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421화 (421/1,214)
  • 421화. 손님

    성안에는 거리가 사방으로 빽빽이 들어서서 장안성의 네모반듯한 구획과는 달랐다. 조금 전 심협이 하늘에서 보니 적곡성 전체가 방사형으로 배치되어 있었는데, 성의 한가운데인 우뚝 솟은 궁궐을 중심으로 여러 갈래의 도로가 사방팔방 뻗어 있었다.

    거리에는 행인들이 끊이지 않았는데, 오계국 본국 사람뿐만 아니라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는 간혹 당나라 상인도 종종 있어서, 심협 일행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오계국 전체가 큰 불국(*佛國: 부처의 나라 혹은 부처가 교화한 나라)이었으므로, 적곡성 안에도 역시 크고 작은 사찰이 많았다. 곳곳에서 불타의 조각상을 늘 볼 수 있었는데, 어떤 것은 매우 커서 실로 장관이었다.

    성안 곳곳에도 수리한 흔적이 있었는데, 거의 모든 가옥이 붉은색, 흰색, 노란색 세 가지 색깔의 안료가 발라져 있었다.

    “어라? 이곳 적곡성에 축제가 열리려나?”

    백소천이 성안의 수리 흔적을 보며 말했다.

    “그럴 거요. 주민들 얘기를 들어보니 이곳에서 무슨 대승법회(大乘法會) 같은 게 열릴 모양이오.”

    심협은 성안 주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말했다.

    “대승법회!”

    선아가 눈을 반짝였다. 그는 오계국에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으러 온 것이지만, 불문 제자로서 불문의 깨달음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자리인 다른 나라의 대승법회에 관심이 많았다.

    그때, 저 앞에서 한바탕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사람 하나가 미치광이처럼 비틀거리며 걸어왔다. 그는 몹시 더러워 악취가 심했고, 차림새도 남루했다.

    “또 저 미친놈이야?”

    “곧 대승법회라 각국 불문의 성승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는데, 왜 저런 미친놈이 거리를 나돌아 다니게 놔두는 건지…….”

    주위의 행인들은 역신(疫神)이라도 피하는 것처럼 다들 혐오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힐끔거렸다.

    하지만 이 미치광이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당당히 돌아다니며 때때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그들에게 ‘선한 사람은 어찌 건너가오?’ 하고 물었다.

    그때, 그 미치광이가 산발한 머리칼 아래로 눈을 번뜩이며 달려들어 선아의 승포 자락을 잡아당겼다.

    “대사님, 말씀 좀 묻겠소이다. 선한 사람은 어찌 건너갑니까?”

    미치광이의 질문에 선아는 일순 멍해졌다. 그는 금산사에서 법회에 수도 없이 참석했고, 갖가지 불문의 선기(*禪機: 설법을 할 때 말이나 사물로 종교의 가르침을 암시하는 것)를 훤히 꿰뚫고 있었지만, 그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선기였기에 잠시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그때, 앞에서 질서정연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한 무리의 병사들이 빠르게 달려왔다.

    “저놈이다! 끌고 가라!”

    앞장선 소대장이 미치광이를 가리키며 외치자 병사들 몇몇이 재깍 달려와 그를 붙잡고 우르르 달라붙어 끌고 갔다.

    한데 그 미치광이가 꽉 붙잡고 있던 탓에 찌익 하는 소리와 함께 선아의 소맷자락이 큼지막하게 찢겨 나가고 말았다.

    “선한 사람은 어찌 건너갑니까? 선한 사람은 어찌 건너가냐고!”

    그 미치광이는 여전히 선아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목이 쉬도록 외쳐댔다.

    “저 미친놈이 대사님의 옷을 망가뜨렸으니 소인이 대신 사죄드리겠습니다.”

    소대장은 선아가 불문의 대선(大禪) 차림을 한 것을 보고는 헐레벌떡 달려와 몸을 굽히고 세 사람에게 예를 갖췄다.

    선아는 비록 나이가 어렸지만, 소대장은 그를 감히 우습게볼 수 없었다. 서역 36국 모두 불교를 신봉했고, 나이가 많지 않은 고승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계국에도 어린 고승이 여럿이었다.

    “옷은 단지 겉껍데기일 뿐, 남에게 찢기는 것도 그 자신의 연분이니 시주께서는 개의치 마십시오. 한데 저 시주는 누구입니까? 왜 빈승에게 저런 물음을 던진 것인지요?”

    선아도 예를 갖추며 물었다.

    “저놈은 그냥 미친놈입니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요. 요 몇 년 동안 줄곧 적곡성을 떠돌면서 저런 미친 소리를 지껄여대니 대사께서는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소대장이 웃으며 답했다.

