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404화 (404/1,214)
  • 404화. 봉인

    “저들을 데리고 물러가게!”

    해석선사는 진중한 표정으로 분노를 가라앉히며 주위의 승려들에게 지시했다. 뒤이어 전음으로 자석 장로에게 명했다.

    ‘자석 사제, 자네는 가서 금강적멸대진(金剛寂滅大陣)을 작동시키게!’

    그러자 자석 장로가 주저하며 역시 전음으로 답했다.

    ‘금강적멸대진! 사형, 정말로 강류를 죽이시려는 겁니까? 그는 금선자의 환생입니다!’

    ‘적멸금광(寂滅金光)으로 그를 제압한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세!’

    해석선사도 내키지 않는 듯 잠시 머뭇거렸으나, 이내 그렇게 명했다.

    자석 장로는 급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금산사 안으로 달렸다.

    다른 승려들은 당석 장로와 노승를 조심히 끌어안고는 재빨리 광장을 떠났다.

    해석선사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마기가 넘실대는 검은 빛기둥을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암금색 지팡이를 힘껏 휘둘렀다.

    콰르릉!

    맹렬한 소리와 함께 검은 빛기둥 상공에 거대한 금빛 지팡이 형상이 수십 줄기가 나타나 커다란 산을 이루며 일격에 검은 빛기둥을 내리쳤다.

    우르릉! 쾅! 퍼펑!

    굉음이 잇달아 지나간 뒤, 검은 빛기둥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검은 그림자가 한 발 앞서 튀어나오더니 수십 장을 물러나 내려섰다.물론 그는 강류였다.

    그의 겉모습은 또다시 크게 변해 있었다. 체구는 훨씬 더 커졌고, 피부에는 가닥가닥 검은 마문(魔紋)까지 떠올라 더할 수 없이 사악해 보였다. 몸 주변의 기운도 폭발적으로 늘어나 출규 정점에 이른 상태였다.

    “이게 바로 마(魔)의 힘이다! 크하하하!”

    강류는 광기 어린 표정으로 미친 듯 웃었다.

    한편, 마수를 피하기 위해 뒤로 물러나 있던 심협은 이런 강류의 모습을 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금빛 송곳을 향해 날아갔다.

    “네 법보의 위력이 썩 괜찮긴 하다만, 내의 속박을 뚫고 가져갈 수 있다고 보는 게냐?”

    강류는 조소하며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자색 염주가 안에 휘감긴 금빛 송곳까지 품은 채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심협은 눈썹을 찌푸린 채, 몸에 푸른 빛을 번득이며 속도를 높였고, 동시에 손을 뒤집어 푸른 부적 뭉치를 꺼내 바스러뜨렸다. 바로 낙뢰부(落雷符)였다.

    쿠르릉!

    10여 줄기의 굵직한 은색 벼락이 나타나 은룡이 물에서 뛰쳐나오듯 허공을 가르며 강류에게 내리꽂혔다.

    동시에 가느다란 검은 그림자가 은밀히 나타나 심협의 몸에서 떨어져 내리더니 바닥에 바짝 붙은 채 크게 한 바퀴 돌아 강류에게로 날아갔다. 이 그림자는 회룡섭혼표(回龍攝魂鏢)였다.

    한편, 강류는 엄습해오는 10여 줄기의 벼락을 보고는 눈빛이 살짝 굳었고, 감히 함부로 맞서지 못하고 다섯 손가락을 흔들었다. 그러자 검붉고 짙은 마기가 솟아나와 순식간에 거대한 검은 방패를 만들어 머리 위를 막았다. 그 위에는 머리가 세 개에 팔이 여섯 개 달린 마신의 도안이 새겨져 있었다.

    꽈르릉! 콰쾅!

    굵직한 벼락들이 방패에 내리꽂히면서 우렛소리가 연달아 터졌다. 이에 검은 방패는 산산조각이 났고, 벼락 또한 몇 차례 번쩍이다가 흩어져버렸다.

    비록 낙뢰부의 공격을 막아내긴 했으나, 강류대사의 몸에 번득이던 검붉은 빛도 함께 어두워졌다. 이 검은 방패는 범상치 않은 비법이라 시전하면 원기가 크게 소모되는 것이 분명했다. 날아 돌아오는 자색 염주의 속도 역시 느려진 상태였다.

    한편, 심협의 아래쪽에서는 붉은 빛이 번득이더니 진홍색 검망이 나타났다. 그리고 인검합일(人劍合一)로 사람과 검이 한 몸이 되자 속도가 크게 증가하여 곧 염주를 따라잡을 것만 같았다.

    강류가 인상을 찡그리며 결인을 하려는데, 발아래 바닥이 움직이더니 검은 세침(細針)이 불쑥 튀어나와 그의 종아리를 찔렀다. 앞서 심협이 풀어준 회룡섭혼표였다.

    회룡섭혼표는 매우 날카로워 대번에 강류의 다리를 뚫고 지나 다른 쪽 다리까지 노렸다.

