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94화 (394/1,214)
  • 394화. 충돌

    심협은 안색이 급변해 오른손 다섯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붉은 검망 다섯 줄기가 쏘아져 나가 푸른 계도에 명중했다.

    쾅!

    굉음과 함께 붉은 빛과 푸른 빛이 한데 뒤얽혔다. 푸른 계도는 거꾸로 튕겨 날아갔고, 심협도 살짝 휘청대며 한 걸음 물러났다.

    그들이 맞붙은 곳에서부터 거센 충격파가 퍼져 나가자 안 그래도 무너져가던 집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줄줄이 그림자가 멀리서 날아와 눈 깜짝할 사이에 내려섰다. 이들은 모두 금산사의 승려들로, 우두머리는 당석 장로였다.

    그의 곁에는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간 노승이 하나 서 있었는데, 역시 출규기 경지였다. 다른 승려들의 경지는 모두 응혼기와 벽곡기였다.

    심협은 표정이 좋지 않았는데, 이 승려들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해석선사가 막 답을 해주려던 참에 방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당석 사제!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해석선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해석 사형, 처소를 부순 것은 죄송하오. 이 사제가 나중에 꼭 직접 다시 지어드리리다. 한데 사형께서는 이번 일에는 관여치 않는 것이 좋을 듯하오만.”

    당석 장로는 담담히 말한 뒤 시선을 심협과 육화명에게로 돌렸다.

    “강류대사님의 명을 받들어 이 두 놈을 잡아들여라!”

    당석 장로의 명령이 떨어지자 주위의 승려들이 두말 않고 달려들었다. 온갖 법기가 튀어나왔고, 형형색색의 빛들이 사나운 기세로 번득였다.

    심협은 금산사에 들어오고부터 줄곧 상대의 비위를 맞추고자 조심조심해왔지만, 내심 불쾌함을 애써 억누르던 참이었다. 그러나 지금, 가장 중요한 순간에 또다시 훼방을 놓자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말없이 한 걸음 나섰다. 그 순간, 그의 몸에서 푸른 빛이 맹렬히 뿜어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눈부신 파란 빛 덩어리로 변해 법기들을 맞이했다.

    이 빛 덩어리 가장 깊은 곳에는 하얀 빛이 번쩍이며 얼음장처럼 차가운 기운을 내뿜었다.

    법기들은 파란 빛 덩어리에 닿자마자 빨려 들어가더니 차가운 얼음에 갇힌 것처럼 움직임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심협이 무표정한 얼굴로 한 손을 휘두르자, 그의 몸에서 금빛 그림자가 번쩍 스쳐 지나더니 푸른 한기에 묶여 있던 법기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더욱이 법기와의 연결도 순식간에 끊어져버려서 도저히 감지할 수가 없었다.

    “이, 이게……?”

    주위의 승려들은 대경실색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당석 장로와 눈썹이 치켜 올라간 노승도 이 광경에 크게 놀랐다. 심협이 법기들을 거둬들인 방법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고, 그저 그의 몸에 금빛 그림자 한 줄기가 스치는 것만 눈치챘을 뿐인데 모든 법기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반면 순간적인 기지로 천책을 이용해 법기들을 거둬들인 심협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고, 한편으로는 더없이 기뻤다. 꿈속에서는 적의 화염이나 독기처럼 몸을 떠난 법력 공격만 거둬들였을 뿐이라 천책이 실체를 지닌 법기도 거둬들일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는데, 실제로 성공했으니 기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설레는 마음을 억누른 채, 당석 장로와 노승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틈을 타 그들을 향해 한쪽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몸 주변에 있던 푸른 빛이 10장 높이의 거대한 물결이 되어 두 사람을 덮쳤다.

    푸른 물결이 미처 닿기도 전에 거대한 힘이 먼저 웅웅 울리면서 당석 장로와 노승을 납작하게 만들려는 듯 내리눌렀고, 바닥이 깊게 파였다.

    이제 출규기에 도달한 심협은 차츰 무명공법의 본 위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당석 장로는 즉각 정신을 차리고 웅얼웅얼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온몸에 금빛이 활짝 피어나면서 피부가 황금빛으로 변했고, 체구도 빠르게 배 이상 불어나 순식간에 위엄 넘치는 금인(金人)이 되었다. 마치 요마들을 굴복시킨 금강나한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난폭하고 거대한 힘이 그의 몸에서 폭발하자 근처 공기가 콩 볶는 소리와 함께 연달아 터져나갔다. 땅바닥도 우르릉 흔들리면서 굵직한 균열 여러 갈래가 곧장 주변으로 뻗어나갔다.

