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90화 (390/1,214)
  • 390화. 사람은 나이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세 사람은 곧바로 나섰고, 금방 어느 화려한 선원 바깥에 도착했다.

    그곳은 다른 곳보다 더욱 사치스러웠는데, 처마는 전부 순금 기왓장이었고, 벽면도 백옥으로 쌓았으며, 문과 창문까지 모두 고급 단목으로 꾸며 놓았다.

    ‘여기가 바로 강류대사의 처소입니다. 그분은 성정이 조금…… 특별하시니, 두 분께서는 그분 앞에서 예의를 지키셔야 합니다.’

    자석장로는 심협과 육화명에게 전음으로 주의를 주었고, 두 사람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자석장로는 조금 마음을 놓고 두 사람을 안내해 선원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휙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물체가 하나 방에서 날아왔다. 그것은 뜻밖에도 찻주전자였는데,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너무 옅어! 맛이라곤 하나도 없지 않느냐! 내가 몇 번이나 말했을 텐데! 꿀을 더 넣으란 말이다!”

    낭랑하지만 우악스런 목소리가 방에서 흘러나왔다.

    “예! 제자가 가서 꿀차를 다시 우려 드리겠습니다.”

    하얀 옷의 사미승 하나가 허둥지둥 안쪽 선방(禪房)에서 튀어나왔다. 이 사미승은 어찌나 당황했는지 자석장로를 비롯한 세 사람을 의식하지도 못하고 쌩하니 달려 나갔다.

    이 광경에 심협과 육화명은 어안이 벙벙했다.

    안쪽은 크고 널찍한 대청이었는데, 텅 비어 있었다. 방 옆으로 반쯤 가려진 문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 안에 사람이 있는 듯했다.

    자석장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선방 문가로 걸어갔다. 하지만 섣불리 들어가지 않고 양손을 합장하며 말했다.

    “강류, 여기 두 분은 장안성에서 오신 귀한 손님이신데, 정 국공의 명을 받아 자네를 만나러 왔다 하네.”

    “뭔 놈의 정 국공이니 왕 국공이니……. 나는 법회 일을 준비하느라 바쁘오.”

    좀 전에 벼락같이 화를 내던 낭랑한 목소리가 흥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내키지 않는 듯한 대답이 들려왔다.

    육화명은 스승인 정교금을 무척 존경했기에 이런 무례한 말을 듣자 노여운 기색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고, 이를 본 심협이 재빨리 그를 만류해 진정시켰다.

    “강류, 정 국공께서는 우리 대당의 주춧돌이시니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네.”

    자석장로도 육화명의 안색을 눈여겨보고는 황급히 큰소리로 꾸짖었다.

    방에서는 낭랑하고 가벼운 웃음소리가 났지만, 더는 지나친 말은 하지 않았다.

    “여기 두 귀빈께서는 중요한 일이 있어 자네를 찾아 오셨다네. 얼마 전 장안성의 귀환으로 많은 장안성 백성들이 참혹한 죽음을 당한 까닭에 당조의 폐하께서 수륙대회를 열기로 결정하셨다 하네. 자네에게 장안성에서 대회를 주재하고 망령들을 천도해주기를 바라신다는군.”

    자석장로가 차분히 상황을 설명했으나, 낭랑한 목소리는 단번에 거절했다.

    “수륙대회? 나는 금산사를 지키느라 짬을 낼 수가 없으니 다른 고명한 분께 청하시오.”

    심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공수하며 앞으로 나섰다.

    “강류대사님, 이 일은 대당의 안위와 관련된 것이니 부디 나서주십시오. 보수가 필요하시다면 섭섭지 않게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상대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언짢은 기색이 가득했다.

    그때, 다른 목소리가 방 안에서 들려왔다.

    “강류 사형, 장안성의 망령들이 가엾습니다. 우리가 가서 그들을 천도해주십시다.”

    강류대사에 비해 훨씬 온화한 이 목소리에는 난세를 슬퍼하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듯한 감정이 묻어났다.

    한편, 심협과 육화명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저 방에 다른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입 다물고 네놈의 강…… 불경이나 계속 베껴 써라!”

    강류대사가 노기 띤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허나…….”

    그 온화한 목소리는 뭔가를 더 이야기하려는 듯했다.

    “닥쳐! 내 화를 돋웠다가는 장안에 갈 필요도 없이 네놈이 직접 금산사의 사형, 사제들을 천도하게 될 것이다!”

    강류대사가 음산하고 차갑게 으름장을 놓았다.

    “알겠습니다…….”

    온화한 목소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대꾸했다.

    “난 법회 경전 강론 준비를 해야 하니 바깥 분들은 마음대로 하시오.”