    “크아아!”

    강류는 분노의 포효를 내지르며 입을 쩍 벌려 검붉은 마염(魔炎) 덩어리를 뿜어냈다. 그러자 마염이 회룡섭혼표를 정면으로 뒤덮으며 그를 둘둘 휘감았다.

    회룡섭혼표는 슬픈 울부짖음 같은 맑은 소리를 냈고, 그 위의 영광(靈光)이 빠르게 약해지다가 곧 완전히 사라져 평범한 쇳조각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에 모두가 경악했으나, 심협만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회룡섭혼표로 인해 강류가 멈칫한 틈에 자색 염주를 따라잡았고, 손가락을 구부려 염주를 가리켰다.

    그 순간, 뼛속까지 파고드는 냉기를 지닌 하얀 한광(寒光)이 그의 소매 사이에서 쏘아져 나가 자줏빛 염주를 뒤덮었다. 이어 두껍고 하얀 얼음결정들이 한 겹 피어나 염주를 감싼 채 꽁꽁 얼려버렸고, 자줏빛 염주는 빛을 잃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이와 동시에 심협이 손을 휘두르자, 몸에 금빛이 스쳐 지나면서 염주와 그 안의 금빛 송곳까지 한꺼번에 천책 안으로 삼켜버렸다.

    강류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이내 잔뜩 노한 듯 얼굴이 일그러졌고, 두 손으로 결인하더니 심협을 가리켰다.

    끼이익!

    고막을 찢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면서 칠흑처럼 시커멓고 날카로운 빛살 두 줄기가 강류의 손에서 튀어나가 번쩍하고 허공으로 사라졌다. 빛살 표면에는 실오라기 같은 검은 화염이 어렴풋이 나타났다.

    무표정했던 심협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즉시 소매를 앞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앞에 방패와 작은 번(幡), 옥패 등 갖가지 법기가 나타났다. 지금껏 구한 하품 또는 중품의 방어법기들이었다.

    마지막 그중 하나, 커다랗고 거무스름한 우산만은 달랐다. 우산의 뒷면에는 검은 역사(力士) 네 사람의 형체가 나타나 손바닥으로, 우산 겉면을 떠받치고 심협의 온몸을 가렸다.

    이것은 일전에 노경에게서 얻은 극품법기인 혼원산으로, 15도 금제가 걸려 있어 방어력이 뛰어났다.

    두 줄기 빛살이 단번에 몇 가지 법기를 매섭게 찔렀다.

    챙그랑! 쨍!

    두 차례 쟁쟁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검은 빛살들이 방어법기들을 가뿐히 뚫고 혼원산에 꽂혔다.

    극품법기답게 혼원산은 앞선 법기들과는 달리 검은 빛을 두어 번 격렬하게 번득이며 버텨냈다. 그러나 이내 비단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표면에 작은 구멍들이 뚫렸고, 혼원산 위의 빛 또한 바람 빠진 공처럼 빠르게 날아 흩어졌다.

    혼원산은 뚫렸으나 검은 빛살들도 그 빛이 적잖이 줄어들었고, 속도도 크게 떨어진 상태였다. 이에 심협은 어검술로 빠르게 물러나면서 두 손을 연달아 튕겼다. 그러자 붉은 검기들이 폭우처럼 쏘아져 나와 검은 빛살 위를 때렸다.

    만약 법력만 충분했더라면 천책의 힘으로 검은 빛살들을 거둬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천책을 작동시키는 데에는 법력이 많이 소모되는 데다 방금 연달아 원기를 크게 소모한 탓에 법력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콰쾅! 쾅!

    굉음이 연거푸 들리더니 검기들이 줄줄이 부서졌고, 검은 빛살도 빠르게 소멸했다.

    그렇게 20여 개의 검기들이 박살났을 때, 검은 빛살도 힘을 잃고 완전히 사라졌다.

    심협은 한숨 돌리며 다시 어검술을 시전해 급히 뒤로 물러났다. 이어서 신식을 천책 공간으로 뻗어 금빛 송곳을 꺼내려 했다. 변신한 강류는 너무도 강력한 상태라 법보가 있어야만 상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천책 공간의 상황을 감지한 그의 표정은 대번에 굳어버렸다.

    천책 공간 속 금색 송곳은 조용히 하얀 얼음결정 안에 떠 있었지만, 뜻밖에도 자단목 염주와 금빛 광진(光陣)은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이럴 수가! 설마 자단목 염주가 실물이 아닌 법력으로 만들어낸 것이란 말인가? 천책 공간이 그와 강류의 연결고리를 차단해서 염주와 광진 모두 사라진 것일까?’

    심협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재빨리 금빛 송곳을 꺼내 법력을 불어넣었다.

    금빛 송곳에 다시 찬란한 금빛이 떠올라 주위의 하얀 얼음결정을 깨부수고 한 차례 파르르 떨더니, 수십 줄기의 금빛 송곳으로 변해 유성처럼 강류에게로 날아들었다.

