상 위에 서 있던 임달은 사방에 가득한 시신과 멀리 천막에서 치솟는 불길을 보며 만족스런 미소를 띤 채 중얼거렸다.

    “얼마나 오랫동안 억눌러 왔던가! 드디어 마음껏 활개 칠 수 있게 되었구나!”

    말을 마친 그는 주위에 감금되어 있는 선사들을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여러 선사님들, 오늘 본좌가 여기서 깨달음을 얻어 승천하려 합니다. 성공 여부는 온전히 여러분께 달려 있으니 수고들 좀 해주십시오.”

    한데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그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약간 긴장한 기색마저 어렸다.

    그는 양손으로 기괴한 결인을 맺더니 귀신이 낮게 흐느끼는 듯한 소리를 읊조리면서 갑자기 양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하늘을 떠받치는 듯한 자세였다.

    곧이어 그의 뒤에 겹겹이 붉은 빛이 번득이면서 점점 커졌는데, 불타나 보살의 뒤에 있는 보광과 흡사했다. 또한 그의 몸 아래에도 점점이 혈광이 응집되어 커다란 혈정(*血晶: 홍수정) 연화대가 되었다.

    임달선사가 눈빛을 살짝 번득이며 손으로 염화지 수인(手印)을 맺은 채 가부좌를 튼 순간, 온몸에서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와 옷이 그대로 터져 나가고 벌거벗은 상반신이 드러났다.

    사람들은 반쯤 벗은 그의 몸에 불광과 보배로운 기운을 뿜어내는 금엽불경(*金頁佛經: 책장이 금으로 된 불경)이 원을 그리며 감겨 있고, 그 위에 불교 경문이 빽빽하게 쓰여 있는 것을 보았다.

    한데 원래는 금빛 찬란해야 할 불경이 밑에서 위로 절반 이상 시커멓게 물들어 있어, 마치 오랫동안 방치되어 이미 썩어버린 것 같았다.

    임달선사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몸을 가볍게 긋자, 금엽불경이 중간에서부터 찢어져 그의 몸에서 조금씩 떨어져 나갔다.

    “저게 뭐지?”

    “악귀! 저건 연옥에나 있는 흉악한 귀물일세!”

    “어찌 그럴 수가, 그의 몸에 어찌 저런 것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죄업이지, 죄업이야…….”

    임달선사의 상반신이 완전히 드러나자, 감금된 선사들은 경악하며 외쳤다.

    바로 그때, 용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용 모양 광염(光焰)이 하늘로 솟구쳐 검은 안개 소용돌이를 흩어 버렸다. 심협이 용각추를 든 채 하늘로 돌진하며 곤경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 또한 임달선사의 모습을 보고는 낯빛이 변했다.

    “백귀온신대법! 요승(妖僧) 임달, 너는 연신단 사람이더냐?”

    그 무렵, 성련법단 승려 두 명의 연합공격을 물리치고 잠깐의 틈이 생긴 귀장도 임달을 보고는 크게 동요했다.

    임달의 상반신은 온통 핏빛으로 변했고, 그 위로 커다란 혹이 빽빽하게 솟아올랐으며, 혹 하나하나에는 흉악하기 그지없는 귀신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귀면(鬼面)들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얼굴마다 날카로운 뿔이 두 개씩 달렸고, 입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해 이미 마귀와 다를 바 없었다.

    심협은 백귀온신대법에 대해 잘 알았기에, 현재 임달의 백귀온신대법이 이미 극치에 이르렀음을 알아챘다. 몸에서 뿜어내는 기운의 파동이 이를 뒷받침했다. 임달은 이미 공법을 대성(大成)하였고, 경지도 대승기 정점에 올라 경지를 돌파하고 신선이 되기까지 한 걸음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가 이 대승법회에 심혈을 기울인 것 또한 바로 이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함이었으리라.

    “네놈이 어찌 연신단을 알고 있는 것이냐! 그 역도가 당시 나의 성주(聖主) 자리를 찬탈하고도 내가 세운 성단(聖壇)을 욕되게 한 것 같지는 않으니, 내 신선의 경지에 오른 다음 중원으로 가 그와 제대로 회포를 풀겠다.”

    심협은 상대가 말한 역도가 지금 연신단의 성주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그는 임달의 수단과 악업을 보며 상대가 서역에 숨은 마혼의 환생일 것이라 확신했다.

    그때였다.

    우르릉!

    커다란 굉음이 울렸다.

    구름 하나 없이 맑았던 사막의 하늘에 갑자기 광풍이 휘몰아치더니 납빛 먹구름이 겹겹이 몰려와 순식간에 사방 백 리의 하늘을 뒤덮었다.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 요승 임달이 재주를 부린 것이라 생각했지만, 심협은 그 속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그는 주위의 고승대덕들을 다시 한번 훑어보고 마침내 임달의 목적을 완전히 깨달았다. 그는 백귀온신대법을 수련하면서 속도를 높이기 위해 무고한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였을 것이며, 살업이 지나치게 무거워 죄업이 몸에 달라붙는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다.

    천도(天道)는 순환하고 인과응보는 틀림이 없으니, 이런 수사일수록 득도하여 장생하기란 더욱 어려웠고, 그들이 대승의 고비를 뚫고 진선기에 들어설 때 닥칠 천겁은 더욱 위험할 터였다.

    평범한 수사들이 구사일생이라면 그들은 천사일생(千死一生)이니, 천겁에 대응하려면 반드시 겁(劫)을 대신할 방법이 필요하리라. 다만 그 방법이 꼭 효과를 보리라는 법은 없었다.

