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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414화 (414/1,214)
  • 414화. 논의

    약 반 시진 뒤, 심협의 복부에서 가슴을 지나 목과 어깨까지 푸르스름한 법맥이 응결되려 했다. 실오라기처럼 가느다란 음살의 기운이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주위의 천지영기가 이를 감지한 듯 그를 향해 조금씩 모여들었다.

    심협은 가만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법맥들은 곧 형체를 갖추고 굳어질 터였다.

    그런데 그때, 이변이 발생했다!

    실오라기처럼 그의 몸속으로 밀려들던 천지영기가 음살의 기운과 결합하면서 순간 둘 사이에 예상을 뛰어넘는 격렬한 반응이 일어난 것이다. 뜻밖에도 모든 천지영기가 그가 개척한 법맥을 따라 흐르면서 다른 법맥들을 향해 멋대로 쏟아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음살의 반서(*反噬: 원래 뜻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뜻이나, 여기서는 일종의 반발작용을 의미함)…….”

    심협은 곧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고 법맥이 끊어질 위험을 무릅쓰며 법술 시전을 중지했다.

    하지만 그가 법력의 운행을 멈춰도 몸속의 수많은 이상 현상은 멈출 기색이 없었고, 몸속으로 빨려 들어온 천지영기가 여전히 법맥과 음살의 결합을 유지시켰다. 게다가 더욱 많은 음살의 기운이 모여들면서 예전에 현음개맥결로 틔워놓았던 체내 법맥들도 잇달아 번득이기 시작해 마치 새로 트인 법맥과 공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더욱 놀라고 두려웠던 것은, 그가 이미 개척했다고 생각했던 법맥들의 깊숙한 곳에 엄청난 양의 음살의 기운이 감춰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음살의 기운은 마치 오늘 음살의 반서가 폭발하기를 기다리며 오랜 시간 잠복해온 것만 같았다.

    심협은 감히 방심하지 못하고 즉시 무명공법을 운공해 다른 단전과 법맥의 힘을 동원하여 이 법맥들에 담긴 음살의 기운을 가라앉혔다.

    그러나 법맥 속에 도사리고 있던 음살의 기운은 이미 법맥과 뿌리 깊이 결합한 상태여서 아무리 씻어내려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모든 음살의 기운이 숨어 있던 곳곳에서 나타나 새로 개척된 법맥으로 모여들었고, 그들은 마치 오랫동안 축적된 불덩어리 같아서, 그 안에 더 많은 장작과 연료가 쉼 없이 더해지고 힘이 다 모이면 바로 폭발할 터였다.

    심협은 무명공법으로 반서를 잠재울 수가 없자, 어쩔 수 없이 또다시 황정경 공법을 운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 제대로 수련하지 않은 상태라 발휘할 수 있는 효과는 미미했다.

    이미 그의 가슴에 쌓인 음살의 기운은 점점 더 짙어졌고, 뒤섞인 천지영기도 갈수록 묵직해져 호흡까지 힘들어지기 시작했고, 곧 폭발할 것임을 느꼈다.

    만약 이 음살의 힘이 터져 나온다면 이 힘에 심맥(*心脈: 오장맥의 하나로 심‘心’에 소속되는 맥상)이 끊어질 수도 있다. 만약 운 좋게 육신을 보호할 수 있다 해도 가득 퍼지는 음살의 기운은 그를 족히 파괴하고도 남으리라.

    이번 변고는 너무도 갑작스럽게 닥쳐왔기에 심협은 속만 바짝바짝 태울 뿐 대처할 방법을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됐다. 다시 한번 시도해보는 수밖에…….”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심협은 다시 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한 줄기 광채가 스쳐 지나더니 옥침이 다시 나타났다.

    그는 옥침을 한 손으로 누르고는 정신을 집중하여 순식간에 그 안으로 들어가서 천책을 들이받았다.

    이번에는 그의 육신에 아무런 변화 없이 신혼만 그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하지만 금빛 대전에는 들어가지 못했고, 끝없이 펼쳐진 별바다에 이르렀다.

    사방 천지에는 강 같은 별들이 찬란하게 흘렀고, 광채가 가득했으며, 성운의 안개 속에 보일 듯 말 듯하던 광흔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심협의 신혼은 광흔 위로 눈길을 돌렸다. 광흔이 치솟는 궤적이 쉼 없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그는 어렴풋이 어떤 규칙성을 본 듯했지만, 자세히 생각해볼 겨를은 없었다.

