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88화 (388/1,214)
  • 388화. 강류대사(江流大師)

    심협과 육화명은 더 지체하지 않고 성 밖으로 향했다.

    무너졌던 건물들은 이미 적잖이 수리되었고, 집집마다 지전(*紙錢: 제사나 장례 때 불사르는 종이돈)을 태우던 과거의 비통한 광경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어둡고 희뿌연 그림자가 감도는 듯했다.

    ‘과연 성안에 원혼들이 남아 있구나. 더구나 그 수도 적지 않아.’

    심협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이 원혼들은 여귀(厲鬼)가 아니라서 함부로 없앴다가는 하늘의 조화를 해치게 될 터였다. 그렇다고 속세에 그대로 남겨두면 산 사람에게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여귀로 변해 더 번거로워지기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은 보통 승려를 청해 법회를 열고 그들을 저승으로 천도했다.

    이러한 천도는 법력만 강하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심협은 경지가 출규기에 이르렀지만, 망령을 천도할 수는 없다.

    이 망령들을 천도하는 데에는 충분한 덕행(德行)이 필요한데, 이는 법력 경지와는 다른 수행의 일종으로, 불가(佛家)의 이치에 정통한 사람만이 해낼 수 있었다.

    심협은 이 방면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알았다. 성안의 이 많은 망령을 천도하려면 덕행의 수련 경지가 지극히 높고 깊어야 할 터였다.

    “육형, 원 국사께서 말씀하신 강류대사는 어떤 분이오? 정말 이 많은 원혼을 천도할 수 있소?”

    “그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명성이 자자하다오. 심형, 취경인에 대해 아시오?”

    심협의 질문에 육화명이 되물었다.

    “현장법사를 말하는 거요? 당시 그분께서 만 리를 멀다 않고 서쪽 대뢰음사(大雷音寺)에 불경을 구하러 갔던 것은 우리 대당의 큰일이지 않았소. 당연히 들은 바 있소.”

    “현장법사께서는 불경을 가지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돌연 실종된 뒤로 행방이 묘연하시오. 어떤 이는 그가 서방 극락세계에 갔다 하고, 어떤 이는 그가 이미 좌화(*坐化: 승려가 앉은 채로 입적하는 것)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는 그가 이미 윤회하여 환생했다고도 하오. 어쨌거나 의견이 분분하여 도대체 어찌 되었는지 누구도 모른단 얘기지.”

    육화명의 말에 심협은 그 말에 움찔했다.

    “나도 비슷한 소문을 들어본 적 있소. 허나 내가 보기에는 현장법사께서 환생했을 가능성이 가장 클 듯하오.”

    “대부분 그리 여기더이다. 현장법사의 환생이라 일컫는 사람은 많으나, 그중 가장 신뢰가 가는 사람이 바로 강류대사라오. 그와 현장법사 모두 대당 국경의 금산사 출신이고, 불가의 이치에 정통한 데다 무수한 사람을 교화하여 장안에서도 명망이 높소. 까닭에 많은 고관대작과 황친들이 수고를 마다않고 금산사에 공양들을 하러 가는 것이지.”

    설명을 듣고 나자 심협은 강류대사라는 사람에 대해 큭 호기심이 일었다.

    “육형이 그리 말하니 어서 그분을 만나 뵙고 싶구려.”

    이정의 설명에 따르면, 서천취경은 천정과 서방의 대단한 능력자가 마겁의 강림을 막기 위해 계획한 방법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실패했다. 만약 취경인의 환생을 만날 수 있다면 다섯 마혼에 대한 실마리를 알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재촉했고, 이내 성을 벗어난 어느 외진 곳에 이러르서는 어공비행술로 이동했다.

    이들이 향한 금산사는 강주에 있는데, 장안성과는 제법 먼 데다 두 사람은 초행이었기에 그곳을 찾는 데 반나절이나 걸렸다.

    백성들이 놀라지 않도록 두 사람은 먼 곳에 내려서서 걸었다.

    금산사는 강주의 금하산(金霞山)에 산을 따라 지어져 있었는데, 굽이굽이 산길에는 노소를 불문하고 수많은 신자가 걸으며 신령을 우러러 참배했다.

    “허! 신도가 이토록 많다니, 강류대사라는 분이 정말 비범하긴 한가 보오.”

    심협은 진심으로 놀랐다.

    “물론이오. 그러니 사부님과 국사께서도 그분을 모셔오라고 한 게지.”

    육화명이 웃으며 말했다.

    “금산사는 평범한 사찰이오? 아니면 그곳 승려들 중 경지를 지닌 사람도 있소?”