    그가 지닌 기운도 순식간에 강해져서 갓 출규 중기에 접어든 상태에서 단번에 출규 중기 정점까지 치솟더니 출규 후기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당석 장로는 주먹을 크게 휘둘렀는데, 이 주먹은 느린 듯하면서도 빨랐고, 거센 금빛을 뿜어내 산이라도 뒤흔들 듯한 위력으로 푸른 물결을 두들겼다.

    옆에 있던 노승도 뭔가를 중얼거리더니, 손을 허리춤에 대고 내리쳤다. 그러자 노란 항마옥저(降魔玉杵)가 튀어나와 공중에서 번쩍하고 사라졌다.

    다음 순간, 항마옥저는 기이하게도 푸른 물결 위에 나타나더니 노란 빛을 크게 내뿜었다. 그 속에는 16도 금제가 어렴풋이 나타났다. 16도 금제가 걸린 극품법기였던 것이다!

    항마옥저는 바람을 타고 길이가 10여 장에 이를 정도로 커지더니 아래쪽 물결을 매섭게 내리쳤다.

    마치 자그마한 산이 곧장 내리누르는 듯, 항마옥저가 지나는 곳마다 허공이 뒤틀리는 것처럼 윙윙 울리는 소리를 냈다.

    세 개의 강력한 힘이 맞부딪치자 둔중한 천둥 같은 굉음이 울렸고, 허공이 순간 어두워지면서 심하게 몇 차례 흔들렸다.

    푸른 물결은 끝내 두 거대한 힘을 당해내지 못하고 폭발하면서, 가운데에서부터 두 토막으로 쪼개졌다.

    한데 이 토막 난 푸른 물결은 갑자기 말려 올라가더니 빙글빙글 회전하면서 두 사람을 둘러싸고 순식간에 거대한 소용돌이를 이루었다. 동시에 사방에서 더욱 놀라운 힘이 솟구쳐 가운데로 말려들었다.

    눈썹이 치켜 올라간 노인은 미처 방비할 틈도 없이 회오리를 따라 빙글빙글 회전했다. 거대한 금인으로 변한 당석 장로는 몸이 산처럼 묵직해 버텨낼 수 있었으나, 소용돌이의 힘에 심하게 비틀거렸다.

    심협은 두 발에 달빛을 크게 발하면서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다음 순간 10여 장을 뛰어넘어 마치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두 사람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꿈속에서 사월보를 수련했던 경험에 수련 경지까지 크게 오르자 이제 현실에서의 사월보도 완벽에 가까워진 것이다.

    심협의 곁에는 어느새 하얗고 작은 주머니, 건곤대가 나타났다. 이 주머니 입구에서는 대단한 한기를 띤 하얀 빛이 뿜어져 나와 노승의 노란 항마옥저와 당석 장로의 푸른 계도를 휘감았다.

    항마옥저와 푸른 계도 위에 순간 두껍고 하얀 얼음 결정이 맺히더니, 두 법기가 우뚝 멈춰 섰다.

    심협이 오른손을 휘둘러 다시 천책의 흡수 신통력을 발동시키자 몸에 금빛 그림자가 번쩍 스치면서 노랑 항마옥저와 푸른 계도도 별안간 사라졌다.

    동시에 그의 왼쪽 손바닥 한가운데에서는 붉은 빛이 번쩍이더니 빨간 깃털부채, 오화선이 나타났다. 심협은 당석 장로를 향해 부채를 세차게 휘둘렀다.

    오화선에 달린 일곱 깃털이 밝은 빛을 피워내며 공작 꼬리처럼 펼쳐졌다. 그리고는 당석 장로에게로 오색 불기둥을 쏘아 보냈다.

    당석 장로의 몸에서는 금빛이 미친 듯이 번쩍거렸는데, 더는 버티기 힘들어 보였다. 오색 불기둥에서는 뜨거운 힘이 뿜어져 나와 그의 체내로 주입되었다.

    당석 장로는 안색이 크게 변해 전력으로 금강복마대법을 운공했고, 이에 몸의 금빛이 짙어지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그런데 그때, 바늘처럼 가느다란 진홍색 검기가 불기둥 속에서 쏘아져 나와 그의 몸을 보호하던 금빛을 단숨에 관통해 그의 이마에 꽂혔다.

    땅!

    당석 장로의 몸은 단단하기 이를 데 없어서 검기는 단숨에 부러져 나갔다. 하지만 반투명한 검붉은 불꽃이 검기에서 튀어나와 독사가 혀를 날름거리듯 당석 장로의 미간으로 들어갔다. 바로 홍련업화였다.

    “헛!”

    당석 장로는 마치 독사에게 물린 것처럼 신혼에 더없는 고통을 느꼈고, 비명을 내지르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았다. 얼굴이 크게 일그러진 상태였고, 더는 공법 운공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때, 오색 불기둥이 펑하고 부서지면서 거대한 오색 햇빛으로 변해 당석 장로의 몸을 강타했다.

