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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402화 (402/1,214)

402화. 폭로

심협은 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금봉우를 가지고 돌아왔으니 일이 원만하게 해결될 것이라 여겼는데 고화령의 말에 불길해진 것이다. 그렇다고 고화령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강류대사에게는 숨겨진 내막이 더 있는 것일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번에 흑봉요에 가고 금봉우를 구하기까지의 과정이 다소 이상하기는 했다. 강류의 말에 따르면 일전에 이미 흑봉요로 몇 번이고 사람들을 보냈다고 했는데, 흑봉요괴는 그 일에 대해 터럭만큼도 언급하지 않았다.

게다가 흑봉요괴의 실력은 이미 대승기에 이르러 있었건만, 강류대사는 잘못된 정보를 주었다. 천책이 갑자기 꿈속의 수련 경지를 불러오지 않았더라면 자신과 육화명은 분명 십사무생(十死無生)의 말로를 맞았을 것이다.

‘심형, 그대는 고화령의 말이 진짜인 것 같소? 어쩌면 어미를 잃고 상심하여 훼방을 놓을 수도 있지 않겠소?’

육화명이 전음으로 물었다.

‘보아하니 허튼소리는 아닌 것 같소. 게다가 지금 와서 흑봉요의 일을 다시 생각해보니 의심스러운 점이 많기도 하고……. 더욱이 강류대사가 수륙대회에 조그마한 문제라도 일으켜서는 안 되오. 이리 합시다. 육형은 고 도우와 여기서 잠깐 기다리시오. 내가 들어가서 살피고 오겠소.’

심협의 대답에 육화명이 다급히 전음으로 그를 말리려 했다.

‘심형 조급해하지 마시오. 우린 금산사와의 관계가 막 풀린 참인데 법석을 떨었다가 자칫하면 모든 수고가 수포로 돌아갈 거요. 고화령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말이오.’

심협이 살펴보겠다고 말하긴 했지만, 육화명은 그가 고화령의 말대로 보장을 열어젖히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행동은 금산사의 노여움을 크게 살 것이 분명했고, 이 많은 신도 앞에서 뒷감당을 하기란 쉽지 않을 터였다.

‘육형, 마음 놓으시오. 내 계획이 있으니, 큰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할 거요.’

심협은 씩 웃고는 예전에 단양자에게서 얻은 여우 가죽 부적을 꺼내 앞가슴에 붙인 뒤 법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복슬복슬한 분홍빛이 부적에서 솟구치더니 곧 그의 온몸을 뒤덮어 마치 여우 가죽을 뒤집어 쓴 것 같아 보였다.

몇 호흡 뒤, 모든 분홍빛이 그의 몸으로 사라졌고, 심협의 옷차림과 외모는 완전히 바뀌어 분홍빛 긴 치마를 입은 아리따운 여인이 되어 있었다.

“이게 무슨 부적이오? 실로 신기하오!”

육화명은 심협을 두어 번 훑어보며 감탄한 듯 말했다. 눈앞에서 기이하게 외모를 바꾸었으나 신식으로 살펴도 여전히 별다른 점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심협은 외모만 바뀐 것이 아니라 기운의 파동 역시 부적에 완전히 가려져 수련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다.

기운을 숨기기는 쉬우나 완벽히 숨기기란 매우 어렵다. 심지어 상대보다 경지가 훨씬 뛰어나더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고화령도 놀란 눈치였다.

“잔재주일 뿐이오. 그대들은 여기서 잠시 기다리시오. 내 가서 강류대사의 상황을 살펴보고 오겠소.”

심협도 이 부적의 효과가 이 정도로 좋을 줄은 몰랐기에 내심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고 그저 빙긋 웃었다. 다만 한 가지, 이 여우 가죽 부적을 사용하면 여인으로만 변신할 수 있어 조금 민망하긴 했다.

육화명은 심협이 이리도 신묘한 환술을 보이니 그제야 근심을 떨쳐버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심협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잿빛 나무상자 하나를 꺼내 들고 그길로 금산사로 향하여 이내 절문 앞에 도착했다.

문 앞에도 사람들이 가득 앉아 있어서 그는 인파를 비집고 좁은 틈을 하나 찾아 겨우 대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광장 안 군중의 가장자리를 따라 강류가 있는 높은 단상으로 접근했다. 금산사에는 고수들이 수도 없이 많아서 단상에 최대한 가까이 가야만 보장을 젖혀볼 수 있을 터였다.

