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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405화 (405/1,214)
  • 405화. 빙의

    우르릉! 쾅!

    천둥소리가 진동했다.

    벼락에 나가떨어진 강류의 가슴팍은 온통 새까맣게 그을렸으며, 몸에 지닌 마기도 대부분 흩어져버렸다.

    한데 놀랍게도 강류는 멀쩡한 듯 몸을 한 바퀴 굴려 다시 일어섰다.

    “이 법보의 위력은 실로 놀라워서 나의 통천금보부(通天禁寶符)로는 그리 오래 가둬놓을 수 없으니 어서 저자를 붙잡으시오!”

    멀리서 인영이 돌진해오며 크게 외쳤다. 바로 육화명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심협과 해석선사는 곧바로 각자의 법보를 작동시켰다.

    금빛 송곳은 강렬한 금빛을 발했고, 주위에는 용의 허상이 나타나더니 몇 배나 빨라져 휙 소리를 내며 강류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해석선사는 선뜻 공격하지 않았다.

    그때, 아래쪽 금산사 전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기 시작했고, 절 안 곳곳에서 금빛이 솟아올랐다.

    한편, 금산사 위쪽 하늘도 빠르게 진동하며 구름 사이로 금색 빛줄기들이 비쳐 온 하늘이 빠르게 금빛으로 물들었다.

    강류는 안색이 크게 변하여 입을 쩍 벌리고 시커먼 마광(魔光)을 내뿜었고, 마광은 검은 창으로 변하더니 금빛 송곳에 맞섰다.

    순간 요란한 굉음이 울리며 검은색과 금색 빛이 격렬하게 뒤얽혔는데 놀랍게도 그 위력은 우열을 가릴 수가 없어 쉽사리 승부가 나지 않았다.

    강류는 낯빛이 창백하고 기운이 쇠약해진 것이, 이 신통력을 쓰는 데에도 엄청난 기운을 소모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숨을 몰아쉬며 몸을 휘리릭 말더니 검붉은 무지개로 변해 멀리 날아갔다.

    한편, 자금색 발우 위의 하얀 빛도 격렬하게 요동치면서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부서졌고, 자금색 빛이 다시 밝아지면서 강류를 따라 날아갔다.

    심협도 법력 소모가 극심한 상태임에도 뒤따라가려 했지만 곧 금산사와 하늘의 이상을 알아차렸고, 해석선사가 느긋하게 있었기에 일단 멈춰 섰다.

    “금강적멸대진은 당시 법명조사께서 직접 설치하셨지. 처음부터 도망쳤다면 달아날 희망이 조금이나마 있었겠지만, 이제와 달아나기에는 너무 늦었다.”

    해석선사는 손을 뒤집어 금빛 진기(陣旗)를 꺼내 강류가 도망친 방향의 허공을 가리켰다. 그 깃발 위로 무시무시한 법력 파동이 피어올랐다.

    금산사 위쪽 하늘의 금빛이 갑자기 몇 배로 강렬해지더니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크게 울리면서 굵직한 금색 빛줄기가 하늘에서 내려와 정확하게 강류의 몸에 꽂혔다.

    강류가 순식간에 추락하여 땅바닥에 세게 처박히면서 하늘을 뒤덮을 듯한 흙먼지가 일어났고, 그는 마치 손바닥에 얻어맞은 파리처럼 반항할 힘이 전혀 없었다.

    이에 심협은 눈에 희색을 띠며 걍류에게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그의 안색이 급변했다. 검은 기운 한 가닥이 강류의 몸에서 빠져나와 땅속으로 스며들어 멀리 달아나는 것을 예리하게 알아차렸던 것이다.

    검은 기운은 지극히 순수한 마기의 파동을 뿜어냈는데, 진짜 마족이라도 되는 것처럼 강류를 비롯해 심협이 예전에 만나본 수많은 마화된 것들이 지닌 마기보다 더 순수했다.

    검은 기운은 땅속에 있었지만, 속도가 무척이나 빨라서 눈 깜짝할 새에 수백 장 앞을 나아가 곧 시야에서 사라질 것만 같았다.

    심협은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겨를도 없이, 결인하고 순양검배를 꺼내 인검합일을 시전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붉은 검홍으로 변해 번갯불처럼 검은 기운을 추격했다.

    해석선사와 육화명 등은 그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쫓고 쫓기며 순식간에 하늘가로 사라지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심협은 어검술을 전력으로 발휘하여 마기의 뒤꽁무니를 바짝 쫓았고, 이내 금산사를 벗어났다.

    상대가 줄곧 땅속으로 이동한 까닭에 심협은 뾰족한 수 없이 일단 이렇게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저 앞에서 물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곧 커다란 강이 나타났다.

    심협은 기뻐하며 손을 뒤집어 푸른 보주(寶珠) 한 알을 꺼내 양손을 결인했다. 일전에 정교금에게서 받은 진해주(鎭海珠)였다.