    “아미타불. 가엾은 시주로군요. 심 시주, 백 시주, 두 분께서 그를 치료하실 수 있는지요?”

    선아는 끌려가는 미치광이를 안타까운 눈길로 바라보며 불호를 읊조린 뒤, 심협과 백소천에게 물었다.

    “방금 슬쩍 상태를 살펴보았는데, 그의 몸은 아주 건강합니다. 저런 광증은 머리에 문제가 생긴 것일 테니 고치기는 힘들 듯합니다.”

    백소천이 난처한 목소리로 답하자 선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세 분께서는 어디서 오셨습니까?”

    세 사람이 말을 마치자 소대장이 다시 물었다.

    “우리는 중원 대당에서 왔고, 적곡성에는 처음입니다.”

    백소천이 한 손을 세로로 세우고 불례(佛禮)를 갖추었다.

    “중원 대당이라……. 세 분께서는 대승법회에 참석하러 오신 겁니까?”

    소대장의 눈이 밝아졌다.

    “그렇습니다. 대승법회는 언제 열립니까?”

    선아가 막 대답을 하려는데 옆에 있던 심협이 선수를 쳤다.

    “대승법회는 5월 18일로 정해졌습니다. 아직 10여 일이 남았지요. 역관(驛館)으로 안내해드릴 테니 세 귀빈께서는 그곳에서 잠시 쉬시지요. 잠시 후 소인이 성련법단의 고승들께 위문을 가시라 통지할 것입니다.”

    “귀하께서 참으로 수고가 많으십니다.”

    심협은 소대장의 제안에 웃음을 머금고 답했다.

    소대장은 거듭 아니라고 말한 뒤, 수하들에게 마차를 한 대 찾아오라 분부하고는 세 사람을 공손히 마차로 모셨다. 그리고는 직접 마차를 몰아 성안으로 향했다.

    “심 시주, 우리는 대승법회에 참석하러 적곡성에 온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리 거짓말을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선아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선아 사부님, 융통성을 좀 발휘하시지요. 대승법회에 관심이 많으시지 않습니까? 우리는 확실히 중원에서 오기도 했고요. 대승법회가 도대체 어떤 성대한 축제인지 지켜보면서 그 참에 적곡성의 내막도 살펴볼 수 있으니 앞으로의 일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심협이 웃으며 말했다.

    “음, 알겠습니다.”

    선아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마차는 곧장 내달려 이내 역관에 도착했다.

    대승법회까지 얼마 남지 않은 까닭에 그곳에는 이미 제법 많은 사람이 묵고 있었는데, 다들 각국의 사신과 승려들이었다.

    대당은 큰 나라고, 특히 금선자가 불경을 구해온 뒤 대승진경(大乘眞經: 대승불교의 경전)이 중원에서 일부 서쪽 나라에 다시 전파되기도 하여, 서역에서 대당의 지위가 더욱 높아진 때였다. 이에 역관에서는 세 사람에게 가장 좋은 처소와 따로 떨어진 마당을 마련해주었고, 심협 일행에게 두극(杜克)이라는 시종도 붙여주었다.

    “두극, 우리는 멀리 대당에서 와서 대승법회에 대해서는 잘 모르오. 이 법회는 누가 주관하는 것이기에 이리도 많은 사람이 참석하는 거요?”

    심협이 물었다.

    “이번 대승법회는 임달(林達) 단주께서 여시는 겁니다. 그의 명망이라야 서역 36국의 성승들을 전부 참석시킬 수 있지요.”

    두극의 동경어린 표정에서 임달이라는 사람에 대한 숭배가 느껴졌다.

    “단주? 그대가 말한 임달이 성련법단의 단주요?”

    심협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백소천을 바라보았다.

    백소천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렇습니다. 임달선사께서는 서역 36국 모두에서 덕망이 높으시지만, 나이는 많지 않으십니다. 20여 년 전에야 서역 여러 나라에서 두각을 나타내셨는데, 귀객들께서는 멀리 중원 대당에서 오셨으니 모르셨을 겁니다.”

    두극이 말했다.

    “오, 그 임달선사라는 분은 오계국의 전설적 인물이신 듯한데, 내력이 어찌 되시오?”

    심협이 관심을 보이자 두극은 신이 나서 설명을 시작했다.

    “그분은 우리 오계국의 어느 작은 사찰 출신이십니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셨고, 불리(佛理)에 정통하시어 열 살 때는 성련법단의 전임 단주셨던 구마라(鳩摩羅) 대사님과 이치를 논할 수 있을 정도셨지요. 이후, 그분께서는 불리의 참뜻을 찾아 서역 36개 불국을 홀로 여행하시며 요마들을 제거하시고 불교의 참뜻을 계승하셔서 각국에 이름을 널리 알리셨지요.”

