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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429화 (429/1,214)
  • 429화. 전생, 그리고 현생

    백소천은 이어서 부적을 한 장 꺼내 나무 인형의 등에 붙인 뒤, 두 손으로 쥐고 미간을 찌푸린 채 한 차례 뭔가를 읊조리고는 나무 인형을 앞으로 내던졌다.

    부적은 허공에서 맹렬하게 불타오르며 많은 양의 연기를 내뿜었고, 희뿌연 연기 속에서 키가 4척쯤 되는 그림자 하나가 나타나 회백색 승포를 입은 동자승으로 변했다.

    동자승은 땅에 내려선 뒤, 고개를 돌려 심협 일행을 무표정하게 힐끗 보고는 곧 모래언덕 아래쪽의 습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심협은 그 동자승의 발걸음이 매우 이상하다고 느꼈다. 걸을 때 같은 손과 같은 발을 들어 올리는 것이 퍽 우스꽝스러웠던 것이다.

    심협이 막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보니 백소천은 손으로 결인한 채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전력으로 저 ‘동자승’의 움직임을 조종하는 중인 듯했다.

    그때, 동자승이 갑자기 풀썩 넘어지더니 앞을 향해 휙 뒤집히며 모래언덕을 따라 곧장 굴러 내려가 습지 가장자리에 떨어졌다. 그러자 허우적거리며 습지에서 기어 올라오려고 애썼지만, 옷은 이미 물에 젖어 몇 걸음 만에 또다시 진창에 빠진 것처럼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백소천이 두 손의 결인을 거두고 두 눈을 천천히 뜨자, 습지 속의 동자승은 순식간에 모든 영기를 잃고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하여 다시 손바닥만 해져서 되돌아왔다.

    “인목체신(*引目替身: 체신은 대역, 대리인 등을 뜻함)으로 살펴보니, 저 아래 습지는 신기루가 아니라 진짜인 듯하네.”

    백소천이 말했다.

    그 무렵, 검은 새 한 마리가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와 꼭두각시 동자승의 어깨 위에 앉아 머리 부근을 뾰족한 부리로 콕콕 쪼았다.

    “신기루가 아니라면 부딪쳐보는 수밖에…….”

    결연한 표정으로 말을 마친 심협은 곧장 결인하여 아래쪽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습지 한가운데의 초승달 샘에서 촤르륵 하는 물소리가 울리더니, 맑고 투명한 물이 쉬지 않고 솟구쳤다.

    휙!

    굵기가 물항아리만 한 영롱한 수룡이 호수에서 머리를 내밀고 심협 쪽으로 뻗어왔다.

    심협은 훌쩍 몸을 날려 수룡의 머리에 내려선 뒤, 습지 위를 가로질러 건너편에 내려섰다.

    그 순간, 문득 아래쪽에서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심협이 고개를 숙여보니, 아래쪽 호수의 물결이 갑자기 미친 듯이 치솟으면서 거꾸로 휘감는 기세로 그에게 달려들었고, 곧 그의 몸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심협은 눈빛을 집중한 채 발끝으로 수룡의 등줄기를 거세게 박차고 공중으로 솟아올라 물결을 피한 뒤, 다시 수룡의 머리에 안전하게 내려섰다.

    그러나 그의 발끝이 닿는 순간, 수룡의 머리가 갑자기 아래로 푹 꺼지면서 소용돌이가 나타나 심협의 발목을 빨아들였다. 동시에 강력하게 조이는 힘이 그의 종아리를 꽉 휘감았다.

    심협이 깜짝 놀라는 사이, 눈앞의 풍경이 다시 바뀌어 주변에 습지와 수초는 그림자도 보이질 않게 됐고, 놀랍게도 온통 누런 황사만이 눈에 들어왔다.

    백소천의 목각 인형은 멀지 않은 모래밭에 꽂혀 있었다. 심협은 종아리가 소용돌이치는 모래 속에 깊숙이 파묻혀 있었으며, 아직도 점점 깊게 빠져드는 중이었다.

    “심형, 왜 그러는가?”

    백소천이 물었다. 사실 그의 시야에는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아 심협이 호수 건너편에서 수룡의 머리 꼭대기에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는 상태였다.

    “오지 마시오!”

    심협은 크게 외친 다음, 다시 결인하여 몸 아래쪽을 휙 하고 내리쳤다. 그러자 수증기가 그의 손바닥에 덩이덩이 맺혀 여러 갈래의 물화살로 변해 발치의 모래땅으로 파고들었다.

