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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419화 (419/1,214)

419화. 창생(蒼生)을 대신하여 행복을 도모하다

랍막은 낯빛이 시커멓게 변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심협과 백소천의 모습은 주변 어디에도 없었다.

“방금 그 이교도들이 시전한 것은 둔술이니 분명 아직 성안에 있을 터! 어서 찾아내라! 땅을 다 뒤집어엎어서라도 찾아내야 한다!”

그는 달려오는 승려 무리를 향해 외쳤다.

명을 받은 붉은 옷의 승려들은 곧장 아래쪽 성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너희는 수호금제를 작동시켜 온 성을 뒤덮어라! 그놈들을 놓쳐서는 아니 될 것이야!”

랍막이 뒤에 있던 두 승려에게 말했다.

“단주님, 그자들은 실력이 막강해서 찾아낸다 하더라도 저희는 그들의 적수가 되지 않을 듯합니다.”

이제 막 한숨을 돌리려던 땅딸막한 화상이 주저하며 말했다.

그 말에 랍막은 멈칫했으나, 이내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안심해라. 내게 그들을 상대할 방법이 있느니라. 성주님께 강림해주시길 청하면 그들이 호리병과 천년사매를 봉령(封靈)해 가져가지 못하도록 하실 것이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그 사매는(蛇魅)…….”

그는 여기까지 말하고는 갑자기 말을 멈추고 두 승려를 빤히 쳐다보았다.

“예.”

두 사람은 뭔가가 떠오른 듯 낯빛이 살짝 변하여 즉시 대답하고는 아래쪽으로 날아갔다.

랍막도 곧 몸을 돌리더니, 한 줄기 금빛으로 변해 성련법단사 쪽으로 돌아가 이내 어느 밀실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높이가 사람 키에 가까운 돌기둥이 하나 있었는데, 그 꼭대기에는 금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그 안에는 여러 갈래의 금빛 부적 문양이 어떤 법진처럼 떠 있었다.

승려는 잠시 망설이더니, 결인하고 법진을 가리켰다.

금빛 법진이 곧 윙윙거리면서 운행되기 시작했고, 몇 호흡 뒤 그 안에 흐릿한 형체가 떠올랐다

머리에 금관을 쓴 승려의 형체가 담담하게 물었다.

“랍막, 무슨 일이냐?”

누런 얼굴의 승려, 랍막이 황공한 표정으로 답했다.

“용단(龍壇) 호법(*護法: 불교의 여러 수호신을 일컫는 말로, 현재의 경호원에 해당함)님, 속하 죽어 마땅하옵니다. 오늘 성룡(聖龍) 대인께서 백군성에 오시어 혈식(*血食: 살아 있는 것을 죽여 바치는 제물)을 찾으시기에 관례대로 처리했사온데, 백군성에 갑자기 외부인 두 사람이 들어왔지 뭡니까. 그들은 매우 강력하여 저의 벽옥 호리병은 물론 성룡 대인까지 데려갔습니다.”

“뭐라? 성룡이 그들에게 잡혀갔단 말이냐! 그 두 놈은 어떤 놈들이냐! 어떤 수법을 사용했지?”

금관 승려는 흐릿한 허깨비 상태였음에도 눈에 띄게 안색이 변해서는 노기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랍막은 얼른 심협과 백소천의 용모, 수련 경지, 그들이 쓰는 공법과 법기 등에 대해 설명했다.

“두 놈 모두 출규기 경지이고, 그중 하나는 중원 화생사의 수사이며 다른 하나는 사문의 내력을 알 수 없다, 이 말이구나. 상황은 어떠하냐?”

금관을 쓴 승려는 그 말을 듣고 노기를 조금 거두며 다그쳐 물었다.

“속하 성안에서 그들을 찾는 중입니다. 다만 그 둘은 실력이 고강해 온 백군성의 힘을 동원한다 해도 이기리란 보장이 없을 듯하여, 호법께서 강신부를 쓸수 있도록 윤허하여 주시길 간청드립니다. 반드시 그들을 사로잡고 성룡을 되찾아 오겠습니다.”

랍막이 간곡하게 청했다.

“좋다. 잠시 뒤 내가 법술로 강신부의 봉인을 풀어주마. 반드시 성룡을 되찾아 와야만 한다. 그놈의 사담으로 동술(瞳術)을 연마하려고 수많은 영약을 먹여 길렀으니, 되찾아오지 못한다면 네 하찮은 목숨으로도 갚지 못할 것이다!”

금관을 쓴 승려가 엄한 목소리로 말하자 랍막은 뻣뻣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예! 속하 반드시 되찾아 오겠나이다!”

