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423화 (423/1,214)
  • 423화. 터무니없는 값

    “심 선배님, 어떤 법기를 사려고 하십니까? 이곳 적곡성의 연기 상점들은 역할이 세세하게 나눠져 있으니 원하시는 것이 명확할수록 찾기가 더 쉽습니다.”

    손해가 물었다.

    “손 도우, 적곡성에 법기를 주문제작할 수 있는 곳이 있소? 극품법기를 하나 주문해 만들고 싶은데, 주재료들은 내가 가지고 있소.”

    손해는 심협의 물음에 잠깐 멍한 얼굴로 한참이나 대답이 없었다.

    “그런 곳은 없소?”

    심협이 실망한 기색을 숨기며 다시 물었다.

    “있기는 합니다. 소인이 극품법기를 만들 수 있는 연기 공방 몇 군데를 압니다만, 연기에 실패할 위험이 좀 있습니다. 진귀한 재료가 많이 필요할 텐데, 실패하면 결국 얻는 게 없는 게지요.”

    손해는 이 조심스레 말하자 심협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자 손해는 갑자기 뭔가가 생각난 듯 이마를 탁 쳤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보게. 소인이 연기사를 한 분 압니다. 연기 수준이 상당하고, 실패했다는 소리도 거의 들은 적이 없습니다. 다만 그분 성격이 좀 괴팍하신 데다가 비용이 비싸서 항상 상품법기를 하나 만들면 극품법기 값을 받으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하지요.”

    “나를 만족시킬 만한 법기를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값은 상의해볼 용의가 있으니 안내를 부탁드리오.”

    심협이 흔쾌히 말하자 손해도 기쁜 표정으로 어느 큰길 옆의 작은 골목으로 그를 안내했다.

    이리저리 돌고 돌아 두 사람은 어느 어두컴컴하고 낡아빠진 건물에 도착했다.

    건물은 제법 넓어 보였지만, 마당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대문 너머 지붕에서는 굴뚝 위로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뿜어져 나왔다.

    “바로 여깁니다! 화(花) 주인장, 어서 문 여시오. 거래 들어왔소.”

    손해는 몇 걸음 다가가 문짝을 있는 힘껏 두드렸다.

    안에서는 아무도 없는 듯 응답이 없었지만, 청년은 손을 멈추지 않고 마당 문에 고운 먼지가 떨어져 내릴 정도로 계속해서 쾅쾅쾅 두드렸다.

    “어느 망할 놈이 이 어르신네 문짝을 깨부수는 게냐! 오늘은 영업 끝난 거 안 보여? 용무가 있으면 내일 다시 오라고!”

    한참 뒤, 안에서 거칠고 급한 남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화 주인장, 나요. 어서 문 여시오!”

    손해가 목소리를 조금 더 올리며 문을 더 힘껏 두드렸다.

    그러자 마당 문이 거칠게 벌컥 열리더니 잿빛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뚱뚱해 얼굴도 동글동글했지만 눈은 매우 작았고, 입술에는 두 갈래로 팔자수염을 길러 꼭 커다란 쥐처럼 보였다.

    “네놈이구나. 이번엔 또 누굴 데리고 왔어? 먼저 얘기해두지만, 선옥을 낼 수 없으면 그냥 데리고 가라. 이 어르신 잠 못 자게 방해하지 말고.”

    화 주인장은 노기등등한 얼굴로 손해에게 눈을 부라리고는, 뒤에 있는 심협을 슬쩍 본 뒤 무뚝뚝하게 말했다.

    “화 주인장, 안심하시지요. 저를 만족시킬 만한 법기를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값은 후하게 쳐 드리리다.”

    심협은 전혀 화내지 않고 웃음을 머금은 채 공수하며 말했지만, 속으로는 좀 의아해했다. 상대의 몸속에는 흐릿한 하얀 빛이 가득했는데, 놀랍게도 자신의 신식과 시력을 차단하여 경지를 알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한편, 화 주인장은 심협의 말에 뜻밖이라는 듯 눈을 치뜨더니, 말없이 손을 내젓고는 두 사람을 마당 안으로 들여보내주었다.

    마당 안에는 쓰러질 듯 허름한 천막이 있었고, 그 안에 수많은 재료들이 분류도 제대로 되지 않은 채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옆으로는 주조실로 보이는 검은 돌집이 한 칸 있었는데, 이따금 붉은빛과 열기가 반쯤 닫힌 돌문 안에서 새어 나왔다.

    “화 주인장. 여기 심협 선배님께서는 동토의 대당에서 오신 분이오. 주인장의 연기술이 대단하다는 말을 듣고 특별히 방문하셨소. 극품법기를 하나 주문 제작하고 싶다 하시오.”

    손해가 화 주인장에게 심협을 소개했다.

    “오, 동토의 대당에서 오셨다고?”

    화 주인장이 심협을 위아래로 슥 훑어보았는데, 표정에 어딘가 이상한 빛이 스쳐 지났다.

