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434화 (434/1,214)
  • 434화. 신선이 되려는 욕망

    붉은 빛 덮개가 법단 꼭대기를 뒤덮고 단상에 올라 설법하던 모든 선사들을 그 안에 가두었다.

    이를 본 타란선사가 손을 들어 염화지(拈花指) 결인을 맺으며 불호(佛號)를 가볍게 읊조리더니 앞을 향해 한쪽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의 등 뒤에 똑같이 염화격장(*拈花擊掌: 한 손으로 꽃을 꺾는 듯한 수인을 맺고 한쪽 손바닥을 뻗은 모양)을 한 불타의 허상이 떠올랐다.

    빛으로 된 손바닥이 지나는 곳마다 금빛이 치솟으며 거대한 부처의 손자국이 붉은 빛 덮개를 묵직하게 내리쳤다.

    쿵!

    둔탁한 소리가 울리며 붉은 빛 덮개가 격렬하게 진동해 법단 전체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동이 잠잠해졌을 때, 빛 덮개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듯 붉은 빛이 일렁였다. 오히려 타란선사가 거대한 반동에 피를 토하며 주저앉았다.

    다른 수행 선사들도 예외 없이 타란선사와 같은 결말을 맞았다. 빛 덮개의 결계는 안에서는 깰 수가 없는 듯했다.

    중앙 법단에 있던 임달선사는 빛 덮개 속에 갇힌 중에도 평온한 안색으로 여전히 염주를 굴리고 염불을 외우며 전혀 바깥 상황에 방해를 받지 않았다.

    선아가 조금 불안한 마음에 법단 가장자리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심협이 고개를 들고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것이 보였다. 이에 선아는 조금 안심하며 다시 가부좌를 틀었다.

    그때, 백소천이 손목을 돌렸다. 그러자 손바닥 한가운데에 금빛이 번쩍이더니 한쪽 끝은 둥글고 반대쪽 끝은 날카로운 불문의 금강저가 나타났다.

    그가 한 손으로 금강저의 정중앙을 쥔 채 다른 손은 두 손가락을 모아 금강저 끄트머리를 가볍게 문지르자, 짙은 금빛이 피어오르며 순간 강력한 힘의 파동이 일어났다.

    “불법이 중생을 구제하고, 금강(金剛)이 마귀를 무찌르리라(佛法普渡, 金剛破魔!)!”

    그가 낮게 외치자 손에 든 금강저가 순간 작열하는 빛을 내뿜으며 높은 단상을 힘껏 내찔렀다.

    쾅!

    법단 위를 뒤덮고 있던 붉은 빛은 금강저의 금빛과 격렬하게 충돌하면서 거세게 흔들렸다. 이 둘은 마치 물과 불의 기세를 이룬 듯 강하게 부딪치며 간간이 잔물결을 일으켰고, 법단 전체가 그 힘에 따라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상황을 지켜본 백소천이 싸늘하게 웃더니, 한손을 결인하고 금강저를 다시 한번 철썩 내리쳤다. 그러자 금강저에 순간 범어로 된 부적 문양들이 떠올랐고, 뾰족한 끝 부분의 금빛이 뒤틀리더니 나선형으로 변했다. 관통력이 배로 치솟은 금강저는 곧장 법단 위의 붉은 빛과 법단까지 꿰뚫으려 했다.

    한데 그때, 저 위쪽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심협이 돌아보니, 선아가 법단 가장자리에 엎드린 채 고통스러운 얼굴로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심협은 재빨리 백소천의 어깨를 붙잡아 법단 옆으로 끌어내렸다.

    “심협, 자네 왜……?”

    심협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백소천의 말을 끊었다.

    “이 법진은 실로 기이하여 법진 안의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소. 백형이 방금 법진을 뚫었다면 선아가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르오.”

    심협의 말에 백소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뭐라고?”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선사들을 따라 온 호법 승려들도 같은 절의 선사를 구출하려 했으나 모두 실패로 끝이 나고 말았다. 모두 같은 이유였다. 이 법진이 견고해서 뚫을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억지로 법진을 부쉈다가는 법진 안 선사들의 목숨을 앗아갈 위험이 컸기 때문이었다.

    법단을 크게 둘러싼 백성들은 여전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닫지 못한 터라 서로를 멀뚱히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부왕, 선사님들께서 왜 저러십니까?”

