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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413화 (413/1,214)
  • 413화. 신비한 공간

    심신(心神)의 화염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옥침 안에 떠 있는 천책도 커져 거의 궁전처럼 변해 앞에 떠 있었다.

    심협의 심신(心神)은 그 안에 들어가 보려고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천책을 몇 번 가볍게 건드렸다.

    하지만 천책은 엷은 빛을 내뿜을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잠깐 망설이던 심협은 이를 악물었고, 이어 심신(心神)의 불꽃이 갑자기 밝게 빛나면서 거의 7할의 심신이 천책을 향해 나아가더니 거세게 부딪쳤다.

    하지만 천책의 광채는 살짝 몇 번 반짝였을 뿐, 여전히 다른 반응은 없었다.

    “이래도 안 돼?”

    그는 다시 결심했다.

    곧이어 그의 신념(神念)이 불꽃으로 변하여 한순간 치솟더니 맹렬한 불길이 되어 거침없이 천책을 향해 돌진했다.

    쾅!

    그의 가슴에 우렛소리가 울리는 듯하더니, 신심이 전력으로 천책에 부딪혔다.

    마침내 이번에는 천책에 변화가 일어나 표면에서 환하게 금빛이 뿜어져 나왔고, 기다란 책이 천천히 펼쳐지면서 그 위에 적힌 글자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맨 끝에 적힌 이름 하나가 번득이며 천책에서 벗어나 허공에 떠다녔다.

    ‘심협!’

    그의 신념이 무의식적으로 옛 전서(篆書)체로 적힌 커다란 글자를 읽은 순간, 천책에서 갑자기 강력한 흡입력이 흘러나와 순식간에 그의 신념을 끌어당겼다.

    한 차례 천지가 빙빙 도는 듯한 현기증이 지나갔을 때, 심협의 신념(神念)은 이미 기이한 금빛 공간 속에 들어와 있었다.

    심협의 신혼(神魂)이 들어간 순간, 방 안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그의 몸도 순식간에 한 줄기 빛으로 변해 옥침 안의 천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는 두 발로 굳건히 땅을 디디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자신의 육체가 천책 속 공간에 들어왔음을 깨닫자 저도 모르게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는 신식으로 사방을 살폈고, 눈으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는 흡사 금빛 대청(大廳) 같았는데, 이정이 그를 데리고 들어왔던 전투 공간과 매우 비슷했다. 다만 폭이 수십 장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다소 좁았고, 금빛 광택을 띤 안개로 뒤덮여 있다는 점이 달랐다.

    그의 시선으로는 이 안개를 꿰뚫어 볼 수 없었고, 신념으로도 그 안을 살필 수가 없었다.

    “여기가 어디지?”

    심협은 조용히 혼잣말을 읊조리며 무의식적으로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 곁에서 순양검배가 떠올랐다.

    “법기를 소환할 수는 있구나…….”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잔뜩 경계하면서 금빛 대청의 한쪽 옆으로 향했다.

    한데 막 걸음을 옮기자 발밑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숙여 보니, 바닥은 마치 호수의 수면처럼 둥근 잔물결이 일렁이고 있었다.

    다만 기이하게도 이 바닥은 거울처럼 평평하고 매끈한데도 그림자는 조금도 비치지 않았다.

    몸을 숙여 바닥을 만져보니, 뜻밖에도 지면에는 물이 한 방울도 없었다. 그 감촉 또한 마치 옥돌을 만지는 것 같았다.

    신념으로 주위의 영력 파동을 감지해보니, 이곳은 온통 텅 비어서 기운의 흐름도, 천지영기의 변화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가라!”

    심협이 가볍게 외쳤다. 그러자 몸 앞에 떠 있던 순양검배가 순간 쏜살같이 튀어나가 맞은편 안개 속으로 파고들었다.

    검광이 휙 하고 번쩍이더니, 필련(匹練:기의 회오리)처럼 허공을 가르고 한순간 맞은편 금빛 안개 속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

    심협은 이 뜻밖의 상황에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분명 신식으로 살펴봤을 때 안개 장벽이 신식의 힘을 차단했으니 결계의 일종일 터였다. 그런데 순양검배는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그대로 안개를 뚫고 지나간 것이다.

