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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410화 (410/1,214)
  • 410화. 오랜 벗

    심협이 다급히 안으로 들어가자, 허공에 두 사람이 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각자 법술을 시전해 두 줄기 눈부신 빛 덩어리를 날리며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육화명의 몸을 훑고 지나가 맞은편에 있는 사람에게 떨어졌다. 새하얀 장포를 입은 그는 훤칠한 키에 용모가 준수했다. 놀랍게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백소천이었다.

    심협은 잠깐 주저하더니 두 사람 바로 아래로 내달렸다. 그리고는 손을 크게 휘둘러 푸른 수증기를 하늘로 응결시켜 두 눈부신 빛 덩어리 가운데로 부딪쳐 들어갔다.

    쾅!

    푸른 수증기는 두 빛의 충돌 방향을 슬쩍 바꾸어 하늘로 치솟게 했다. 하늘에서 요란한 폭발음이 터져 나오면서 관부 전체를 크게 뒤흔들었다.

    하늘에서 맞붙던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둘 다 어안이 벙벙해졌다.

    곧이어 백소천이 놀라움과 기쁨이 가득한 눈으로 하늘에서 내려와 심협의 어깨를 두드렸다.

    “심협, 정말 자네로구먼! 하하하! 정말 자네였어!”

    응어리가 질 정도로 잔뜩 찡그렸던 그의 미간이 순간 펴지며 놀라서 외쳤다.

    “내가 아니면 또 누구겠소? 백형, 참으로 오랜만이오.”

    심협은 얼굴에 웃음기를 띠고 역시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전에 집에서 서신을 보내왔는데, 자네는 고향으로 돌아갔다더군. 그 뒤로는 소식이 끊겨서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걱정했는데 장안에 와 있을 줄이야. 자네…… 자네 수련 경지가…… 출규기쯤 되겠는 걸?”

    백소천은 문득 조금 전 심협이 보인 신통을 떠올리며 경탄을 금치 못했다.

    “출규 초기요. 출규 중기인 백형의 경지에는 멀었소.”

    심협이 웃으며 대꾸했다.

    “나야 화생사에 간 뒤로 단 하루도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지만……. 자네는 어떤 대단한 종문에 들어갔다거나, 아니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은둔 선사(仙師)를 만나기라도 한 겐가? 어찌 이리 많이 변했는가?”

    백소천은 콩 볶듯이 연이어 질문을 퍼부었다.

    심협은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 긴말은 하지 않았다.

    한편,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육화명은 반쯤 얼빠진 표정이었다.

    “심협, 저게 누구인가 좀 보게!”

    그때 백소천의 낯빛이 갑자기 다시 어두워지더니 심협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심협은 고개를 돌릴 필요도 없이 고화령이 돌아온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그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백소천의 몸에서 강렬한 법력 파동이 요동치며 또다시 앞으로 튀어나가려 했다.

    이때, 육화명은 뭔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채고 이미 고화령 앞을 막고 섰다.

    심협 또한 백소천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

    “심협 자네……?”

    백소천이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심협을 바라보았다.

    “소천 사형, 그간 일이 좀 있었소. 내 다 이야기해줄 테니, 듣고 결정하시오.”

    심협은 진중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후, 흑봉요괴와 그 비밀스런 조직에 대한 일들을 차분히 알려주었다.

    “그렇다 해도 저 여자는 죄를 면하기 어렵네.”

    백소천은 조용히 듣고 나서도 고집스레 말했다.

    ‘맞소. 다만 지금은 그녀를 죽일 때가 아니오. 우린 그녀의 배후에 있는 조직의 실마리를 찾아내야 하니, 일단 복수의 불길을 가라앉혀야 하오.’

    심협은 백소천의 어깨를 누르며 전음으로 말했다.

    “좋아, 자네가 그리 말하니 우선은 살려주도록 하지.”

    백소천은 고개를 돌려 고화령을 힐끗 보고는 앞서 자신이 공격했을 때 상대방이 반격하지 않았음을 떠올리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육화명은 백소천이 살기를 거두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심협에게 전음으로 물었다.

    ‘그대의 벗은 어찌 된 일이기에 보자마자 죽자고 덤비는 거요?’

    ‘그도 나와 같이 춘추관에서 살아남은 사람 중 하나요.’

    심협의 답에 육화명은 말문이 턱 막혔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몸을 돌렸다.

    “괜찮으시오?”