    “네가 나의 꿈속 법력을 가져올 수 있다면, 한 번만 더 나를 도와다오! 한 번이면 된다. 나는 아직 죽으면 안 된다고!”

    심협의 신혼은 끝없이 펼쳐진 별바다를 향해 목이 쉴 정도로 포효했다.

    허공은 온통 쥐죽은 듯 고요했고, 사방의 별빛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깜빡였다. 마치 ‘너의 생사가 천도(天道)의 순환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묻는 듯이…….

    심협은 자기가 언제 이 세계에서 쫓겨날지 몰랐지만, 일단 수련 경지를 빌려와 몸을 지키는 데 성공하지 못하면 그의 신혼이 다시 돌아갔을 때가 바로 죽을 때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천도가 나와 무관하다면, 나와 관계있는 사람을 찾을 것이다!’

    심협은 그렇게 생각을 굳히고는 입을 쩍 벌려 명휘(*名諱: 웃어른의 이름과 휘)를 하나하나 외쳐 부르기 시작했다.

    “종영(鍾英), 금유(金遊), 등욱광(鄧郁光), 은교(殷郊), 방욱(龐煜), 류길(劉吉), 마승(馬勝), 온경(溫璟), 왕선(王善), 경통(耿通)…….”

    이 명휘들은 다름 아닌 그가 전에 금탑에서 겨뤘던 삼십육 천강병들의 명휘로, 그들의 이름은 천책에 모두 적혀 있었다.

    그의 외침에 사방의 별바다에서 드디어 조금씩 다른 빛이 일어났다. 각 이름마다 대응하는 별이 있는 듯 별들이 하나하나 멀리서 빛을 발했다.

    심협은 희망에 차올라 더더욱 큰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별들은 그저 반짝였을 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별바다도, 광흔도 그대로였다.

    심협은 어쩔 수 없이 모든 신식을 운행하여 주위의 별들을 향해 내뿜었다.

    신식의 힘이 퍼져 나가면서 천지에 미세한 변화가 생겼다. 멀리 별들 사이로 튀어 오르던 광흔도 뭔가를 느낀 것인지 그를 향해 쉬지 않고 펄쩍펄쩍 뛰면서 다가왔다. 다만 이렇게 거듭 뛰어오르는 과정에서 광흔이 남긴 궤적은 지금까지와 달리 사라지지 않고 촘촘히 뒤엉킨 흔적으로 남았다.

    그 흔적들을 바라보던 심협은 문득 눈에 이채를 띠며 무의식중에 중얼거렸다.

    “법진…….”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머릿속에 찌를 듯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고, 이어서 의식이 흐릿해졌다. 이 공간에서 다시 밀려날 것이 분명했다.

    의식이 흐트러지기 직전, 그는 스스로도 어째서인지 인식하지 못한 채, 그 순간 떠오른 이름을 크게 외쳤다.

    “심협!”

    이 미친 듯한 절규는 별바다에 메아리쳤다. 그리고 그 순간, 펄쩍펄쩍 날뛰던 광흔이 갑자기 번쩍이더니 어느 별에서부터 뿜어져 나와 곧장 심협에게로 질주해왔다.

    다음 순간, 방 안에 있던 심협이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에는 신광(神光)이 맑게 빛났고, 몸의 법력 파동이 순식간에 폭증했다.

    그가 다시 생각을 돌려 손으로 자신의 명치 쪽을 내리누르자, 순간 체내에서 웅장한 힘이 미친 듯이 솟구쳐 나왔다.

    그 안에 둥지를 틀고 있던 음살의 기운들은 이 바다처럼 기운찬 법력에 씻겨나가더니 쌓인 눈이 뙤약볕을 만난 것처럼 순식간에 모두 녹아 사라졌다.

    그러나 눈 깜짝할 사이에 체내 법력 파동은 다시 빠르게 떨어졌고, 심협은 안색이 한순간 창백해지더니 두 눈이 하얗게 뒤집힌 채 그대로 의식을 잃고 뒤로 쓰러졌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심협이 천천히 두 눈을 떠보니 조비극이 걱정스런 얼굴로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주인님, 깨어나셨군요!”

    조비극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안도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심협은 욱신거리는 미간을 문지르며 물었다.

    “어젯밤 주인님께서 수련을 도와달라고 하셨는데, 도중에 사고가 생기는 바람에 제 음살의 기운이 하마터면 주인님께 모조리 뽑힐 뻔했고, 저는 힘이 다하여 혼절했습니다. 그리고 깨어나 보니 주인님께서도 똑같이 혼절해 계셨습니다.”