    “무슨 법기를 원하시오?”

    화 주인장은 곧 평정을 되찾고 마당 안의 당의(*躺椅: 침대식 의자)에 털썩 걸터앉으며 다소 귀찮다는 듯 말했다.

    심협은 대답 대신 손을 뒤집어 황토색 물건 몇 조각을 꺼냈다. 이는 깨진 거울 조각들로, 이렇게 온전치 않은 상태에서도 여전히 강한 영적 파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마침 찻잔을 기울여 입안 가득 차를 머금던 화 주인장은 이 거울 조각들을 보고 풉 하고 물을 전부 뿜었다. 그러더니 당의에서 벌떡 일어나 거울 조각 하나를 덥석 집어 들었다.

    “이것은 현귀판! 이렇게나 많은 양에 품질도 최고로군! 한데 이 거울은 어느 빌어먹을 놈이 만든 게야? 현귀판을 거울 안에 녹여 넣은 것이야 그렇다 쳐도, 현귀판과 금제를 전혀 융합시키지 않았다니! 그렇지 않고서야 이 거울이 어찌 이렇게 깨질 수 있겠느냐고!”

    화 주인장은 거울 조각들의 상태를 살피고는 욕부터 한 바가지 퍼부었다.

    심협도 당시 수많은 현귀판이 담긴 구리거울이 너무 쉽게 깨진 것이 조금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그 원인을 이제야 문득 깨달았다.

    화 주인장은 거울 조각 하나를 집어든 채 손 위에 놓고 꼼꼼하게 매만졌다. 그의 눈에는 홀린 듯한 기색이 어렸다.

    화 주인장의 이런 모습에 심협은 웃음을 참기 힘들었지만, 저런 모습이야말로 자신의 일에 완전히 미친 사람으로 보여 상대에 대한 믿음은 오히려 조금 더 커졌다.

    “어떤 놈인지 몰라도 능력이 변변찮아서 현귀판과 금제를 한데 합치지 못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 거울이 깨질 때 안에 있는 현귀판의 영성도 크게 망가져서 다시 쓰기 어려웠을 거야.”

    화 주인장이 화가 난 와중에도 안도한 듯 투덜거렸다.

    “화 주인장의 안목이 고명하십니다. 심모는 이 현귀판 조각들로 곤(棍) 모양 극품법기를 하나 만들고자 하는데, 가능하겠습니까?”

    심협은 먼저 상대를 띄워준 후에야 본론을 꺼냈다.

    “작대기를?”

    화 주인장이 뜻밖이라는 듯 그 작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습니다. 최대한 단단해야 하고, 강력한 법력을 주입해도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무거울수록 좋고요.”

    심협은 이미 생각해두었던 요구사항을 말했다.

    그는 꿈속에서 놀라운 위력을 지닌 원왕(猿王)의 곤법을 익혔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에서 손에 맞는 법기를 줄곧 찾지 못해 사용할 수가 없었다. 지난번에 꿈속의 경지를 소환해 요풍과 맞서 싸웠을 때도 좋은 법기가 없어 곤법의 진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요풍이 그리 쉽게 도망갈 수는 없었으리라.

    “쯧쯧, 원하는 것도 많네. 이 깨진 거울 속에 현귀판이 꽤 많이 담겨 있다고 해도 네놈의 그 많은 요구사항을 맞추지는 못할 게다.”

    화 주인장은 입을 비죽거리며 비웃는 투로 말했다.

    “저도 요구사항이 좀 많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런 곤을 만들려면 어떤 재료들이 필요합니까?”

    심협은 이제 화 주인장의 말투에 완전히 적응한 듯 평온한 목소리로 답했다.

    “네놈 요구에 맞추려면 다른 부자재들은 둘째 치고, 주재료만 해도 보천석(補天石)과 묵정(墨晶)은 꼭 필요하다. 보천석이야 견고함으로 이름이 났고, 묵정은 작대기가 법력에 견딜 수 있게 해주지.”

    “보천석과 묵정이라…….”

    심협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두 가지 재료를 들어보긴 했지만, 모두 지극히 보기 드문 재료라서 하나하나가 현귀판보다도 구하기가 힘든데, 창졸간에 어딜 가서 찾는단 말인가?

    그는 조금 울적해졌다. 요 몇 년 동안 모아둔 재료에서 어떻게든 쓸 만한 것을 좀 고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쓸모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줄이야.

    심협이 속으로 가볍게 탄식하고는 법기의 품질을 낮춰도 괜찮다고 말하려는데, 화 주인장이 또다시 입을 열었다.

    “허나 네놈은 운이 썩 좋구나. 때마침 내 수중에 보천석과 묵정이 하나씩 있다. 단, 이 두 가지 재료는 내가 상자 밑바닥에 묵혀놓았던 보배라서, 연기 비용과 별개로 그것들부터 사야 한다.”

