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97화 (397/1,214)
  • 397화. 잘못된 정보

    심협과 육화명의 머리 위에 검은 빛이 번득이더니, 처음 나타났던 사내의 모습이 번개처럼 다가들었다. 그는 양손에 가닥가닥 검은 빛이 휘감긴 검은 단검 두 자루를 움켜쥐고 두 사람의 머리를 내리 찔렀다.

    심협이 손을 휘두르자 손바닥에서 푸른 빛이 솟구치며 거북이 등껍질처럼 균열이 간 검푸른 원형 방패가 나타났다. 그 위로는 실체를 지닌 물결 모양의 푸른 빛이 응집되어 두 사람 머리 위를 막았다.

    깡!

    단검 두 자루가 방패 위의 푸른 빛에 가로막히면서 금속끼리 맞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조심하시오!”

    육화명이 외쳤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묵갑순 아래로 검은 칼끝이 불쑥 치고 들어와 심협의 어깨와 머리를 향해 곧장 날아들었다.

    “핫!”

    육화명이 기합을 내지르며 손바닥 한가운데 빛을 응집해 위로 올려쳤다. 그러자 빛으로 된 손바닥 하나가 쏜살같이 날아와 묵갑순 안쪽을 곧장 때렸다.

    육화명의 뜻을 눈치 챈 심협은 이 힘에 보조를 맞추어 위를 향해 손바닥을 번쩍 쳐들었다. 그러자 두 힘이 동시에 날아가면서 거대한 힘에 짓눌리던 묵갑순은 순식간에 태세를 바꾸어 거세게 위로 솟구쳤다.

    쾅!

    둔탁한 소리가 울리더니 묵갑순 위의 푸른 빛이 크게 진동했고, 그대로 사내를 날려버렸다.

    육화명은 이 기회에 곧장 몸을 날려 사내를 뒤쫓으려고 했지만, 발치의 땅이 갑자기 쩍 갈라지면서 새하얀 해골 손이 불쑥 튀어나와 그의 발목을 덥석 붙잡았다.

    이를 본 심협은 묵갑순을 거둬들일 틈도 없이 검결을 맺어 아래를 가리켰다. 그러자 허공에서 한 줄기 검광이 번쩍 날아와 육화명 발치에 비스듬히 꽂혔다.

    쩌적!

    지하에서 뻗어 나온 귀물의 손이 대번에 잘려 나갔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심협의 뒤에서 음산한 기운이 엄습했다. 이어서 한 여인이 마치 귀신처럼 바짝 달라붙더니 손에 맑고 투명한 하얀색 골검(骨劍)을 쥐고 그의 등 한복판을 곧장 찔렀다.

    위기일발의 상황, 돌연 심협의 등에 한 줄기 금빛이 번쩍이더니, 반 척 정도 길이에 살짝 구부러진 송곳이 느닷없이 나타나 팽이처럼 빠르게 빙글빙글 돌며 뒤로 날아갔다.

    금빛 송곳과 백골 장검은 날카롭게 맞부딪치면서 우열을 가릴 수 없이 팽팽하게 맞섰다.

    찰나간의 틈이 주어지자, 심협은 즉시 몸을 돌려 한 손으로 결인하고 뒤로 돌아 손바닥으로 떠밀려 했다.

    그러나 돌아선 순간, 그는 자신을 기습한 사람을 보고는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고화령, 너였구나!”

    그는 춘추관을 전멸시키고 자신과 백소천을 거의 사지로 몰아넣었던 원수를 이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기에 분노를 담아 외쳤다.

    그러나 고화령은 상대의 말에 의아한 표정이 되었는데, 마치 심협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심협은 증오와 분노가 번득이는 눈으로 손을 뻗어 밀어냈는데, 법력이 배로 솟구쳤다. 그러자 용각추 법보가 울리며 법력 파동에 따라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가 손을 들어 가리키자 금빛 송곳에서 강렬한 금빛이 피어올랐다.

