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409화 (409/1,214)
  • 409화. 장안으로 돌아가다

    “그럼 요풍은 언제 너를 찾아왔느냐?”

    심협은 염주 요괴의 싸늘한 태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캐물었다.

    “벌써 수년 전이다. 그때 체내의 마혈이 너무 심하게 요동쳐 요풍이 나를 찾아냈지. 나를 도와 마혈을 제압할 수 있는 방법도 있고, 내게 강한 힘도 줄 수 있다고 했어. 나는 한순간 그에게 홀려 승낙했지. 하지만 나는 그 힘으로 나쁜 짓거리는 하지 않았다! 이번에 너희를 흑봉요로 보낸 것도 요풍이 시킨 거야.”

    염주 요괴가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럼 네 몸속에 마혈이 아직 남아 있느냐?”

    심협은 흑봉요의 일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고 물었다.

    “물론 있지. 허나 방금 선아가 복마경으로 제압하여 많이 누그러졌다.”

    그제야 심협도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해석선사는 선아를 데리고 물러가면서 심협 일행에게 쉴 곳을 마련해주었다.

    심협은 어느 선방(*禪房: 승려가 수행하는 방)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묵묵히 공법을 운공해 법력을 회복했고, 손을 뒤집어 자줏빛 커다란 구슬을 꺼냈다.

    구슬 위에는 금빛이 반짝였는데, 바로 꿈속의 경지를 소환했을 때 걸어둔 진선봉인(眞仙封印)이었다. 금빛을 통해 구슬 안의 자줏빛 꽃구름이 용솟음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구슬이 깨져도 흩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영성을 잃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심한 손상을 입었는데도 끄떡없다니, 이 구슬은 예사 마보(魔寶)가 아닌 모양이군.’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그는 구슬을 손에 받쳐 들고 결인하여 구구통보결을 운공했다. 그러자 가닥가닥 푸른 빛이 빠르게 그 안으로 스며들었다.

    앞으로 마족과 맞서 싸워야 할 판이니 마기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했다. 그러니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이 물건을 제련해보기로 한 것이다. 대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는 이 구슬에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천책 공간 속으로 거둬들일 심산으로 옥침 안에서 천책 허상을 불러냈다.

    한데 예상과는 달리 자줏빛 구슬은 곧바로 구구통보결과 호응했다. 구슬은 금세 몇 배로 커져 반경 1장에 이르렀고, 커다란 균열이 그 위를 가로지르는 것이 조금 거슬렸을 뿐, 그 위로는 은은한 노을빛이 피어올라 더없이 아름다웠다.

    심협은 기쁜 표정으로 신식을 움직여 이 구슬 안을 느껴보았다. 그러나 그 안의 자색 노을빛은 뜻밖에도 깊이를 짐작할 수가 없었고, 마치 그 안에 거대한 공간을 품은 것 같아 끝까지 살펴보지도 못했다.

    게다가 구슬 안의 금제 역시 매우 기괴하여 평범한 법기나 법보와는 전혀 달랐다. 구구통보결로 제련할 수는 있었지만, 이 물건이 어떤 신통력을 지녔는지는 짐작할 수가 없었다.

    이전에 치른 대전의 상황으로 보아, 이 자색 구슬은 공간을 안정시키는 효력이 있는 듯했다.

    “나중에 다시 천천히 연구해야겠군. 어쨌든 이 구슬은 진선의 경지로 시전한 원왕의 곤법을 견뎌냈을 정도이니 방패로도 쓸 수 있을 거야.”

    심협은 손을 흔들어 자색 구슬을 챙겨 넣고는 다시 법력을 회복하는 데 집중했다.

    한나절은 금세 지나갔다. 심협이 눈을 번쩍 뜨자 몸에는 푸른 빛이 한바탕 일렁였고, 법력은 온전히 회복되어 있었다.

    그는 몸을 일으켜 바깥으로 나가 금세 금산사 입구에 이르렀다.

    육화명과 고화령은 이미 금산사 입구에 와 있었다. 두 사람은 의외로 마음이 잘 맞았는지 나지막이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심협이 오는 것을 본 고화령은 입을 다물고 옆으로 비켜났다.

    “두 도우는 무슨 비밀 얘기를 그리 나누고 있었소?”

    심협의 얼굴에 장난기가 어렸다.

    고화령은 고운 얼굴을 살짝 붉히며 심협을 가볍게 노려보았다.

    “큼! 비밀얘기는 무슨……. 장안에 갔을 때 주의해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있었소. 몸은 잘 회복 되었소?”

    육화명이 조금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돌렸다.

    “거의 다 회복되었소. 장안에 돌아가서 폐관하며 며칠 쉬면 괜찮아질 거요.”