    심협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금산사는 크고 유명한 강주의 수선 문파요. 그곳 승려들은 주로 법명(法明) 장로께서 전수해준 금강선법(金剛禪法)을 깊이 연구했는데, 현장법사께서 불경을 가지고 돌아오신 뒤로 서천 영산(靈山)의 대뢰음사 선법을 전수하셨소. 공법의 정묘함으로 따지자면 우리 대당관부에 비해도 손색이 없고, 화생사나 보타산 같은 대종문과도 견줄 만하오.”

    그러자 심협은 조금 걱정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금산사는 수선 대종(大宗)이고 강류대사 또한 그리도 명성이 대단한데, 그분이 우리와 함께 장안으로 가시리란 법이 있소? 혹시 정 국공과 원 국사께서 그대에게 증표 같은 것이라도 주셨소?”

    “그런 건 없었소.”

    “그렇다면 우리의 역할이 중요하겠구려. 잘 풀려야 할 텐데 말이오.”

    심협이 한숨을 내쉬자 육화명은 웃으며 그를 안심시켰다.

    “강류대사께선 덕이 높은 고승이시오. 장안성이 큰 재난을 당해 백성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대사께서는 분명 흔쾌히 함께 가주실 거요. 게다가 이번 수륙대회는 폐하의 황명으로 열리는 것이니 강류대사께서 어찌 마다하시겠소? 심형, 쓸데없는 걱정 말고 어서 가십시다.”

    풍경이 빼어난 금하산은 때마침 가을을 맞아 온 산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산을 오르는 동안 두 사람의 이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했다.

    금하산은 산세가 가팔랐는데, 꿈속에서 봤던 큰 산들을 제외하면 심협은 현실에서 이보다 높은 산을 본 적이 없었다. 금산사는 이런 금하산의 산허리에 지어져 있어서 두 사람은 한참을 걸어도 도착하지 못했다.

    다행히 그들 모두 경지가 높은 사람들이라 전혀 힘이 들지는 않았다.

    한데 그때, 뒤에서 마차 한 대가 빠르게 달려왔다. 산길에 있던 신도들은 하나둘 길을 비켰고, 심협과 육화명도 옆으로 잠시 비켜섰다.

    마차를 모는 이는 중년 사내였는데, 급한 일이라도 있는지 쉬지 않고 말을 재촉했다. 덕분에 마차는 넓지 않은 산길을 날듯이 달렸다.

    한데 심협 곁을 지날 무렵, 툭 튀어나온 돌에 바퀴가 걸리면서 마차가 심하게 흔들렸다. 낡은 마차였던지, 우지직 하는 소리에 이어 차축이 중간부터 뚝 끊어지면서 옆으로 기울면서 산을 오르던 노인을 덮쳤다.

    노인은 놀란 나머지 넋이 나가 피하는 것조차 잊고 말았고, 근처에 있던 참배객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때, 심협이 번쩍 나타나 마차를 가볍게 떠밀었다. 그러자 마차는 반대쪽으로 밀려났고, 그 안에서는 휘장 같은 물건이 길가로 굴러갔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또 한 차례 비명을 지르며 분분히 몸을 피해야 했다.

    “괜찮으십니까?”

    심협은 다른 사람들은 아랑곳 않고 마차에 깔릴 뻔했던 소복 차림의 노인을 부축해 일으켰다.

    “저는 괜찮습니다. 목숨을 구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공자님.”

    노인은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 한참 뒤에야 정신을 가다듬고 황급히 심협에게 감사를 표했다. 노인의 가족들도 달려와 심협에게 허리를 숙였다.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니, 그리 마음 쓰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때, 마차를 몰던 사내가 황급히 달려와 심협과 노인에게 사과했다.

    “어르신, 정말 죄송합니다. 다 제가 허둥지둥 마차를 몬 탓입니다. 하마터면 큰 사고가 날 뻔했습니다요. 공자님의 도움에 감사합니다.”

    “금산사에 물건을 전하러 가는 길이오? 어찌 이리 서두르는 것이오?”

    나름의 고충이 있었던 데다 실수였을 테니 심협도 마부를 꾸짖지 않았다.

    “그렇습니다요. 마침 금산사에 물건을 배달하러 가는 길이였습죠. 금산사에서 오늘 금선법회(金禪法會)를 여는데 강류대사께서 설법하실 때 보장(寶帳)으로 온몸을 가리시거든요. 한데 며칠 전에 쥐새끼들이 절의 장막을 갉아먹는 바람에 제게 주문하셨지요. 반드시 법회 전에 보내줘야 한다고 하셔서 소인이 서두른 것입니다. 한데…… 금산사까지는 아직 멀었는데 차축이 끊어졌으니 이를 어쩐답니까?”

