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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422화 (422/1,214)
  • 422화. 폭로

    선아는 떠나가는 승려들을 눈으로 배웅한 뒤, 심협과 백소천에게 인사를 남기고 쉬러 갔다. 오후 내내 길을 재촉하느라 지친 듯했다.

    반면 백소천은 피곤하지도 않았고, 적곡성에 흥미가 생겨 성안을 한 바퀴 돌아볼 생각이었다.

    그들은 이미 서로 돌아가면서 선아 곁을 지키기로 약속한 터라 심협은 처소에 남기로 했다.

    “두극, 그 용단선사와 보산선사라는 분들은 성련법단 사람이시오?”

    심협이 두극을 불러 큼지막한 은자 한 덩어리를 주며 물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짐작하신 바와 같이 용단선사님과 보산선사님은 성련법단의 좌우호법으로, 임달선사님 다음으로 지위가 높으십니다.”

    두극은 커다란 은자 덩어리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감사 인사를 하고는 공손히 답했다.

    “임달선사께서 폐관 중이시라면, 평소 성련법단의 사무는 그 두 분이 처리하는 것이오?”

    “맞습니다. 용단선사께서 바깥일을 도맡아 처리하시고, 보산선사께서는 적곡성 총단 내부의 일을 처리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심협은 용단과 보산, 적곡성 등에 대해 몇 가지 더 물어보았다. 두극은 그 질문들이 다소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은자 덩이를 받은 터라 따져 묻지 않고 성실히 답했다.

    “참, 혹시 백군성을 아오?”

    심협은 마지막으로 무심한 듯 물었다.

    “백군성이요? 알지요. 우리나라 변경에 있는 도시인데요.”

    두극이 잠깐 생각하더니 답했다.

    “백군성의 성련법단 분단과 용단선사께서는 친밀한 사이시오?”

    “마침 잘 물어보셨습니다. 백군성의 분단주 랍막은 용단선사님의 사질입니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일인데, 소인은 수년 전에 성련법단에서 잠시 품팔이를 한 적이 있어서 우연히 듣게 되었지요.”

    두극이 비밀스런 얘기라 여겼는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심협이 빙긋 웃고는 뒤이어 그 랍막이라는 이의 용모를 물어보니, 그 낯빛이 누런 승려인 듯했다. 그리고 심협은 마침내 자신의 추측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용단선사는 이미 백군성의 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그런 적의를 품었던 것이다.

    심협이 그 질문을 끝으로 말이 없자, 두극은 약삭빠르게 물러갔다.

    심협은 대청에 앉아 현재 상황을 따져보았다.

    용단선사라는 자는 분명 그에게 적잖은 적개심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성련법단이라는 곳은 매우 괴이했다. 그는 그곳에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선아가 찾는 물건이 적곡성 안에 있으니 떠날 수도 없었다. 다행히 적곡성에서 대승법회가 열리게 되었으니 서역 36국의 승려들이 모일 터. 용단선사가 그들에게 따져 묻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상황을 봐가며 움직이는 것이 좋을 듯했다.

    그는 거기까지 생각한 후, 결인하여 대청에 금제를 치고는 손을 뒤집어 벽옥 호리병을 꺼내 제련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상황이 미묘하니 조금이라도 실력을 끌어올려둘 생각이었다.

    * * *

    용단선사는 역관을 떠나 이내 성련법단의 자기 처소인 호화롭고 우뚝 솟은 대전으로 돌아갔다.

    “물러들 가라!”

    그가 음산한 표정으로 호통 치듯 말하자 시종들이 겁을 먹은 채 떠났고, 곧 방에는 그 홀로 남게 됐다.

    그는 방 안을 몇 번 서성이더니 갑자기 우뚝 멈춰 서서는 손뼉을 한 번 쳤다.

    “사부님, 찾으셨습니까?”

    잠시 뒤, 백포(白袍)를 입은 준수한 얼굴의 젊은 승려 하나가 걸어 들어왔다.

    “천년사매를 빼앗아간 그자를 찾아냈다.”

    용단은 백포 차림의 승려를 힐끗 보고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까? 잘됐군요. 누구입니까? 제자가 즉시 가서 그놈을 때려잡고 사매를 되찾아오겠습니다!”

    백포의 승려가 크게 기뻐하며 곧바로 말했다.

    “이미 늦었느니라. 천년사매의 사담은 이미 그놈 뱃속에 있다.”

    “아니, 감히 그런 짓을! 갈기갈기 찢어 죽여도 그 죄를 씻지 못할 것입니다!”

