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406화 (406/1,214)
  • 406화. 곤봉 그림자

    심협은 눈동자가 졸아들며 고함을 내질렀다. 옆에서 금빛 송곳이 빛을 크게 발하더니 파르르 떨리면서 무수한 금빛 송곳 형상이 나타났다. 이어서 그의 몸을 감고 빙글빙글 돌면서 검기와 도망을 향해 부딪쳐갔다.

    그의 방어법기들은 이미 모두 못 쓰게 되어버린 탓에, 그는 어쩔 수 없이 금빛 송곳으로 막을 수밖에 없었다.

    금속끼리 충돌하는 굉음이 잇달아 터져 나왔는데, 이 검기와 도망들은 보기와 달리 위력은 그저 그런 수준이라 일거에 부서져버렸다. 대신 그 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았기에, 심협은 일일이 대응하기에도 벅차 이 공간의 빈틈을 찾을 겨를이 없었다.

    반면 요풍은 느긋하게 주문을 외우면서 결인했고, 이에 따라 무수한 도망과 검기들이 쉬지 않고 나타나 물밀듯이 심협을 덮쳐왔다.

    심협은 전력을 다해 막았지만, 안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법력이 금빛 송곳을 작동시키다보니 이내 바닥을 드러내려 했다.

    위기의 순간, 심협은 오히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싸늘한 눈으로 손을 휘둘렀다. 이어서 금빛 천책을 불러냈고, 붉은 피를 뿜어 천책에 녹아들게 했다. 그러자 허상이었던 천책은 곧 암홍색 실체로 변했다.

    심협은 법력을 천책과 옥침에 불어넣으면서 이전에 법술을 시전했던 과정을 따라 꿈속의 수련 경지를 다시 한번 불러내려고 했다. 수명이 깎이겠지만, 지금은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기에 다른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어째서지?’

    천책과의 소통시도는 실패였다. 그것도 세 번이나 연달아!

    일전에는 위기 상황에서 천책이 스스로 꿈속 수련경지를 불러내게 했었는데, 지금은 직접 소환해보려 해도 소환할 수가 없었다.

    다급해진 심협은 법력을 옥침에 주입하여 있는 힘껏 운행했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고, 결국 법력이 완전히 바닥을 드러냈다. 이에 따라 주변의 금빛 송곳 형상도 드문드문해지더니 검기를 막아내지 못했고, 날카로운 바람소리에 이어 검망 두 줄기가 금빛 송곳의 방어를 뚫고 심협의 몸을 베었다.

    심협은 가슴에 커다란 상처 두 개가 생겨나면서 붉은 피가 튀었다. 그가 뒤로 나떨어지는 순간, 무수한 금빛 송곳 그림자가 만들어낸 방어가 순식간에 뚫렸고, 수천수만의 도망과 검기들이 그의 몸을 집어삼킬 것처럼 몰려들었다.

    ‘여기까지인가?’

    심협은 속으로 절망을 금치 못했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체내에 남은 모든 법력을 옥침에 주입했다.

    그런데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천책이 갑자기 붉은 빛을 세차게 내뿜더니, 기이한 힘의 파동이 흘러나왔고, 붉은 빛기둥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동시에 거대한 힘이 천책을 중심으로 사방팔방 폭발했다.

    모든 도망과 검기가 부서져 가을바람에 낙엽 쓸리듯 휩쓸려 날아갔고, 허공에 떠 있던 요풍도 튕겨 날아갔다.

    ‘성공이다!’

    심협은 죽다 살아난 기분이었다.

    붉은 빛기둥은 하늘로 솟구쳐 자흑색 하늘 속으로 번쩍하고 사라졌다. 그러자 붉은 빛기둥에 자흑색 하늘이 급격하게 변하여 틈이 갈라지고 그 너머의 푸른 하늘이 은은하게 드러났다.

    “뭐, 뭐야!”

    요풍은 가까스로 몸을 가누고는 깜짝 놀라 외쳤다.

    앞서 흑봉요에서 요풍은 느지막이 도착한 탓에 심협이 천책의 위력으로 꿈속의 수련 경지를 불러내는 광경을 보지 못했었다.

    심협은 이 광경에 활짝 웃으며 곧바로 틈새를 향해 날아갔다.

    한데 그때, 하얀 빛줄기가 빛기둥 깊숙한 곳에서 번득이더니 하얀 인영(人影)이 높은 하늘에서 쏜살같이 날아 내려와 심협의 몸속으로 녹아들었다.

    심협은 우뚝 멈춰 섰다. 그의 온몸에 몽롱한 금빛이 번득이더니 강한 바람이 온몸을 감으며 휘몰아쳤고, 몸 주위에 감도는 기운도 출규기에서 곧바로 폭증해 몇 호흡 만에 진선의 경지에 이르렀다.