금관을 쓴 승려의 모습은 순식간에 법진 안으로 사라졌고, 이어서 법진의 빛이 환하게 밝아지며 강렬한 금빛 한 줄기가 그 안에서 쏘아져 나왔다.

그런 후 랍막은 하얀 부적 한 장을 꺼냈고, 그 위에는 하얀 빛 덮개 한 겹이 반짝였는데, 어떤 봉인인 듯했다.

그는 법진 안에서 쏘아져 나오는 금빛을 보고 황급히 손에 든 부적을 들어 올려 그 금빛을 받았다.

부적의 하얀 빛 덮개가 소리와 함께 부서지고, 그 위로 곧 여러 줄기 금빛 문양이 떠올라 한 장의 부적을 이루며 강렬한 법력 파동을 내뿜었다.

랍막은 크게 기뻐하더니 곧 음산한 표정으로 금빛 부적을 챙긴 뒤,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 * *

백군성의 작은 사찰. 이 작은 절의 마당 허공에 느닷없이 녹색 빛이 떠오르더니, 그 안에서 심협과 백소천이 튀어나왔다.

“아미타불, 두 분 시주께서는 괜찮으십니까?”

선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들을 맞았다.

“괜찮습니다. 다만, 더는 백군성에서 머물 수 없을 것 같으니 최대한 빨리 떠나야만 합니다.”

심협은 그렇게 말하고는 선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녹색 빛이 세 사람을 뒤덮더니 크게 번쩍였고, 그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 *

백군성 밖 어느 황무지. 녹색 그림자가 번쩍 스친 후 세 사람의 모습이 튀어나오더니 비틀거리며 내려섰다.

심협은 안색이 조금 창백했다. 그의 수련 경지로는 두 사람을 데리고 을목선둔을 시전할 수는 있지만, 법력 소모가 꽤 컸다. 더욱이 앞서 천년사매와의 싸움에서 이미 법력을 적잖이 소모한 상태였다. 그는 곧바로 회복 단약을 하나 꺼내 먹고는 묵묵히 운기조식을 했다.

그 무렵, 백군성 한가운데의 보탑에서 환한 금빛 한 줄기가 하늘로 치솟았고, 동시에 보다 작은 금빛 네 줄기가 떨어져 나와 성의 네 모퉁이에 떨어졌다. 이에 커다란 그릇을 엎어놓은 듯한 금색 빛 덮개가 생겨나 순식간에 성 전체를 뒤덮었다.

“온 성을 뒤덮을 만한 금제가 있을 줄이야. 심형의 대응이 빨랐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우리는 저 안에 갇혔을 걸세.”

백소천이 이 광경에 감탄했다.

심협은 딱히 우쭐해 하는 기색 없이 백군성 전체를 뒤덮은 금색 빛 덮개를 바라보며 눈빛을 희미하게 반짝였다.

백군성의 몰락한 형편으로 보아 이곳의 성련법단사도 부유하지 않을 터였다. 아까 요물에 맞설 때에도 금탑 위의 금제는 잠시 저항하다가 멈추지 않았던가. 한데 지금 자신들을 찾기 위해 금제를 다시 작동시키다니. 더욱이 이렇게 온 성을 뒤덮으려면 뱀 요괴를 막아낼 때보다 대가가 더 클 텐데, 설마 그 누런 얼굴의 승려가 이렇게까지 해야 할 만큼 벽옥 호리병이 중요한 것일까?

“스님들이 왜 시주님들을 쫓아오는 겁니까?”

선아가 영문을 몰라 의아한 듯 물었다.

“왜긴 왜겠어? 이 심가 놈이 남의 법기를 빼앗았으니 저 화상들이 열 받아서 펄펄 뛰지 않고 배기겠어? 키킥!”

선아의 손목에서 염주가 킬킬거렸다.

“심 시주, 사실입니까? 약탈은 큰 죄업입니다. 시주께서는 불문에 계신 분은 아니나, 그런 옳지 않은 일을 행하시면 아니 되지요. 제 생각에는 그 물건을 저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선아의 다소 근엄한 목소리에 염주는 또다시 키득거렸지만, 이번에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선아 사부님의 자비로움에 탄복하였습니다. 허나 방금은 저 악승(惡僧)들이 그 법기로 저와 백형을 기습하여 어쩔 수 없었습니다. 또한 저 승려들은 행실이 단정치 못하고 수련하는 공법도 사이(邪異)하여 결코 선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 물건이 저들 손에 있으면 선량한 사람들이 더 많은 재난을 당하게 될 뿐이니, 제가 그 법보를 빼앗아온 것은 약탈이 아니라 오히려 창생을 대신하여 행복을 도모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심협은 염주를 힐끗 보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렇습니까?”