    챙! 챙! 챙!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연달아 울렸고, 굵기가 팔뚝만 한 금빛 송곳 그림자 백여 개가 고화령을 향해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고화령은 곧장 한 손으로 백골장검을 들어 올려 앞을 막았고, 그 반동을 이용해 뒤로 스치듯 날아가면서 다른 손을 빠르게 몸 앞에서 결인했다. 그러자 등 뒤의 백골 날개가 별안간 몇 배로 불어나 그녀의 온몸을 감쌌다.

    금빛 송곳 그림자는 빗방울이 파초 잎을 내리치듯 뼈 날개 위로 떨어졌고, 숨 가쁜 폭발음이 울리면서 금빛 불티가 튀었다.

    뼈 날개는 몽롱한 하얀 빛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금빛 송곳 그림자의 연이은 공격에 쉬지 않고 떨리며 빠르게 엷어져 갔다.

    심협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손을 크게 휘두르자, 앞에 떠 있던 용각추에서 빛이 폭증하며 화살처럼 날아갔다.

    거듭 물러나며 벗어날 방법을 찾던 고화령은 문득 앞에서 무시무시한 파동이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순간 당황하여 재빨리 하얀 옥결(*玉玦: 한 쪽이 뚫린 고리모양 패옥) 하나를 꺼내 단숨에 으스러뜨렸다.

    그 순간, 유백색 빛이 옥결에서 흘러나와 그녀의 뼈 날개를 뒤덮었다. 그러자 뼈 날개에서 빛이 크게 불어나더니 표면에 법진 모양 도안이 맺혔고, 동시에 금빛 송곳이 다가와 양 날개가 겹친 곳에 꽂혔다.

    쾅!

    폭발음이 울렸다.

    강력하고 날카로운 힘이 용각추의 뾰족한 끄트머리를 뚫고 나와 허공에 뒤틀린 광흔(光痕)을 남겼다. 그러자 고화령의 두 날개 위 법진 문양도 눈부신 빛을 발하며 거세게 맞섰다.

    그 상태로 몇 호흡 지났을 때, 또 한 번의 폭발음이 울렸다. 그리고 용각추 끝에서 금빛 빛기둥이 쏘아져 나와 눈 깜짝할 새 유백색 법진을 깨부수고 곧장 두 날개를 관통하여 고화령의 오른쪽 쇄골 아래를 관통했다.

    “꺄아악!”

    고화령은 커다란 구멍에서 피를 뿜어내며 비명을 질렀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가떨어졌다.

    심협은 그녀의 가슴팍에 뚫린 구멍을 보면서도 속으로 탄식을 금치 못했다.

    ‘역시 아직 부족해. 완전히 제련했다면 지금쯤 저 여자는 결코 살아남지 못했을 텐데…….’

    법보인 용각추에는 총 18도 금제가 걸려 있는데, 지금 그의 경지로는 기껏해야 16도까지밖에 제련할 수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극품 법기의 상한선에 도달한 상태였다.

    심협은 콧방귀를 뀌며 한걸음에 따라붙어 고화령을 추격하려 했다.

    그때, 허공에 한 줄기 잔상이 어른거리더니 좀 전에 묵갑순에 맞고 날아갔던 사내가 다시 불쑥 튀어나왔다. 고화령을 위해 시간을 벌어주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심협은 원수를 눈앞에 두고 분노에 눈이 뒤집혀 있던 터라 벌컥 성을 냈다.

    “꺼져!”

    그는 버럭 고함을 지르며 손을 휘둘렀다.

    용각추에서 다시 강한 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백여 줄기의 금빛 송곳 그림자가 사내를 향해 날아갔다.

    사내는 단검을 집어던지고 한 손으로 결인하여 급하게 법결을 읊조렸다. 단검은 검은 빛을 크게 발했고, 순간 무수한 검은 검광이 흩어지면서 금빛 송곳 그림자들과 한데 뒤엉켰다.

    퍼펑! 펑!

