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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418화 (418/1,214)
  • 418화. 가는 말이 고와도 오는 말은 곱지 않을 수 있다

    심협의 눈에 희색이 스쳤다. 그가 결인하자 옆에 있던 순양검배가 붉은 검광으로 변하여 천년사매의 목덜미를 휘감으며 빠르게 한 바퀴 돌았다.

    천년사매의 머리통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는가 싶더니 곧 굴러 떨어질 듯 잘려나갔고, 붉은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그 머리통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심협의 몸에 금빛이 스쳐 지났고, 천년사매의 거대한 시신이 통째로 사라졌다. 지금은 그 시체를 자세히 살필 겨를도 없었기에 일단 거둔 것이다.

    그는 서역에 오기 전 특별히 재료를 구입해 고급 부적을 한 무더기 만들었는데, 적절히 써먹을 수 있어 흡족했다.

    그때, 한 줄기 둔광이 멀리서 날아오더니 백소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얼굴에는 경악한 표정이 역력했다.

    “심형, 훌륭한 솜씨일세. 이 요괴를 순식간에 참살해 버리다니, 장안성에 명성이 자자하고 정 국공과 원 국사께 깊이 신임을 받는 것도 당연해! 하하하!”

    백소천이 얼른 정신을 차리고 웃으며 말했다.

    “잔재주라 입에 올릴 것도 못 되오. 화생사 정통의 금강복마 대법에는 비할 수도 없지. 게다가 요물을 멸하긴 했지만, 보아하니 꼭 보답을 받을 것 같지도 않소.”

    심협은 씩 웃으며 어딘가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쉭 하는 소리와 함께 금빛 둔광 세 줄기가 멀리서부터 흉포한 기세로 다가오더니 10여 장 밖 너머에서 멈췄다. 홍포를 입은 세 사람의 승려로, 우두머리는 누런 얼굴의 승려였다. 뒤에 있는 두 승려 중 하나는 키가 크고 깡말랐으며, 다른 하나는 땅딸막한 데다 투실투실한 머리에 귀가 매우 컸다.

    세 승려는 신식은 그다지 강하지 않았지만, 표정은 모두 사납고 오만했다. 가사를 걸치지 않았더라면 길을 막고 재물을 약탈하는 산적처럼 보였을 것이다.

    “어디서 온 애송이들이기에 감히 우리 오계국에서 행패를 부리느냐! 어서 그 요물을 내놓아라. 그 요물은 우리 성련법단의 성주님께서 항복시킨 뒤 거두어 호법 신룡으로 삼으시려던 요물이다. 그러니 화를 자초하지 말고 내놓아라!”

    우두머리 승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외쳤다.

    심협은 방금 전 천년사매의 시신을 천책으로 거둬들였는데, 백소천을 제외한 세 승려는 사매가 이미 죽은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모든 것이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난 데다 주변에 흩어지지 않은 검은 기운이 가린 탓이다. 그래서 승려들은 천년사매가 그저 심협의 술수에 제압당한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심협은 승려의 호통에도 아랑곳 않고 그저 세 사람을 훑어보았다. 그는 두 연신단 혼수를 흡수한 뒤로 신혼의 힘이 크게 증가하여 평범한 출규 초기 수사들보다 훨씬 강력했기에 순식간에 세 사람의 경지를 간파했다.

    우두머리인 누런 얼굴의 승려는 출규 초기, 다른 둘은 응혼 후기였다.

    심협은 그들의 법력 운행과 수련하는 공법까지도 어느 정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들이 수련하는 공법은 불문의 신통이긴 하지만, 사악한 기운이 조금 섞여 있어서 어떤 사문(邪門)의 불법(佛法)인지 알 수 없었다.

    “세 도우의 말씀은 틀렸소이다. 방금 그 요물은 분명 제 힘을 믿고 사람을 죽이려 하였소. 불문은 넓기가 한량없다고는 하나, 이리 회개할 마음이 털끝만큼도 없는 해로운 요물에게는 인정을 베풀 필요가 없지요.”

    백소천도 화생사에서 정통 불문의 신통을 수련해왔기에 세 승려의 기운이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하고는 호감이 전혀 들지 않아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랍막은 성련법단이 백군성에 세운 분단(分壇)의 단주로, 지위가 까마득히 높아 이제껏 자기가 말한 대로 행해왔으며, 아무도 감히 거역하는 자가 없었다. 그는 심협과 백소천이 모두 출규기임을 눈치채고 협상을 해보고자 말을 텄다. 한데 상대가 단번에 거절할 줄이야!

    “좋아! 우둔하고 고집스럽게 나온다면 우리가 무례하다고 탓하지 말거라! 저 두 이교도를 죽이고 사매(蛇魅)를 되찾아 오자!”