선아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쳇, 남의 물건을 빼앗는 데도 그리 이치를 조목조목 따진단 말이냐? 심협, 내가 보기엔 네가 저 화상들보다 더 허튼소리를 지껄이는구나!”

염주가 쳇 하고 툴툴거렸으나, 심협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성을 벗어나긴 했지만 아직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으니 어서 떠나는 것이 좋겠습니다.”

“맞네, 어서 가세.”

백소천이 손을 휘둘러 비주를 꺼냈다.

하얀 빛은 세 사람을 떠받치고 멀리 달아나 곧 백군성 지역을 빠져나갔다.

심협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조식하며 법력을 회복했고, 천책 공간 속에서 벽옥 호리병을 꺼냈다. 이어서 몇 차례 훑어본 뒤, 눈을 감고 호리병 안쪽 상황을 살펴보고는 곧 얼굴에 희색이 감돌았다.

이 호리병은 극품법기로, 안에 15도 금제가 담겨 있었다. 그러니 건곤대의 한광을 막아내는 것도 당연했다.

그는 결인하고 구구통보결을 운공해 벽옥 호리병을 제련했는데, 뜻밖에도 그 안에 랍막이 제련했던 흔적이 사라진 상태였고, 제련하기가 수월했다.

‘천책의 공간이 법기 내부의 제련 흔적도 지울 수 있는 모양이구나!’

심협은 몹시 놀랐으나, 생각해보니 그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천책은 옥침이 천년 후 세상에서 불러온 것으로, 그 현묘함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또한, 다른 이의 법기를 그 속에 거두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 물건을 천년 뒤 세상에 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그렇게 시공간의 장벽을 뛰어넘는다면 어떤 제련 흔적도 완전히 차단할 수 있을 터였다.

그는 일단 생각을 접고 제련에 힘썼다. 금세 3도 금제를 제련했으나, 15도 금제까지 하나하나 제련하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었기에 손을 뒤집어 호리병을 챙겼다.

그런 뒤, 그는 신식을 다시 천책 공간에 집어넣어 그 안에 있는 천년사매의 시체를 바라보며 사담을 어떻게 꺼낼지 고민했다.

이 뱀의 시체는 너무 커서 비주에서는 꺼내놓을 수가 없었기에 백소천더러 잠시 멈춰달라고 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천책 공간이 다른 사람의 제련 흔적을 차단할 수 있구나. 지난번에 용각단추를 거둬들였을 때는 그 안의 흔적이 차단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심협은 문득 그 일이 떠올라 천책 공간에 거둬들였던 짧은 금빛 송곳을 꺼냈다.

금빛 송곳은 환한 금빛을 뿜어냈고, 그의 신식과의 연결이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아직 움직일 수는 있었다.

‘과연 그렇군. 나의 법기가 이런 상태를 없앨 수 있는 것 같아.’

심협이 슬쩍 의식을 조종하자 금빛 송곳 끄트머리에서 날카로운 빛이 솟구쳐 천년사매의 복부를 베었다.

이미 쇄갑부에 뜯겨나간 천년사매의 아랫배에서는 천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고, 기다란 상처 너머로 피범벅이 된 거대한 내장들이 드러났다.

심협은 신식을 운행하여 그 속을 뒤져가며 금빛 송곳을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송곳에서 금빛이 솟구쳐 사매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금빛은 엄지만 한 은빛 사담을 감싼 채 돌아왔다.

심협은 가느다란 미소를 지으며 손짓하여 금빛 송곳을 거둬들인 뒤, 은색 사담을 집어 들고 몇 번 살피다가 꿀꺽 삼켰다.

방촌산 고서에는 천년사매의 사담은 단약으로 만들 필요 없이 곧바로 먹을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사담은 뱃속에 들어가자 금세 강하고 뜨거운 기운으로 변해, 마치 화염처럼 그의 내장을 달구었다.

견디기 힘들 정도의 고통에 심협은 재빨리 무명공법을 운공하여 오장육부를 보호했고, 그제야 작열하는 기운을 억눌러 한결 편안해졌다.

그가 뜨거운 기운으로 변한 사담을 정제하지 못해 애쓰고 있는데, 뜨거운 기운이 마치 정제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 갑자기 위로 치받쳐 올라갔다.

심협은 깜짝 놀라서 재빨리 법력을 운행해 쫓아갔지만, 뜨거운 기운은 빠르게 돌아다니면서 몇 호흡 사이에 머리까지 이르렀다가 둘로 나뉘어 두 눈으로 흘러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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