    백포 승려가 크게 노하자 온화했던 얼굴이 갑자기 수라악귀로 변한 것처럼 흉악해졌다.

    “조급해할 필요 없다. 내 벌써 손을 써 두었으니. 그 도적놈들은 동토(東土: 동방, 동쪽에 있는 나라)의 대당에서 온 수사들이다. 대승법회에 참석하러 왔고, 지금은 역관에 머물고 있지. 그곳에는 각국의 고승들이 구름떼같이 모여 있고 경지가 심오한 이들도 적지 않아 손을 대기가 어렵다.

    너는 사람을 보내 밤낮으로 그들을 감시해라. 적곡성에 왔으니 놈들은 분명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릴 것이다. 그러니 역관을 떠났다 하면 즉시 내게 알려라. 이것은 그 좀도둑놈의 화상(畵像)이다.”

    용단선사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한 뒤, 하얀 옥돌 한 덩이를 꺼냈다. 그 위에는 누군가의 모습이 나타났는데, 바로 심협이었다.

    “예!”

    백포 차림의 승려는 옥돌을 받아들고 대답한 뒤 물러가려 했다.

    한데 그때, 방 안에 금빛이 번쩍 하더니 인영이 나타났다.

    “잠깐!”

    그는 바로 보산선사였다.

    “보산, 자네는 보산전(寶山殿)에 있지 않고 여기까지 뭐 하러 왔는가?”

    용단선사가 미간을 찌푸리며 언짢은 듯 툴툴거렸다.

    “임달 단주께서 불지(佛旨)를 전하셨네. 동토의 세 사람을 감시해서도, 그들에게 어떤 악의적인 행동도 해서는 안 돼.”

    보산선사가 금빛 옥부(玉符)를 꺼내며 담담히 말했다.

    용단선사는 그 옥부를 보고는 안색이 크게 변하여 재빨리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백포 차림 승려도 마찬가지였고, 감히 고개도 들지 못했다.

    “임달 단주께서 명하셨으니 속하 감히 거역할 수 없사오나,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사담의 힘을 되찾을 수 없게 됩니다. 그…….”

    용단선사가 웅얼거리며 말했다.

    “임달 단주님의 분부를 감히 거역하는 것인가?”

    보산선사가 담담히 말했다.

    “아, 아닙니다. 속하 명에 따르겠습니다.”

    용단선사는 순간 식은땀을 흘리며 곧바로 답했다.

    보산선사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옥부를 챙기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용단선사와 백포 승려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 모두 낯빛이 안 좋았지만, 감히 한 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 * *

    역관 안. 심협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은 채 수련하고 있었다.

    눈 깜짝할 새 거의 한나절이 지났지만, 백소천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문이 열리고 선아가 걸어 나왔다.

    “선아 사부님, 어찌 일어나셨습니까? 오랜 길을 쉬지 않고 달려왔으니 좀 더 쉬셔야지요.”

    심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습니다. 소승은 이미 충분히 쉬었답니다. 성안을 좀 돌아다니며 이곳 이국의 풍경도 구경하고, 기억의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선아가 심협에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

    “그것도 좋지요.”

    심협은 잠깐 어리둥절해 있었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도 때마침 성안에 가보고 싶었던 터였는데, 백소천이 돌아오기 전이라 가지 못하던 차에 선아가 먼저 제의해오니 흡족했다.

    두 사람은 역관을 나와 곧장 시내 번화가로 향했다.

    심협은 길을 거닐면서 시시각각 동정을 주의 깊게 살폈지만, 미행하는 사람은 발견되지 않았다.

    ‘아무도 없다고? 그럴 리가!’

    심협은 약간 의문이 들었다.

    그의 추측대로라면 그들이 자신을 알아본 이상 감시를 해올 터였다. 그가 역관을 떠난 이유는 성안에 있는 법기들을 구경하고 싶어서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반응을 보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방해가 없다면 다행이니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선아 사부님, 먼저 어디로 가시렵니까?”

    “소승도 구체적인 목적지는 없으니 시주께서 정해주시면 됩니다.”

    심협의 물음에 선아가 웃으며 답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성의 동쪽부터 서쪽으로, 다시 남쪽으로 한가로이 돌아다녔지만, 아쉽게도 선아는 이렇다 할 단서를 찾아내지 못했다.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성의 북쪽에 이르렀다. 이곳의 거리 양옆에는 상점들이 즐비했고,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다수는 수사들을 위한 가게로, 대부분은 법기나 연기 재료를 팔았으며, 간혹 범인(凡人)들의 상점도 있었다.