    육화명의 걱정스런 목소리에 고화령은 눈을 내리깔고 말없이 고개만 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안성까지 왔으면서 화생사로 나를 찾아오지 않다니, 너무 의리 없는 것 아닌가?”

    백소천은 비가 그치고 날이 갠 것처럼 다시 밝게 웃으며 팔꿈치로 심협을 쿡 찔렀다.

    “워낙 우여곡절이 많아 찾아갈 겨를도 없었소. 백형의 수행을 방해하고 싶지도 않았고…….”

    심협이 어쩔 수 없었다는 듯 말하자 백소천은 의기양양하게 씩 웃었다.

    “나 같은 천재가 자네에게 방해를 받을 것 같은가?”

    심협은 꿈속에서 백소천이 자폭해 죽는 장면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던 것을 떠올리고는 참지 못하고 충고했다.

    “백형, 그런 성미는 좀 고치는 게 좋겠소. 수행에 있어서는 반드시 신경을 더 써야 하오. 나중에 겁운을 겪어내지 못하고 반선으로 전락했을 때 후회하지 말고…….”

    “허! 나를 너무 대단하게 보는구먼. 겁운? 반선? 내 비록 천재이긴 하나 감히 그런 자화자찬은 못하겠는데……. 근데 자네 말투가 언제부터 이리 건방져졌지? 왜? 자네 말투를 들어보니 반선조차도 자네의 귀한 눈에 들지 못하나보군?”

    백소천은 뜻밖의 말에 잠깐 멍해졌다가 웃으면서 말했다.

    “농을 치는 것이 아니오. 수행을 게을리해서는 아니 되오.”

    심협이 정색하며 말했다.

    “흠, 자네는 내가 화생사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르니 감히 내가 수행을 게을리 했다고 말하는 것이겠지. 한데 자네도 보아하니 고생이 많았겠군?”

    심협의 진지한 반응에 백소천도 장난기를 거두었다.

    말을 마친 두 사람은 마주보며 웃었고, 심협은 곧 육화명과 서로를 소개시켜주었다. 두 사람은 싸우면서 연을 맺게 된 셈이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심협은 그제야 백소천도 화생사의 두 고승을 따라 수륙대회에 참석하러 온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사숙과 사백을 따라다니는 게 너무 답답해 한가롭게 산책이나 하러 왔다가 고화령과 육화명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백형, 우린 일이 좀 있어서 정 국공을 뵈러 가야 하니 먼저 가보겠소.”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육화명이 포권하며 말했다.

    “지금은 모두 장안에 있으니 바쁜 일을 끝낸 뒤에 다시 이야기합시다.”

    심협도 입을 열었다.

    “알았네, 먼저들 가보시게. 나도 숭현당 쪽에 가봐야 하니까.”

    백소천이 웃으며 말했다.

    그들이 헤어진 뒤, 심협 일행은 곧장 어느 2층짜리 정사(精舍) 바깥에 이르렀고, 멀리서부터 술 내음이 풍겨왔다.

    “술 향기가 평소보다 진한 걸 보니 분명 누군가 사부님께 좋은 술을 보내왔나 보군. 역시 나는 먹을 복이 있다니까. 흐흐흐.”

    육화명은 코를 킁킁대더니 입맛을 다셨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방 안에서 정교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놈의 새끼, 아직 돌아오지도 않았는데 술 생각부터 한단 말이더냐! 냉큼 기어들어오지 않고 뭘 하는 게야?”

    육화명과 두 사람은 그 말을 듣고 즉시 문을 밀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서보니 정교금이 탁자 옆에 앉아 있었다. 그는 검은 도자기 술주전자를 손에 들고 있었는데, 얼굴은 술기운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맞은편에는 황포 차림의 노인이 앉아 있었는데, 바로 황목상인이었다. 다만 황목상인은 술잔 대신 은은한 향내를 풍기는 청명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있었다.

    “황목 선배님께서도 계셨군요.”

    세 사람이 재빨리 예를 갖췄다.

    “두 소우가 고생이 많았네.”

    황목상인은 웃으면서 말했지만, 시선은 고화령에게 가 닿았다.

    “사부님, 선배님, 이번에 금산사에 가서…….”

    육화명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금산사에서의 일들을 대략적으로 이야기했다.

    “그 ‘강류’ 대사가 뜻밖에 요괴가 된 염주일 줄이야. 감히 남의 자리를 빼앗아 금선자의 환생으로 떠받들어졌다니……. 만약 자네들이 아니었다면 금산사는 말할 것도 없고 조정도 그에게 얼마나 더 오래 속았을지 모르네.”

