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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407화 (407/1,214)
  • 407화. 구마(驅魔)

    반면 귀장은 속을 바짝바짝 태우다가 심협의 상태가 점점 악화되는 것을 보고는 결단을 내려 자신의 귀력(鬼力)을 심협의 몸속에 주입하려 했다.

    바로 그때, 뼈처럼 하얀 빛깔의 둔광이 멀리서 날아와 가까이에 내려서더니 이내 고화령이 아리따운 모습을 드러냈다.

    귀장은 심협과 고화령 사이의 원한을 알고 있었기에 몸을 날려 앞을 막아선 채 적대감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심협도 나타난 사람이 고화령임을 알아차리고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고화령은 심협의 상태를 보며 고운 아미를 살짝 찌푸린 채 다가왔다.

    “멈춰라!”

    낮게 포효하는 귀장의 손에서 검은 빛이 갑자기 불어나더니 검은색 대검 두 자루로 응결되었다. 맹렬하고 섬뜩한 검기가 뿜어져 나와 근처 땅바닥에 하얗게 서리가 한 겹 내려앉았다.

    그는 저승에서 대량의 명한 음기를 흡수하여 예전보다 한층 강해졌기에, 고화령의 경지가 자신보다 높다 해도 맞붙어볼 자신이 있었다.

    “네 주인이 죽어가는 꼴을 구경하고 싶은 게 아니거든 비켜라.”

    고화령이 담담히 말했다.

    귀장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눈에 주저하는 기색이 어렸다.

    “귀장…… 물러나라…….”

    심협의 기운 없는 목소리에 귀장은 잠시 멈칫했으나, 명을 받들어 물러났다 다만 여전히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로 고화령을 노려보며 대검도 거두지 않았다.

    고화령은 귀장을 아랑곳하지 않고 심협에게 다가가 그를 한 차례 훑어보더니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꺼냈다. 바로 봉황옥이었다.

    그녀는 봉황옥을 심협의 가슴에 올려놓고 주문을 외우며 손가락을 굽혔다. 그 상태로 봉황옥을 가리키자 하얀 빛이 한 줄기 그녀의 손을 떠나 봉황옥 안으로 주입되었다. 곧 봉황옥에 짙은 혈광이 떠오르며 희미한 봉황 형상이 나타났다.

    이 혈광은 피비린내나 사악한 기운을 전혀 띠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기운찬 생기가 가득했으며, 맑고 향긋한 향기를 풍겼다.

    고화령이 또다시 손가락을 움직이자 전체의 1할쯤 되는 혈광이 봉황옥 안에서 분리되어 나와 심협의 체내로 흘러들어갔다.

    심협은 체내에 강한 온기가 녹아들어 몸 곳곳을 빠르게 한 바퀴 도는 것을 느꼈다. 온기가 지나간 곳마다 통증이 사라졌고, 파열된 경맥도 모두 아물었다.

    상처들에는 가닥가닥 핏줄기가 나타나더니,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며 서로 뒤엉켜 하나로 합쳐졌다. 그러자 흉측해 보이던 상처들이 눈에 보이는 속도로 빠르게 아물어갔다.

    그토록 심했던 부상이 그렇게 몇 호흡 만에 완쾌되었다.

    심협은 몸을 뒤집고 일어나 앉아서 믿을 수 없다는 듯 자기 몸을 살폈다.

    봉황옥 안의 혈광이 지닌 치유력은 놀랍게도 요상영유단보다 위였다. 부상이 완쾌되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꿈속의 경지를 소환하느라 손상되었던 본명원기(*本命元氣: 자신이 몸에 저장되어 있는 타고난 원기)도 약간 회복되었고, 법력은 거의 절반 가까이 회복된 상태였다.

    “이 봉황옥 안에는 어머니의 본명원기와 봉황 혈맥의 힘이 남아 있소. 봉황의 힘은 상처를 치료하는 데 능하니 그런 부상을 치료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지.”

    고화령이 봉황옥을 거둬들이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런 것이었군. 고맙소, 고 도우. 그저 치유 단약 하나면 됐을 텐데…….”

    심협이 포권하며 감사를 표했다.

    “당신 역시 진귀한 단약으로 어머니를 한 번 구해주지 않았소? 우리 요족들은 빚이든 원한이든 반드시 갚으니 당신에게 진 신세를 갚은 것이오.”

    고화령이 평온하게 답했다.

    “어찌 되었든 정말로 고맙소. 요풍이 언제 돌아올지 몰라 이곳은 안전하지 않으니, 최대한 빨리 금산사로 돌아갑시다.”

    고화령은 ‘요풍’이라는 두 글자에 눈에 살기가 담겼으나, 단지 그뿐이었다. 아마도 진즉 근처에 와서 심협과 요풍이 싸우는 것까지 본 게 틀림없으리라.