    물화살들은 꽤나 강력했지만, 흐르는 모래를 만나자 속절없이 흩어졌다. 때문에 심협의 몸 반절은 이미 모래언덕에 파묻힌 상태였다.

    그 무렵, 백소천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감히 곧바로 돌진하지는 못하고 분지의 가장자리를 따라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심협을 향해 몸을 훌쩍 날렸다.

    그러나 그 순간, 바닥의 풀밭에 돋아난 풀잎들이 연이어 세로로 일어나더니 무수한 비도(飛刀)처럼 백소천을 향해 비바람처럼 날아들었다.

    백소천은 한 손으로 이상한 법결을 맺으며 입으로는 우웅 하고 분명치 않은 신음소리를 냈다.

    그의 몸에 갑자기 금빛 둥근 잔물결이 일렁이더니, 흐릿한 금빛이 그의 몸 바깥에 맺혔다가 금색 종 모양 빛 덮개로 변했다.

    따당! 땅!

    공간을 가득 메운 듯한 푸른 비도들이 금빛 종을 두들기며 요란한 소리가 울렸지만, 빛 보호막은 끝내 부서지지 않았다.

    한편, 심협은 이를 악물고는 발을 번쩍 들어 올려, 마치 모래구름을 몰고 땅에서 치솟듯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때였다.

    “물을 모래에 침투시켜 물의 법술로 모래를 조종하다니, 제법이군. 똑똑해. 화생사의 금강호체(金剛護體) 또한 아직 여물지는 않았어도 나쁘지 않고…….”

    두 사람 맞은편에서 어떤 목소리가 마치 논평하듯 두 사람의 기량을 칭찬했다.

    심협이 땅에 내려섰고, 백소천이 그 곁으로 다가왔다.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사방을 다시 둘러보니, 주위는 수초가 우거진 습지도, 온통 누런 모래가 펼쳐진 광활한 사막도 아닌 평범한 녹주(*綠洲: 오아시스)였다.

    땅 위에는 관목 덤불이 듬성듬성 어수선하게 자라나 있어서 마치 개가 베어 먹은 것 같았고, 중간에는 매우 좁다란 시냇물이 굽이굽이 흐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목각 인형 위에 올라 서 있던 검은 새는 뜻밖에도 환술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 새는 크게 날갯짓해 심협과 백소천의 맞은편에 있는 그림자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어떻게 당신이……?”

    심협은 그 인영을 보고는 의아한 듯 외쳤다.

    맞은편에 서 있는 사람은 잿빛 장포를 입었고, 온몸에는 살집이 투실투실하여 이목구비가 한데 모일 정도로 뚱뚱했다. 또한 입술 위에 팔자수염 두 가닥이 늘어진 것이 꼭 커다란 쥐 같았다. 바로 화 주인장이었다.

    “심 도우, 본거지를 헐어 없애려고 이 난리를 치는 것이냐?”

    화 주인장은 어깨 위의 새를 대충 쫓아내며 얼굴에 웃음기를 띤 채 물었다.

    “화 주인장,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심협은 그의 뒤에 있는 검은 바위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 바위 옆에 별안간 사람 키 높이의 검은 동굴이 드러난 것이다.

    백소천도 한 손을 소매 안에 넣고 손끝에 오래된 도부(桃符) 하나를 끼운 채, 잔뜩 경계하며 화 주인장을 노려보았다.

    “됐다. 너희가 금선자의 이번 환생을 정말로 위하고 있음이 분명하구나. 나를 따라오너라. 그들은 이 안에 있다.”

    화 주인장은 씩 웃더니 두 사람을 향해 손짓했다.

    하지만 심협과 백소천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두 사람의 경계심은 오히려 더욱 커졌다.

    그 모습을 본 화 주인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외쳤다.

    “금선자, 아무래도 직접 나와 보는 게 좋겠구먼. 그렇지 않으면 이 두 도우가 정말 내 죽는 꼴을 보고야 말 것 같으니 말이야.”

    그의 말이 끝나자 동굴 안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메아리치더니 이내 선아가 동굴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는 심협과 백소천을 보고는 활짝 웃더니 곧바로 종종걸음 치며 달려왔다.

    심협은 그가 무사한 것을 보고는 그제야 안도했으나, 이내 궁금한 듯 물었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와 기련미는 방금 전까지 성안에 있다가 모래폭풍에 사로잡혀 여기로 왔는데, 눈을 떠보니 화 주인장이 보였습니다. 아, 그런데 기련미는요?”

    마지막 질문은 화 주인장에게 던진 것이었다.