    “여러 고승 분들을 너의 겁을 대신할 방법으로 삼으려는 것이냐?”

    심협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한낱 출규기 수사 주제에 그런 것까지도 안단 말이냐? 그래, 네 말이 맞다. 바로 본좌를 대신해 저들이 겁을 당하게 하려는 것이다. 저들에게는 더없는 영광이지. 크하하!”

    “흥! 천도에는 사심 없는 법! 네놈은 살업이 깊고 중하니 결국 천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심협이 하늘을 대신하듯 꾸짖었다.

    “천도에는 사심이 없다라……. 하하! 본좌는 귀도(鬼道)의 공법을 알게 된 후로 천도에 용납되지 못했다. 천겁에 맞서기 위해 본심을 억누르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선사의 모습으로 백 년간 불도(佛道)를 닦았지. 그 동안에는 살업을 저지르지도 않았고, 성실하게 선을 행했으니 죄업을 없앨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한데 공덕은 신기루와 같아서 살업을 당해내지 못하더구나. 천도가 내게 속죄할 기회를 주지 않으니 그저 놔두는 수밖에……. 이제 이 고승대덕들이 나와 함께 하늘의 벌을 받을 테니, 나는 천도가 어떻게 무사(無私)를 이루어내는지 지켜봐야겠다. 크하하! 으하하핫!”

    임달은 통쾌해 미치겠다는 듯 허리를 꺾어가며 웃었다.

    “네가 불도를 닦은 것이 참일 수도 있고, 선행을 했던 것도 진심일지 모르지만, 위선으로 얻은 결과가 어찌 진실이 될 수 있겠느냐! 어쩐지 그날 네가 불광을 띠고 있으면서도 붉은 기가 돈다 했더니, 결국은 진정으로 공덕을 쌓은 몸이 아니었던 것이야!”

    심협은 신랄하게 비웃었다.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여봐야 한낱 출규기 수사 나부랭이인 네가 나를 어쩔 수 있단 말이더냐?”

    임달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면서 그는 갑자기 두 손을 벌리고 핏빛 연화대를 따라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의 몸에 있던 흉악한 귀면들은 되살아난 것처럼 하나둘 머리를 꿈틀거리며 그의 시뻘건 피부 아래로 툭 불거져 나왔다. 그의 살갗을 찢어발기고 그 몸뚱이에서 뛰쳐나오려는 것 같았다.

    “크어엉!”

    임달은 입을 벌리지 않았지만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가 그의 몸에서 들려왔다. 흉악한 귀면들이 전부 시뻘건 입을 크게 벌린 탓에, 그의 온몸에는 백여 개나 되는 시커먼 구멍들이 빽빽하게 생겨났다.

    간간이 들려오는 날카로운 바람소리와 함께, 그 시뻘건 입들에서 강한 흡인력이 쉬지 않고 발휘됐다. 방금 수천 명이 목숨을 잃은 광장에는 한순간 검은 연기가 자욱해지더니 방금 죽어 아직 저승 명부(冥府)에 들어가지도 못한 망령들이 갈가리 찢겨 귀신들의 시뻘건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 망령들이 뱃속에 들어가자 안 그래도 강력했던 임달의 기운이 다시 폭증했고, 그의 등 뒤에 있던 붉은 빛 고리가 하늘로 솟구쳐 오르면서 핏빛 기둥 같은 살기로 변해 땅과 하늘에 곧장 닿았다.

    이 순간 임달은, 마침내 수련 경지의 난관을 돌파하여 정식으로 진선기에 발을 들였다.

    하늘에 낀 먹구름도 무언가를 감지한 듯, 지면에서 불과 수백 장 거리에 두꺼운 구름층이 쌓여 꼭 하늘이 통째로 내려앉은 것만 같았다.

    잠시 후, 먹구름 사이로 여러 줄기 햇살이 새어 나왔고, 구름층 깊숙한 곳에서 안개가 용솟음치며 거대하고 흐릿한 얼굴 네 개가 차츰 모습을 드러냈다.

    둥! 둥!

    기고(夔鼓)가 세 번 울리면 세상에 천겁이 내리리라!

    심협은 하늘에 나타난 네 사람의 거대한 얼굴이 바로 천지의 대도(大道)가 시각화되어 나타난 집법천병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 네 사람의 모습은 그가 꿈속에서 본 것과는 달랐다.

    그가 당시 보았던 것은 금갑을 입은 신인(神人) 역사 네 사람이 각각 손에 부월 법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들 역시 표정은 차갑지만 몸에는 인신(人神)의 기운이 조금도 없어 눈앞의 저 네 명보다 훨씬 더 광명정대했다.

    반면 하늘 높이 떠 있는 네 사람의 거대한 얼굴은 전부 안개가 응집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이목구비가 흐릿하여 사람인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온몸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섬뜩한 귀기를 띠고 있었다. 다만 그들이 지닌 귀기는 어떠한 불순물도 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순수해 보였는데, 이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음살의 힘이었다.

    한편,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조비극의 표정에 흥분이 들어찼다. 이번에 내린 천겁이 그를 겨냥하진 않았지만, 똑같이 백귀온신대법을 수련하는 그로서는 이 현묘한 천지의 기운이 흐르는 가운데 어떤 보이지 않는 친근감을 느꼈다.

    체내의 법력은 움직일 필요도 없이 스스로 운행하는 것 같았다. 하늘을 짓누르는 먹구름 아래 숨 쉬기가 힘들어진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는 오히려 전에 없던 홀가분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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