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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417화 (417/1,214)
  • 417화. 요괴와의 싸움

    백군성의 어느 작은 사찰. 선아와 백소천도 일찍 일어나 마당에 서서 멀리 하늘의 검은 요운(妖雲)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미타불. 서역에서도 요마가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 성은 빈궁하고 백성들이 약하니, 백 시주께서 능력이 닿는다면 좀 도와주십시오.”

    선아가 백소천에게 말했다.

    “당연히 그리 해야지요.”

    백소천이 웃으며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붉은 검광 한 줄기가 멀리서 날아와 눈 깜짝할 사이에 코앞에 이르더니, 심협이 나타났다.

    “선아 소사부님, 백형. 괜찮으십니까?”

    “심형, 자네 때마침 잘 왔네.”

    백소천은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검은 구름 속 요물의 기세로 보아 실력이 상당할 텐데 선아를 보호하면서 맞붙어야 하는 터라 혼자서는 역부족이 아닐까 걱정하던 참이었던 것이다.

    검은 구름은 어느덧 백군성 상공까지 날아와 쉬지 않고 자욱하게 퍼져 나갔고, 순식간에 반쪽 하늘을 뒤덮으며 백군성 절반 가까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마치 거대한 구렁이가 혀를 날름거리는 것처럼 커다랗게 쉿쉿거리는 소리가 검은 구름에서 들려왔다. 구름 속에서는 요괴의 두 눈 같은 붉은 빛 두 개가 나타나더니 아래쪽에 있는 백군성을 내려다보았다. 등잔만 한 그 눈동자에는 탐욕의 빛이 가득했다.

    검은 구름에서부터 성 동쪽의 집 한 채를 향해 굵고 거대한 요풍 한 줄기가 휘몰아쳤다.

    심협은 손에서 붉은 빛을 폭발적으로 내뿜으면서 순양검배를 꺼내 맞서려 했다.

    그런데 이때, 백군성 한가운데 우뚝 솟은 절의 금탑 꼭대기에서 갑자기 금빛이 번쩍였다. 탑 꼭대기에 박힌 물항아리만 한 금빛 수정구슬이었다.

    그 구슬 주위에는 법진 문양이 가득 둘러쳐져 있었는데, 그중 한 가닥이 갑자기 밝아졌다. 그러자 금색 수정구슬에서 굵은 금색 빛기둥이 쏘아져 나와 떨어져 내리는 검은 요풍과 맞부딪쳤다.

    꽈릉!

    우렛소리 같은 굉음이 지나간 뒤, 금빛과 요풍 모두 폭발하여 사라졌다.

    이에 기분이 상한 것인지 검은 구름 안에서 노기를 띤 포효가 들려오더니, 이번에는 더 크고 시커먼 요풍이 성 남쪽의 건물을 향해 휘몰아쳤다.

    하지만 금색 수정구슬의 남쪽 법진 문양이 다시 밝아지면서 또 한 줄기 금빛이 비스듬히 쏘아져 날아가 요풍을 정확하게 막아냈다.

    이에 공중의 요물은 분노를 폭발시켰다. 검은 구름이 한 차례 쉭쉭 용솟음치고 피식거리는 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10여 줄기의 요풍이 동시에 몰아치면서 여러 마리의 검은 구렁이 요괴로 변해 성안 곳곳으로 달려들었다.

    금탑의 금색 수정구슬은 강한 위협을 느꼈는지, 주위의 법진 문양을 전부 번득였다. 그 안에서는 지금까지보다 몇 배는 밝은 금빛이 뿜어져 나왔고, 동시에 금빛 꽃구름이 어렴풋이 피어올라 빠르게 회전했다.

    우웅!

    울부짖는 바람소리와 함께 수정구슬에서 굵직한 금빛 10여 줄기가 쏘아져 나와 검은 구렁이 요괴들을 하나하나 가격했다.

    “보아하니 백군성에도 요물의 습격에 대한 대비책이 있긴 했구려. 저곳은 성련법단사(聖蓮法壇寺)요. 우리는 어쨌거나 외부인이니 일단 좀 지켜봅시다.”

    상황을 파악한 심협은 일행에게 짧게 설명했다.

    “성련법단사?”

    백소천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에 궁금한 듯 되물었다.

    “이 사찰의 승려들에게 백군성과 오계국의 상황을 알아보지 않았소?”

    “물론 물었지. 한데 이 절의 승려들은 우리가 대당에서 왔다는 말을 듣고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것도 말하려 하지 않았다네. 외부인들을 몹시도 적대시 하는 것 같더군.”

    “그랬구려. 내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이 오계국은…….”

    심협은 자신이 알아낸 정황을 간략히 두 사람에게 알려주었다.

    “오계국 상황이 그러할 줄이야. 심형, 자네 말이 맞네. 일단 사태를 지켜보고 다시 이야기하세나. 함부로 나서서는 아니 되네.”

    백소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만약 성련법단사에서 요물을 당해내지 못하면 그때는 우리가 나서야 합니다. 백성들이 재난을 당하게 할 수는 없어요.”

    선아가 재빨리 덧붙였다.