    “그는 모래폭풍에 휩싸여 올 때 정신을 잃어 침상 위에 누워 있다. 걱정할 필요 없어. 난 그들에게 결코 악의가 없으니까. 엄밀히 말해 나와 선아는 그럭저럭 오래된 벗이라 할 수 있지.”

    화 주인장이 말했다.

    “오래된 벗? 설마…… 선아의 전생인 현장법사와 아는 사이이십니까?”

    백소천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선아의 전생을 하나하나 모두 알고 있지. 나와 금선자가 오랜 벗이니 말이야.”

    “당신은 영산(靈山)의 보살이십니까? 아니면 하늘의 천선(天仙)이십니까?”

    심협이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화 주인장은 그 말에 잠깐 망설이더니 갑자기 몸을 홱 돌렸다. 그의 온몸은 짙은 안개에 휩싸였고, 그 속에서 빠르게 불어나더니 금세 하얀 코끼리처럼 거대해졌다. 다만 그의 몸에는 선명하고 밝은 빛깔의 털이 돋아 있어서 마치 커다란 쥐 같았고, 긴 꼬리를 늘어뜨렸으며, 몸 표면에 가닥가닥 얼룩무늬가 있었다. 뜻밖에도 한 마리의 화호초(*花狐貂: 족제비 모습을 한 전설 속 동물)였다.

    선아는 그가 진짜 모습을 드러내자 그 거대한 몸집에 놀라 저도 모르게 심협 뒤로 물러났다.

    이를 본 화호초는 온몸의 안개를 흩뜨리고는 빠르게 줄어들어 사람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나는 본디 천정의 사대천왕 중 한 분이신 마례수(魔禮壽)께서 기르던 애완동물, 자금화호초(紫金花狐貂)다. 금선자의 환생을 기다리려 이곳을 지킨 지가 거의 백 년이 다 되었지.”

    화호초가 선아를 바라보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 년 전이라면…… 바로 현장법사께서 갑자기 대안탑을 나와 장안성을 떠나실 무렵 아닙니까? 그분은 끝내 이곳 서역에서 숨을 거두신 것으로 아는데, 혹시 당신과 관련이 있습니까?”

    심협의 질문에 화호초의 얼굴에는 순간 자책하는 듯한 기색이 스쳐 지났다.

    “그 일은…… 확실히 나와 관련이 있긴 하지.”

    화호초는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선아가 재빨리 물었다.

    “그해, 나와 주인님을 비롯해 다른 천왕들께서는 이곳을 지키는 일을 맡았지.”

    화호초는 난처한 표정으로 한참을 망설이다가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그는 말주변이 뛰어나 당시 발생했던 일의 진상이 조금씩 심협 일행의 눈앞에 펼쳐졌다.

    원래 화호초는 주인인 마례수를 비롯한 다른 세 천왕을 따라 당시 이 일대의 봉신산(封燼山)이라 불리던 곳에 주둔하며 중요한 봉인을 지켰다. 그 봉인 아래에는 이승과 저승 두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가 하나 있었다.

    마족들은 줄곧 이 통로를 뚫어 이승과 저승을 서로 통하게 함으로써 치우의 강세(降世)를 준비하기 위해 그곳을 오랫동안 노리고 있었다. 게다가 그 봉인 법진은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져갔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보강해야 했다.

    당시 현장법사가 갑자기 장안성을 떠난 이유도 바로 이곳의 봉인이 갑자기 급속도로 약해져 봉신산에 임시로 보내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천계의 비밀스런 보물인 산하사직도를 가져와 사대천왕이 이곳의 봉인을 강화하도록 도왔다.

    하지만 봉인이 약해졌다는 소식은 이미 새어나간 터라 마족은 구명성군(九冥聖君)의 지휘 아래 봉신산을 기습했다. 결국 그곳을 지키고 있던 사대천왕을 비롯한 수많은 천병들과 마족의 전투가 벌어졌다.

    “그날 교전의 참혹함이 아직까지 내 기억에 생생해……. 주인님께서는 나에게 사람들을 데리고 가 금선자를 호위하라고 하셨고, 몰래 잠입한 구명의 부하들과 전투를 벌였지. 한데 천병들 중에 배신자가 나왔지. 그로 인해 호위하던 우리 군대가 거의 다 도륙을 당하고 끝내 나 혼자 살아남게 될 줄이야…….”

    화호초의 투실투실한 얼굴 근육에 살짝 경련이 일어났다.

    “그 뒤는요?”

    백소천이 캐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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