    붉은 빛기둥은 한 차례 반짝이더니 이내 사라져버렸고, 자흑색 공간에 난 틈도 따라서 메워졌다.

    “이건……?”

    요풍은 심협에게서 거대한 위압을 느끼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입을 쩍 벌려 검은 기운 한 줄기를 토해내 주변 허공에 녹아들게 하는 동시에 양손을 연속해서 결인했다.

    하늘의 검은 태양이 갑자기 밝아지면서 주위 공간에 검은 빛이 떠올랐고, 윙윙거리는 소리가 울리면서, 이전보다 배나 많아진 검기와 도망이 날아들었다.

    도망과 검기들 위로 작열하는 검은 빛이 솟아오르며 뿜어내는 매서운 기운은 배로 강렬해졌다.

    심협은 여전히 평온하기 이를 데 없는 얼굴로 손가락을 구부려 허공에 있는 금빛 송곳을 가리켰다.

    금빛 송곳은 곧바로 수십 배나 커지더니 길이가 1장에 이르렀고, 그 위에 빛나는 금빛도 따라서 급격히 불어나 마치 자그마한 태양과도 같았다.

    심협이 두 손가락을 모으고 휘두르자, 꽈르릉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3장 크기의 금빛 송곳 형상들이 사방에 나타났다. 이어 송곳 형상과 금빛은 눈 깜짝할 사이에 반경 10여 장을 가득 채우고 빠른 속도로 빙빙 돌며 춤추듯이 허공을 날아다녔고, 날아들던 도망과 검기들은 그 안에 들어오자마자 완전히 부서져버렸고, 심협에게 조금도 닿지 못했다.

    심협은 시선을 요풍에게로 옮겨 손가락을 구부리고 그를 가리켰다.

    요풍은 간담이 서늘해져 곧장 미친 듯이 뒤로 물러났지만, 전방의 허공이 요동치면서 금빛 송곳이 느닷없이 하늘을 가르며 날아 내려왔다.

    크기가 무려 수백 장이나 되는 부채꼴 모양의 금빛이 갑자기 나타났고, 요풍이 반응할 틈도 없이 그의 몸을 베었다.

    촤악!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요풍의 몸이 두 토막 나 끝없는 금빛에 잡아먹혔다.

    하지만 부채꼴 모양의 금빛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 날아가 자흑색 공간을 매섭게 베었다.

    베인 부분마다 깊은 자국이 생겨났고, 주위의 공간도 심하게 진동하면서 곧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때, 공간 전체에 커다란 파동이 일어나더니 사람 머리통만 한, 기이한 자줏빛 구슬이 어디선가 나타났다.

    이 구슬에서는 상서로운 기운이 무럭무럭 솟아났고, 안쪽에는 자줏빛 노을이 자욱하게 용솟음쳐 도무지 예측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구슬에는 점점이 수많은 별 문양이 새겨져 있어 퍽 비범해 보였다.

    구슬에 이어 별안간 인영도 하나 나타났는데, 놀랍게도 방금 용각추에 반 토막이 나 죽임을 당한 요풍이었다. 허나 멀쩡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그 기운은 크게 저하된 상태였다.

    요풍이 분노한 표정으로 포효하며 손가락을 구부려 가리키자, 굵직한 검은 빛이 커다란 자색 구슬 안으로 주입되었다. 그러자 구슬에 아름다운 자색 노을이 피어올라 자흑색 공간에 녹아들었다.

    격렬하게 진동하던 자흑색 공간은 즉시 안정되었고, 공간 속 자흑색 빛은 엄청난 보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빠르게 밝아졌다.

    심협은 회심의 일격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미간을 살짝 찌푸렸으나, 이내 오른손을 들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손바닥에서 금빛이 크게 불어나 빠르게 응결되면서 순식간에 1장 크기의 금빛 곤봉 형상이 되었다.

    심협은 허공에 발걸음을 내딛으며 두 팔을 빠른 속도로 휘둘렀다.

    우웅!

    공간이 진동하는 소리가 울리면서 족히 열여섯 개의 금빛 곤봉 형상이 그의 몸 주변에 떠올라 마치 병사들이 진을 치듯 모였다. 꿈속에서 익힌 원왕(猿王)의 곤법이었다. 열여섯 개를 불러낸 이유는 그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곤봉이 법력으로 만들어낸 것이었기에 감당할 수 있는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심협 주위의 허공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면서 사방의 천지영기가 곤봉 형상을 향해 미친 듯이 몰려들었다. 그 속에서는 천지를 무너뜨릴 듯 무시무시한 기운이 왈칵 뿜어져 나왔다.

    “이…… 이게 무슨 신통력이지?”

