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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408화 (408/1,214)

408화. 금선자의 환생

광장에 거대한 염불 소리가 울려 퍼지자, 금빛 찬란한 ‘불(佛)’자 진언이 광진 위에 나타나 천천히 회전했다.

심협과 육화명, 고화령은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떠밀려 광진 바깥으로 물러났다.

염불 소리가 점점 더 울려 퍼지면서 천지간은 온통 엄숙하고 경건해졌다. 오로지 금빛 불(佛)자만이 빠르게 커지면서 회전하는 속도 또한 빨라지기 시작하여 햇살 아래 더욱 눈부시게 빛나 가까이서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불문 광진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선아의 몸에는 금빛 광채가 한 겹 덮였고, 머리 뒤에는 금색 빛고리가 어렴풋이 나타나 장엄한 보상(寶相)처럼 보였다. 실로 경건해지는 모습이었다.

“설마……?”

심협은 선아의 모습에 퍼뜩 어떤 추측이 떠올랐다.

주위 허공에 떠오른 불가의 진언들은 몇 곱절로 커져서 끊임없이 강류의 몸으로 모여들었다.

강류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질렀지만, 소용없었다.

시간이 흐르자, 그의 거칠고 초조한 감정은 서서히 사그라들고 피부의 새빨간 빛도 따라서 사라졌다. 체내의 마념(魔念)이 정화된 듯했다.

잠시 후, 강류는 완전히 원래 모습을 되찾았고, 얼굴의 사악한 기운도 사라져 온화해졌다.

‘불문의 신통력이란 과연 범상치 않구나! 정말 마성을 몰아냈어!’

심협은 감탄해 마지않았다.

강류가 원래 모습을 회복하자, 해석선사를 비롯한 사람들은 염불을 멈추었다. 복마진경을 외는 것은 체력과 심력의 소모가 큰지, 그들의 얼굴에는 약간의 피로감이 어렸다.

하지만 주변의 범음(梵音)은 흩어지지 않았고, 선아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여전히 염불을 외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머리 뒤에 금색 빛고리가 더욱 밝아지면서 둥근 금빛 광채가 솟아오르더니 물결처럼 넘실거렸다. 공기 중에는 어느새 짙은 단향이 자욱하게 퍼졌다.

금빛 광진의 도움은 사라졌지만, 허공의 불가 진언은 줄어들지 않고 도리어 더 커져서는 강류를 향해 계속 밀려들었다. 이에 따라 강류의 몸은 빠른 속도로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이…… 이게 어찌된 일이지?”

금산사 사람들 모두 깜짝 놀란 기색이었고, 심협 일행도 화들짝 놀랐다.

강류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고, 오히려 어쩔 수 없다는 눈빛으로 선아를 쳐다보았다. 잠시 후, 그의 몸에서 퍽 하고 작은 소리가 나더니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자단목으로 만든 염주가 남아 희미한 금빛을 뿜어냈다.

자줏빛 염주는 미미하게 움직이더니 금색 빛기둥에서 튀어나와 선아의 손목에 채워졌다.

한편, 선아의 몸에서는 갑자기 금빛이 환하게 뿜어져 나와 똑바로 쳐다볼 수조차 없었다. 엄숙한 염불 소리가 허공에 메아리치며 웅혼하기 이를 데 없는 힘이 그 속에서 솟구쳐 나와 근처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바깥으로 내몰았다.

자비로운 얼굴을 가진 거대한 불타 법상이 금빛 속에서 천천히 떠올랐고, 그의 얼굴을 보니 경외심이 절로 생겨나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금선자 법상! 알았다! 선아야말로 진정한 금선자의 환생이었어!”

해석선사가 불타의 허상을 보며 외쳤다.

주의의 승려들은 그 말에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선아를 쳐다보았다. 실로 믿기지 않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믿을 수밖에 없었다.

“선아가 금선자의 환생이었다면…… 그럼 강류는 뭐지?”

옆에 있던 육화명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중얼중얼 말했다.

“강류는 인간이 아니라 요괴였는데 그 염주와 영이 통하여 인간의 모습이 된 것이오.”

반면 고화령은 조금도 놀라지 않는 것이 진즉 이런 상황을 알고 있던 듯했다.

“고 도우, 그대는 일찍이 강류의 정체를 눈치 채고 있었구려?”

심협도 어렴풋이 그런 추측을 했었기에 비교적 평온한 얼굴로 물었다.

“나는 본디 요괴이니 같은 요괴인 강류의 기운을 알아차릴 수 있었소.”

