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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433화 (433/1,214)
  • 433화. 정체불명의 법진

    격문이 발포된 당일, 여러 나라에서 온 수만 명의 백성이 밤길을 재촉해 천막을 법단 주위로 옮겼고, 밤에도 사막에 밝혀진 모닥불이 수십 리에 이어져 밤하늘의 별들과 어우러졌다.

    이튿날 이른 아침, 적곡성 서문이 열렸다. 국왕 교련미는 왕후와 여러 왕자들을 대동한 채, 붉은 옷을 입은 두 승려의 재촉에 따라 운연(*雲輦: 전설 속 신선들이 수레로 쓴다는 구름)을 타고 성문 앞에서 천천히 날아올라 법회 장소로 앞장서서 날아갔다.

    36국의 승려들 중 법력을 지닌 이는 각자 하늘을 날아 국왕의 운연을 바짝 뒤쫓았고, 평범한 사람들도 수행자의 인솔 아래 비주를 타거나 법보를 몰아 날아갔다.

    그 아래로는 수많은 백성들이 말과 낙타를 타거나 혹은 걸으며 줄을 이었다.

    선아는 백소천을 따라 비주를 탔는데, 그동안 몸조리를 잘한 덕에 몸은 건강을 완전히 회복했지만, 정신은 여전히 좋아 보이지 않았다.

    선아는 첨과의 마음속 응어리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푼 것인지 심협과 백소천에게도 자세히 말한 적이 없는데, 사실 그 사흘 동안 그는 청심주만 외운 것이 아니라 수시로 정신을 차리고 첨과와 논쟁을 벌였다. 한데 첨과의 불학 조예는 선아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였다. 선아가 끝내 논쟁에서 이기기는 했지만, 그의 심신에 있어 엄청난 시련이라 할 만했다.

    선아는 결국 자신의 전생이 남긴 사리와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사리 속의 힘을 빌려 첨과를 완전히 일깨웠다.

    “백 시주, 그날 이후 첨과를 보셨습니까?”

    선아는 백소천 뒤에 가부좌를 틀고 있다가 갑자기 물었다.

    “없습니다. 듣기로는 그날 본 사람이 있는데, 그가 성문을 나갔다고 하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그가 고국으로 속죄하러 돌아갔다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그날 이후로 더는 그를 본 사람이 없지요.”

    백소천이 말했다.

    “선아 사부님께서는 그에게 무슨 볼일이 더 있으십니까?”

    심협이 궁금한 듯 물었다.

    “별것 아닙니다. 그저 그날 그의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준 뒤로 어쩐지 아직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선리(禪理)가 조금 남은 것 같아, 어딘가 석연치 않을 뿐입니다.”

    “선아 사부께서는 너무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들어보니 첨과가 성을 떠난 그날 차림새도 깨끗하게 가다듬고 얼굴에도 해탈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고 하니, 사부께서 그가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해주신 게 분명합니다.”

    심협이 위로하듯 말하자 선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으나,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 일행은 금세 법회 장소에 도착했다. 거대한 사막에 10여 리나 길게 늘어선 천막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세 사람은 법회장 바로 앞의 넓은 곳에 이르렀다. 그곳에서는 승려들이 하나같이 단정한 차림으로 묵묵히 경문을 읊고 있었다.

    교련미는 존귀한 국왕이지만, 지금은 일반 신도들처럼 법회장 바로 앞에 처마가 달린 천막을 하나 치고는 왕후, 왕자들과 함께 단정히 앉아 있었다.

    심협 일행이 단상에 내려서자 기련미가 활짝 웃으며 그들에게 손짓을 했다.

    심협과 백소천도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선아는 손바닥을 세워 예를 갖추었다.

    “더없이 깊고 미묘한 법이여, 백천만겁에도 만나기 어렵습니다. 저는 지금 보고 들은 것을 마음에 받아들여 여래의 참뜻을 이해하기 원하옵니다(無上甚深微妙法, 百千萬劫難遭遇. 我今見聞得受持, 愿解如來眞實義).”

    임달선사는 승려 무리 앞에 서서 <불설무량수경(佛說無量壽經)>으로 법회를 시작했다.

    “여시아문(*如是我聞: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라는 뜻으로 불경의 첫머리에 붙이는 말).”