    “좋습니다. 선생께서는 그 두 재료를 얼마에 파시겠습니까?”

    심협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곧바로 말했다.

    “나의 두 재료는 품질이 모두 최상이야. 특히 묵정은 더욱이 자심묵정(紫心墨晶)이니 선옥 5천 개는 내야지.”

    화 주인장이 잠깐 생각하더니 담담히 입을 열었다.

    “뭐라고요? 선옥 5천 개!”

    심협의 안색이 급변했고, 옆에 있던 손해도 깜짝 놀라 하마터면 자기 혀를 깨물 뻔했다.

    “왜? 비싸냐? 흥! 내 진작 말했지! 선옥이 없으면 썩 꺼져! 어르신 귀찮게 하지 말고!”

    화 주인장은 콧방귀를 뀌더니, 손에 든 거울 조각을 내던지고 당의로 돌아가 누웠다.

    “화 주인장, 보천석과 묵정이 진귀하기는 하나, 선옥 5천 개는 좀 아니지요!”

    심협이 인상을 찌푸린 채 말했다.

    그가 가진 현귀판은 헌원각 경매 당시에 산 것으로, 당시의 가격보다 훨씬 위로 낙찰되었는데도 선옥 2천 개에 불과했다.

    “흥정을 붙이려거든 딴 데 가봐. 여기는 에누리 같은 거 없으니까.”

    화 주인장은 심협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퉁명스레 내뱉었다.

    심협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가 몇 년 동안 스스로 부적을 그려 번 돈에 많은 적들을 죽이고 얻은 것까지 해봐야 선옥 2천여 개에 불과했다. 더욱이 선옥을 충분히 가졌다 해도 이렇게 터무니없는 값에 호구를 잡히고 싶지는 않았다. 당장 쓸 만한 법기는 충분하니 급한 것도 아니었다.

    “갑시다.”

    심협은 담담하게 말하고는 현귀판을 챙겨 손해와 함께 마당을 나왔다.

    “심 선배님, 정말 죄송합니다. 이번에는 화 주인장이 유독 높은 값을 원하는군요. 지금까지는 이리 높은 값을 부른 적이 없습니다.”

    손해는 미안한 기색으로 말했으나, 심협은 손만 휘휘 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협과 손해가 얼마 가지도 전에 백소천과 선아가 맞은편에서 걸어왔다.

    “백형, 선아 사부님, 어찌 오셨습니까?”

    심협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금선자대사께서 이 지역에 뭔가 느껴진다며 와보자고 하셨네.”

    백소천이 선아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심협이 그 말에 조금 의아해하며 돌아보니, 선아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는데 퍽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자네들은 어찌 여기 있는가? 벌써 적당한 법기를 찾은 게야?”

    백소천이 물었다.

    심협은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 말없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손해가 심협의 눈치를 보며 좀 전의 일을 설명했다. 그 목소리는 자연히 화 주인장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했다.

    한데 백소천은 이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화 주인장이란 자의 손에 정말로 자심묵정이 있다면, 선옥 5천 개가 그리 무리한 요구는 아닐세.”

    이에 손해는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그 자심묵정이란 것의 가치가 그리 높소?”

    심협도 의외라는 듯 움찔 놀라며 물었다. 그는 묵정에 대해서는 들어봤어도 자심묵정은 처음 들어본 것이다.

    “물론이지. 자심묵정은 묵정 중 최상품이라네. 강력한 법력의 충격을 견뎌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법력을 축적하는 효력까지 있지. 화생사의 사형 한 분께 자심묵정을 연단해 만든 반지가 하나 있네. 평소 쓰지 않는 법력을 그 안에 모아두었다가 전투 때 다시 빼내서 사용하는데, 저장된 법력은 놀라울 정도로 오래간다네.”

    백소천의 설명에 심협은 거의 경악했다.

    “법력을 저장하다니! 자심묵정에 그리 신기한 효력이 있었구려!”

    “그렇다니까. 자심묵정의 가치는 엄청나게 높아서 실제로는 거래되지도 않을 정도야. 선옥 5천 개면 조금 비싸긴 해도 터무니없지는 않네. 거기다 보천석도 포함이라면, 그 값은 그리 나쁘지 않은 것이었어.”

    백소천이 말했다.

    “그랬군. 한데 이것저것 다 따져보아도 내게는 선옥이 2천여 개뿐이라…….”

    심협은 쓰게 웃었다.

    한데 그 말을 들은 백소천이 잠시 주저하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심형의 사정이 넉넉지 않다면 내가 빌려줄 수도 있는데…….”

    심협은 백소천의 부유함에 속으로 경악했다. 선옥 3천 개는 절대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심지어 자신이 그동안 생사를 넘나들며 모은 것보다도 많지 않은가.

    “그래준다면야 감사하겠소. 장안에 돌아가면 내 최대한 빨리 모아 갚으리다.”

    심협도 사양 않고 감사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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