    아버지 품에 있던 기련미 또한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 국왕인 교련미는 이미 뭔가 잘못되었음을 눈치챈 뒤였다. 그는 아들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곁에 있던 호위병에게 왕후와 왕자들을 데리고 떠날 것을 조용히 명했다.

    그때, 법단에서 누군가가 버럭 성을 내며 외쳤다.

    “용단선사, 이게 무슨 짓이오? 어찌 감히 법진을 치고 임달선사와 여러 고승대덕들을 감금할 수가 있소?”

    그의 이런 외침은 법단을 에워싼 많은 사람들의 의혹을 풀어주었다.

    “뭐라? 용단선사님이 임달선사님을 배반했단 말이야?”

    누군가 깜짝 놀라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럴 리가! 용단선사님께서 어찌……? 임달선사님은 그의 사부잖아!”

    “이게 무슨 일이래?”

    “임달선사님!”

    금세 여기저기서 수군거림과 경악에 찬 목소리가 울렸다. 임달선사는 늘 모든 사람들의 희망과도 같은 존재였으니, 사람들은 그가 이 상황을 해명해주기를 기대했다.

    사람들의 열렬한 기대 속에 임달선사는 천천히 일어나 진정하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악당들은 예고가 없는 법이지요. 갑자기 나서서 여러분을 놀라고 불안하게 해드렸으니 정말 죄송합니다.”

    임달선사가 그렇게 말하고는 앞에서 손을 휘두르자, 소매 사이로 푸른 빛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펑!

    가벼운 폭발음이 울리더니, 그를 뒤덮은 핏빛 빛 덮개가 산산조각 나버렸다.

    이를 본 사람들은 순간 크게 기뻐했다.

    “역시 임달선사님이셔!”

    이 모습에 백성들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고, 광장 법단에 있던 고승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심협과 백소천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표정이 굳어졌다. 그들은 임달선사가 방금 사과할 때 어떤 이유에서인지 불문의 승례(僧禮)를 갖추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때, 임달선사의 말이 이어졌다.

    “여러분께 용서를 구합니다. 용단이 하는 일은 모두 본좌가 시킨 것이니 여러분께서는 너무 당황하실 필요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 말에 깜짝 놀랐으나, 어떤 사람들은 뜻밖에도 안심했다.

    “임달선사님의 계획이었군! 그럼 괜찮겠지.”

    “그래, 임달선사님의 계획이라면 나쁜 일은 아닐 거야.”

    “선사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으니까.”

    심협은 이런 말들이 심지어 일부 호법승들의 입에서까지 나오자 서글픈 마음마저 들었다.

    “이 사람들이 불도를 닦는 것은 ‘오(悟: 깨닫다)’ 한 글자를 위해서이고, 중생들이 미혹에서 벗어나기를 간구할 텐데, 어찌 부처님을 숭배하지 않고 임달선사라는 자를 덮어놓고 믿는 것일까?”

    백소천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혀를 찼다.

    “불조(佛祖)께서는 너무 멀리 계시고, 불법을 너무나도 심오하게 말씀하셨지. 한데 임달선사는 바로 눈앞에 있지 않소. 들어보니 그는 일찍이 서역 36국을 두루 다니며 요괴와 마귀를 굴복시키고 여러 선한 일을 행하여, 그가 남긴 기적이 불조보다도 많다고 하더이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 그를 믿을 수밖에…….”

    심협의 탄식에 백소천도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람들이 우매한 게지…….”

    백소천의 씁쓸한 목소리를 들으며 심협은 임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임달, 이 고승들을 감금하여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

    그 말에 보산선사가 눈을 부라리며 호통을 쳤다.

    “무엄하다! 감히 선사님의 존함을 그대로 부르다니!”

    다른 백성들도 노기등등한 눈으로 심협을 노려보았다.

    “너희 성련법단이 이상하다는 것쯤이야 진즉 눈치챘지. 보아하니 뿌리부터 썩은 것 같은데, 아직까지 시치미를 뗄 필요가 있겠느냐?”

    심협은 체면 따위 조금도 봐주지 않고 비아냥거렸다.

    “이 시건방진 이방인 놈! 감히 성단을 비방한단 말이냐. 더욱이 임달선사님을 모독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보산 등이 나설 것도 없이 백성들 중 누군가가 큰 소리로 꾸짖었다.

    “미친놈이 간도 크지! 감히 여기서 함부로 지껄이다니!”

    “저 오만불손한 놈을 쫓아내라!”

    백성들이 큰소리로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한편, 왕은 어두운 표정으로 은밀히 호위병들에게 성안의 수비군들을 데려오도록 명했다.