    그때, 그는 문득 섬뜩한 느낌이 들어 몸을 홱 돌리고는 손을 들어 눈앞으로 가져갔다. 붉은 검광이 별안간 그의 미간으로 날아왔고, 그는 재빨리 검지와 중지로 붙잡았다. 그 검광은 바로 자신의 순양검배였다.

    심협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검배를 거둬들이고는 손목을 빙글 돌린 후 높이 하늘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팔현경(八懸鏡)이 나타나 머리 위에 떠다니면서 여덟 줄기의 광벽(光壁)을 드리워 그를 보호했다.

    심협은 눈빛을 집중하면서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백여 장 바깥까지 솟구쳤다.

    그의 몸이 허공에 서린 금빛 안개 속으로 들어가자 시야가 흐릿해졌다. 별다른 위험을 맞닥뜨리지는 않았다. 다만 방향을 조정해서 계속 위로 솟아오르려던 차에 갑자기 몸이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더니 곧장 아래로 추락했다.

    심협이 땅으로 다시 내려와 주위를 둘러보니, 원래 서 있던 그 자리였다.

    ‘이 공간은 참으로 기이하구나!’

    심협은 속으로 혀를 차고는 천천히 맞은편의 금빛 안개 속으로 향했다.

    10여 보를 걸었을 때, 심협의 몸은 점차 안개 속에 파묻혔고, 신식도 바깥으로 뻗을 수 없게 되었다. 시야도 고작 3, 4척 거리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 너머는 온통 흐릿했다.

    또다시 일고여덟 걸음쯤 나아가자 갑자기 앞쪽 안개에 뚜렷한 경계가 나타났는데, 마치 모든 안개가 그곳에 쌓인 것처럼 장벽을 이루었다.

    심협은 안개 벽 근처로 다가가 조심스레 그 위를 어루만졌다.

    그의 손이 닿는 순간, 문득 안개 벽에서 금빛이 번쩍였고, 다음 순간, 심협의 모습은 그 자리에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 * *

    정신을 차렸을 때, 심협은 다시 대청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일종의 결계인 것 같은데, 흥미롭군. 한데 여기서 어떻게 나간담?”

    심협은 난처함에 입맛을 다셨다.

    지금까지는 신식으로 천책과 소통할 생각만 했지, 이런 상황이 닥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공간은 알 수 없는 결계로 감싸여 있으니 지금 그의 경지로는 억지로 깨뜨리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나가려면 아무래도 천책에 의지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한 그는 가부좌를 틀고 다시 신념의 방향을 돌려 천책과 소통하려 했다.

    그가 천책 안의 공간에 들어와 있기 때문인지, 이번에는 놀랍게도 신혼이 천책과 더없이 손쉽게 연결되었다. 다만 이번에는 천책 허상이 그 앞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의 신혼이 출규(出竅)하여 몸을 떠난 상태였다.

    출규한 신혼의 눈으로 살펴보니 풍경 또한 달랐다. 사방은 이제 안개가 자욱하게 낀 비현실적인 광경이 아니라, 끝없이 펼쳐진 성역(星域)이었다.

    그는 저 멀리 별들의 강이 걸려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마치 성운이 물안개처럼 용솟음치는 듯했는데, 은하와 별바다가 세차게 흐르는 것만 같아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웠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수려했다.

    심협은 별바다의 아름다운 광경에 이끌린 듯 잠깐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에는 찬란한 은하수와 점점이 물처럼 흐르는 밝은 빛이 비쳤다. 그는 어렴풋이 기이한 광흔이 이 별들 사이로 떠돌아다니는 것을 본 것만 같았다. 다만 그 궤적이 너무도 가물가물하고 희미해서 보일 듯 말 듯했다.

    심협이 광흔을 제대로 보려고 집중하고 있을 때, 머리 위 성역 가운데에 거대하고 까만 나선형 구멍이 홀연히 나타났고, 그 속에서 강렬한 흡인력이 전해져왔다.

    심협의 신혼은 깜짝 놀라 즉시 몸을 돌려 육신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반들반들한 거울 같은 바닥 위로 잔잔한 물결이 일어나더니 천천히 꺼지면서 그의 육신을 집어삼키는 것이 보였다.

    ‘망했다!’

    더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다음 순간, 머리 위 검은 구멍 속 흡인력이 갑자기 배로 강해지더니 그의 신념까지 끌어당겼다.

    * * *

    “으아아! 헉헉!”