    심협도 더는 두 사람을 곤란하게 하지 않았다.

    세 사람이 한담을 나누고 있을 때, 해석선사와 선아, 자석 장로가 금산사에서 나왔다.

    선아는 맨 앞에서 걷고 있었는데, 사람 자체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몸에는 진홍색 가사를 걸쳤고, 머리에는 오불관(*五佛冠: 금강계의 대일여래가 쓰는 보관. 다섯 부처가 있어 오지원만을 상징한다)을 썼으며, 손에는 금빛 석장을 들고 있어서 잿빛 옷의 초라해 보이던 이전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세 시주님들을 오래 기다리게 해드렸군요.”

    선아가 한 손으로 예를 갖추었다.

    “선아 사부는 정말 금선자의 환생다운 기품을 지니셨군요.”

    육화명도 예를 갖추고는 웃으며 말했다.

    “소승은 이런 차림이 익숙하지 않지만 금선자의 환생이 되었으니 겉모습 단장에 신경을 써야한다고 염주가 말을 해서요. 일리가 있는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입었습니다.”

    선아가 멋쩍은 듯 웃으면서도 진지하게 말했다.

    “옛말에, 부처님도 금장식에 기댄다 하지 않더냐? 너 자신을 꾸미지 않으면 누가 너를 믿으려 하겠느냐? 당시 금선자께서도 관음보살께서 하사하신 금란가사(錦斕袈裟)에, 구환석장(九環錫杖)에, 네 차림새보다 훨씬 화려했다고!”

    염주가 투덜댔다.

    “세 시주님들, 선아는 거의 문밖을 나선 적이 없어 이번 장안행에 자석 사제를 동행하게 하였으니, 여러분께서 살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해석선사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주지스님께서는 안심하십시오. 저희가 반드시 선아 사부님을 평안히 보호하겠습니다.”

    육화명이 가슴을 두드리며 호언장담했다. 이어서 그는 곧 손을 흔들어 비주(飛舟) 한 척을 꺼냈다.

    사람들이 올라타자 비주는 하늘로 솟구쳐 하얀 빛으로 변하더니 장안성 방향으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 * *

    이튿날 정오, 장안성. 마차 한 대가 유유히 대당관부로 향했다.

    삿갓을 쓰고 손에는 대나무 채찍을 든 육화명이 느긋하게 모는 마차 안에는 심협과 고화령이 마주 앉은 상태였다. 한 사람은 눈을 감은 채 정신을 가다듬었고, 다른 한 사람은 고개를 숙인 채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마차 한가운데에는 두 승려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한 사람은 체격이 건장했지만 얼굴에 병색을 띤 중년 승려로, 바로 금산사의 자석 장로였다. 다른 한 명은 엷은 파란색 승포를 입은 어린 사미승이었는데, 당연히 선아였다.

    선아는 자단목 염주를 손에 쥐고 손가락 끝으로 천천히 돌리며 경문을 읊조리고 있었지만, 마음은 그리 편치 않아 보였다.

    “선아, 마음이 안정되어야 선정(*禪定: 참선하여 삼매경에 이름)에 이를 수 있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으면 염불을 외운다 해도 수행에 무익하니라.”

    자석 장로가 엄하지만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석 장로님, 제자는 절에서 오래 지냈지만, 수륙대회에 참석해본 적이 없어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사람들도 제도(*濟度: 중생을 구제하여 극락세계로 이끌어 줌)하지 못하고 원혼들도 천도할 수 없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서요.”

    선아는 염불을 잠시 멈추고 손에 든 염주를 천천히 내려놓으며 말했다.

    비록 그가 금선자의 환생으로 어려서부터 어진 마음을 지녔고 불법에 있어서는 스승 없이도 스스로 깨우쳤지만, 나이가 어린 데다 줄곧 강류에게 억눌려 살아왔기에 심성은 더없이 내성적이었다.

    “네가 사람들을 제도하지 않더라도 불법이 스스로 제도할 것이다. 네 마음속에 부처님의 대승법장(*大乘法藏: 대승불교의 교리가 담긴 불경)이 있는데 어찌 사람들과 원혼들을 구제하지 못할까 근심하느냐?”

    자석 장로가 온화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말에 선아는 눈을 반짝이며 손바닥을 세우며 고개를 숙였다.

    “제자 이해하였습니다.”

    반 시진 뒤, 마차는 관부 밖에 섰다.

    육화명은 먼저 고화령을 데리고 정교금을 만나러 갔고, 심협은 선아와 자석 장로를 숭현당(崇玄堂)으로 안내했다. 그곳은 대당의 종교를 도맡아 관리하는 기관이었다.