    꽝!

    당석 장로의 몸에 번득이던 금빛은 순식간에 깨끗이 사라졌고, 운석에 부딪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대로 튕겨나가 무너진 벽에 처박히며 왈칵 붉은 피를 뿜어냈다.

    눈썹이 치켜 올라간 노승 역시 오색 햇빛의 영향으로 멀리 나가 떨어졌지만, 비교적 거리가 있었기에 큰 해는 입지 않았다.

    장내는 순식간에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모두가 놀란 눈으로 심협을 보고 있었다.

    당석 장로의 명이 떨어진 후부터 고작 두세 번 호흡할 정도의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모두의 법기를 전부 빼앗겼다. 심지어 당석 장로는 대번에 금신(金身)이 격파당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완전히 압살당한 것이다.

    육화명마저 깜짝 놀라 심협을 쳐다보았다. 심협의 실력은 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

    반면 심협을 바라보는 해석선사의 눈에는 기이한 빛이 스쳐 지났다.

    가볍게 숨을 내뱉어 마음을 가라앉힌 심협은 주위의 승려들을 쓱 둘러보고는 몸을 돌려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낭랑하고 앳된 목소리가 어디선가 울렸다.

    “능력이 제법인데, 어디 나의 일격도 좀 받아 보시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심협의 머리 위에서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울리더니, 자금색 발우 하나가 난데없이 나타났다. 발우 안쪽 가장자리에서는 자금색 기운이 뿜어져 나와 회전하면서 심협을 뒤덮었다.

    이 자금색 기운은 비록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심협은 천지를 뒤덮는 듯한 압력을 느꼈다. 그의 몸에 빛나던 푸른 빛은 더 격렬하게 요동치다가 그대로 짓눌려 흩어져버렸다.

    ‘이건…… 법보잖아!’

    그는 안색이 크게 변하더니 두 발에 달빛을 번득이며 한 줄기 흐릿한 잔상으로 변해 급히 옆으로 스쳐 지났다.

    하지만 자금색 발우는 뜻밖에도 심협을 쫓아왔다. 심협의 속도가 제아무리 빨라도 벗어날 수 없었고, 심지어 거리가 좁혀지고 있었다.

    심협은 피할 수 없음을 알게 되자, 우뚝 멈추더니 오화선에서 불빛을 거세게 내뿜으면서 허공을 향해 매섭게 휘둘렀다. 그러자 쟁쟁한 봉황의 울음소리가 하늘을 찌를 듯 울려 퍼졌고, 거대한 오색 화봉(火鳳) 한 마리가 부채에서부터 날아가 두 날개를 활짝 펴고 자금색 발우에 부딪쳤다.

    조금 전 당석 장로에 맞섰을 때 그는 오화선의 모든 위력을 발휘하지 않았던 것이다. 상대방에게 중상을 입혀서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쾅!

    굉음과 함께 커다란 오색 부적 문양을 번득이는 광채가 어디선가 나타났다. 이 빛은 이전의 오색 햇빛만큼 휘황찬란하지는 않았지만, 그 안에 담긴 영압은 실로 무시무시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감히 숨조차 쉴 수 없을 지경이었다.

    떨어져 내리던 자금색 발우는 오색 광채에 막혀 잠시 멈춰 섰다.

    한편, 심협은 이 기회를 틈타 두 발에서 달빛을 내뿜으며 뒤로 날아가 마침내 자신을 뒤덮던 자금색 발우의 세력 범위에서 벗어났다. 그러자 마치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의 견제에서 벗어난 듯 몸이 가뿐해졌다.

    ‘그렇군. 저 발우는 보이지 않는 힘에 기대어 목표물을 묶어두는 거였어.’

    심협은 한숨 돌린 뒤, 번쩍 하고 사라졌다가 다음 순간 육화명 곁에 나타났다.

    “흥!”

    조금 전의 앳된 목소리가 콧방귀를 뀌었다. 동시에 자금색 발우가 환하게 밝아지더니 안에서 자금색 빛기둥을 발사해 아래쪽 오색 광채에 부딪쳤다.

    오색 광채는 잠시 멈칫하더니 썩은 나뭇가지 꺾이듯 갈라져 완전히 흩어져버렸다.

    반면 자금색 발우는 한 바퀴 빙글 돌더니 계속해서 심협을 향해 날아왔다.

    심협은 가슴이 철렁하여 즉시 체내의 금빛 용뿔 송곳과 교감했다. 오화선은 위력이 대단한 극품법기지만, 법보 앞에서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때,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류, 그만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