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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420화 (420/1,214)
  • 420화. 모든 것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나니

    심협은 이 상황에 미처 대비하지 못해 법력을 움직여 막을 겨를이 없었고, 두 눈이 불타는 듯 쑤시기 시작했다.

    “크윽!”

    그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비주에 나동그라진 채 양손으로 눈을 가렸다. 잔뜩 웅크린 몸 안에서는 불타는 듯 뜨거운 기운이 제멋대로 내달렸다. 심협의 눈 주위 경맥은 검붉게 변했고, 피부 위로 툭 불거져 나왔다.

    ‘젠장! 그 방촌산 고서의 기록에 문제가 있었어!’

    심협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하지만 일은 이미 벌어진 후였기에, 그는 이를 악물고 견디며 법력을 눈에 주입하여 이 뜨거운 기운을 이겨내려 애썼다.

    한편, 옆에서 지켜보던 백소천과 선아는 깜짝 놀랐다.

    백소천은 황급히 비주를 세우고 아래쪽 어느 사막에 내려 심협의 상태를 살펴보려 했다.

    한데 그 순간, 근처 모래땅이 갑자기 갈라지면서 지네처럼 생긴 황토색 사충(沙蟲) 요물 하나가 바닥을 뚫고 나와 크고 시뻘건 입을 쩍 벌려 세 사람을 집어삼키려 했다.

    여러 개의 모래기둥이 치솟아 하얀 비주를 휘감을 듯 날아왔다.

    이 사충은 상당히 막강해 응혼기에 이르러 있었다.

    백소운은 급작스레 비주를 착륙시키느라 아래쪽에 요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다가 황급히 결인하여 비주를 가리켰다.

    배의 몸통에 새겨진 부적 문양이 문득 밝아지면서 비주가 바닥에 바싹 붙은 채 돌진하며, 10여 장을 순식간에 나아가 사충의 공격을 가까스로 피했다.

    한편, 선아의 손목에 감긴 염주도 금빛을 내뿜어 비주를 감싸고 모래기둥의 충격을 막아냈다.

    “고맙다.”

    백소천은 염주에게 짧게 감사를 표하고는 손을 뒤집어 금빛 부채를 꺼내 휘둘렀다.

    쉬익거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무수한 금빛 광인(光刃)이 부채에서 날아가 사충을 집어삼켜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사충요괴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숨이 끊어졌다.

    백소천은 신식으로 근처를 가볍게 훑고는 다른 요물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비주를 멈춰 세우고 심협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는 이내 심협의 눈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일의 자초지종을 알지 못했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법결을 읊조리고 두 손으로 연거푸 결인을 맺었다. 그러자 손에서 금빛이 여러 줄기 쏘아져 나와 심협의 체내로 녹아들었다.

    화생사는 항마신통으로 이름이 났지만, 경내에는 수많은 치료법술이 있었다. 문제의 원인을 알지 못했기에 아는 법술은 다 써보는 수밖에 없었다.

    금빛이 한 줄기 떨어질 때마다 심협의 몸에는 금빛 광채가 솟아올라 몸 곳곳에 흘러넘쳤다.

    한편, 선아도 심협 곁에 앉아서 안신경(安神經)을 외우기 시작했다. 범음이 간간이 울려 퍼지면서 어머니의 속삭임처럼 마음과 정신을 다독여주었다.

    심협은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더니 조금씩 떨림이 잦아들었다.

    백소천과 선아는 누구의 행동이 효과를 본 것인지 알 수 없었기에 계속 법술을 시전하고 경문을 읊조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반 시진이 지났다.

    심협은 그제야 눈에 느껴지던 통증이 차츰 사라지면서 주위에 툭 불거져 나왔던 경맥도 가라앉았다. 다만 이 경맥들 모두 한층 넓어졌고, 경맥의 벽에는 수많은 뱀 모양 은빛 무늬가 생겨나 있었다. 분명 사담의 힘 때문이었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앉아 눈을 떴다. 눈동자 깊은 곳에는 은빛이 어렴풋이 감돌았는데, 그 속에는 세로 문양이 한 줄 반짝이고 있어 마치 그의 눈에 뱀의 눈이 숨겨진 것처럼 더없이 신비로워 보였다.

    “심형, 좀 어떤가? 아니! 자네 눈이 예전과 좀 다른 것 같은데?”

    백소천은 그제야 손을 거두고 심협의 눈을 보며 놀라서 물었다.

    심협은 멈칫했다.