    푸른 구슬에서는 가닥가닥 푸른 빛이 피어올랐고, 안에서 성난 파도 같은 물소리가 들려왔으며, 주위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그러자 몇 리나 뻗어 있는 강물이 곧 격렬하게 용솟음치더니, 수십 장 높이의 거대한 물 장벽이 생겨났고, 강물은 땅속으로 더 깊숙이 스며들어 진흙 속에 촘촘한 물 장막을 이루어 상당한 범위를 뒤덮었다. 이에 전방의 모든 길이 차단됐다.

    또한 백 줄기에 달하는 밧줄 모양 물줄기가 땅속을 내달리며 검은 기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는 진해주가 펼친 어수지술로, 위력이 족히 몇 곱절은 더 커졌다.

    검은 기운도 뭔가를 알아차렸는지 갑자기 멈춰 서더니 땅속에서 튀어나왔다.

    그 순간, 심협이 손에 든 금빛 송곳을 환하게 번득이며 쏘아보내려 했다.

    그때, 조금 쉰 목소리가 검은 기운 안에서 들려왔다.

    “심협, 따져보니 이번이 우리의 세 번째 만남이로구나.”

    이어서 엷은 검은 기운이 빠르게 불어나더니 검은 사람 형체로 변했다.

    이를 본 심협의 동공이 확 졸아들었다. 매우 낯이 익은 데다 심지어 얼마 전에 흑봉요에서도 만난 적이 있는 눈앞의 상대는 바로 요풍이었다.

    “요풍! 네놈이 강류의 몸속에 깃들어 있었구나! 어쩐지 그가 지닌 마기가 대단하다 했지. 이 모든 것이 네가 벌인 수작이냐?”

    그는 이내 평정을 되찾고는 손에 든 금빛 송곳을 거두며 나지막이 물었다.

    “그 어린 화상이 힘을 원하기에 힘을 빌려줬을 뿐인데 어찌 수작이라 할 수 있겠느냐?”

    요풍이 킥킥대며 말했다.

    “금산사는 금선자가 환생한 곳이다. 하필 이 지역을 노리다니, 도대체 목적이 무엇이냐?”

    심협은 요풍을 빤히 노려보았다.

    “오, 제법 많은 일을 알고 있구나.”

    요풍이 제법이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심협을 보았다.

    “네 계획이 그리 감쪽같지는 않더군. 너희 마족들의 동향은 원 국사께서 이미 똑똑히 점쳐 놓으셨다. 나는 그분의 명을 받아 네가 깔아둔 포석을 쳐부수러 온 것이다!”

    심협이 차게 웃으며 원천강의 이름을 내세웠다.

    “원천강…….”

    요풍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식었는데, 두려워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심협은 요풍이 생각에 잠긴 것을 보고는 떠보듯 버럭 외쳤다.

    “너는 마조(魔祖) 치우와 무슨 관계냐? 그가 환생한 마혼이냐?”

    요풍은 그 말에 흠칫 떨더니 곧 무시무시한 눈길로 심협을 노려보았다.

    “네가 어찌 마혼의 환생에 대해 아는 것이냐? 어디서 들었지?”

    심협은 씩 웃었다. 요풍의 반응으로 보아, 그가 마혼의 환생까지는 아니더라도 환생한 마혼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사실 요풍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바로 공격하지 않은 것도 치우와 환생한 마혼에 관한 정보를 얻어내기 위함이었다.

    “내 말하지 않았느냐. 원 국사께서는 너희 마족의 일에 대해 손금 보듯 훤히 꿰뚫고 계신다고……. 그 어르신은 신통력이 입신의 경지에 이르셨고, 하늘의 도에 통달하셨거늘, 치우의 그런 수작을 정말로 숨길 수 있다고 여긴 것이냐?”

    심협은 냉소하며 대화를 계속 이어가보려고 했다. 허나 요풍은 곧 냉정을 되찾더니 눈에 섬뜩한 살기를 띠었다.

    “원천강이 그런 중요한 정보를 네게 알려주었고, 네놈은 또 거듭 나의 큰일을 망쳤으니, 내 짐작이 과연 옳은 모양이구나. 너는 천명을 타고난 놈이야. 너를 죽이지 않으면 분명 마조의 대계를 방해할 것이다!”

    말을 마친 요풍이 손을 크게 휘두르자 거대한 검은 기운이 그의 몸에서 벌떼처럼 솟아나와 10여 자루의 검은 창 형상으로 변해 화살처럼 심협에게로 날아왔다. 앞서 강류가 금빛 송곳을 간단하게 막아냈던 흑창(黑槍) 공격이었다.

    흑창의 무시무시한 바람소리와 기세는 놀라웠다.

    심협은 더 이상 정보를 얻을 수 없게 됐다는 사실에 혀를 차고는, 아래쪽 강물로 휙 몸을 날리는 동시에 결인하며 손을 확 끌어당겼다.

    그의 머리 위에 있던 진해주에 푸른 빛이 반짝이더니 강물이 갑자기 폭발하며 굵은 물기둥 10여 개가 솟아올라 한 바퀴 회전했고, 그사이 열 배 이상 굵어진 푸른 수창(水槍)으로 변해 날아갔다.