    “안심하십시오. 그건 당연합니다.”

    심협이 답했다.

    오계국은 대당이 아니지만, 같은 인간으로서 이곳의 백성들이 화를 입는 것을 수수방관할 리 없었다.

    “이런, 저 수정구슬의 힘이 약해지기 시작했어!”

    백소천이 어두워진 얼굴로 탄식했다.

    심협과 선아가 황급히 고개를 돌려보니, 금탑 위의 금빛 수정구슬은 아직 갈래갈래 금빛을 쏘아내 검은 구름에 맞서긴 했지만, 처음에 비해 눈에 띄게 어두워진 상태였다. 이제 점차 요풍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가 손을 써야겠소.”

    한편, 성련법단사의 금빛 보탑 안에는 머리에 노란색의 높은 라마 모자를 쓰고 진홍색 가사를 입은 승려들이 있었다. 이들은 자금색 연화대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몸에서는 상서로운 빛이 은은하게 빛났고, 범음이 감도는 게 고승의 기백이 있었지만, 얼굴에는 사납고 오만한 기색이 어렴풋이 나타나 중원의 승려들과는 많이 달랐다.

    “랍막(拉莫)성승. 성안의 성련금제(聖蓮禁制)는 이미 버틸 수 없게 되었소. 여러 성승들께서 다시 손을 써 저 요물을 쫓아내주시오!”

    화려한 관복을 입은 노인이 누런 얼굴의 승려 곁에 서서 애타게 간청했다.

    “경서(京西)성주. 우리가 나서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성주께서도 아시다시피 우리의 신력은 모두 성주(聖主)님으로부터 나오지요. 얼마 전, 그 땅의 요괴를 쫓아내느라 이미 신력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다시 한번 성주님께 신력을 간구하려면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누런 얼굴의 승려, 랍막이 고개를 저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성주부(城主府)에서 반년 동안 저축한 돈을 가지고 왔으니, 성승들께서 대신 받아주시오.”

    화려한 옷의 노인이 얼른 몸을 돌려 뒤에 있던 두 시종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상자 하나를 힘겹게 들고 와서 뚜껑을 열자, 찬란한 금빛이 쏟아져 나왔다. 금과 은이 상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상자 한쪽 귀퉁이에는 옥돌과 영재 등 수련과 관련된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겨우 이것뿐입니까?”

    랍막이 금과 은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옥돌과 영재들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리고는 투덜거렸는데, 긴박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였다.

    “근래 들어 성안에 상인들이 점점 적어지는 탓에 성주부에도 이것뿐이외다. 요물들이 물러가면 내 즉시 성안의 부유한 상인들을 찾아가 더 끌어모으겠소.”

    화려한 옷의 노인이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으며 조금 주눅 든 채 말했다.

    랍막이 다른 승려 몇 명과 눈빛을 교환한 뒤 뭔가를 말하려는데, 바깥에서 커다란 굉음이 들려왔다.

    꽈광!

    그들은 급히 일어나 바깥을 내다보았는데, 하나같이 낯빛이 돌변했다. 금탑 위의 수정구슬이 마침내 힘을 다 소진하고 빛을 잃어버린 것이다.

    검은 요운 사이로 흥분한 울부짖음이 들려왔고, 굵기가 족히 서너 장쯤 되는 요풍이 내려와 한 바퀴 빙글 돌더니 시커멓고 거대한 손으로 변해 가옥을 향해 휘몰아쳤다.

    그 집에는 세 식구가 숨어 있었는데, 거대한 손이 채 닿기도 전에 얼음장처럼 차가운 기운이 그들을 뒤덮었다. 세 사람은 바깥 상황을 볼 수 없었지만, 큰 불행이 닥쳐온 것을 깨닫고는 절망한 표정으로 서로를 꼭 껴안은 채 눈을 감았다.

    그때, 한 줄기 붉은 빛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번쩍 스치더니 순식간에 검은 요수(妖手) 옆에 다다랐다. 진홍색 선검(仙劍)이었다.

    10여 장 길이의 붉은 검광이 선검에서 솟아올라 번개처럼 검은 요수를 휘감고 단칼에 베었다.

    찌익!

    비단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위세 넘치던 검은 요수가 잘려 나갔다. 동시에 검은 요수는 폭발해 무수한 검은 기운이 되어 흩날렸다.

    “어디서 수도자 따위가 감히 본좌를 가로막느냐!”

    가늘고 높은 포효 소리가 검은 구름 속에서 흘러나왔다.

    비검 옆에 사람 형체가 아른거리더니 심협이 나타났다. 그는 요물의 물음에는 답하지 않고, 차가운 표정으로 순양검배를 향해 결인했다. 그러자 순양검배가 빙글 회전하더니 몸체에서 돌연 두 줄기 붉은 빛이 솟구쳤다. 하나는 매우 강렬하고 힘찬 양기를 띠었고, 다른 하나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음기를 지닌 두 빛줄기가 서로 뒤얽혀 있었다.

    쇠붙이가 맞부딪치는 듯한 맑은 소리가 지나가고 길이가 30여 장에 달하는 거대한 붉은 검기가 맺혀 하늘의 검은 구름을 가리켰다. 바로 춘추관에서 비밀리에 전수되는 검결, 음양법검이었다.