    심협의 눈에 한 가닥 설렘이 스쳤다. 두극이 말하길 성안에 훌륭한 연기 상점들은 죄다 성 북쪽에 있다고 했는데, 과연 거짓이 아니었다. 다만, 그는 선아를 보호해야 했기에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심 시주께서는 사실 물건이 있거든 소승은 신경 쓰지 마시고 편하신 대로 하십시오.”

    선아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선아 사부님께서는 떨어지지 마시고 제 뒤를 따라오십시오.”

    심협은 선아에게 빙긋 웃어 보인 뒤, 가장 괜찮아 보이는 근처 상점으로 들어갔다.

    반 시진쯤 후, 두 사람은 성 북쪽의 다른 대형 연기 상점에서 걸어 나왔다. 그러나 심협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이곳 상점들의 법기는 확실히 훌륭했고, 같은 등급인 법기의 제련 기술은 심지어 장안성보다도 한 수 위였다. 하지만 법기 등급이 높지 않아서 대부분 중품이나 상품법기였고, 극품법기는 매우 드물었다.

    현재 그의 경지에 중저급 법기는 거의 쓸모가 없었기에 극품법기를 찾았지만, 지금까지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심 시주께서 원하는 법기를 찾지 못하셨습니까?”

    선아가 물었다.

    “법기가 많기는 합니다만 진짜 좋은 물건은 적군요. 제게 적당한 물건은 더욱 찾기 어렵고 말입니다.”

    심협이 가볍게 한숨을 내쉴 때였다.

    “엇! 심형! 금선대사님!”

    가벼운 외침이 들려오더니 누군가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백소천이었다.

    백소천 뒤에는 몸이 허약해 보이는 청년이 하나 따라왔다.

    “백형.”

    심협 또한 백소천에게 인사를 건네며 뒤에 깡마른 청년을 힐끗 보았다.

    그는 지닌 법력 파동이 미약해 겨우 벽곡기에 지나지 않았고, 외모도 평범하여 사람들 사이에 던져 놓으면 눈에 띄지 않을 듯했다. 다만 매우 큰 두 눈은 제법 기민해 보였다.

    “두 분은 어찌 여기까지……?”

    백소천이 먼저 선아에게 예를 갖춘 뒤 심협에게 물었다.

    “선아 사부님께서 성안 곳곳에 실마리를 찾아보고 싶다고 하셔서 모시고 나왔소. 그 참에 연기명성을 구경하고 손에 맞는 법기도 한두 가지 찾고 싶고…….”

    심협의 설명에 백소천이 피식 웃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만족스러운 걸 아직 못 찾았군?”

    “확실히 좋은 걸 못 찾긴 했소. 적곡성도 그저 허울뿐인 모양이오.”

    심협은 어깨를 으쓱했다.

    “적곡성 부근은 광물이 풍부하여 예로부터 법기를 만드는 것으로 이름이 났네. 연기(煉器)에 대한 업적으로는 장안성보다 훨씬 윗길이지. 자네가 만족할 만한 법기를 찾지 못했다면 그건 자네가 요령이 없어서라네.”

    백소천이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연기는 적곡성, 나아가 오계국의 근본이네. 오계국은 국토가 척박하여 적곡성은 주로 법기 장사로 수입을 올리지. 자연히 오계국 황실도 법기 장사에 끼어들었는데, 그들은 최상품 법기를 독점하고 일부 거대 세력들과만 거래한다네. 그러니 성안 상점에서 제대로 된 법기를 찾을 수 없었던 게지.”

    백소천이 말했다.

    “그리 된 것이로군요. 한데 들어보니 백형은 방법을 알고 있는 듯하오?”

    “우리 화생사도 오계국 황실의 교역 대상 중 하나라네. 이쪽은 손해(孫海), 화생사의 외문제자일세. 일 년 내내 적곡성에 주둔하면서 화생사와 오계국 황실의 연기 교역을 책임진다네.”

    백소천이 마르고 허약한 청년을 가리키며 소개했다.

    “손해, 금선대사님과 심 선배님을 뵈옵니다.”

    허약한 청년이 재빨리 앞으로 나와 심협과 선아에게 예를 갖췄다.

    심협은 반가워하며 허약한 청년, 손해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손해, 자네는 심형을 우리 화생사와 거래하는 연기 상점들에 좀 안내해주게. 심형, 금선대사님은 지금부터 내가 모시겠네.”

    백소천은 손해에게 분부한 뒤 심협에게 말했다.

    “그럼 백형에게 부탁 좀 하겠소.”

    심협은 고마운 마음에 가볍게 공수하고는 손해와 함께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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