    조비극이 그를 부축해 앉히며 말했다.

    심협은 그제야 어젯밤의 일이 떠올라 얼른 신념을 움직여 자기 몸을 한 차례 살펴보았다.

    다행히 아무런 내상이 없었고, 법맥도 모두 무사했다. 어젯밤에 새로 뚫은 법맥과 그 안에 숨어 있던 음살의 기운이 말끔히 씻겨나간 상태였다.

    그러나 이로 인해 그의 수명은 꼬박 10여 년이 더 줄어들었다.

    ‘타고난 자질을 억지로 바꾸는 데에도 한계가 있구나. 나의 몸이 견뎌낼 수 있는 법맥의 한계는 지금 이 정도에 불과한 게지.’

    현음개맥결에 음살의 반서라는 숨겨진 위험이 없었더라도 자신은 이 법술로 계속해서 법맥을 개척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육신의 감당 능력을 무시하고 억지로 법맥을 더 뚫었더라면 경맥이 마디마디 끊어져 죽었을 것이고, 그리되면 신선이라 하더라도 돌이킬 수 없었으리라.

    “주인님…….”

    심협이 한참이나 말이 없자, 조비극이 불안한 듯 그를 불렀다.

    “아, 나는 괜찮다. 어젯밤 너도 위험했으니 이만 돌아가 수양하거라.”

    심협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그렇게 말하자, 조비극은 잠시 주저하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건곤대 속으로 되돌아갔다.

    심협은 두 눈을 감고 묵묵히 운기조식을 했다.

    그러나 그는 이내 다시 눈을 떴다. 어젯밤 천책에서 본 별 법진이 머릿속에 떠올라 한동안 마음을 가다듬고 수련에 정진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법진은 분명 꿈속 수련 경지가 투영된 것과 관련이 있을 거야. 아쉽지만 당장은 수명이 너무 크게 줄었으니, 우선 수명을 늘린 후에나 다시 시도할 수 있겠군.”

    심협은 침통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 *

    이틀 뒤, 관부 쪽에서 사람을 보내 심협을 숭현당으로 호출했다.

    심협이 서둘러 가보니, 숭현당 안에는 적잖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중에는 금산사와 보상사, 화생사의 몇몇 고승들이 있었고, 백소천과 육화명도 끼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심협은 사람들에게 예를 갖춘 뒤 육화명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조급해 마시오. 곧 국사 대인과 사부님께서도 오실 거요.”

    육화명이 작은 소리로 답했다.

    심협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금산사 쪽에는 자석 장로만 있었을 뿐, 선아는 보이지 않았다.

    “뜸 들이지 말고 말해보시오. 선아와 관련된 거요?”

    심협이 물었다.

    “그렇소. 수륙대회 날 밤의 이상 현상은 그대도 보았을 거요. 바로 그 사건 때문이오.”

    육화명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심협은 그날 밤 보았던 승려의 허상을 떠올리며 침묵했다.

    그때, 한 차례 발소리가 들리더니 정교금과 원천강이 동시에 문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뒤에는 어린 사미승이 하나 있었는데, 당연히 선아였다.

    사람들은 하나둘 일어나 예를 갖췄다.

    “오늘 여러분을 호출한 것은 바로 법회 날의 이상 현상에 대해 여러분과 상의해야 할 일이 좀 있기 때문이외다.”

    원천강이 사람들을 자리에 앉힌 뒤 먼저 입을 열었다.

    “국사 대인, 법회 뒤에 또 무슨 드러나지 않은 위험이라도 있습니까?”

    보수선사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강류선사와 관련된 것인데, 아무래도 그와 직접 이야기하게 하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원천강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고, 그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선아에게로 향했다.

    선아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진지한 표정으로 손바닥을 세워 사람들에게 예를 갖춘 뒤에야 입을 열었다.

    “그날 여러분 모두 승려의 허상이 저를 도와 수많은 혼백을 인도하는 것을 보셨겠지요? 사실 그것은 제가 어떤 신통력을 지녔던 것이 아니라 원래 저의 전생인 현장법사의 한 가닥 잔혼이었습니다.”

    “그 허상이 현장법사란 말입니까?”

    보수선사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자석 장로와 화생사의 공도선사 등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 모두 당시 현장법사가 까닭 없이 대안탑을 나온 뒤로 장안에서 사라졌다가 나중에 사람들에게 발견되었고, 탑 안에 남겨 놓은 장명등이 꺼지면서 강류대사로 환생했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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