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87화 (387/1,214)
  • 387화. 수륙대회(水陸大會)

    심협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여전히 가부좌를 튼 채 무명공법을 운공하여 경지를 안정시켜갔다. 그러면서도 공법을 운공하면서 손을 뒤집어 살짝 구부러진 금빛 송곳을 꺼냈다. 바로 경하용왕에게서 빼앗아온 용각단추(龍角短錐) 법보였다.

    “이제 출규기에 접어들었으니 이것을 작동시킬 수 있겠지.”

    그는 두 손을 결인하고 구구통보결을 운공해 이 보물을 제련해갔다.

    구구통보결은 역시 방촌산 비술다웠다. 금빛 송곳에는 곧바로 가느다란 금빛이 떠올랐고, 겹겹이 금빛 법진 무늬가 차츰 나타났다. 심협은 자세히 세어보고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18도 금제……. 하품 법보로군.”

    극품 법기는 최대 16도 금제를 지녔으니, 금제가 이 숫자를 넘어가면 법보의 단계에 들어선 것이었다. 그러니 하품이라고 해서 실망하기는커녕 크게 기뻤다. 법보와 법기는 한 글자 차이이지만, 위력은 천양지차이기 때문이다.

    출규기 수사의 법력은 낮지 않지만 법보를 작동시키기에는 무리인데, 다행히 이 금빛 송곳은 하품 법보라 사용이 가능할 터였다. 만약 육진편처럼 중품 법보였더라면 그로서는 작동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심협은 흥분을 억누른 채 계속해서 구구통보결을 운공하여 금빛 송곳을 제련해갔다.

    그렇게 또다시 열흘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의 경지는 이제 안정되었고, 법력 운행도 더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한편, 금빛 송곳은 그의 몸 앞에 뜬 채 눈부신 금빛을 내뿜었고, 16도 금제까지 제련되어 금빛을 따라 반짝였다.

    심협이 양손을 재빨리 결인하자 푸른 빛이 빗방울처럼 송곳의 17도 금제 안으로 들어갔지만, 아무리 법술을 써도 17도 금제의 무늬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의 법력으로는 17도 금제 제련은 안 되는 모양이군.”

    그는 가볍게 탄식하며 어쩔 수 없이 손을 뗐다.

    하지만 실망하지는 않았다. 16도 금제까지 제련한 것만으로도 금빛 송곳의 위력은 매우 놀라워, 그가 가진 극품 법기보다도 훨씬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손을 뒤집어 금빛 송곳을 거둬들이고도 곧장 일어나지 않고 옥침을 가져왔다.

    옥침 안에는 금제가 나타났지만, 이제 경지가 크게 발전했으니 더 깊이 살펴볼 생각이었다.

    그가 법력을 운행하여 천천히 옥침에 주입하자 그 안에서 금빛이 번쩍 스치더니 천책 허상이 나타났다. 이전보다 조금 더 단단한 모습이었다.

    그는 가볍게 탄성을 질렀다.

    ‘수련 경지의 상승이 천책의 허상에도 영향을 미치는구나!’

    그는 법력을 천책에 주입하여 그 안의 능력을 살펴보았는데, 천책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겨 있었다. 흡수능력 외에도 다른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한데 그가 자세히 들여다보려는 순간, 하얀 빛줄기가 밖에서 쏘아져 들어와 곧장 그쪽으로 돌진해왔다.

    심협이 약간 놀란 표정으로 물을 조종해 맞서려는데, 하얀 빛이 갑자기 멈춰서더니 하얀 빛 덩어리로 변했다.

    “심 소우는 수련이 끝났으면 주청에 들르시게나. 나와 정 국공이 자네에게 부탁할 일이 있다네.”

    부드럽고 점잖은 목소리 하나가 하얀 빛 덩어리 속에서 들려왔다.

    ‘원 국사!’

    심협은 안색이 변하여 즉시 법력을 거둬들이고 옥침을 챙겼다.

    원천강은 예측할 수 없이 심오한 사람이라 조금도 방심할 수 없었다.

    하얀 빛 덩어리는 말이 끝나자 곧바로 꺼져 사라지고 하얀 부적으로 변했다.

    “전음부(傳音符)였군.”

    심협은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얀 전음부는 화르륵 하고 타올라 이내 잿더미로 변했다.

    심협은 잠시 주저했으나, 곧 자리에서 일어나 삼원대진의 흔적을 지우고 천리 황사진도 거둬들였다. 그리고 옥침을 저물 석합에 집어넣고는 몸 가까이에 잘 둔 다음에야 문을 나섰다. 옥침은 천책 허상을 소환할 수 있으니 큰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중요한 물건이기도 해서 방 안에 두지 않기로 한 것이다.