    두극은 강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북방에서 온 진선기 대요(大妖) 한 마리가 서역 각국에서 기승을 부려 여러 작은 나라들이 멸망 직전까지 갔었습니다. 그때 임달선사께서 홀로 그 요괴에 맞서신 끝에 그를 교화시키시고 우리 불문에 복종하게 하셨지요. 이에 서역 36국이 그분을 선종(禪宗)의 1인자로 공인했답니다.”

    “진선기 대요를 굴복시켰단 말이오?”

    심협은 크게 놀랐다.

    자그마한 오계국에 진선의 경지에 견줄 만한 고수가 있다니, 백소천도 놀란 표정이었다.

    “그 임달선사라는 분께서는 지금도 적곡성에 계십니까? 두(杜) 시주께서 소승을 소개해주실 수 있는지요? 그런 대선이시라면 꼭 찾아뵈어야지요.”

    선아가 말했다.

    “임달선사께서는 대승법회를 준비하시느라 수일 전에 이미 폐관을 선포하셨습니다. 지금은 아마 그분을 뵐 수 없을 겁니다. 허나 선아 대사님께서는 조급해하실 것 없습니다. 대승법회 때 그분을 뵐 수 있으니까요.”

    두극이 다소 난처한 듯 말했다.

    “알겠습니다.”

    선아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심협은 이어서 두극에게 적곡성과 서역 36국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두극은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알고 있는 것이 정말 많아서 하나하나 대답해주었다.

    이어서 심협이 적곡성 연기계(煉器界)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려는데,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진홍색 승포를 입은 사람 네다섯 명이 걸어 들어왔다.

    우두머리인 두 승려는 덩치가 컸는데, 한 사람은 머리에 금관을 썼고 손에는 거대한 선장(*禪杖: 승려의 지팡이)을 들고 있어 어딘가 좀 어설퍼 보였다.

    다른 한 사람은 왜소하고 바싹 마른 노인으로, 손발이 모두 대나무 마디마냥 여위어 걸음조차 휘청대는 것이 바람 한번 불면 날아갈 듯한 모습이었다.

    심협은 두 사람을 훑어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두 사람은 수련 경지를 숨겼지만, 천년사매의 사담을 복용한 심협은 그들의 경지를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지닌 법력의 빛은 강렬했고, 수련 경지는 출규 후기였다. 특히 마른 노승은 어렴풋하게나마 출규기 정점에 이른 상태였다.

    “허허, 대당의 고승께서 찾아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우리 적곡성과 나아가 오계국의 영광입니다. 제때 영접하지 못한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마른 노승이 심협 일행을 바라보면서 허허 웃었다.

    금관을 쓴 또 다른 승려도 웃음을 머금고 심협 일행을 바라보며 뭔가를 말하려다가, 돌연 시선이 심협의 두 눈에 머물렀다. 그의 눈길 깊숙한 곳에는 뼛속까지 사무친 분노가 나타났다가 이내 약간의 반가움으로 변하더니 끝내 모든 표정을 철저히 감추었다.

    “대당에서 오신 세 분 귀빈을 환영합니다.”

    금관을 쓴 승려가 세 사람을 향해 예를 갖추었다. 그의 표정은 이미 완전히 평정을 되찾은 상태였다.

    방금 금관을 쓴 승려의 표정 변화는 찰나에 스쳐갔으나, 지금의 심협은 안력이 놀라울 정도였기 때문에 하나도 빠짐없이 간파했다.

    ‘이들의 눈빛은…… 나를 알고 있는 것인가?’

    심협은 머릿속으로 재빨리 헤아려보았다.

    하지만 그는 서역에 와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서역에 적이 있다면 백군성에서 얽힌 자들일 터였다. 그렇다면 그 누런 얼굴의 승려와 이 금관을 쓴 승려가 어떤 관계라도 있단 말인가?

    그는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면서도 표정에는 조금도 드러내지 않고 선아와 백소천을 따라 예를 갖추었다.

    “대사님들께서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여러분들은 법명이 어찌 되시는지요?”

    백소천이 물었다.

    “노승은 용단이라 하고 이분은 보산(寶山)선사이십니다.”

    금관을 쓴 승려가 웃으면서 말했다.

    백소천과 선아 모두 불문의 사람들이라 이 승려들과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심협은 한쪽 옆에 서서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용단선사와 보산선사는 선아 등을 환영하기 위해 온 것이기 때문에, 오래 머물지 않고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곧 떠나갔다.

    심협은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며 눈빛을 반짝였다.

    조금 전 사람들이 대화할 때, 그 용단선사라는 이가 직접 보지는 않았음에도 심협은 상대가 자신을 계속 관찰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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