    그의 시야에는 크나큰 변화가 생겼고, 시력은 눈에 띄게 좋아진 상태였다. 특히 예전에 알아채지 못한 많은 사소한 부분들까지 눈에 들어왔고, 백소천의 표정이 변할 때 얼굴 근육의 미세한 변화와 속눈썹의 떨림, 동공이 확장되었다가 움츠러드는 것까지 또렷하게 보였다. 심지어 백소천의 체내에서 법력이 흐르는 것도 선명히 보였다.

    심협의 시야에는 백소천의 몸에 하얗고 희미한 빛을 뿜어내는 문양이 떠올라 있었다. 어떤 것은 굵고 어떤 것은 가는 그 문양은 백소천의 몸 곳곳에 퍼져 있었는데, 여러 가닥의 경맥이 분명했다.

    그중 열 줄기는 다른 경맥들과 달리 그 속의 하얀 빛이 훨씬 강렬했다.

    ‘이게 법맥인가? 법맥을 열 줄기나 응련해내다니, 백소천은 과연 자질은 훌륭하구나!’

    심협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백소천의 단전도 그의 눈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그곳에는 눈부신 하얀 빛 덩어리가 나타났는데, 법맥이나 다른 경맥들보다 훨씬 강력해 가닥가닥 하얀 빛이 요동치며 강렬한 법력 파동을 내뿜었다. 자신보다도 훨씬 강했다.

    심협은 먼 곳을 내다보았다. 전보다 더 멀리 보이긴 했지만, 생각보다 멀리까지 보이지는 않았다.

    ‘주로 가까운 곳에서의 관찰력과 법력을 살피는 능력이 향상되었군.’

    심협은 내심 매우 기뻤다.

    이 능력은 더없이 유용해서, 앞서 겪은 고초도 가치가 있었다.

    “심협, 자네 정말 괜찮은가?”

    백소천은 심협이 오래도록 말이 없자 어딘가 불편한가 싶어 다급하게 물었다.

    “지금은 괜찮아졌소. 두 분의 도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심협은 정신을 차리고는 백소천과 선아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두 눈의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백소천과 선아가 자신을 위해 애쓴 것은 알고 있었다.

    “자네 방금 도대체 어찌 되었던 겐가?”

    백소천이 별일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치며 물었다.

    “아까 백군성에서 본 뱀 요괴는 천년사매였소. 고서의 기록에 따르면 그 요괴의 사담은 시력을 올려주는 효력을 지녔다고 하여 방금 복용했소. 그랬더니 눈이 갑자기 찌르는 듯 아프기 시작했고…….”

    심협은 잠깐 주저하더니 두 사람에게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 털어 놓았다.

    “그랬군. 나도 고서에서 천년사매에 관한 기록을 본 적이 있네. 확실히 몸을 보양해주는 영물이긴 하지. 어쨌거나 사람과 요괴는 다르니 요물의 정수는 연단사에게 넘겨 단약으로 정제한 뒤 복용하는 것이 안전하네.”

    “백형 말이 옳소. 이번에는 내가 좀 성급했소.”

    심협도 뒤늦게 두려움이 조금 밀려왔다.

    “아미타불. 모든 것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는 법입니다. 심 시주께서 선행을 많이 하셨고 앞서 요괴를 죽인 공로도 있으니 자연히 전화위복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선아는 활짝 웃으며 전혀 걱정하지 않는 듯 말했다.

    “선아 사부님의 덕담에 감사드립니다.”

    심협은 선아의 맹목적인 믿음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감사의 말을 건넸다.

    “저 때문에 적잖은 시간을 지체하였으니 어서 출발하시지요.”

    그는 이 문제를 더 논하고 싶지 않아 한쪽에 쓰러져 있는 사충의 시신을 슬쩍 보고는 말했다.

    백소천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하지만 선아는 대답 없이 문득 서북쪽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멍하니 넋을 놓았다.

    “금선자대사님, 왜 그러십니까?”

    백소천이 의아한 듯 물었다.

    “소승 방금 문득 저쪽 방향에서 뭔가가 저를 부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선아가 양손을 합장하고 불호를 읊조린 뒤 말했다.

    백소천과 심협은 그 말에 깜짝 놀라 선아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보았다.

    “이쪽은 오계국의 국도(國都)인 적곡성(赤谷城)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심협은 고서 한 권을 꺼내 펼쳤다. 그곳에는 간략한 오계국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적곡성 맞군요.”

    “적곡성이라고요? 기억이 좀 나는 듯도 한데…….”

    선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일단 가보시죠.”