    펑! 펑! 펑!

    굉음이 연달아 터져 나오면서 수창이 폭발했다. 흑창도 주춤주춤 물러나긴 했으나, 이내 다시 날아들었다.

    그때, 부글부글 들끓던 강물이 다시 용솟음치면서 수창, 수검(水劍), 수도(水刀)들이 천지를 뒤덮으며 흑창과 요풍을 향해 쏟아졌다.

    한편, 수십 장 너머 강물 위에서는 붉은 검홍이 물살을 가르고 나와 방향을 틀고 금산사로 날아갔다.

    지금 심협은 법력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요풍의 경지는 건업성에서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해진 상태라 그 깊이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에 그는 무리하게 요풍과 맞서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제야 도망치려 하다니, 너무 늦었다! 내가 왜 지금까지 너와 헛소리나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느냐? 하하하!”

    요풍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친 순간, 심협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갑자기 눈앞이 아득해지더니 산천과 강줄기가 사라졌고, 곧바로 자흑색(紫黑色) 세상이 나타났다. 하늘에는 거대한 검은 태양이 떠 있었고, 그 아래로는 온통 자흑색 산맥이 펼쳐져 있었다.

    이 산맥에는 놀랍게도 거대한 칼날 숲들이 무수히 우뚝 솟아 있었는데, 강력한 도망(刀芒)과 검기가 매섭게 찔러왔다.

    “큭!”

    심협은 온몸을 파고드는 극심한 통증에 참지 못하고 신음하며 황급히 양손을 결인했다. 머리 위의 진해주가 파란 빛을 환하게 발하더니 푸른 빛 덮개를 만들어 그의 몸을 겹겹이 감쌌다.

    이 푸른 빛은 바다처럼 깊어, 아래쪽에서 날아오는 도망과 검기는 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반 이상 흡수되었다. 그러자 심협은 고통이 조금 누그러져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는 어디지? 환술인가?”

    심협은 부주진신법을 운공했지만, 주위의 자흑색 세상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통증도 그대로였다.

    “뭐야! 환술이 아니라고? 그렇다면 설마…… 진법 금제인가?”

    그는 안색이 어두워졌고, 혼자 뒤쫓은 것을 조금 후회했다.

    그때, 허공에 파동이 일더니 요풍의 모습이 나타나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진법 금제? 흥! 우리 마족이 어찌 그런 저열한 수법을 쓰겠느냐! 이것은 치우 마조께서 전해주신 이십사마신주법(二十四魔神呪法) 중의 수미진언(須彌眞言)이니라!”

    “수미진언?”

    심협은 동공이 수축되며 뭔가를 말하려는 듯했지만, 다음 순간 그의 몸 아래에 붉은 검광이 번쩍 스치며 어디론가 번개같이 날아갔다.

    “흥! 어리석구나!”

    요풍은 쫓아가지도 않고 심협이 달아나도록 내버려두었다.

    심협은 있는 힘껏 날았지만, 어디로 가든 아래쪽은 칼의 산이었다.

    이 공간 곳곳마다 매서운 기운이 가득해서 그가 진해주를 움직여 방어하기 위해 애썼지만, 몸은 견뎌내지 못했다.

    이 맹렬한 검기는 그의 육신을 공격할 뿐만 아니라 뜻밖에 그의 신혼까지 파괴했다. 그의 머릿속 신혼은 끊임없이 진동하며 마치 무수한 작은 칼날들이 그 위를 파고드는 것만 같았다.

    극심한 통증뿐만 아니라, 그가 지닌 신혼의 힘도 계속해서 소모되며 빠르게 사라졌는데, 부주진신법을 운공해도 이 소모를 막을 수가 없었다.

    ‘이게 바로 마족의 진정한 신통력인가!’

    심협은 속으로 놀라 멈춰 서서는 더 이상 법력을 낭비하며 도망치지 않고 양손을 빠르게 결인했다.

    진해주 속에 교룡 허상이 튀어나와 심협 주위를 맴돌면서 춤추듯 날았고, 우렁찬 용 울음소리를 내며 주위의 매서운 검기들을 막아냈다.

    ‘수미진언이 뭔지는 몰라도 공간 금제와 비슷한 신통력일 테니 분명 해결할 방법이 있을 거야.’

    그는 신식을 주위로 뻗어 이 자흑색 공간의 틈새를 찾아보려 했다.

    한데 그때, 머리 위 하늘에 번쩍 요풍의 모습이 나타났고, 그는 마족의 주문인 듯,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읊조리더니 손가락을 굽혀 심협을 가리켰다.

    공중에서 검은 빛이 번쩍이더니 길이가 족히 수백 장에 이를 듯한, 거대한 검은 검기가 난데없이 나타나 산을 가르고 바다를 쪼갤 기세로 심협을 베었다.

    주위 다른 곳의 허공에도 커다란 파동이 일어나면서 줄줄이 검기와 도망이 심협에게로 날아들었다. 마치 갈기갈기 찢어 죽이려는 듯한 기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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