    하늘을 찌를 듯한 검기의 파동이 붉은 기검(氣劍)에서 폭발하여 거대한 물결처럼 사방을 향해 퍼져 나갔다.

    검은 구름 속 요기(妖氣)는 이 검압(劍壓)에 부딪치자 마치 뜨거운 태양 아래 얼음과 눈이 녹는 것처럼 빠르게 흩어졌다.

    심협의 얼굴에 한 가닥 희색이 어렸다. 순양검배의 위력이 크게 증가한 덕에 음양법검을 시전하니 이런 놀라운 위세를 지니게 된 것이다.

    한편, 검은 구름 속 요물은 크게 놀랐는지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요동치며 즉각 뒤로 물러났다.

    “여기는 네가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는 곳이 아니다!”

    심협이 차게 웃으며 손가락을 구부리고 가리켰다.

    거대한 붉은 기검이 곧장 날아가 순식간에 검은 구름을 따라잡고는 위에서 아래로 크게 내려베었다. 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일 법한 붉은 빛이 음양법검에서 폭발했다.

    쫘악!

    비단 찢는 소리와 함께 온 하늘을 뒤덮었던 빽빽한 검은 구름이 반으로 갈라졌고, 반쪽 검은 구름도 곧 완전히 터져 나갔다.

    음양법검은 귀신을 죽일 뿐만 아니라 요괴를 물리칠 수도 있는 데다가 검배에 담긴 홍련업화의 힘까지 더하면 모든 귀신과 요물의 천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끄아아아!”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지더니 하늘의 검은 기운이 금세 흩어지면서 검은 구렁이 요괴가 나타났다. 그 거대한 몸통은 길이가 족히 50여 장에 이르렀고, 머리 위에는 굵직한 은빛 외뿔이 돋아 있었으며, 온몸은 반질거리는 검은 비늘로 덮여 있었다. 배 부위에는 네 개의 돌기가 있었는데, 뱀에서 교룡으로 탈바꿈하려는 듯 신령스럽고 위풍당당해 보였다.

    그러나 지금 이 구렁이는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잡아먹을 듯이 심협을 노려보고 있었다. 구렁이의 배에는 시커멓게 베인 상처가 있었는데, 어렴풋이 핏자국이 드러났다. 음양법검에 다친 상처인 듯했다.

    하지만 검은 구렁이의 비늘은 견고해서 음양법검도 완전히 뚫지 못했다. 저 정도 상처라면 생명에는 별다른 위협을 주지 못할 터였다.

    “저것은…… 천년사매(千年蛇魅)!”

    심협은 구렁이의 머리에 솟은 은빛 외뿔을 보고는 눈을 반짝였다.

    그는 방촌산의 고서에서 천년사매에 관한 기록을 읽은 바 있다. 이 뱀은 용족의 변종으로, 용과 살모사 요괴가 교잡하여 탄생한 요물이다. 피와 살 모두 엄청난 보약이지만, 그중 특히 진귀한 것은 몸속에 있는 사담(*蛇膽: 뱀 쓸개, 주로 살모사의 쓸개를 뜻함)이다. 이 요괴의 정수가 담긴 것으로, 복용하면 시력을 크게 증진시킬 수 있는 지극히 귀한 영물이었다.

    심협은 머릿속으로 이런 정보들을 떠올리면서도 손놀림은 조금도 느려지지 않았다. 그의 두 발에는 달빛이 환하게 뿜어져 나왔고, 몸에는 녹색 빛이 한층 떠올랐다. 동시에 그는 갑자기 번쩍 하고 사라져 버렸다. 바로 을목선둔이었다. 그는 지금 경지가 출규기에 이른 데다 꿈속 세계에서의 경험 덕에 을목선둔도 능숙해진 상태였다.

    한편, 천년사매는 깜짝 놀라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심협의 자취를 찾았다.

    그때, 그의 등 뒤 허공에 파동이 일더니 심협이 불쑥 나타나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러자 두 줄기 자색 빛이 그의 손에서 쏘아져 나왔는데, 이는 두 장의 자줏빛 부적, 정신부와 쇄갑부였다.

    퍽!

    가벼운 소리가 울리면서 두 장의 부적이 바스러졌고, 각각 금색과 하얀색 빛으로 변해 천년사매의 체내로 녹아들었다.

    일련의 동작이 마치 하나의 동작처럼 자연스럽고 빨리 이루어졌기에 천년사매는 그제야 몸을 뒤집으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몸에서 갑자기 금빛이 솟아나더니 표면에 커다란 정(定)자가 떠올랐다.

    천년사매는 돌연 몸이 뻣뻣하게 굳어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되었고, 눈빛은 두려움으로 물들었다.

    바로 그때, 그의 몸에 또다시 환하고 하얀 빛이 촘촘하게 떠오르더니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하얀 빛이 지나는 곳마다 음양법검까지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한 천년사매의 검은 비늘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쩍쩍 갈라졌다. 그 상처들로 인해 천년사매의 몸통은 온통 피범벅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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