    예전에 시녀에게서 길 안내를 받았던 기억을 되짚어 심협은 금세 정부 주청 앞에 도착했다.

    방 안에는 세 사람이 있었다. 정교금과 원천강 그리고 하얀 옷을 입은 청년, 바로 육화명이었다.

    “육형, 부상이 다 나은 모양이구려.”

    심협이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이제 육화명은 얼굴이 발그스레하게 혈색이 돌고, 활력이 넘치는 게 일전의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된 것이 분명했다. 뿐만 아니라 몸에서 반짝이는 빛이 새어나오는 것이 수련경지가 크게 발전한 모습이었다.

    “심형, 그대도 출규기에 접어들었구려. 축하하오.”

    육화명은 심협을 잠시 훑어보더니 얼굴에 놀란 기색이었다.

    “정 국공과 원 국사께서 하사하신 이원진수 덕분이오.”

    심협이 웃으며 말했다.

    줄곧 뜻이 잘 맞은 두 사람은 간만에 만나 하고픈 말이 있었지만, 정교금과 원천강도 함께한 자리였기에 말을 아꼈다.

    “원 국사께서는 어인 일로 저를 찾으셨는지요?”

    심협은 원천강에게 시선을 돌리며 공순하게 공수했다.

    “심 소우의 경지가 크게 발전하였으니 축하하네. 오늘 소우를 부른 것은 당장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라네. 우리 대당의 국운과 관련되어 있어 아주 중요하지만,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적지. 마침 소우가 이 일에 딱 적합한데, 도와줄 수 있겠는가?”

    원천강이 손에 든 불진을 휘두르고는 한쪽 손바닥을 세우며 말했다.

    “원 국사께서는 그저 분부하시면 됩니다.”

    심협은 어차피 거부할 수 없다는 생각에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빈도, 심 소우에게 대단히 감사를 표하네. 좋아, 설명해주겠네. 앞서 귀환대전으로 희생된 백성들이 많아 요 며칠 성안에서 혼령들이 소란을 피우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 폐하께서는 이미 수륙대회를 열어 개단(*開壇: 법회 등에서 고승이나 도사가 단에 올라가 설법하는 것)하고 경전을 강론해 망령들을 천도하라는 명을 내리셨어.”

    “이는 공덕이 무량한 행사이시니, 폐하의 성덕입니다.”

    심협이 황궁 쪽을 향해 공수하며 찬탄했다.

    “수륙대회 준비는 거의 끝났지만, 아직 법회를 주관할 덕이 높은 고승 한 분이 부족하다.”

    정교금이 이어서 말했다.

    심협은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장안에 온지 벌써 몇 년이나 되었지만, 줄곧 폐관수련만 했기에 아는 사람이 몇 없었다. 그러니 덕 높은 고승이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다행히 원천강은 그의 골치를 아프게 하지 않고 금세 말을 이었다.

    “나와 정 국공이 상의하여 강주(江州) 금산사(金山寺)의 강류대사(江流大師)에게 이번 대회를 주관해줄 것을 청하기로 하였지. 한데 지금 성안의 여러 일을 처리해야 해서 일손이 너무 부족해. 그러니 심 소우와 육 현질에게 그쪽에 다녀와 달라고 청하려는데, 가능하겠는가?”

    원천강의 설명이 끝났을 때, 심협은 내심 놀랐다.

    “그것뿐입니까?”

    원천강이 워낙 심각하게 나와서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싶었건만, 그저 성 밖에 나가 승려 하나를 청해 오라는 것이라니, 분명 의외였다.

    “원 국사의 분부이시니, 당연히 명 받들어야지요.”

    심협이 고개를 끄덕였고, 육화명도 두말없이 대답했다.

    “그럼 되었네. 수륙대회는 이번 달 15일에 거행하니 아직 닷새가 남았네. 반드시 일찍 갔다가 일찍 돌아와야 하네.”

    원천강이 말했다.

    “예.”

    심협과 육화명은 한목소리로 답하고는 인사를 올린 뒤 나가려 했다.

    “심 소우는 잠깐 기다리게. 아직 할 말이 더 남았으니.”

    정교금의 부름에 심협은 어리둥절했다.

    “국공 대인께서는 분부하실 일이 더 있으십니까?”

    “더 시킬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전에 폐하를 구한 포상 때문이다. 소우가 계속 폐관 중이어서 줄 기회가 없었지. 이러다가 곰팡이가 다 필 지경이야.”

    정교금은 웃으며 장난스레 웃으며 누런 보따리 하나를 건넸다.

    “대신 보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국공 대인.”

    심협은 너무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애쓰며 재빨리 받아들었다.

    “됐다. 가보거라.”