    랍막이 대노하여 오른손을 휘두르자 금빛 부도(*浮屠: 불탑 또는 사리탑. 넓은 의미로는 불상이나 불타, 불타가 되려는 승려를 일컬음) 하나가 튀어나오더니, 금빛 불광이 그 안에서 솟구쳐 심협과 백소천을 덮쳐왔다.

    이 금빛 불광은 언뜻 보기에는 휘황찬란했지만, 정의로운 기상은커녕 음침한 느낌마저 풍겼다. 심지어 심협이 예전에 본 요마나 귀수보다도 사악하여 그 속에 층층이 암경(*暗勁: 중국 무술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강한 타격을 줄 수 있는 힘을 일컫는 말)이 솟구쳤고, 허공에서는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울렸다.

    여태껏 이런 공법을 본 적이 없었던 심협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한편, 다른 두 화상도 곧장 나서서 한 사람은 염주 한 꿰미를 꺼냈고, 다른 한 사람은 법륜(*法輪: 부처의 가르침을 비유한 수레바퀴 모양의 보물. 고대 인도의 무기)을 꺼내며 달려들었다.

    백소천은 자부심과 자존심이 강한 사람인지라, 심협이 방금 손바닥 뒤집듯 뱀 요괴를 죽인 모습에 자극을 받아 이에 뒤질세라 콧방귀를 뀌고는 선수를 쳤다. 그는 손을 뒤집어 평범해 보이는 쥘부채를 하나 꺼냈는데, 그 위에는 신룡이 구름과 안개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이 수놓아져 있었다. 마치 부르면 뛰쳐나올 것처럼 생생했는데, 특히 두 눈은 눈부시게 반짝였다.

    백소천이 결인하자 부채 위의 화룡점정도(畵龍點睛圖)가 빛을 발하며 절로 부채질을 했다.

    우우웅!

    바람소리에 이어 금색 노을빛이 성난 파도처럼 솟구쳐 나왔다. 그 사이로 금빛 용 그림자가 언뜻 나타나 맞은편의 법기들과 부딪쳤다.

    용 그림자는 불광과 부딪히자 마치 원수라도 만난 것처럼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격렬하게 충돌하며 묵직한 천둥소리를 연달아 발했다.

    세 승려들의 법기는 모두 튕겨나갔고, 빛 또한 어두워졌다.

    백소천도 안색이 하얗게 질려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화룡점정선(畵龍點睛扇)에는 여전히 금빛이 조금도 쇠약해지지 않은 것이, 승려들의 세 법기보다 훨씬 상품(上品)임이 틀림없었다.

    랍막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리더니, 백소천이 뒤로 물러난 틈을 타 벽옥 호리병을 꺼냈다. 그가 결인하고 힘을 불러일으키자, 호리병 안에서 푸른 빛줄기가 쏘아져 나와 단번에 10여 장을 뛰어넘고 화룡점정선을 휘감았다.

    이 기이한 푸른 빛이 화룡점정선을 휘감자, 부채 표면의 금빛이 갑자기 흩어지기 시작했고, 부채가 효력을 잃은 듯 흔들리며 떨어지려 했다.

    백소천은 깜짝 놀랐다. 이 부채는 그가 엄청난 공을 들인 끝에 화생사의 연기사 한 분을 청해 만든 본명법기였다.

    그가 법술로 부채를 불러들이려는데, 하얗고 서슬 퍼런 빛줄기가 번개처럼 튀어나와 단숨에 벽옥 호리병에 꽂혔다. 백소천의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을 본 심협이 나서서 도운 것이다.

    쩌적!

    날카로운 소리에 이어 호리병 위로 단단한 얼음이 한 겹 맺혔다. 금빛 부채를 얽어맸던 푸른 빛도 크게 줄어들었다.

    백소천이 크게 기뻐하며 재빨리 결인해 법술을 시전하자, 화룡점정선에서 금빛이 세차게 뿜어져 나오며 크게 휘돌아 곧 푸른빛에서 벗어날 것만 같았다.

    “감히 내 일을 망치려 들다니!”

    랍막이 심협을 노려보며 양손을 움직였다.

    하지만 심협이 한 발 빨랐다. 그는 손을 뒤집고 오화선을 꺼내 랍막을 향해 매섭게 휘둘렀다.

    굵직한 오색 불기둥이 부채에서 쏘아져 날아가 놀라운 영압을 뿜어내며, 마치 거대한 화룡(火龍)처럼 사납게 랍막을 향해 달려들었다.

    기린혈을 정제한 단약을 먹은 후로 불을 다루는 심협의 능력은 적잖이 향상되어 오화선의 힘을 더욱 제대로 발휘할 수 있었다.

    한편, 건곤대에서 뿜어낸 하얀 한광(寒光)도 거꾸로 말려 돌아왔는데, 그 속에서는 더욱 강력한 힘이 뿜어져 나와 벽옥 호리병을 감싸고 밖으로 끌어당겼다.

    랍막이 오화선에 신경을 빼앗긴 사이, 벽옥 호리병은 건곤대에 빨려와 심협의 손에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빌어먹을!”