    요풍은 크게 놀라다 못해 두려운 듯 주춤거렸다.

    주변의 자흑색 공간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미처 금빛 곤봉 형상을 휘두르기도 전에 공간 전체가 마치 낡은 천이나 종이가 찢어지듯 폭발했다. 동시에 두 사람은 큰 강줄기 위 상공에 다시 나타났다.

    이때 공중에서는 검은 구름이 소용돌이 치고 뱀 같은 번갯불이 미친 듯 춤을 추어 세상이 멸망할 것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자흑색 공간이 쪼개지자 자줏빛 구슬도 나타났다. 구슬은 원왕의 곤법에 담긴 엄청한 힘에 휘감겨 자주색 빛을 미친 듯 번쩍였고, 이어 쩌적 하고 긴 균열이 생겨나더니 모든 빛이 사라져버렸다.

    한편, 요풍 역시 곤법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하반신이 터져나갔고, 그는 더욱 두려움에 질린 눈으로 하늘의 이상 현상을 보더니 표정이 크게 변했다. 그는 부상을 돌볼 틈도 없이 입을 쩍 벌리고 혈광(血光)을 여러 덩이 토해내 자신의 망가진 몸뚱이에 녹아들게 했다. 그리고는 온몸에서 핏빛을 세차게 내뿜으며 별안간 핏빛 무지개로 변해 멀리 날아갔다. 그는 도망치는 와중에도 검은 빛을 핏빛 무지개 속에서 쏘아 보내, 쪼개진 자줏빛 구슬을 휘감아 가져가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뙤약볕처럼 뜨거운 금빛이 반대편에서 날아와 한 발 앞서 구슬을 휘감았고, 요풍이 쏘아 보낸 검은 빛은 순식간에 바스러졌다.

    이어서 자줏빛 구슬은 금빛에 휘감겨 심협의 손에 떨어졌다.

    줄줄이 휘황찬란한 금빛이 구슬 주위에 떠올라 금빛 부적 문양을 그리며 구슬을 에워싸고 빙글 돌더니, 이내 구슬 안으로 녹아들어갔다.

    구슬에는 강력한 봉인이 되어 있었으나, 엷은 금빛 광채가 한 층 떠올라 남은 모든 빛을 덮어버렸다. 그리고 이내 번쩍 하더니 심협에게 거두어졌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한편, 붉은 혈광으로 변한 요풍은 노여움이 가득한 포효를 내질렀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기에 질풍처럼 내달려 눈 깜짝할 사이에 멀리 사라졌다. 그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심협은 요풍이 날쌔게 도망치는 것을 지켜보다가 두 손을 결인하여 위로 치켜들었다. 그러자 하얀 형상이 그의 몸에서 분리되어 날아가 암홍색 천책으로 되돌아갔다.

    천책은 그 위의 핏빛이 빠르게 사그라들면서 다시 흐릿해졌고, 한 줄기 밝은 빛이 되어 임랑환 속의 옥침으로 날아들었다.

    검은 구름과 번개 줄기가 사라진 하늘 역시 원래의 모습을 회복했다.

    심협은 순간 휘청하더니 그대로 곤두박질쳤다.

    풍덩!

    강물로 들어간 그의 몸에 수백 개의 가느다란 상처가 빽빽하게 나타났고, 많은 피가 뿜어져 나오면서 강물이 붉게 물들었다.

    심협은 경련하듯이 온몸을 떨었고, 안색은 백지장처럼 창백해져 핏기라고는 전혀 없었다.

    얼마 전 꿈속 수련 경지를 소환하여 부상이 아직 다 낫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경지를 소환한 데다 이번에는 전보다도 더 오래 그 상태를 지속한 탓에, 체내의 원기가 텅 빈 상태였다. 경맥도 여러 군데 파열되어 전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그때, 건곤대에서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와 심협의 몸을 감싸 안고 기슭으로 날아올랐다. 바로 귀장이었다.

    이런 심협의 모습에 귀장은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의 귀기는 지나치게 음산하고 차가워 심협의 치료를 돕지 못했고, 회복을 돕는 단약도 없었기에 그저 애만 태울 뿐이었다.

    심협은 남은 법력을 움직여 임랑환에서 치료 단약을 꺼내려고 애썼다. 단약을 먹을 수만 있다면 원기를 보충하여 대개박술을 운공해 잠시 상태를 안정시킬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의 체내에는 법력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아서 임랑환을 열 수조차 없었다.

    외력의 도움도 없고 체내의 법력이 완전히 동이 난 터라 부상을 안정시킬 수 없는 데다 출혈이 심해 체온이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설마 이렇게 죽는 건가……? 예상치도 못했던 죽음이로군.’

    그는 속으로 쓰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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