    심협은 두 눈을 번쩍 뜨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등은 온통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얼떨떨한 상태로 사방을 둘러본 뒤에야 자신의 익숙한 처소로 돌아온 것을 알고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관자놀이에 맺힌 땀을 닦았다. 창 너머 하늘이 컴컴한 것으로 보아 아직 한밤중인 듯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탁자 위에 놓인 유등을 보고는 눈이 번득였다.

    옥침을 통한 꿈속 세계를 겪게 되면서 심협은 시간에 민감해진 편이었다. 한데 유등은 수련하기 전에 보았던 것과 똑같았다. 이는 꿈속 세상에서 시공간을 초월하는 것처럼, 방금 금빛 공간에 들어갔던 것 또한 그 안에서 시간의 흐름과 바깥의 시간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의미였다. 그는 분명 그 공간에서 두어 시진 정도 되는 시간을 보냈지만, 바깥세상에서는 찰나의 순간도 되지 않았다.

    심협은 그 자리에 말없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조금 전 보았던 성역 그림이 끊임없이 맴돌았고, 그 기이한 광흔이 머릿속의 성도(*星圖: 항성이나 별자리 따위를 평면 위에 나타낸 그림) 안에서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불과 몇 호흡 뒤, 광흔은 전체 성도와 함께 흐릿해지기 시작하더니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더구나 심협이 애써 그 성도를 떠올리려 하자, 식해 속에서 그에 대응되는 장면이 아예 사라졌다.

    잠시 후, 심협은 약간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더는 성도를 떠올리려 애쓰지 않았다.

    그는 눈앞에 가만히 놓인 옥침을 내려다보다가 손을 흔들어 거둬들였다. 당분간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한 이 천책의 허상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창가로 걸어가 창문을 밀어젖히고 어두컴컴한 밤의 장막을 내다보았다. 잠이 전혀 오지 않았기에 그는 곧 다시 창문을 닫고는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현음개맥결로 법맥 여러 줄기를 틔운 후로 그의 수행자질에는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기에 줄곧 수련할 수 없었던 황정경도 어느 정도 갈피를 잡은 듯했다.

    심협은 손의 법결을 바꿔 황정경 공법을 운공하기 시작했고, 이내 그의 몸은 담황색 빛에 감싸였다.

    그는 꿈속 세계의 수행 경험에 따라 체내 법력의 운행을 이끌며 황정경 공법의 수행 속도를 높여보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해봐도 진전은 미미했다.

    한 시진쯤 뒤, 마침내 다시 눈을 뜬 심협의 얼굴에는 한 가닥 실망이 어렸다.

    이전에 황정경 공법의 난관이 조금 느슨해진 뒤로 그는 이쪽 방면의 수련 효과를 끌어올리려 해봤지만, 생각처럼 잘되지는 않았다. 그저 몸과 신혼이 조금 강해졌을 뿐, 꿈속 세계에서와 같은 뚜렷한 변화는 없었다.

    심협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 자질은 여전히 너무 떨어지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손으로 허리춤의 건곤대를 문질러 귀장 조비극을 다시 불러냈다.

    “주인님, 찾으셨습니까?”

    조비극이 무릎을 꿇으며 포권을 했다.

    “네가 도와줘야 할 일이 있는데…….”

    심협이 거기까지만 말했을 때, 이미 그와 마음이 통한 조비극은 주인의 의도를 곧바로 알아차렸다.

    “수련을 하시려는 겁니까?”

    “그래. 네 음기를 좀 빌려야겠다.”

    심협이 고개를 끄덕이자 조비극은 두말없이 맞은편에 가부좌를 틀고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심협은 고맙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곧 정신을 집중하고 두 손가락을 모아 옷 너머로 자신의 복부에서 흉부까지 부적 문양을 새기기 시작했다. 이윽고 촘촘한 무늬의 핏빛 부진(符陣)이 생겨났고, 뒤이어 그는 손가락을 모아 결인하고 손을 들어 귀장의 미간을 짚었다.

    그가 손끝으로 짚었다가 다시 뒤로 휙 끌어당기자, 진하고 순수한 검은 음살(陰煞)의 기운이 귀장의 미간에서 튀어나와 공중에 검은 안개 선을 그리며 그의 아랫배에 새겨진 부적 문양을 향해 날아들었다.

    부적 문양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개미 떼가 물어뜯는 듯한 낯익은 통증이 엄습해왔다. 이 통증에 익숙했던 심협은 조심스레 현음개맥결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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