    “무슨 짓을 하려느냐고? 곧 알게 될 게다. 본좌가 신선의 경지에 오르는 것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니, 너희 같이 놈들에게도 큰 복인 셈이지. 하하하!”

    임달선사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치고는 크게 웃었다.

    그의 모습은 오만하기 이를 데 없어 예전의 온화했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심협에게 욕설을 퍼붓던 백성들의 목소리가 다 작아질 정도였다. 그들은 갑자기 낯설어진 임달선사를 보고는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심협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순간 임달선사의 말에 담긴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시간이 거의 다 됐군. 시작해도 되겠어.”

    임달선사가 그렇게 말하자 그의 제자 열여섯 명이 법단 아래로 몸을 날려 어떤 이는 광장 위로 뛰어들었고, 어떤 이는 곧장 백성들 속으로 날아들었다.

    뒤이어 처참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군중 속으로 뛰어든 성련법단 무리의 기습에 일부 호법승들은 미처 방어할 겨를도 없이 연달아 명치를 찔려 목숨을 잃고 말았다.

    구경꾼들은 더욱 처참했다. 성련법단 무리는 법술을 쓸 것도 없이 수행의 기운을 발산하여 날카로운 칼날로 응집한 뒤 수백수천에 달하는 백성들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그야말로 학살이었다.

    백성들은 갈팡질팡하며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국왕 교련미도 남은 호위병들의 호송을 받으며 달아났다. 그는 본래 자기 혼자 남으면 조금이나마 상황을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런 갑작스런 학살은 도저히 통제가 불가능했다.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는구나!”

    백소천은 분노하며 사람들 속으로 몸을 날리더니, 어느 호리호리한 성련법단 선사에게 금강저를 휘둘렀다.

    상대는 즉시 몸을 돌리고 무언가를 끌어안듯 양팔을 둥그렇게 말았다. 그러자 그의 손바닥 한가운데에서 동그란 핏빛 거울이 떠올랐고, 그 위에서 한 줄기 혈광(血光)이 날아와 백소천의 금강저에 맞섰다.

    그러나 백소천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금강저에 금빛 소용돌이가 떠오르더니 혈광을 그대로 흩어버리고 곧장 날아가 핏빛 거울을 산산조각 냈다.

    “크아악!”

    그 호리호리한 선사는 응혼 중기 경지에 불과했기에 의지하던 법기가 부서지자 더는 저항하지 못하고 금강저에 명치를 꿰뚫려 즉사했다.

    이를 본 주위의 성련법단 선사 넷이 즉시 출규 초기 선사의 지휘에 따라 백소천을 포위해왔다.

    “가서 도와라!”

    심협은 허리춤의 건곤대를 두드려 귀장을 불러내 명했다.

    “명 받듭니다.”

    조비극은 포권하더니 곧장 안개처럼 흩어져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심협은 법단을 보며 잠시 머뭇거렸으나, 이내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붉은 비검이 그의 손바닥에 떠올랐다. 뒤이어 순양검배에서 붉은 빛이 번쩍이더니 표면에 은은한 화염이 한 층 솟아올랐다.

    ‘이 법진은 안팎으로 음흉한 기운이 배어 있어 힘으로는 깨뜨릴 수 없다. 홍련업화라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시험해봐야겠군.’

    심협은 그렇게 생각하며 비검을 조종해 법단에 가까이 다가갔다. 선아가 다칠까 두려워 법단을 직접적으로 공격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비검에서 화염을 한 줄기 끌어내 법단 위의 붉은 빛을 탐색해보기만 했다.

    법단의 붉은 빛은 마치 이 화염이 천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이에 심협은 크게 기뻐하며 즉시 힘을 더해 장검을 두드리고는 곧장 법단을 공격했다.

    그 무렵, 법단 한가운데에 있던 임달이 무언가 이상을 알아챘는지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큰소리로 꾸짖었다.

    “감히 본좌의 법단을 망가뜨리려하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임달의 승복이 저절로 부풀어 오르면서 갑자기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와 실체를 지닌 것처럼 엉겨 붙어 한 줄기 광풍이 되었다. 그리고는 그를 중심 삼아 사방팔방으로 휘몰아쳤다.

    광장에서는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고 있던 수많은 호법승들이 이 광풍에 몸조차 가누지 못하고 거의 넘어질 것처럼 비틀거리며 하나둘 뒤로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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