    중년 남자가 울상을 지었으나, 심협은 그 말에 어리둥절했다.

    “설법할 때 보장으로 온몸을 가린다고 했소?”

    일반적으로 고승들이 법회를 열 때는 다들 직접 신도들에게 얼굴을 드러내는데, 강류대사는 어찌하여 몸을 가린단 말인가?

    그 무렵 다가온 육화명도 그 말에 의아한 기색이었다.

    “우리 두 사람도 마침 금산사로 가던 길인데, 괜찮다면 우리가 대신 이 보장을 가져다주겠소.”

    심협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정말이십니까요? 허나…… 이 보장은 아주 무겁습니다요. 두 대협께서는 빈손이신데…….”

    중년의 마부는 기뻐하다가 곧 다시 걱정스레 말했다.

    “걱정 마시오. 우린 보기보다 힘이 세다오.”

    심협은 웃으며 보장을 들어 올렸다. 그 커다란 보장을 마치 등불 심지를 비벼 끄듯이 마음대로 드는 모습에 마부는 놀라면서도 거듭 감사를 표했다.

    “두 대협께서는 정말 저의 구세주이십니다.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금산사에 가셔서 광포당(廣布堂)의 자석(者釋) 장로께 전해주시면 됩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보장을 든 채 금산사로 향했다.

    “심형, 저이를 도와 보장을 전해주는 것은 금산사의 내막을 알아보려는 것이오?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소? 설마 금산사 승려들이 우리를 들여보내지 않기라도 하겠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소.”

    육화명의 말에 심협이 웃으며 답했다.

    두 사람은 속도를 높여 금세 금산사에 이르렀다.

    옛날 금산사는 평범한 사찰이었으나 현장법사라는 고승이 나오면서 인근 지방 유지들과 부호들이 정성스레 바친 재물이 셀 수 없이 많아졌고, 조정에서는 수차례나 절 수리비용을 대주었다. 덕분에 오늘날 금산사는 산문(山門)이 우뚝 솟았고, 경내 불전들은 금빛으로 휘황찬란했으며, 궁전이 몇 리나 이어져 있었다. 또 수십 장 높이의 불탑을 여럿 세워, 그 기세로는 장안성 황가의 사찰들을 훨씬 뛰어 넘었다.

    “과연 명불허전이로군.”

    심협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금산사 문 앞에는 수천수백에 달하는 참배객이 모여 있었지만, 사찰의 대문은 굳게 닫힌 채라 모두 문 앞에서 기다렸다. 그럼에도 이들은 익숙한 듯 전혀 불평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 자리에 향불을 피운 채 중얼중얼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심협은 잠시 귀를 기울여 보고는 금방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금산사는 최근 몇 년간 산문을 항상 개방해 놓지 않고, 매일 오시가 넘어서야 참배객들이 안으로 들도록 했던 것이다.

    “이곳 금산사는 기세가 아주 대단하오. 장안성 숭안사에도 그런 규칙 따위 없는데 말이오. 그리고 절을 지은 것도 뭔가 다르오. 이렇듯 금 벽돌에 옥기와에, 눈부시게 휘황찬란한 것이 황궁보다 더 이목을 끌지 않소.”

    육화명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어이, 어디서 온 놈인데 감히 우리 금산사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냐!”

    커다란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건장한 체구에 자줏빛 옷을 입은 무승(武僧)이 다가왔다. 온몸에 법력이 감도는 벽곡기 수사였는데, 연체(*煉體: 공법이나 약물로 몸을 단련하는 것)공법을 수련한 것인지 근육이 잘 발달해 있어 여느 벽곡기 수사보다 기운이 강했다.

    “사찰을 지은 모양새가 꼴사납기 그지없거늘, 설마 누가 이걸 보고 대단하다고 한단 말이오?”

    육화명이 웃으면서 말했다.

    “금산사는 강류대사께서 직접 주관해 지으신 것으로, 우리 부처님의 성스러운 이름을 전파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한데 너 따위가 어찌 의문을 품을 수 있단 말이냐? 어서 사죄하지 않으면 나도 더는 예의를 차리지 않을 것이다.”

    자색 옷의 무승이 콧방귀를 뀌며 오만하게 외치는 모습에 심협과 육화명은 의아했다. 강류대사가 사찰을 이렇게 보수했다니, 너무 독선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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