    랍막은 곧장 입을 벌려 정혈을 뿜어낸 뒤, 양손을 수레바퀴처럼 결인했다.

    정혈은 돌연 폭발하면서 핏빛 구름으로 변했고, 무수한 핏빛 부적 문양이 구름 속에서 꿈틀대며 글자인 듯 또는 그림인 듯한 기이하고 신비로운 도안을 이루었다.

    벽옥 호리병 표면에서도 푸른 빛이 강하게 뿜어져 나오면서 심협으로부터 3척도 안 되는 거리에 멈춰 섰다.

    그때, 오색 화룡이 랍막을 향해 사납게 달려들었다.

    휙! 휘익!

    바람소리가 두 차례 나더니 염주와 법륜이 옆에서 날아와 승려의 앞을 엇갈려 막았다. 두 법기에서는 눈부신 금빛이 뿜어져 나와 금빛 장막을 이루었다.

    쿵!

    커다랗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오색 화룡이 튕겨나갔다. 오색 화염이 날름거리는 가운데 빛의 장막은 눈에 띄게 엷어졌고, 금세 어두워졌다.

    뚱뚱하고 마른 두 승려는 안색이 변하여 급하게 각자 정혈을 내뿜어 랍막과 같은 비술을 펼쳤다. 그 자체가 지닌 영성을 불태우는 듯 염주와 법륜에서는 금빛이 다시 강렬하게 뿜어져 나왔고, 그제야 금빛 장막은 가까스로 안정되어 아슬아슬하게 오색 불기둥을 완전히 막아냈다.

    그러나 두 승려의 상태로 보아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 같았다.

    랍막은 이를 악물고 두 손을 빠르게 결인했다. 그러자 벽옥 호리병에 푸른 빛이 수면처럼 일렁이기 시작하더니 그 위의 하얀 얼음 결정이 빠르게 녹아 흩어졌고, 호리병은 랍막을 향해 날아 돌아갔다.

    심협의 눈에는 한 가닥 놀라움이 스쳤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고, 벽옥 호리병을 바라보는 눈이 번득였다.

    심협이 손을 휘두르자 몸에 금빛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고, 동시에 벽옥 호리병은 마치 존재한 적이 없는 것처럼 갑자기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네 이놈! 이 부처님의 벽옥 호리병을 어디로 가져갔느냐? 너희 두 도둑놈이 감히 내 귀중한 보물을 빼앗다니, 네 혼백을 뽑아 음화(陰火)에서 백년을 시달리게 할 것이며, 네놈이 살기를 바라도 살 수 없고, 죽기를 바라도 죽지 못하게 할 것이다!”

    랍막은 순간 벽옥 호리병과의 연결이 끊어지자 멍하니 넋이 나가 있다가 미친 듯이 화를 내며 저주를 퍼부었다.

    그 호리병은 그가 백군성을 백 년 동안 지킨 대가로 성련법단 총단에서 하사한 것이었다. 한데 이렇게 빼앗겨버렸으니 어찌 분노하지 않겠는가? 그는 부아가 치밀어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승려는 포효하며 양손을 휘저어 또다시 주먹만 한 금빛 염주알을 하나 꺼냈고, 염주알의 한가운데에는 만(卍)자 문양이 있었다.

    승려는 또다시 정혈을 한 모금 뱉어내 염주알에 녹아들게 했고, 염주알은 한 차례 진동하더니 순식간에 몇 곱절로 불어났다. 만 갈래의 금빛이 그 안에서 터져 나오더니 금빛은 줄기줄기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무수한 검광처럼 심협과 백소천 두 사람을 덮쳐왔다.

    한편, 아래쪽 성에서는 함성이 터져 나오며 줄줄이 그림자들이 날아왔다. 하나같이 붉은 가사를 입은 것이 성련법단 문하의 제자들임이 틀림없었는데, 수련 경지는 높지 않았지만 그 수가 족히 백 명은 넘었다. 그들은 두려움 따위는 모르는 것처럼 심협과 백소천에게 달려들었다.

    심협이 손을 크게 휘두르자, 진해주(鎭海珠)의 허상이 스쳐 지나며 공 모양의 푸른 빛이 그의 손을 떠나 푸른 구름이 되어 두 사람 앞을 가로막았다.

    금색 빛줄기들은 푸른 구름에 닿자 진흙으로 스르륵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푸른 구름도 빠르게 옅어진 것이 금빛을 오래 막지는 못할 것 같았다.

    “저들과 더 얽혀봐야 좋을 게 없으니 떠납시다!”

    심협도 푸른 구름으로 오랫동안 버틸 생각은 없었기에 손을 뻗어 백소천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의 몸에서 밝은 녹색 빛이 뻗어나가 백소천을 뒤덮었다.

    두 사람의 모습은 눈 깜짝할 새 녹색 빛으로 뒤덮였고, 푸른 빛 덩어리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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