“아미타불, 경내가 신도들로 이미 만석이니 여시주께서는 그리 밀고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얼굴에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중년 화상이 번쩍 나타나 심협을 가로막았다.

“대사님께서 이해해주셔요. 소첩의 부군께서 생전에 강류대사님을 몹시 동경하시어 줄곧 얼굴을 마주하고 그분의 설법을 듣고 싶어 하셨지요. 안타깝게도 기회가 없었는데 지금 부군께서는 불행히도 세상을 떠나셨답니다. 소첩 그 유골을 가지고 와 한을 풀어주려 합니다. 부디 소첩을 도와 강류대사님 가까운 곳에 자리를 좀 마련해주셔요.”

심협은 손에 든 목합을 들어 올리며 애처롭게 말했다.

“저런…… 시주께서 돌아가신 부군의 한을 풀어주시려는 거라면 승낙해드려야 마땅합니다만, 지금은 경내에 신도가 너무 많아 빈승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중년 화상은 재빠르게 심협의 몸을 훑어본 뒤, 음탕한 눈빛을 거두고 정중하게 말했다.

심협은 부아가 치밀고 소름이 끼쳐 용각단추를 꺼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지금은 참아야 했다.

“소첩도 대사님을 난처하게 해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이건 대사님께 드리는 약소한 선물입니다. 부디 사정을 좀 봐주세요.”

그는 선옥 몇 덩이가 든 보퉁이를 하나 꺼내서 중년 화상에게 건넸다.

중년 화상은 보퉁이에서 선옥이 짤랑이며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는 눈을 희번덕거리더니, 내색 않고 소매 사이로 챙겨 넣었다.

“아미타불, 여시주의 사장이 딱하니 빈승을 따라 오시지요.”

중년 화상은 불호를 읊조리더니 심협을 데리고 광장 옆의 어느 승사 건물로 들어갔다.

그 건물을 지나자 강류가 설법을 하고 있는 단상 근처였다. 자그마한 공터였는데, 바닥에는 부들방석 수십 개가 깔려 있었고, 이미 태반은 다 차 있는 상태였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하나같이 부귀한 사람들로, 이곳은 특별히 마련한 자리인 듯했다.

심협은 뜻밖에 이리도 가까이 앉을 수 있게 되자, 속으로 몰래 기뻐하며 중년 화상에게 감사를 표했다. 중년 화상은 더 머물지 않고 금세 물러갔다.

심협은 자리를 하나 차지하고 앉자마자 주위의 동정을 감지했다.

여우 가죽 부적은 정묘하긴 하지만, 그로서도 진짜로 모든 사람을 속여 넘길 자신은 없었다. 더욱이 해석선사나 강류는 다들 워낙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경지가 심오한 이들이니 속전속결을 해야만 했다.

강류의 실력은 고강해서 그도 섣불리 신식을 움직여 살펴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신식을 쓰지 않아도 심협의 탐지 능력은 상당히 예리했기에, 곧 주위에 감시하는 사람이 없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에 그는 곧바로 움직일 준비를 했다.

“……여래께서 설법하시는 것은 일상일미의 법이니, 이른바 해탈상, 이상, 멸상으로서……(……如來說法, 一相一味, 所謂解脫相, 離相, 滅相……).”

단상 위, 보장 안에서는 강류의 설법 소리가 흘러나왔다.

‘음? 목소리가 좀 이상한데?’

문득 심협의 눈빛이 번득였다.

그 목소리는 전에 들었던 강류의 목소리와 차이가 있었다. 다만 고화령이 주의를 주지 않았더라면 그도 알아채지 못했을 정도로 그 차이는 미묘했다.

심협은 부쩍 의심이 들었지만, 마땅한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이에 그는 생각을 접고, 손을 뒤집어 부적 다섯 장을 꺼낸 뒤 슬그머니 바스러뜨렸다. 바로 청풍파장부였다.

단상 근처 허공에 갑자기 푸른 빛이 크게 번득이더니, 수십 장 높이의 푸른 돌풍이 난데없이 나타나 거대한 회오리처럼 웅웅거리며 단상 위의 보장을 세차게 휩쓸었다. 보장은 심하게 떨리기 시작하며 곧 바람에 날아가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환한 금빛이 보장 안에서 쏘아져 나와 커다란 손바닥을 이루더니 보장을 꾹 내리눌렀다.

