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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428화 (428/1,214)
  • 428화. 다시 만난 미치광이

    한 차례 바람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역관 대문 밖에서 휙 하는 소리와 함께 한 자락 광풍이 거센 황사바람을 휘감고 밀려들어와 두극과 두 하인을 그대로 날려버렸다.

    심협과 백소천은 각각 기련미의 앞을 막아서고 선아를 보호했다.

    모래바람이 가라앉은 뒤 마당은 온통 누렇게 변했고, 공기 중에는 숨 막히는 흙먼지 냄새가 떠다녔다.

    “어찌 된 일입니까?”

    선아가 물었다.

    백소천은 자기도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심협은 기련미를 선아 곁에 데려다놓고, 손을 휘둘러 순양검배를 불러낸 뒤 그 위에 올라타서 하늘로 날아올라 역관 위에 멈춰 섰다.

    “역시 대당의 고승이다. 엄청나구나!”

    기련미는 방금 전 위험했던 상황이라는 것도 잊었는지 동경어린 표정으로 감격한 듯 중얼거렸다.

    한편, 심협은 높은 곳에서 적곡성 곳곳을 둘러봤는데, 이미 자욱한 연기와 황사가 성 전체를 뒤덮은 상태였다. 그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거리와 건물들도 모래폭풍에 잠겨 있었다.

    휘이잉!

    멀리서 바람소리가 크게 일었고, 곳곳에서 모래폭풍이 연달아 마구 휘몰아쳐 저잣거리가 난장판이 되었다. 사람들이 넘어지고 말이 나뒹굴었으며, 여기저기서 살려달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심협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숙여 백소천 등에게 외쳤다.

    “나는 사람들을 구하러 갈 테니 잠시 기다려주시오.”

    말을 마친 그는 즉시 광장을 향해 날아갔는데, 그곳에 있던 불타 석상 하나가 모래폭풍에 넘어져 기도를 드리던 백성들이 깔려 있었다.

    그는 땅에 내려서서 손으로 불타의 머리를 떠받치고, 있는 힘껏 밀어 올렸다.

    석상에 깔려 있던 백성들은 재빨리 기어 나와 심협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심협은 곧장 성 동쪽 어느 집을 향해 날아갔다. 그곳에는 이웃집 사막보리수나무 한 그루가 모래폭풍에 쓰러지면서 담벼락을 무너뜨렸고, 두 어린아이가 그 아래 파묻혀 버렸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재빨리 무너진 담벼락과 벽돌들을 치우고 두 아이를 구해냈다.

    심협은 멈추지 않고 곧장 동문으로 달려가 모래폭풍에 기둥이 부러지는 바람에 붕괴 직전 상태에 처한 누각 앞에 내려섰다. 그가 손으로 기둥을 떠받치는 동안 누각 안에 있던 사람들은 무사히 빠져나갔다.

    그가 잠깐 한숨 돌리고는 다음 장소로 향하려는데, 성문 입구에서 문득 금속이 울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누런 먼지바람 속에서 흐릿한 그림자가 나타나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정신을 집중하여 바라보니, 놀랍게도 한 손에 발우(*鉢盂:절에서 쓰는 승려의 공양 그릇)를 받쳐 들고, 다른 손에는 석장을 들었으며, 몸에는 남루한 옷을 걸친 행각승이었다. 낡은 대나무 상자 하나를 메고 있었고, 발에는 다 닳아빠진 짚신을 신고 있었으며, 피부는 가무잡잡했고 입술은 말라서 갈라진 상태였다.. 그러나 표정만큼은 평온했다.

    그는 천천히 성안으로 걸어 들어와서는 연민에 가득 찬 눈빛으로 누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간 큰 요괴 같으니, 수행할 생각은 하지 않고 감히 백성들을 혼란에 빠뜨리려 하느냐?”

    그는 버럭 고함을 지르더니, 하늘을 향해 손에 든 새카만 발우를 들어올렸다.

    발우 안에서는 푸른 빛이 번쩍였고, 울부짖는 맑은 바람이 거세게 솟구쳐 나와 성 동쪽에서 서쪽으로 미친 듯이 몰아치며 모든 흙먼지를 말끔히 몰아냈다. 삽시간에 온 적곡성이 큰물에 씻겨나간 것처럼 모래폭풍이 물러가면서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백성들은 놀란 가슴이 조금 가라앉자 성문 입구에 선 승려를 보고는 너도나도 감격하여 외치기 시작했다.

    “임달선사님! 임달선사님이다!”

    “임달선사님께서 출관(*出關: 폐관수련을 마치고 밖으로 나옴)하셨다!”

    “임달선사님께서 우리를 구하셨다!”

    산이 우짖고 바다가 포효하는 듯한 사람들의 칭송을 듣고 있던 심협의 눈에 이내 불가사의한 장면이 들어왔다.