    백소천이 결인하고 재촉하자 비주가 세 사람을 태우고 빠르게 날아갔다.

    오계국은 매우 넓어서 심협 일행은 요물들이 나타날 것을 잔뜩 경계하느라 속도를 조금 늦췄고, 한나절쯤 지난 뒤에야 적곡성에 도착했다.

    적곡성은 그 이름처럼 거대한 붉은 산골짜기 안에 축조되었는데, 백군성보다 열 배는 넓었다. 성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오계국의 다른 지방과는 달리 번화해서, 장안성에는 미치지 못해도 건업성에는 뒤지지 않았다.

    적곡성 양쪽에는 산줄기가 이어졌는데, 이곳의 바위들은 다른 곳과 사뭇 달라 마치 녹슨 듯한 검붉은 색이었다. 공기 중에도 녹슨 구리 냄새가 진동했다.

    “여기가 적동(赤銅: 붉은빛을 띤 구리) 광산이로구나! 밖으로 드러난 것만 해도 이렇게나 많다니!”

    심협은 양쪽의 산맥을 자세히 살펴보고는 경탄했다.

    “우리 화생사는 적곡성과 거래가 있어서 이곳에 대한 기록을 좀 본 적이 있지. 오계국 적곡성은 서역의 이름난 도시로, 적동이 많이 나고 연기술(煉器術)에 정통한 서역 36개 나라 중 으뜸일세. 매년 적곡성에 법기를 구하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서 이토록 번화한 거라네.”

    백소천의 말에 심협은 적잖이 기뻐했다.

    그는 최상급 재료들을 적잖이 가지고 있어서 법기로 만들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장안에서는 좋은 연기사를 찾지 못했다. 이 적곡성은 법기 제조로 이름난 연기명성(煉器名城)이니 좋은 기회였다.

    “금선대사님, 이곳입니까?”

    백소천은 선아가 말없이 넋이 나간 듯 눈앞에 펼쳐진 도시를 바라보고 있자 조용히 물었다.

    “맞아요. 바로 여깁니다. 이 성안의 어떤 물건이 저를 부르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어요. 다만…… 정확히 어디 있는지는 알 수가 없군요.”

    선아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염주, 너는 어떠하냐?”

    심협이 문득 염주를 향해 물었다.

    “왜 나한테 물어? 난 아무 느낌도 없는데…….”

    염주가 퉁명스레 말했다.

    심협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염주의 태도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적곡성에 오면 선아가 찾고자 하는 물건을 금방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상황을 보아하니 성을 샅샅이 뒤져야 할 것 같았다.

    “일단 성에 들어가서 천천히 찾아보지요.”

    그리하여 세 사람은 성 근처에 내렸고, 걸어가 곧 적곡성 아래에 도착했다.

    비주 위에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가까이 와서 보니 이곳의 성벽은 유달리 크고 높았다. 성벽은 높이가 무려 150장 정도로 장안성보다 거대했고, 전체를 거대한 붉은 돌덩이로 쌓아올려서 마치 산봉우리가 우뚝 서 있는 것 같았다. 그 앞에 서니 개미처럼 한없이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가 된 듯했다.

    성문 바로 위쪽 성벽에는 높고 커다란 건물이 몇 채 세워져 있었다. 이 건물들은 마치 공중에 웅크린 채 언제라도 달려들 수 있는 거대한 짐승들 같아서 성문 아래 선 사람들의 마음을 묵직하게 짓눌렀다.

    세 사람은 서역 성지(城池)의 웅장함에 감탄하다가 곧 인파에 섞여 성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섰다.

    심협은 성지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성문 곳곳이 보수되었던 듯했고, 성벽 모서리와 성문 근처 도로까지 보수된 흔적이 있었다.

    ‘이 시기에 성을 개축한다고? 오계국 관례에 따르면 지금은 큰 명절도 아닌데, 성안에 무슨 축제라도 열리나?’

    그는 오는 길에 읽었던 오계국에 관한 고서를 떠올리며 짐작해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 사람이 성안으로 들어갈 차례가 됐다.

    이번에는 돈을 뜯기지 않고 입성비를 내고는 무사히 성안으로 들어왔다.

    적곡성은 서역의 큰 성으로, 성안의 건축 양식은 서역의 투박하면서도 중후한 기풍을 자연스레 이어갔다. 거리에는 넓고 큰 붉은 돌이 깔려 있었고, 하나하나가 탁자만 했는데, 두껍고 튼실했다. 표면이 중원의 성들처럼 평평하지는 않았지만, 영원히 부서지지 않을 것처럼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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