고화령은 심협을 슬쩍 쳐다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심협은 다소 기이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편, 거대한 금빛 법상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그저 몇 번 번쩍이더니 웅대한 금빛으로 변했고, 고래가 물을 빨아들이듯 선아를 향해 몰려가 그의 몸속으로 녹아들었다.

잠시 후, 하늘을 가득 뒤덮었던 금빛은 모두 사라지고 선아도 눈을 떴다.

“선아, 너는 어찌 금선자의 법상을 나타나게 할 수 있었느냐? 설마 네가 진정한 금선자의 환생인 것이냐?”

해석선사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자석 장로가 물었다.

“금선자의 환생이라니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소승은 복마경을 외었던 기억밖에 없습니다. 참, 강류는요?”

선아는 동그랗게 뜬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그때, 어디선가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 나 여기 있어!”

알고 보니 자색 염주 안에서 들려온 것이었다.

“요물! 염주가 요괴로 둔갑하다니!”

주위의 승려들은 다시 소란스러워 졌고, 성미가 급한 몇몇은 아예 법기까지 꺼내들었다.

이에 심협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리려 들었다.

하지만 그가 나설 것도 없이 해석선사가 우렁차게 외쳤다.

“모두들 경거망동하지 말게!”

해석선사는 평소 금산사에서 신망이 두터웠기에 승려들은 일제히 멈추었다.

해석선사는 느린 걸음으로 선아에게 다가가 염주를 바라보았다.

“네가 강류냐? 이게 어찌 된 일이더냐? 불문에서는 살생하지 않지만, 요마에게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 무사하고 싶거든 모든 것을 털어 놓아라!”

그가 묵직한 목소리로 외쳤다.

“흥! 남의 도움과 법진의 힘을 빌려 요행히 이겨놓고 우쭐대지 마라!”

염주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강류, 주지스님께 무례히 굴어서는 아니 된다!”

선아가 손목의 염주를 내려다보며 나지막하지만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줏빛 염주는 선아의 말이 몹시 두려운 듯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음…… 알려줘도 괜찮겠지. 내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어찌된 일인지 짐작조차 못하다니, 정말 어리석기 그지없구나. 나는 금선자께서 생전에 차고 다니셨던 염주다. 선아 너야말로 진짜 금선자의 환생이야. 당시 주인께서 돌아가시면서 어째서인지 내 몸이 마혈에 물들어 영지가 트이면서 요괴의 몸으로 환생한 것이지.”

“마혈!”

자줏빛 염주의 말에 심협의 표정이 급변했다.

“나는 마혈의 영향을 받아 선아 대신 금선자가 되어 뭇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싶었다. 그…… 그건 인지상정 아니겠느냐! 나는 선아에게 나 대신 설법을 하라고 닦달했다. 그는 불가의 이치를 이해할 수 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고, 또한 범음이 귀에 들어와야 내 몸의 마혈을 잠시 가라앉힐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염주가 계속 말을 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어쩐지 강류가 선아를 늘 곁에 따르게 하고 대신 설법하게 하더라니.

“이 요사스러운 마귀야, 인연이 닿아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건만 수행할 생각은 않고 금선자의 환생을 가장하여 수백 년을 이어온 우리 금산사의 평판을 더럽혔단 말이냐! 스승님과 요석(了釋) 장로님에게 중상을 입히기까지 하였으니 그 죄는 죽어 마땅하다!”

중년 화상이 엄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는 당석 장로의 제자로 원래는 강류를 몹시 동경했으나, 지금은 자신이 숭배했던 사람이 뜻밖에도 요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부끄러움과 분노가 교차했다.

“흥! 죽일 테면 죽여라! 나는 전혀 두렵지 않다!”

염주는 두려워하지 않고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네 이놈!”

중년 화상은 발끈하여 앞으로 다가가 염주를 벌하려 했다.

“혜통(慧通) 사형, 강류는 그저 마음에 세속의 잡념이 좀 들었을 뿐입니다. 거기다 마혈의 영향을 받아 통제를 잃고 사람을 상하게 한 것이니 대인군자의 넓은 아량으로 이번 한 번만 그를 용서해주시지요.”

선아는 염주를 뒤로 감추고 한 손으로 예를 갖추며 말했다.

중년 화상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지금의 선아는 금선자의 환생이니 그가 어찌 감히 무례히 대할 수 있겠는가?

“혜통, 불가에서는 노여움을 경계하지 않는가. 더구나 지금은 손님들도 와 계시니 방자하게 굴지 말게!”

해석선사가 엄히 꾸짖자 혜통 화상은 황급히 대꾸하고는 물러났다.

선아는 이를 보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염주를 다시 앞으로 가져갔다.