그러나 손바닥이 뭔가를 더 하기도 전에 금빛이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그러더니 환한 빛을 발하면서 팔뚝만 한 무수한 금빛 송곳으로 변해 좀 전에 나타난 손바닥을 폭우처럼 두들겼다.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퍼지고, 거대한 손은 순간 무수한 송곳 그림자에 관통당해 금빛 반딧불처럼 변해 흩어졌다.

손바닥의 보호가 사라지자 보장은 자연히 금빛 송곳 그림자에 갈기갈기 찢겨 바람을 타고 흩날렸고, 그 너머의 상황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난 터라 사람들은 그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했다.

한편, 심협은 단상 위를 자세히 보고는 반쯤 넋이 나가버렸다.

단상 위에는 뜻밖에도 어린 화상 둘이 앉아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강류였고, 다른 하나는 다름 아닌 선아였다.

“……이하법념과 이하법사와 이하법수며 이하득하법이니라……(……以何法念, 以何法思, 以何法修, 以何法得何法……).”

선아는 주위의 격변을 알아채지 못한 듯 여전히 머리를 한들한들 흔들며 설법을 하고 있었다.

“아니…….”

단상 아래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고 다들 그 자리에 얼이 빠져서는 눈앞의 광경을 감히 믿지 못했다. 누가 설명할 필요도 없이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모두가 깨달은 터였다.

“선아에게 대신 설법하게 하다니, 어쩐지 법회 때마다 보장으로 몸을 가리는 것이 이상하다 했지. 네가 세상 사람들을 기만하고 명성을 훔쳐 금선자의 환생 행세를 했구나!”

심협이 벌떡 일어나 크게 고함을 질렀다.

그는 마침내 고화령이 어째서 강류에게 부탁해봐야 소용없다고 했는지 깨달았다. 알고 보니 진정으로 설법하는 이는 선아였던 것이다. 강류가 장안에 가지 않으려 한 것도 몸에 마기 따위가 깃들어서가 아니라 아예 설법을 할 줄 모르기 때문이리라.

단상 아래에서도 이 말을 듣고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고, 강류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강류대사가 속임수를 썼다는 것을 깨닫고도 평소 강류대사에 대한 공경이 워낙 컸기에 감히 큰소리로 따지지는 못했다.

“너는 웬 놈이기에 이리 방만하게 구는 것이냐!”

강류가 벌떡 일어나 벌컥 화를 냈다. 동시에 그의 얼굴에는 괴이한 붉은 빛이 나타났고, 두 눈에서는 길이가 2촌에 이르는 섬뜩한 핏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은 고승이 아니라 악마에 가까웠다.

“강류, 마혈(魔血)이 또 발작을 일으킨 것이냐? 내 당장 복마경(伏魔經)을 읽어줄 테니 흥분을 가라앉혀라!”

선아가 퍼뜩 놀라 일어서며 황급히 말했다.

“꺼져!”

강류가 소매를 휘두르자 난폭한 기류가 선아를 날려버렸다.

선아는 수련 경지가 전혀 쌓이지 않은 터라 붉은 피를 왈칵 토해냈다.

이를 본 심협이 급히 결인하여 끌어당기자, 물줄기가 응집되어 부드러운 장막을 이루고는 선아의 몸을 떠받쳐 바닥에 내려놓았다.

“강류!”

선아는 그리 심하게 다치지는 않은 듯,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하지만 강류는 선아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양손을 몸 앞에서 결인해 온몸에서 강렬한 핏빛을 내뿜었다. 줄줄이 시뻘건 번개가 그 안에서 내달렸다.

이어서 그의 몸은 갑자기 빠른 속도로 불어나 순식간에 키가 2장에 이르는 거인이 되었는데, 얼굴은 여전히 아이의 모습 그대로였다. 피부는 온통 검붉게 변했고, 가느다란 검은 기운이 그 안에 감돌아 섬뜩한 마기가 느껴졌으며, 살기등등한 눈빛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요…… 요마다!”

“요마가 나타났다!”

“도망쳐!”

아래 광장의 인파들은 강류의 모습에 경악했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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