    그녀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흔들어 하얀 골검을 꺼낸 뒤, 어검비행술로 금산사를 향해 날아갔다.

    심협은 귀장을 건곤대로 거둬들인 뒤, 법력을 회복시키는 단약을 하나 꺼내 먹고 운공하여 정제했다. 동시에 그는 몸 아래에 거대하고 눈부신 붉은 검광을 일으켜 금산사로 향했다.

    이동하는 동안 심협은 이번에 꿈속의 수련 경지를 불러오면서 수명이 얼마나 줄었는지 살펴보고는 이내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번에는 거의 네 호흡 정도 유지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수명은 40년이나 줄어 있었다. 다행히도 고화령의 봉황 정혈이 본명원기를 조금 보충해주어 그에게 10년 가까이 수명을 더 주었으니 따져보면 30여 년이 줄어든 셈이었다.

    ‘흑봉요에서의 30년까지 더하면 총 60여 년의 수명이 깎인 셈이군.’

    출규기에 진입했을 때 수명이 200여 년 늘어났으니 그 3할을 잃고 만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장안에 돌아가서 수명을 연장해줄 물건을 계속 찾고, 최대한 빨리 수련 경지를 끌어올려야겠어!’

    그는 비통해하며 결심했다.

    다행히도 그에게는 이전에 정교금이 하사한 기린혈이 있었는데, 이 물건도 수명을 늘려주는 효과가 있다. 장안성에 돌아가면 바로 기린혈을 복용하고 수명을 좀 더 늘릴 수 있기를 바랐다.

    심협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고개를 들어 저 앞에 하얀 둔광으로 변한 고화령을 보면서 눈빛을 약간 반짝였다.

    봉황의 정혈은 수명을 끌어올리는 데 제법 쓸모가 커 보였지만, 아쉽게도 봉황옥은 그녀의 어머니가 남긴 유품이니 그에게 줄 리가 없었다.

    두 차례 꿈속의 수련 경지를 소환하여 손해를 본 것이 마음 아프긴 했지만, 이득도 적지 않았다.

    우선 흑봉요괴의 금봉우 세 가닥이 있었다. 이미 살펴보았는데, 이 금봉우에는 강력한 봉황화염의 힘이 담겨 있어 오화선에 녹여 넣는다면 그 위력을 크게 증가시킬 수 있을 터였다. 다만 오화선과 금봉우가 서로 잘 맞을지는 미지수였다.

    다음으로 방금 요풍에게서 얻은 자줏빛 구슬 역시 기이한 보물이 틀림없었다. 아직 자세히 확인해볼 겨를이 없었기에 나중에 꼼꼼히 살펴볼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따로 있었다.

    심협이 가볍게 손짓하자 아래쪽의 휘황찬란한 검광 안에서 붉은 비검이 한 자루 튀어나와 그의 앞에 떨어졌다. 바로 순양검배였다.

    검배의 겉모습은 전에 비해 더 길어졌고, 검끝, 검자루, 검날 모두 모서리가 또렷해졌다. 이미 검배의 모습은 사라지고 성숙한 붉은 비검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것만 같았다.

    뿐만 아니라, 순양검배의 검신(劍身) 위로 환하고 오묘한 진홍색 부적 문양들이 떠올라 가볍게 튕기면 검기가 거침없이 날아가는 것이, 예전보다 몇 배는 더 강해졌다. 이미 극품 법기에 견줄 만할 정도였다.

    그가 꿈속 수련 경지를 두 차례 빌려 체내의 법력을 강제로 진선기 단계까지 끌어올리면서, 그의 단전에 있던 순양검배도 진선 경지의 강하고 거친 법력이 주입되었다. 이는 검배에게 두 차례 큰 보약을 먹인 것과 같아서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었다.

    그는 흑봉요에서 처음으로 꿈속 경지를 불러왔을 때만 해도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다가 금산사로 돌아오는 길에야 그 변화를 알아차렸다. 그래서 방금 꿈속 경지를 불러왔을 때 심협은 적에 맞서면서도 한편으로는 순양검결을 운공해 검배를 온양하는 데 힘썼다. 그 시간이 길지 않았음에도 순양검배는 더욱 강해졌고, 조금만 있으면 완전해질 터였다.

    순양검배는 다른 법기와 달리 완전해진 뒤에야 그 안에 금제를 새기고 온전한 법기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이 검의 위력이 다시 한번 약진하여 이 보물에 쓰인 진귀한 재료와 홍련업화로 곧장 법보 단계에 이를 수도 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심협의 눈동자에 한 가닥 기대가 떠올랐다.

    그때, 여러 줄기의 둔광이 맞은편에서 날아왔다. 육화명과 해석선사 등이었다.

    서로를 알아본 두 무리는 둔광을 멈춰 세웠다.

    “심형, 방금 하늘에 나타난 현상을 보았소. 괜찮소? 어딜 갔던 거요?”