“선아 소사부님, 강류가 염주의 둔갑한 것임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육화명이 자줏빛 염주를 보며 물었다.

“강류가 제게 말해준 적이 있습니다.”

선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왜 지금껏 주지스님께 말씀하시지 않고 그를 대신해 설법까지 해주신 겁니까?”

육화명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중생은 평등한 법. 굳이 진위를 따질 필요가 있겠습니까? 백성의 행복을 도모하기만 한다면 그를 대신해 설법한들 상관없지요. 그것으로 강류를 교화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선아가 진지하게 답하고는 침통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육화명은 그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선아 소사부는 정말이지 너무도 바보 같지 않은가.

“주지스님, 강류가 이미 잘못을 시인했으니 그를 용서해주시지요. 염주의 모습으로 소승 곁을 따라다니며 수행에 전념토록 하면 그의 몸에 깃든 마혈의 사악한 기운을 점차 정화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선아의 말에 해석선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아 네가 그리 말하니, 좋다. 염주, 너는 앞으로 선아 곁에서 열심히 수행하여 더는 말썽 일으키지 말고 선아를 잘 보호해야 하느니라.”

“쳇, 노인네가 잔소리하지 않아도 난 그를 몇 평생이나 지켰다고!”

염주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해석선사의 결정에 여전히 불만을 가진 승려들도 있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오늘 큰 도움을 주신 두 분 시주께 노승이 금산사의 모든 사람을 대신해 감사드리겠습니다.”

해석선사는 강류의 일을 마무리하고는 돌아서서 심협과 육화명에게 예를 갖추었다.

“별말씀을요. 마(魔)를 멸하고 도(道)를 지키는 것은 본디 우리 정파 수사들의 본분이지요. 다만, 저와 심 도우가 이곳에 온 것은 금선자의 환생께 장안으로 동행하시어 수륙대회를 주관해 주십사 부탁드리기 위해서였으니, 주지스님께 다시 한번 요청드리겠습니다.”

육화명이 공수하며 답했다.

강류의 변화로 인해 절망하던 참이었는데 뜻밖에도 반전의 기회가 생기자, 그는 희망에 찬 목소리로 즉시 다시 그 일을 언급했다.

“수륙대회는 나라와 백성을 이롭게 하는 성대한 의식이니 우리 금산사에서는 당연히 전폭적으로 지지하지요. 선아, 너는 가고 싶으냐?”

해석선사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더니 선아의 의사를 물었다.

“장안 백성들이 불행히 재난을 당하였으니, 이 제자 마침 장안으로 가 중생을 제도(濟度)하고 부처님의 자비심을 널리 알릴 생각이었습니다.”

선아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선아 소사부님.”

이에 육화명은 크게 기뻐하며 재빨리 감사를 표했다.

“늦어질수록 성안 백성들의 고생이 커지니 당장 출발하시지요.”

선아가 지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허나 오늘 금산사가 화를 당하여 우리에게도 잠시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고, 선아 또한 아까 부상을 당했으니 노승이 법술로 치료하고자 합니다. 그러니 두 시주께서는 한나절만 기다렸다가 떠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해석선사의 말에 육화명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수륙대회까지는 아직 며칠 남았으니 한나절쯤은 괜찮았다.

이에 해석선사가 선아를 데리고 물러가려 할 때였다.

“선아 소사부님, 잠시만요.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줄곧 말없이 옆에 서 있던 심협이 불쑥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선아 소사부께서 진짜 금선자의 환생이시라면, 금선자께서 왜 환생하셨는지 어떤 기억 같은 게 있는지요?”

그제야 다른 사람들도 멈칫하더니 일제히 선아에게로 시선을 모았다.

“그건…… 조금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염주, 너는 아느냐?”

선아는 머리를 긁적이며 손목의 염주를 바라보았다.

“내 지난 일은 염불이나 외우고 제자나 거두고, 끊임없이 온갖 요괴들에게 잡혀가는 것뿐이었다. 금선자가 왜 환생했는지는 나도 몰라. 나는 그저 한잠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그가 갑자기 윤회하여 환생해버렸다고!”

“그럼 네 몸에는 왜 마혈이 물든 것이냐?”

염주가 툴툴거리자 심협이 캐물었다. 사실 심협은 처음부터 선아가 아니라 이 염주를 노리고 질문했던 것이다.

“말하지 않았느냐!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한잠 자고 일어나니까 금선자께서는 벌써 환생하셨고, 내 몸도 마혈에 물들어 있었다. 나는 이 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염주는 자신의 여러 계획을 어그러뜨린 심협이 마음에 들지 않아 싸늘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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