    승려들이 일제히 예를 갖추며 말했다.

    주위에 모인 수만의 백성들도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고, 시끌시끌했던 광장은 금세 고요해졌다.

    “수고스러우시겠지만 여러 대덕들께서는 법단에 올라 설법 준비를 해주십시오.”

    임달선사가 군중을 한 차례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앞장서서 몸을 날려 법회장 중앙의 높은 단상에 내려서더니, 양손을 합장한 채 연꽃 부들방석 위에 가부좌를 틀었다.

    그 뒤를 이어 용단과 보산 등 무려 열여섯 명의 성련법단 승려 무리가 연달아 뛰어올라 사방으로 흩어져 단상 주위에 내려앉았다.

    “선아 사부님, 준비되셨습니까?”

    심협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선아는 그를 바라보며 조금 긴장한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심협은 싱긋 웃으며 손을 들어 결인하고는 땅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땅에서 맑은 물이 용솟음쳐 올라와 나선형 물결로 변하더니 선아를 떠받치고 천천히 하늘로 올라가 법단에 내려놓았다.

    선아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천천히 스치는 바람을 느꼈다. 그러다가 문득 머릿속에 낯설면서도 익숙한 장면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언젠가 지금처럼 높은 법단에 올라 사람들과 불법을 겨뤘던 것만 같은 잔상이었다.

    그러나 이 장면은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을 뿐이었다. 그나마도 그저 하나의 화면에 불과한 데다 매우 흐릿했다.

    선아는 이내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는 손으로 염주꿰미를 굴리며 묵묵히 반야심경을 읊조렸다.

    다른 사찰의 선사들도 하나둘 단상에 올라 가부좌를 틀더니 각자 염불을 외우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선사들을 따라온 제자들은 각 사문 어른들의 법단 아래 자리를 잡고 둘러앉았다.

    “타란(陀爛)선사님, 이번 법회에서는 어떤 경전으로 입법(入法)하셨습니까?”

    임달선사는 이번 대승법회를 주최한 주지승으로서 먼저 설법을 시작하지 않고 차사국(車師國)의 법사를 지목하여 첫 설법을 이끌었다.

    나이가 지긋한 깡마른 노승이 먼저 임달선사를 향해 멀리서 예를 갖추고는 곧 설법을 시작했다.

    “빈승은 <십선업도경(十善業道經)>을 인용하여 사람들에게 여러 불보살들의 업을 끊고 재액을 푸는 법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중생들이여, 모든 고난을 끊어내려거든 큰 뜻을 발원하고 십선업도(*十善業道: 불교에서 십악에 반대되는 열 가지 선한 일)를 수행해야 합니다. 즉, 살생을 멈추고, 도둑질을 금하며, 음란을 끊고, 망언을 하지 않으며, 이간질하지 않고, 험담하지 않고, 함부로 말하지 않으며, 탐욕을 멀리하고, 성내지 않으며, 어리석음을 끊어내는 것입니다…….”

    심협은 불문에 속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과거에 불문 경전을 조금 본 적이 있었기에 이 노승이 불법을 수행하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 즉 열 가지 악업을 멀리하여 자신을 지키라 말하는 것임을 알았다.

    이어서 타란선사는 이 십선업도에서 확장되어 나온 세상살이의 이치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는데, 내용은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웠으며, 적용되는 범위가 매우 넓었다. 또한 그 역시 수행중인 사람이라 목소리가 법단 사방 10리까지 퍼져 나갔다.

    승려들만이 아니라 주위의 백성들까지도 넋을 놓고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타란선사가 설법을 마치자 임달선사와 승려들은 그를 향해 예를 갖추며 ‘아미타불’하고 읊조린 뒤, 두 번째 선사를 지명해 설법을 이어나갔다.

    두 번째 승려는 <원각요의경(圓覺了義經)>을 인용하여 석가모니불과 여러 보살들이 보살도를 어떻게 수행하는가에 대한 문답을, 많은 불게(*佛偈: 부처를 찬양하는 시가)와 선리(禪理) 이야기를 인용하여 아주 맛깔나게 들려주었다.

    심협은 선아 아래쪽의 높은 단상 옆에 가부좌를 튼 채, 옆에 앉은 백소천을 힐끗 보았다. 그 또한 이 선사의 이야기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듯 눈을 감은 채 좌선하고 있었다.