    강류대사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오더니, 반쯤 가려져 있던 방문이 탁 하고 닫혔다.

    육화명은 얼굴이 굳어갔다. 그는 강류대사가 분명 함께할 것이라고 심협에게 호언장담했는데, 뜻밖에도 상대가 가차 없이 거절해버린 것이다. 자신의 체면이 깎인 것은 작은 일이지만, 수륙대회가 지체되고 정 국공의 임무를 저버리는 것은 큰일이었다.

    심협의 표정도 몹시 어두웠다. 방 안을 바라보는 그의 눈길에는 의심이 조금 서려 있었다.

    “두 분, 강류는 일이 있어 바쁜 듯하니 이만 가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자석장로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두 사람에게 예를 갖춰 말했다.

    주인이 축객령(*逐客令: 진시황이 내렸던 객경 축출 명령으로, 손님을 내쫓는 말)을 내렸으니 심협과 육화명으로서는 아무리 달갑지 않더라도 계속 버티기 어려웠다. 이들은 다시 자석장로가 머무는 작은 선원으로 돌아갔다.

    “강류는 줄곧 저렇답니다. 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그가 장안에 가는 일은 없을 듯합니다.”

    자석장로가 유감스러운 듯 탄식했다.

    “듣기로는 강류대사님의 덕망이 높고 불리(佛理)가 깊다 하던데, 방금 그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 같았습니다. 방 안에 있던 사람이 정말 강류대사님입니까?”

    육화명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

    “출가한 사람은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방 안의 저 사람이 당연히 강류대사이지요. 시주께서는 빈승을 믿지 못하십니까? 소문이야 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부풀려지는 법이니, 전부 믿어서는 아니 되지요.”

    자석장로가 눈을 내리깔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물론 자석장로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육형의 말은 마음에 담아두지 마십시오. 한데 강류대사님의 방에 다른 이도 있는 것 같던데요?”

    심협이 재빨리 나서서 분위기를 수습한 뒤 물었다.

    “그 아이는 선아(禪兒)입니다. 강류의 동문 사제로, 둘이 함께 자라서 강류의 곁을 따르는 최측근이지요.”

    자석장로가 말했다.

    “선아라…….”

    심협이 눈썹꼬리를 치켜 올렸다.

    “아미타불. 아무튼 상황은 이렇게 됐습니다. 강류의 성격은 제멋대로라서 한번 결정한 이상 누구도 설득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다른 고승을 찾아보셔야 할 듯합니다.”

    자석장로는 두 손을 합장하고 불호를 읊조리며 말했다.

    “그 일은 급하지 않습니다. 귀사에서 곧 법회를 연다고 하니, 저희도 남아서 참관해도 될는지요? 불가의 이치에 퍽 흥미가 있답니다.”

    심협의 물음에 자석장로가 웃으며 답했다.

    “물론이지요. 강류는 성정이 괴팍하기는 하지만 설법은 기가 막힌답니다. 우리 같은 수사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지요.”

    “그렇습니까? 그럼 저희도 강류대사님의 고견을 경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심협 역시 웃으며 말했다.

    자석장로는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눈 뒤, 인사를 남기고 법회 일을 처리하러 갔다.

    떠나가기 전, 그는 두 사람에게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고 이곳 선원에 머물다가 법회가 열린 후에 나가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금산사 안에는 금지 구역이 많아서 외부인의 출입을 엄금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물론 심협과 육화명은 그러겠노라고 답했다.

    “심형, 일이 이리 되었으니 이제 어쩐단 말이오? 게다가 그자는 성정이 포악하고 하는 말이 저속한 데다 향락에 빠져 있으니, 어찌 보아도 득도한 고승은 아니었소. 사부님과 원 국사께서 아마 소문을 듣고 오해하신 것 같은데, 그런 자를 장안으로 모셔간들 또 무슨 소용이 있겠소?”

    자석장로가 떠나자마자 육화명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확실히 조금 전의 강류는 덕망 높은 고승 같지 않긴 했소. 일단 법회에서 자세히 살펴보고, 만약 그가 명예나 얻으려 사람들을 속이는 자라면 국공 대인과 원 국사께 다른 적임자를 찾으시도록 청해봅시다.”

    심협도 강류대사에 대해 의구심이 들어 이렇게 답했다.

    육화명은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가부좌를 튼 채 조용히 기다렸다.

    곧 오시(午時: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가 되어 아득한 종소리가 연달아 세 번 들려왔다.

    심협과 육화명은 즉시 일어나 금산사 산문 근처의 광장에 이르렀다.