    황목상인이 탄식했다.

    “선배님. 그 비밀스런 조직에 관해 어떤 정보라도 가지고 계십니까?”

    심협이 물었다.

    “그 요족 조직의 단서는 우리도 주목하던 참이었다. 다만 그들의 움직임이 괴이하고 은밀한 데다 악랄하기까지 하여 지금까지 발견된 수많은 멸문 학살 사건에서 춘추관 외에는 살아남은 자가 없었지. 그러니 제대로 된 단서를 얻지 못했다. 진전이 생기면 반드시 네게도 알려주마.”

    정교금은 술주전자를 내려놓고 수염에 묻은 술을 쓱 닦은 뒤 말했다.

    “그렇게 해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선배님. 그리고 이 후배, 선배님께 부탁드려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심협이 포권하며 말했다.

    “말해보아라.”

    정교금이 말했다.

    “선배님께서 관부의 힘을 동원해 경성에서 사람 하나를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어떤 사람 말이냐?”

    정교금은 의아한 듯 되물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기에 육화명도 궁금한 표정이었다.

    “손목에 매화 표식이 있는 여인입니다.”

    정교금은 귀를 쫑긋 세우고 설명이 이어지길 기다렸지만, 한참이 지나도 심협이 입을 열지 않자 그제야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전부더냐?”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여인이 어디 있는지는 몰라도 어쨌거나 이름이 뭔지, 방년 몇 세인지, 체격은 어떻고 외모의 특징은 어떠한지는 알고 있겠지?”

    정교금이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그 여인이 장안성에 있을 거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심협은 고개를 저으며 민망한 듯 말했다. 이정이 치우의 다섯 마혼의 환생 중 하나가 장안에 있다는 말과 함께 이러한 단서를 주었을 때, 자신의 반응도 눈앞에 저들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쨌든 대당관부가 나서는 것이 혼자 찾는 것보단 훨씬 나으리라.

    “그것이…… 그 사람이 너와 어떤 관계인지, 또 너는 왜 그 여인을 찾으려 하는지 물어도 되겠느냐?”

    정교금의 질문에 심협은 주저했다. 그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다섯 개로 나눠진 치우의 혼백이 환생했다는 말부터가 황당한데, 이 일을 어찌 알게 됐느냐고 다시 묻는다면 더더욱 해명해야 할 말을 찾기 힘들었다.

    옥침으로 태허(*太虛: 중국 고대 철학에서 우주 만물의 가장 원시상태를 가리키는 말)에 들어가는 꿈을 꾸고 시공간을 누빈다고? 혼백이 산산이 흩어진 탁탑천왕을 만났다고? 누구도 이런 일을 믿을 수는 없으리라.

    “그녀는…… 후배에게 몹시 중요한 사람입니다.”

    심협은 이렇게 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몹시 중요한 사람이라……. 설마 어디서 우연히 만난 미인은 아니겠지? 심형을 도와주면 안 될 거야 없지만, 공적인 권력을 사사로이 쓰는 것은 아무래도…….”

    육화명은 ‘다 안다’는 듯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으며 놀리듯 말했다.

    심협은 그 말에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됐다. 별것도 아닌 일이니 내 호부 쪽에 기별을 넣어주마. 장안성에 있다면 찾아내는 게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정교금이 허벅지를 탁 치며 말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선배님.”

    심협은 즉시 포권을 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났을 때,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았다. 이어서 모두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듯 줄곧 말없이 서 있던 고화령에게 꽂혔다. 그녀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사부님, 그녀는…….”

    육화명이 잠시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으나, 정교금이 손을 휘휘 저어 말을 끊더니 고화령에게 물었다.

    “낭자는 어찌할 계획이오?”

    “저는 스스로 저지른 일에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다만, 여러분께서 제게 요풍을 죽일 기회를 주시길 바랄 뿐, 더는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고화령이 입을 열었다.

    “요사스러운 말이니 다 믿어선 아니 되오. 내 생각에는 일단 저 여인을 가두고 다시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소.”

    황목상인이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로 말했다.

    “이 일은 요풍과 그 조직이 관련되어 있으니, 아무래도 국사께 물어본 뒤에 결정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전에 낭자는 우선 등나무 밭쪽에 머물되 마음대로 떠나서는 아니 되오.”

    정교금이 잠시 따져보더니 입을 열었다.

    고화령은 이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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