    임달선사의 몸은 몽롱한 보광으로 한 층 덮여 있었는데, 수륙대회날 저녁 선아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던 빛과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 보광이었다. 선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보광은 하얀 편이었다면 임달선사의 몸에 감도는 보광은 살짝 붉은 기가 돌았다.

    주위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의 칭송에도 임달선사의 표정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옅고 부드러운 미소만을 띠고 있어 심오한 분위기가 한층 강해졌다.

    심협은 문득 정신을 차리고는 붙잡고 있던 기둥을 놓았다. 뒤에서 기둥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그는 돌아서서 자리를 떴다.

    그러나 역관으로 돌아온 심협은 안색이 급변했다. 역관 담벼락이 마차에 들이받혀 뚫려 있었고, 마당에는 두극만이 온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었다. 백소천을 비롯한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찌된 일이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그가 황급히 달려와 두극을 부축해 일으키고는 지혈을 해준 뒤 물었다.

    “선사(仙師)님이 떠나신 뒤에 돌풍이 불어와 마차가 담장을 부쉈습니다. 백 선사님께서 마차를 막아내시는 틈에 고승과 왕자님께서는 그 요사스러운 바람에 휘말려 가셨고요.”

    두극이 절망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요사스러운 바람?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보았소?”

    심협은 무의식적으로 그놈을 떠올렸다.

    “백 선사님께서는 서쪽으로 쫓아가셨고, 왕자님의 하인들은 궁으로 소식을 전하러 돌아갔습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극을 안정시키고는 순양검배를 타고 하늘을 가로질러 곧장 성 서쪽으로 내달렸다.

    성 입구에 이르러보니 마침 백소천도 성문 앞에 있었다.

    “백형, 어떻게 된 거요? 따라잡았소?”

    심협이 백소천 옆에 내려서며 급히 물었다.

    “심형! 나는…… 모래바람을 따라 쫓아왔는데, 한바탕 맑은 바람이 덮치는 바람에 모래바람이 전부 흩어져 버렸다네. 그 안에 있던 선사님의 기운마저 말끔히 사라졌으니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군.”

    백소천이 깊게 탄식했다.

    “어쨌거나 그는 서문을 나섰소. 우리는 각각 서북쪽과 서남쪽을 찾아보고, 발견하면 상대방에게 알립시다.”

    심협은 잠시 생각해보더니 곧 입을 열었다.

    “그게 좋겠네.”

    백소천도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성문 밖으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그러나 문동(門洞)에 들어서자마자 일전에 이 성에 들어올 때 마주쳤던 미치광이가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선한 사람은 어찌 건너갑니까? 시주, 선한 사람은 어찌 건너갑니까!”

    그때의 그 질문이었다.

    심협과 백소천은 그를 무시한 채 몸을 날려 성 밖으로 향하려 했다.

    그런데 엇갈려 지나가는 순간, 그 미치광이의 입에서 새로운 말이 나왔다!

    “서쪽으로 가! 서쪽으로 가!”

    “서쪽으로 가라니, 무슨 말이오?”

    심협은 급히 멈춰 서서는 미치광이의 팔을 덥석 붙잡고 그의 두 눈을 빤히 들여다보며 물었다.

    “서쪽으로 가…….”

    그러나 미치광이는 고개를 기울이며 아예 그와 눈을 맞추지 않으면서 그 말만 중얼거렸다.

    “정신 나간 헛소리니 무시하세.”

    백소천이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심협은 잠시 망설이더니 미치광이의 팔을 놓고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

    한데 미치광이가 갑자기 그의 팔뚝을 꽉 붙잡으며 중얼거렸다.

    “서쪽으로 가. 서쪽으로…… 동굴 있어, 동굴!”

    “어차피 단서가 없으니 속는 셈치고 그를 데리고 갑시다. 우선 서쪽으로 가서 찾아보고 그래도 찾지 못하면 아까의 계획대로 해보는 게 어떻겠소?”

    심협의 제안에 백소천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미친놈 말을 한 번 들어보지 뭐.”

    말을 마친 백소천은 미치광이의 팔을 붙잡고 성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었다. 그리고 한 손을 휘둘러 비주(飛舟)를 불러낸 뒤 그를 태우고 서쪽으로 향했다.

    심협은 한쪽 옆에서 순양검배를 몰았다. 두 사람은 살짝 거리를 벌린 채 정신을 집중하여 아래쪽을 살펴보았다.

    적곡성 서쪽을 벗어나니 성 밖 10리 안에는 키 작은 관목 덤불이 흩어져 있었고, 서쪽으로 더 가면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끝없이 아득한 사막뿐이었다.