    폭발음이 끊이지 않았고, 검광과 송곳 그림자가 격렬하게 충돌하면서 거대한 검영이 부서져 흩어졌다. 금빛 송곳 그림자도 적잖이 소멸되었다.

    사내는 곧장 남은 단검을 던졌다. 두 개의 단검이 동시에 날아오면서 허공에는 검은 검광이 순식간에 배로 늘어나 금빛 송곳 그림자를 내리눌렀다.

    사내가 이어서 반격을 가하려는 찰나, 뒤에서 갑자기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현치, 조심해!”

    현치라 불린 사내는 순간 심장이 덜컥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송곳 그림자 같은 빛이 갑자기 속도를 높여 돌진했다. 그 위로는 붉은 불길이 이글이글 타오르면서 쏜살같이 날아와 그의 가슴을 꿰뚫었다.

    “큭!”

    가슴이 관통당하는 통증을 느낄 새도 없이 이름 모를 업화가 그의 식해로 뛰어드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다음 순간 신혼이 불타며 목숨이 끊어졌다.

    “현치!”

    고화령은 현치의 죽음에 포효했다.

    그때, 커다란 고함이 그녀의 뒤에서 불쑥 들려왔다.

    “네 목숨부터 신경 쓰는 게 좋을 텐데!”

    어느새 육화명이 다가와 그녀의 등 한가운데를 향해 장검을 내찔렀다.

    너무도 갑작스런 공격에 고화령은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피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육화명의 칼끝이 막 그녀의 등에 꽂히려는 찰나, 두 사람 사이에 난데없이 검고 반투명한 빛의 장막이 솟아났다.

    캉!

    마치 단단한 바위를 찌른 것 같은 반동과 함께 육화명의 검이 튕겨나갔다.

    이를 본 심협이 재빨리 다가가려는데, 거대한 검은 봉황 한 마리가 머리 위 상공에서 거대한 발을 육화명 쪽으로 뻗었다. 그 발끝에서는 검은 빛이 뿜어져 나와 그를 가로막은 빛 장막을 응집시켰다.

    검은 봉황은 오만한 태도로 심협과 육화명을 내려다보았는데, 그 눈에는 혐오감이 가득했다.

    “한낱 인간 따위가 감히 흑봉요에 제멋대로 들어와 내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다니. 주제를 모르고 날뛰는구나!”

    흑봉은 사람의 언어로 내뱉으며 심협을 향해 입을 쩍 벌렸다. 뜨겁게 타오르는 검은 화염 한 줄기가 세차게 뿜어져 나와 파도처럼 아래쪽으로 밀려왔다.

    심협은 재빨리 손으로 결인하여 위를 향해 휘둘렀다.

    거대한 푸른 물결이 솟아올라 허공을 거꾸로 휩쓸며 검은 불길과 맞부딪쳤다.

    고화령은 이 광경을 보고 다시 심협의 모습을 본 뒤에야 마침내 외쳤다.

    “심협!”

    심협은 차게 웃었지만, 대꾸할 겨를은 없었다. 무명공법으로 불러온 물결이 뜻밖에도 검은 불길을 꺼뜨릴 수 없다는 사실에 당황했기 때문이다. 검은 불길은 오히려 기세가 더욱 맹렬해져 물결 표면을 타고 곧장 내달려 금세 코앞까지 덮쳐왔다.

    심협은 물의 법술을 당장 거둬들이고 손을 들어 묵갑순을 불러들여 막는 수밖에 없었다.

    그의 법력이 미친 듯이 주입되면서 묵갑순은 크게 빛을 발하며 순식간에 열 배로 불어났다.

    검은 불길은 푸른 빛을 불과 몇 호흡 만에 태워버리고는 이어서 방패를 향해 돌진했다.

    심협은 급히 결인하여 묵갑순을 두드렸다. 그러자 방패의 거북이 등껍질 문양 위로 물 속성의 부적 문양이 하나하나 떠올랐고, 빛을 잃어가던 거북이 등껍질에서 다시 짙푸른 빛이 번득이면서 작열하는 불길을 견뎌냈다.