    육화명이 심협에게 가까이 다가오며 물었다.

    “요풍의 기운을 느껴 자세히 설명할 겨를도 없이 쫓았소. 산 아래에서 한바탕 맞붙었지. 부상이 꽤 심각했으나 고 도우의 도움으로 이미 회복했소.”

    심협의 간략한 설명에 육화명은 놀라서 헉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요풍!”

    그는 요풍에 대해 잘은 몰랐지만, 흑봉요에서 돌아오는 길에 심협에게서 들은 바 있기에 순간 크게 긴장했다.

    “아미타불, 노승도 방금 이상한 것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혹시 그 요풍이란 것이 무엇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두 도우께서는 그것에 대해 잘 아시는 듯하니 노승이 앞으로도 방비할 수 있도록 부디 가르쳐주십시오.”

    해석선사가 끼어들어 물었다.

    심협은 요풍에 대해 아는 것들을 해석선사에게 알려주었다. 그 가운데는 요풍과 마조 치우의 관계나 요풍의 행동이 아마도 봉인을 풀어 치우를 다시 인간 세상에 나오게 하려는 헛된 생각일 수도 있다는 추측도 일부 섞여 있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의 의심을 살 수 있었기에 심협은 전에 이런 정보들을 육화명에게 알려주지 않은 상황이었다.

    “심형, 요풍이 정말 그런 목적을 가지고 있단 말이오?”

    육화명이 깜짝 놀라 물었다.

    “아까 요풍을 슬쩍 떠봤는데, 적어도 8할 정도의 확신은 있소.”

    “그렇다면 이 일을 사부님과 국사께 알려야만 하오!”

    육화명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치우라는 마조는 그도 알고 있었다. 일단 그가 되살아나면 인간계의 백성들은 분명 도탄에 빠질 터였다. 금선자의 환생을 모셔가야 하는 일만 없었다면 그는 즉시 장안성으로 돌아가 이 상황을 보고했을 것이다.

    한편, 심협은 육화명의 이런 모습에 안도했다. 이런 이야기를 한 중요한 이유가 바로 육화명의 입을 빌려 정교금과 원천강에게 알림으로써 치우의 부활에 대한 방비를 강화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강류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심협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일단 가둬 놓았소. 그리고 심형이 위험에 처하지 않을까 염려되어 곧바로 달려온 거요.”

    일행은 다시 금산사로 돌아갔다.

    고화령은 낯선 얼굴이었지만, 그녀가 요기를 감춘 데다 심협과 육화명의 동행이니 금산사 승려들도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일행은 곧 금산사 광장에 도착했다. 그곳은 난장판이 되어 바닥 곳곳이 울퉁불퉁하게 파여 있었고, 오직 가장 안쪽의 일부만 그럭저럭 온전했다.

    한편, 경내의 신도들은 모두 산 아래로 보내졌는지 아무 자취가 없었다.

    금산사 바닥 곳곳의 금빛은 이미 흩어졌지만, 하늘 위의 금빛은 아직 남아 있었다. 금색 빛기둥 하나가 하늘에서 내려와 광장 가장 안쪽의 온전한 지역을 뒤덮었고, 그 안에는 강류가 굵직한 금빛 쇠사슬 몇 가닥에 묶인 채 갇혀 있었다. 그의 몸에는 검은 마문이 이미 사라졌지만, 피부는 여전히 핏빛이었고, 표정은 사악해 보였다. 그는 심협을 비롯한 사람들을 보자 끊임없이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질렀다. 다만 그의 목소리는 금색 빛기둥에 막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빛기둥 바깥에는 잿빛 옷을 입은 어린 승려 하나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경문을 읊조리며 허공에 점점이 금빛 광채를 떠올리고 있었다. 바로 선아였다.

    허공에 나타난 금빛 광채는 일전에 설법할 때와는 달리 금빛 연꽃이 아니라 불가의 진언들이었는데, 악마를 굴복시키는 스산한 기운을 뿜어냈다.

    선아가 염불을 외우자 이 불가의 진언들은 강류의 몸을 향해 벌떼처럼 몰려들어 쉬지 않고 체내로 녹아들었다.

    “선아 소사부께서는 무얼 하시는 겁니까?”

    심협이 이 광경에 의아한 듯 물었다.

    “선아가 복마진경(伏魔眞經)을 외워 강류의 몸에 깃든 마성을 몰아내는 중입니다.”

    해석선사는 그렇게 답하더니 선아를 두어 번 훑어보고는 곧 심협 일행에게 양해를 구했고, 선아 옆에 앉아 함께 경문을 읊기 시작했다.

    주위의 다른 승려들도 일제히 자리에 앉아 염불을 외웠다. 그들의 몸에서는 수십 줄기 금빛이 천천히 솟아올라 점점 밝아지더니 서로 함께 연결되어 마지막에는 웅대한 금빛 광진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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