    이 무렵, 광장에는 참배객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는데, 하나같이 경건한 표정으로 광장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높은 백옥 단상을 바라보았다. 그 위쪽은 보장으로 가려져 있었는데, 바로 심협이 가져온 것이었다.

    문득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보니, 자줏빛 옷의 무승 몇몇이 멀지 않은 군중 밖에서 좋지 않은 눈으로 빤히 노려보고 있었다. 그중에는 혜명도 있었다.

    “아까 그 사람들이오.”

    육화명도 그들을 의식하고는 콧방귀를 뀌었다.

    “낯선 수사 두 사람이 경내에 나타났으니 경계하는 것도 당연하지요. 앉읍시다. 그 강류대사라는 이가 진정 소문에 걸맞은 사람인지는 확인해야 할 것 아니오.”

    심협은 피식 웃고는 자리를 찾아 앉았고, 육화명도 옆에 털썩 앉아 눈을 감은 채 조용히 기다렸다.

    잠시 후,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잔뜩 흥분해 한바탕 환호성을 질렀다.

    “강류대사님!”

    심협과 육화명이 고개를 들어 보니, 어떤 형체 하나가 광장 앞에 나타나 높은 단상 위로 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들이 있는 곳은 단상에서 멀었지만, 두 사람의 시력으로는 단상 위의 상황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나타난 사람은 열 살을 조금 넘긴 앳된 동자로, 용모가 수려하고 미간 부분에는 금빛 문양이 한 줄 있었다.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이미 고승의 기개를 지닌 동자는 새빨간 가사를 입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금빛 무늬가 가득했고, 반짝이는 보석들도 적잖이 박혀 있어서 햇빛 아래 반짝반짝 빛났다.

    심협은 그 동자를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주로 가슴 부근의 자단목 염주에 시선이 머물렀다. 이 염주 위에는 영기가 흘러 넘쳤고, 은은한 불광(佛光)을 품은 것이 보물 같았다.

    동자는 아래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보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강류대사가 저리도 어려 보이는 것은 이상하지 않소?”

    육화명이 참지 못하고 물었는데, 심협도 몹시 놀란 상태였다.

    그들은 앞서 강류를 만나러 갔을 때 방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공경을 표하느라 감히 신식으로 살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목소리가 여리긴 했지만, 강류대사가 정말로 어린아이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자네 두 사람은 금산사에 처음 왔나보구먼? 사람은 나이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네. 강류대사께서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불법의 경지는 헤아릴 수 없이 깊지. 그러니 함부로 떠들지 말게!”

    옆에 있던 노년의 참배객이 불만스러운 듯 육화명에게 눈을 부라렸다.

    “노인장께서 용서하시지요. 저희는 이곳에 처음 온 터라 아무것도 모릅니다. 강류대사께 불경을 저지르려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심협이 끼어들어 웃으면서 말했다.

    “이 젊은이는 그래도 괜찮구먼.”

    노인은 흡족한 듯 심협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장께서는 강류대사님에 대해 잘 아시는 것 같습니다?”

    심협은 노인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 강류대사에 대해 능숙하게 이것저것 묻는 모습을 보면 육화명은 탄식이 절로 나왔다. 자신은 줄곧 대당관부에서 문을 닫고 수련하거나 요마를 소탕하는 임무를 수행하느라 바쁘니, 사람들과 소통하는 능력은 확실히 부족했다.

    “그야 당연하지. 이 늙은이는 금산사 근처 진가촌(陳家村) 사람인데, 강류대사님께서 설법하실 때마다 늘 와서 듣는다네. 강류대사께서는 금선자의 환생으로 불법(佛法)이 깊으시지. 나는 나이가 많아 늘 여기저기 쑤시고 아팠는데, 강류대사님의 설법을 듣고 나서부터는 허리도 안 쑤시고 몸이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다니까.”

    노인은 추앙하듯 말했다.

    “오, 강류대사님의 설법을 귀 기울여 들으면 몸까지 건강해질 수 있습니까?”

    심협이 실로 놀란 듯 물었다.

    “그렇고말고!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리도 많은 사람들이 대사님의 말씀을 들으러 오겠는가.”

    노인은 마치 자신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쭐했으나, 심협은 그런 것에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가슴이 세차게 뛰었고, 눈빛이 번득였다.

    불경에는 간혹 대단한 능력을 지닌 불문의 고승들이 설법을 하고 보시를 하여 백성들의 병을 없애주었다는 기록이 있었다. 서역의 어떤 성에 역병이 돌았는데, 불조(佛祖)인 석가모니가 그 땅을 지나가다가 성벽 꼭대기에서 하루 동안 설법을 하여 성 전체 사람들을 낫게 했다는 기록을 야사에서 본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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