    화생사 같은 종문은 수행계에서 초월적인 위치에 있지만, 속세에 얽힌 일들은 대당관부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단지 구속력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숭현당은 대당관부의 서북쪽 모퉁이에 있었는데, 심협도 이제껏 가본 적이 없어서 가는 길에 몇 번이나 사람들에게 길을 물은 뒤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대당관부 각 관아들의 분주한 모습에 비해 숭현당 쪽은 고요했다. 관아가 위치한 건물 밖에는 심지어 보초를 서는 군졸도 없었다. 입구 옆에 돌사자 두 마리가 각각 쪼그리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관아의 뜰 안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심협은 경쇠(*사찰에서 예불할 때 쓰는 작은 종)가 울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소리는 신비하고 아득하여 듣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했다.

    선아와 자석 장로는 동시에 두 손을 합장하고 불호를 읊조렸다.

    문을 넘어 안쪽으로 들어서자마자 맞은편 보리수 아래에 금란가사를 입은 세 승려와 관복을 입은 중년 사내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일행이 들어서자 중년 관리가 먼저 맞이하며 차례대로 잠시 훑어보았다. 그러다가 시선이 선아에게 닿자 예를 갖추며 말했다.

    “두 분께서는 바로 금산사에서 오신 강류선사님과 자석선사님이시지요?”

    “맞습니다.”

    심협이 말했다.

    “아미타불.”

    선아와 자석 장로는 재빨리 불호를 읊조리며 답례했다.

    보리수 아래 있던 승려들도 하나둘 다가와 심협 일행에게 예를 갖추었다.

    “강류대사님의 명성은 익히 들었는데 오늘에야 뵙게 되었군요. 과연 아주 영민하신 것이 불조의 제자이신 금선자의 환생답게 불광을 갖추셨습니다. 큰 수행과 큰 공덕을 지니셨으니 실로 다행입니다.”

    우두머리인 눈썹이 허옇게 센 노승이 조금 감격한 표정으로 말했다.

    “과찬이십니다. 소승은 금산사의 일개 사미승에 불과하고 수행한 시간도 짧사온데, 무슨 공덕이 있겠습니까?”

    선아는 쑥스러운 듯 귀밑이 빨개졌다.

    “이분은……?”

    심협이 물었다.

    “이분은 경기(*京畿: 수도 외곽지역을 이르는 말) 보상사(寶相寺)의 보수선사(寶樹禪師)이십니다. 저 두 분도 보상사의 고승대덕이신 녹덕선사(錄德禪師)와 녹진선사(錄塵禪師)입니다. 이번 수륙대회는 보수선사께서 진행하시고 법회장소도 보상사의 승려들이 꾸밀 겁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다른 사원의 고승분들과 함께 법술로 억울하게 죽은 장안성 백성들의 넋을 저승 명부로 천도합니다.”

    숭현당의 관리가 재빨리 소개했다.

    “여러 선사님들을 뵙습니다.”

    선아가 두 손을 합장하며 예를 갖췄고, 심협과 자석 장로도 뒤를 따랐다.

    호송 임무를 마친 심협은 인사를 건넸다.

    “여러분 저는 처리해야 할 일이 좀 있어서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이어서 선아와 인사를 나눈 뒤 사람들에게 포권을 했다.

    “호송해주시느라 심 선사(仙師)께서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자석 장로는 손바닥을 세우며 감사를 표했고, 선아는 살짝 웃어 보이며 두 손을 합장하고 고개 숙여 예를 갖췄다.

    숭현당에서 나온 심협은 곧장 관아 쪽으로 향했다. 육화명과 고화령을 만날 생각이었고, 정교금을 직접 만나 이야기해야 할 일들도 있었다.

    양진원(*兩進院: 중국 전통 가옥구조인 사합원의 한 형태로,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두 개의 문을 거쳐야 함)을 지나자 앞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와 심협은 크게 놀랐다.

    ‘감히 이런 곳에서 함부로 행동하는 자가 있단 말인가?’

    누군가 도법(道法)을 겨루는 것인가 생각하는 찰나, 앞쪽 뜰 안에서 인영(人影)이 하나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그 사람이 뒤편의 건물에 부딪히기 직전에 황급히 손을 휘둘러 물결을 응결해 구하고 보니, 뜻밖에도 상대는 고화령이었다.

    “간 큰 무뢰배 같으니. 여기는 대당관부지 네가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때, 육화명의 고함소리가 앞뜰에서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노기가 서려 있었다.

    심협이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 들어가려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당관부가 언제부터 요괴들의 보호소가 되었는가? 저 요녀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는가? 방해하지 말고 썩 꺼져라!”

    “이 목소리는……?”

    미간을 찌푸던 심협의 눈이 번득였다.

    그때, 안에서 또 한 차례 법술이 충돌하는 소리가 들렸다. 육화명이 그 사람과 싸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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