    반대편에 있던 해석선사도 암금색 법장(*法杖: 승려들이 짚고 다니는 지팡이)을 움직여 다시 강류를 공격했다.

    수십 개의 지팡이 형상들이 마치 수천 갈래의 강이 나타난 것처럼 세차게 쏟아져 내려왔고, 이전의 공격보다 기세가 더욱 웅장했다.

    그러나 강류는 차게 웃으며 양손의 열 손가락을 몸 앞에서 수레바퀴처럼 바꾸더니, 손가락을 모아 자금색 발우를 가리켰다. 그러자 발우가 다시 배로 불어났고, 표면에는 자색 빛이 겹겹이 떠올라 성난 파도 같은 지팡이 형상을 맞았다.

    꽈르릉!

    산을 뒤흔드는 듯한 굉음이 연이어 울리면서 자금색 발우가 끊임없이 떨렸고, 표면에서는 눈부신 빛이 연거푸 폭발했다. 뿐만 아니라 발우의 주둥이 부분에는 커다란 자줏빛 부적 문양이 떠올라 빠르게 회전하며 소용돌이를 이루었다.

    맹렬한 흡입력이 자줏빛 소용돌이에서 솟구쳐 금빛 송곳 형상들을 뒤덮었다. 그러자 금빛 송곳 형상들은 갑자기 통제를 잃고 자금색 발우 쪽으로 날아갔다.

    심협은 화들짝 놀라 황급히 두 손을 결인하고 연달아 손가락을 튕겨냈다.

    수십 줄기 송곳 형상 사이로 금빛 송곳이 나타나 표면에 금빛을 환하게 발했고, 주위에는 금빛 용 그림자가 떠올랐다. 송곳은 이 흡입력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며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한편, 다른 송곳 형상들은 전부 자금색 발우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강류는 금빛 송곳을 거둬들이지 못한 것이 못마땅한 듯 인상을 살짝 찌푸렸지만, 더는 억지로 끌어당기지 않고 자금색 발우를 향해 몸을 던졌다.

    “그가 발우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다시는 공격할 수 없게 됩니다!”

    해석선사가 황급히 외치고는 입을 벌려 금빛 정혈을 토해냈다. 그의 정혈은 번쩍 하고 암금색 지팡이로 녹아들었다.

    이어 지팡이 끄트머리에서 불타(佛陀)의 얼굴이 솟아나왔고, 지팡이 몸체에서는 더없이 밝은 금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실체가 있는 듯한 지팡이 형상이 다시 나타나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기세로 강류를 향해 날아갔다.

    그가 두 손바닥을 맞비비자 금색 번갯불이 강류에게로 쏘아져 날아갔다.

    하지만 지팡이 형상이든 번갯불이든 자금색 발우에 다가가자마자 엄청난 흡입력에 휘감겨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심협은 이미 강류가 발우에서 튀어나온 것을 본 적이 있기에, 해석선사의 말을 듣자마자 나서서 막으려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그는 강류와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었고, 금빛 송곳을 안정시키느라 짬을 내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에 그는 낙뢰부를 한 장 꺼내 바스러뜨리자 강류를 향해 벼락이 한 줄기 내리꽂혔다.

    그러나 은빛 벼락은 자금색 발우에서 뿜어져 나오는 흡입력의 범위 안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방향을 옮겨 발우 안으로 들어갔다.

    강류의 눈에는 한 가닥 조롱이 스쳤다. 이 자금색 발우는 금선자가 남긴 법보로, 그 위력이 대단했으니 어찌 쉽게 뚫리겠는가?

    그의 몸에 검은 빛이 거세지면서 속도가 순식간에 빨라져 발우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그때였다. 멀리서 하얀 빛 한 줄기가 순식간에 수십 장을 뛰어넘어 번개처럼 날아와 자금색 발우에 꽂혔다. 이 빛은 하얀 부적이었는데, 그 위에는 복잡하고 신비한 문양이 가득했다.

    하얀 부적은 자금색 발우에 닿자 곧 그 안으로 녹아들었고, 발우 전체에 하얀빛이 한 층 떠올랐다. 부적 위에 가득한 영문(靈紋)은 마치 한 겹의 봉인 같아 보였다.

    발우 안의 자색 소용돌이가 얼어붙은 것처럼 멎었고, 소용돌이가 내뿜던 흡입력도 순식간에 사라져 발우 안으로 들어가려던 은빛 벼락과 금빛 지팡이 형상도 우뚝 멈췄다.

    펑!

    뒤이어 커다란 굉음이 울리면서, 뜻밖에도 하얀 빛에 부딪힌 강류가 경악하며 분노한 얼굴로 튕겨나왔다.

    반면 심협은 반색하며 결인하여 벼락을 끌어당겼다. 그러자 은빛 벼락이 방향을 살짝 틀어 강류의 몸에 내리꽂혔다. 수련 경지가 크게 발전하면서 낙뢰부를 조종하는 데 더욱 능숙해져서, 벼락의 공격 방향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