    정교금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심협과 육화명은 예를 갖추고 곧 정부를 빠져나왔다.

    “심형, 폐하께서 그대에게 어떤 보물을 하사하셨소?”

    정부를 나서자마자 육화명이 웃으면서 물었다.

    심협도 퍽 궁금하였기에 보따리를 풀어보았다. 그 안에는 푸른 옥갑(玉匣) 두 개와 하얀 옥병 하나가 들어 있었다.

    그가 두 옥갑을 가리키자 옥갑이 저절로 열렸다.

    푸른 옥갑 안에는 파란 빛을 뿜어내는 주먹만 한 보주(寶珠)가 들어 있었는데, 그 안에는 교룡의 허상이 어렴풋이 드러나 실로 현묘해보였다.

    다른 옥갑에는 금빛 패가 하나 들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일천(一千)이라는 두 글자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심협이 푸른 보주를 집어 들자, 놀랍게도 체내의 법력이 저절로 운행하면서 구슬이 뿜어내던 푸른 빛이 곧 환하게 밝아지더니 주위 허공에 있던 물의 기운이 벌 떼처럼 몰려들었다. 그러더니 푸른 파도 허상을 이루었고, 공기까지도 조금 끈적하게 변했다.

    심협이 재빨리 법력과 푸른 보주의 연결을 끊자 구슬도 그제야 정상으로 돌아왔다.

    “진해주(鎭海珠)! 동해 신수종(神水宗)의 연기 대가인 고심상인(苦心上人)이 10년을 들여 만든 극품 법기로, 16도 금제가 걸려 있소. 이야기에 따르면 그 뒤 심해 교룡 한 마리를 잡아서 그 혼백을 이 안에 봉인하여 기령(器靈)으로 만든 뒤, 이 구슬을 법보로 만들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성공은 하지 못했다고 하오. 허나 그래도 최고의 극품 법기가 되었지. 심형이 수련하는 것은 물 속성 공법이니, 이 물건이 그대에게 실로 적합하오!”

    육화명이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말했다.

    심협은 이 구슬이 진귀한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토록 대단한 내력이 있을 줄은 몰랐기에 저도 모르게 몇 번 더 살펴보고는 다시 내려놓았다.

    “그럼 이건 무엇이오?”

    그가 다시 금색 패를 집어 들며 물었다.

    “이건 조정에서 발행한 여의선전(如意仙錢)이오. 조금 큰 상점에서라면 쓸 수 있는데, 위에 적힌 숫자의 선옥과 맞먹는 가치가 있소.”

    육화명이 설명했다.

    심협은 다시 한번 놀랐다. 별로 가치 없어 보이는 이 금패만으로도 선옥 1천 개의 값을 한다니, 조정은 정말 장사를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마지막 하얀 옥병을 집어 들고 마개를 열자 한 줄기 화염 같은 붉은 빛이 솟구쳐 나왔다. 그 붉은 빛에는 짙은 피비린내가 섞여 은은하고 맑은 향기를 풍겼다.

    “이것은……?”

    심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옥병에는 새빨간 피가 절반 이상 들어 있었는데, 매우 끈적끈적해 보였고, 때때로 공기방울이 솟으며 보글보글 소리를 냈다.

    “이건……? 전설 속 기린(*麒麟: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고대 전설 속의 동물)의 피 아니오! 진룡의 피보다 더 중한 물건인데…… 복용하면 체질이 개선될 뿐만 아니라 수명도 늘릴 수 있소.”

    육화명이 자기도 모르게 놀라서 외쳤다.

    심협은 병에 담긴 기린혈을 보며 얼른 마개를 닫아 챙겼다. 이어서 황궁 쪽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 기이한 빛이 스쳤다.

    ‘세 가지 보물 모두 정확히 내게 필요한 것들이다. 특히 진해주와 기린혈은 그야말로 내게 꼭 필요한 것들인데 어찌……?’

    그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기린혈이었다. 그러나 마수수와 단양자에게 살짝 귀띔한 것을 빼면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자신은 생명을 연장시켜줄 보물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단양자는 죽었고 마수수도 자취를 감추었건만, 조정은 어떻게 이토록 정확히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을 알아냈단 말인가! 그 정보력에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천하에 왕의 땅 아닌 곳이 없다 했던가. 조정에서 어떤 일을 조사하기로 작정한다면 반드시 알아낼 수 있을 거요. 조정의 수선 세력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대당관부겠지만, 다른 수선 세력도 있소. 가히 천하를 감찰하고 정보를 수집한다 할 수 있으니 심형은 그리 놀랄 것 없소.”

    육화명이 마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말하자 심협은 잠시 뜨끔했다가 곧 안정을 되찾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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