    모래언덕이 굽이치고 봉우리와 고개가 물결처럼 일렁이며 지평선 위로 교차되었다. 이를 잠시 바라보던 심협과 백소천은 곧 시야가 온통 흐릿해지며 땅 위에 뭐가 있는 지 아예 보이지 않게 됐다.

    두 사람의 신식으로 덮을 수 있는 범위는 그리 넓지 않았기에, 일순 선아의 기운을 찾기도 어려웠다.

    수십 리를 날아간 뒤에도 땅 위는 여전히 온통 누르스름한 풍경으로, 아예 동굴 같은 게 있을 만한 곳도 보이지 않았다.

    “황사가 물러간 뒤 우리는 줄곧 그들을 뒤쫓았고, 중간에 전혀 지체하지도 않았네. 그 요사스런 바람의 속도를 보아 이렇게 멀리 도망갔을 리는 없으니, 우리가 이 미친놈에게 농락당한 것이 틀림없네.”

    백소천이 눈을 들어 먼 곳을 바라보며 다소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아와 기련미를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속으로 자책하는 것이 분명했다.

    “내가 순진했던 탓이오. 아무래도 되돌아가면서 동남쪽과 동북쪽으로 흩어져 수색하며 이 지역 전체를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게 좋겠소.”

    심협이 미간을 잔뜩 찡그리며 말했다.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

    백소천은 즉시 비주의 방향을 틀어 방금 왔던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런데 그가 몸을 돌리는 순간, 미치광이가 곧바로 그의 팔을 붙잡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서쪽, 서쪽! 동굴 있어! 동굴 있어! 돌 밑에 엄청 큰 동굴!”

    “더는 네놈과 장난칠 시간 없다! 계속 방해한다면 네놈을 집어던질 것이야!”

    백소천은 애타는 마음에 인상을 팩 찌푸리며 미치광이에게 으름장을 놓았고, 비주를 움직여 곧장 동남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비명이 울렸다.

    심협이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미치광이가 비주에서 뛰쳐나와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중이었다.

    심협은 재빨리 비검을 움직여 미치광이가 땅에 처박히기 직전에 그의 허리를 붙잡고 건져 올릴 수 있었다.

    “네 이놈! 진짜 미친 것이냐?”

    비주를 조종해 가까스로 따라온 백소천이 버럭 소리를 쳤으나, 내심 미안한 마음에 더는 화를 내지 않았다.

    “이자가 이리도 서쪽에 집착하는데, 정말 거기 뭔가가 있는 것 아니오?”

    심협이 조금 주저하며 말했다.

    “자네는 정말 이 정신 나간 자의 말을 믿나?”

    백소천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묻자 심협도 일순 할 말을 일어 머뭇거렸다. 그리고 문득 자기 발밑이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급히 발을 힘껏 굴렀다.

    그 순간, 발치의 누런 모래가 흩어지면서 그 아래로 검고 단단한 바위가 드러났다.

    심협은 잠시 서쪽을 바라본 뒤에야 자기 발밑의 검은 바위가 멀리까지 곧장 이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런 모래로 뒤덮인 굴곡진 산줄기는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아예 발견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저쪽으로 가봅시다.”

    심협이 말했다.

    “그러지.”

    백소천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함께 서쪽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미치광이는 두 사람 뒤에 떨어져 잠시 멈춰 서 있다가, 또다시 히죽히죽 웃으며 뒤를 따랐다.

    그들은 수십 장을 내달린 후에야 이 ‘산고개’의 끄트머리에 이르렀다. 앞에 둘레가 족히 수백 장에 이르는 분지가 나타났는데, 그 안의 풍경은 바깥과 사뭇 달라 놀랍게도 수초가 무성하게 우거진 습지였다.

    습지의 한가운데에는 그리 넓지 않은 초승달 모양 샘이 하나 있었고, 거울처럼 하늘의 구름 그림자가 그 샘에 비쳤다.

    습지 반대편에는 모래언덕이 높이 솟아 있었고, 중앙에 높이가 1장쯤 되는 검은 바위가 모래언덕에 반쯤 가려진 채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신기루…….”

    심협은 속으로 조금 걱정이 되어 성급하게 들어가지 않고 두 눈을 집중하여 그 앞에 펼쳐진 광경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의 동력(瞳力)으로는 한참을 보아도 별다른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다.

    백소천 역시 아무런 이상한 점을 알아내지 못했지만, 이 푸른 분지를 보며 여전히 뭔가 기이함을 느끼는 중이었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손을 소매 안에 넣고 잠시 뒤적거리더니, 손바닥만 한 목각 인형을 꺼냈다. 인형은 민머리에 이목구비가 흐릿했으며, 몸에는 거친 천으로 꿰맨 승포를 입고 있는 것이 꼭 나무로 조각한 동자승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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