    심협도 눈을 감고 좌선하려던 그때였다. 돌연 그의 동공이 살짝 움츠러들었다. 아래쪽 널빤지 아래에 활 모양 빛이 번쩍 스치는 게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려 했지만 반짝이는 빛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환각?’

    심협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곧바로 신식을 풀어 아래쪽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광장 아래 법력 파동이 질서정연하게 운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저 천지영기를 모으는 법진에 불과했다. 더욱이 영기를 모으는 속도도 빠르지 않았고, 응집된 천지영기도 많지 않아 특별할 것은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심협은 전음으로 백소천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무슨 대단한 법진 같지는 않군. 보아하니 천지영기를 흡수하여 여러 고승들께 도움을 드리기 위한 법진인 듯하네.’

    백소천도 법진을 살피고는 심협에게 전음으로 답했으나, 목소리에는 의아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곳의 고승 모두가 수행중인 사람은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도 많았고, 이 법회는 분명 단시간에 끝나지 않을 터. 줄곧 아무 보익(*補益: 보약 등으로 부족한 기운을 보양하는 것)없이 단상 위에 앉아 있다가는 버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럴 수도 있겠구려. 좀 더 지켜봅시다.’

    심협은 그렇게 답하고는 좌선을 포기하고 눈을 감은 채 정신을 집중하여 광장 아래쪽의 변화에 정신을 기울였다.

    선사들은 여전히 불경을 이어갔다. 어떤 이의 말은 심오한 내용을 쉽게 설명하여 이해하기가 쉬웠지만, 어떤 이는 난해하고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런 설법은 고승들이야 알아들었겠지만, 주위의 백성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이윽고 선아의 차례가 됐다. 그는 수행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목소리가 여리고 부드러워, 아래쪽 법단 안에서 작동하는 법진을 통해 그의 목소리가 널리 전해졌다.

    그가 강해한 것은 널리 알려진 <반야심경(般若心經)>이었다. 사람들 거의 모두가 들어본 적 있었지만, 마음속에 떠오른 것은 제각각이었다. 선아의 강론은 복잡한 것을 쉽게 풀어냈고 이야기 또한 흥미진진하게 한 덕에 수많은 백성들은 의혹이 순식간에 풀렸고, 심지어 많은 고승들조차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심협은 계속 주위의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는 와중에도 몇 가지 정묘한 말들은 놓치지 않았다. 한데 설법을 듣고나서 그는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임달선사가 지명한 승려들은 예외 없이 다른 나라의 승려들이었고, 성련법단 출신 선사들은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이에 심협은 성련법단 사람들을 유심히 살폈다. 한데 용단과 보산 등은 누구의 설법에도 집중하지 않고 눈을 감은 채 뭔가를 묵묵히 읊조리고 있었다. 심지어 시선을 돌리지도 않았고, 털끝만 한 표정변화도 없었다.

    ‘실로 이상한 일이로군.’

    그가 이 점에 대해 백소천에게 전음을 보내려는데, 임달선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단선사, 대승 불법에 대해 자네는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나?”

    “제자의 얕은 생각으로는…….”

    지목당한 용단선사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했나보군.’

    심협은 피식 웃었다.

    그러나 그가 이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이변이 발생했다. 높은 단상 위에 있던 용단선사가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여러 묘법(*妙法: 이치가 깊은 불법)들 모두 꿈처럼 덧없는 것, 그것에게 불법을 구하느니 차라리 출가하는 것이 낫지요. 성련법단의 여러 단주들께서는 지금 시작하지 않고 언제까지 기다리실 겁니까?”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성련법단의 열여섯 승려가 잇달아 손을 들고 손바닥을 앞으로 밀며, 귀신의 말처럼 낮은 소리를 중얼중얼 읊기 시작했다.

    그들의 손바닥에 각각 귀(鬼)라는 붉은 글자가 떠오르더니 여러 갈래의 핏빛 기운이 그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와 붉은 비단처럼 설법대를 하나하나 연결했다.

    사람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우뚝 솟은 법단이 붉은 빛에 물들어 마치 커다란 붉은 등롱이 광장에서 빛을 내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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