    그러나 그 순간, 하늘에 떠 있던 검은 봉황이 느닷없이 사람으로 변해 머리 위의 세 가닥 금빛 머리카락을 문지르고는 심협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심협은 왠지 덜컥 불길한 마음이 들어 반사적으로 몸을 낮췄다.

    거의 동시에 반딧불 같은 금빛이 흑봉요괴의 손끝에서부터 번쩍 스쳐 지나갔다. 심지어 궤적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심협은 가슴에 날카로운 통증을 느꼈다.

    그가 고개를 숙여 보니, 몸 앞의 묵갑순과 명치 살짝 위에 엄지손가락만 한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보였다.

    “반응이 제법 빠르구나. 앞서 네가 령아(靈兒)의 가슴을 꿰뚫었으니, 이번 것은 답례인 셈이다. 허나 이제는 현치의 목숨 값을 갚아야지.”

    흑봉요괴는 칭찬하는 듯한 목소리로 내뱉더니 다섯 손가락으로 허공을 그러쥐었다. 그러자 검고 어두운 빛줄기가 심협 주위에 엉기더니, 시커멓고 커다란 짐승의 발이 심협에게서 약간 떨어진 곳에 나타나 허공을 움켜쥐었다.

    이어서 그녀가 육화명을 향해 다른 손을 휙 휘두르자, 검은 봉황 날개 허상이 떠올라 강력한 힘으로 휩쓸면서 허공에 거센 바람이 일고 검은 회오리가 휘몰아쳤다.

    육화명은 재빨리 검을 들어 막았지만, 산을 밀어버리고 바다를 뒤집을 법한 힘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라 튕겨나가며 왈칵 피를 토해냈다.

    ‘심형, 정보가 잘못 되었소. 이 흑봉요괴는 출규 중기가 아니라 적어도 출규 후기 정점, 심지어는 이미 대승기에 이른 듯하오!’

    그는 나가떨어지는 순간에도 심협에게 신식을 전했다.

    심협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으나,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의 머릿속은 어떻게 이 위기를 벗어날 것인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가 결인하자, 몸 밖에 물처럼 푸른 빛이 솟아오르며 피수결의 빛 장막이 온몸을 뒤덮었다. 뒤이어 그가 다시 결인하자 피수결 빛 장막 안에 물이 응집되어 시커멓고 커다란 발을 살짝 벌어지게 했다. 그러나 그 이상의 효과가 없었다.

    “흥! 하찮은 꾀를 쓰는구나.”

    흑봉요괴는 차갑게 비웃으며 다섯 손가락을 거칠게 오므렸다. 그러자 허공의 시커먼 발이 즉시 따라서 조여들면서 엄청난 압력이 사방에서 밀려들었다.

    펑!

    피수결 빛 장막은 중압에 터져버렸고, 수많은 물보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 속에는 눈에 띄는 검붉은 핏방울도 섞여 있었다.

    “심형!”

    멀리서 육화명이 다급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그때, 폭발했던 물보라 속에서 인영(人影) 하나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왔다. 그는 발아래 달그림자가 흩어지면서 이미 수십 장이나 옆으로 이동한 뒤였다.

    심협은 대개박술을 시전하면 가슴의 상처를 회복할 수 있으나, 그럴 만한 겨를이 없어 우선 최대한 빨리 벗어나려 했다.

    “어딜 도망가려고!”

    흑봉요괴가 고함을 지르며 입을 쩍 벌리자 검은 불길이 그녀의 입에서 곧장 뿜어져 나와 다시 심협의 등 한가운데를 향해 날아갔다.

    심협은 등 뒤에 뜨거운 기운이 덮쳐오는 것을 느끼고는 엄습하는 위기감에 곧바로 방향을 틀어 다른 쪽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뜻밖에도 뒤쪽의 불길은 생명을 가진 것처럼 따라서 방향을 바꾸어 그를 쫓아왔다.

    몇 차례 방향을 틀었지만, 심협은 불길의 추격을 피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불길과의 거리가 점점 좁혀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