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화. 폐관 돌파
“무슨 일이야? 저게 뭐지?”
정부 안 하인들은 크게 놀라 곧장 주청(主廳)으로 달려가 정교금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수련 경지를 지닌 정부의 호위무사 몇 사람이 이 상황을 보고는 가서 살펴보려고 했지만, 심협의 처소 전체가 폭풍 같은 힘에 휩싸여 도저히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개중 경지가 가장 높은 중년 사내가 크게 포효하면서 손바닥을 뒤집어 새빨간 대도 법기를 꺼내 황사 장막을 베었다. 벽곡 후기인 그의 대도 위로 불길이 거세게 치솟으며 산을 가르고 돌을 쪼개 듯 황사 빛 덮개를 베었다.
땅!
커다란 소리와 함께 황사 빛 덮개가 미미하게 흔들리더니, 금방 다시 본래대로 되돌아온 반면, 새빨간 대도 위의 불길은 흩어져 버렸다. 대도 역시 날아올 때보다 몇 배 더 빠른 속도로 튕겨 되돌아갔다.
중년 사내는 꼼짝없이 자신의 법기에 두들겨 맞을 판이었다.
그때, 느닷없이 그림자 하나가 쑥 나타나 두 손가락으로 붉은 대도를 붙잡았다. 대도는 돌에 꽂힌 듯 즉시 멈춰 섰다.
“국공대인!”
호위무사 몇몇이 갑자기 나타난 사람을 향해 급히 예를 갖추었다. 바로 정교금이었다.
정교금은 대도를 그 사내에게 되돌려 주고는 다소 놀란 모습으로 앞에 드리운 황사 장막을 바라보았다.
“국공 대인, 여기는…….”
중년 사내가 좋지 않은 낯빛으로 정교금을 향해 포권하며 무언가를 보고하려 했다.
“이것은 심 소우가 설치한 법진이니 그리 놀랄 것 없다.”
정교금이 담담하게 말했다.
호위무사들은 정부 안에 심씨 성의 수사가 머물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그 경지가 그리 깊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정교금은 먼 곳의 법진을 훑어보고자 신식을 뻗었지만, 천리황사진의 노란 빛에 닿자마자 천근의 무게에 가로 막힌 듯 신식이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의 얼굴에 놀라움이 더욱 짙어졌지만, 그는 곧 평정을 되찾았다.
“명을 내려 심 소우가 머무는 처소에는 앞으로 내 허락 없이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너희들도 와서 귀찮게 굴지 마라.”
정교금이 호위무사들에게 분부했다.
“예!”
그들은 재빨리 답하고 물러갔다.
정교금은 심협 쪽을 잠시 바라보다가 희미한 미소를 내비치며 몸을 돌려 떠났다.
* * *
천리황사대진은 신식을 차단할 수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안쪽의 상황을 살필 수 없었던 것처럼 심협 또한 바깥 상황을 감지하지 못했다. 그는 결인하여 주위의 삼원대진을 작동시켰다. 이에 대진 안의 법진 문양이 곧 밝아지면서 은색 빛줄기들이 수많은 뱀들처럼 법진 안에서 거침없이 내달렸다.
쉬잇! 쉬쉭!
날카로운 소리가 지나가고, 10여 줄기 은빛이 법진 안에서 뿜어져 나와 심협의 온몸 곳곳 경맥에 주입되었다. 은빛 속에는 부적 문양이 만들어낸 선들이 가닥가닥 어렴풋이 나타났다.
심협의 체내 법력은 마치 구멍이 뚫린 것처럼 이 은빛들을 따라 삼원대진 안으로 서서히 빠져나갔다.
그는 이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법진 배치에 실수가 없다는 증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삼원개태술은 오랜 시간 축적되어야 효과가 있었기에 시간이 길고 법진 안에 쌓인 법력이 더 많을수록 마지막 난관에 부딪쳤을 때 효과가 더 커진다. 그는 우선 응혼기 정점까지 경지를 연마하려 했기 때문에 수련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법력을 축적했다.
삼원대진이 법력을 흡수하기는 했지만, 양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심협은 충분한 이원진수가 있었기에 법력의 양에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은빛 옥병을 꺼낸 뒤 이원진수 두 방울을 따라내 몸에 바르고 무명공법을 운공해 흡수했다.
곧 물안개가 심협의 몸 주위에 피어올라 온몸을 뒤덮었고, 허공의 천지영기가 이 물안개를 따라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눈 깜짝할 새 반년이 흘렀다.
심협의 몸 주변을 뒤덮었던 물안개는 점점 짙어지고 거대해져서 거의 온 방 안을 뒤덮을 정도가 되어 마치 끝이 없는 바다와 같았다.
바로 그때, 물안개 깊은 곳에 갑자기 푸른 빛줄기 두 개가 번쩍 나타났는데, 더없이 환하고 밝은 것이 마치 푸른 번개 같았다.
순간 고래가 물을 빨아들이듯 모든 안개가 한가운데로 몰려가더니, 금세 완전히 사라지고 심협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의 두 눈동자에는 푸른 빛이 번득였고, 온몸은 물결 같은 푸른 빛에 한층 뒤덮여 있어 경지가 크게 발전한 것 같았다.
“응혼기 정점!”
심협이 흥분을 가라앉히며 혼잣말을 했다.
그의 몸 주위에 있던 삼원대진 안에는 온통 바다처럼 깊은 푸른 빛이 흐르며 강력한 법력 파동을 일으켰는데, 바로 반년 동안 축적된 법력이었다.
심협은 곧장 두 손을 빠르게 결인해 출규기에 충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물안개가 다시 몰려나와 방을 뒤덮었고, 삼원대진 안의 웅혼한 법력도 우르릉 요동치기 시작하며 심협에게 모여들었다.
* * *
또다시 두 달 남짓한 시간이 고요함과 평화로움 속에 지나갔다.
정부의 하인 몇몇이 심협의 처소 바깥을 지나고 있었는데, 별안간 황사로 뒤덮인 건물 안에서 요란한 굉음이 들리더니, 황사의 빛 속에서 푸르스름한 빛기둥이 불쑥 하늘로 치솟았다.
이 빛기둥은 무수한 푸른 파도로 변해 공중에서 쉬지 않고 용솟음치며 철썩철썩 커다란 소리를 냈다.
거대한 힘들이 이 푸른 파도에서 뿜어져 나와 마치 이 거대한 힘을 견뎌내지 못하는 것처럼 근처 허공이 윙윙 울렸고, 세찬 광풍이 일어나 정부의 절반 이상을 휩쓸었다.
하인들은 광풍에 휩쓸려 자빠졌지만, 하늘의 기현상에 넋이 나가 아픈 줄도 몰랐다. 이들은 정 국공의 하인들로, 평소 수선자들과 그 솜씨를 본 적이 꽤 있었지만, 눈앞의 광경은 완전히 그에 비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늘의 푸른 파도는 점점 더 또렷해지고 범위도 적잖이 넓어지면서 그 속에서 새어나오는 거대한 힘도 함께 증가했다.
근처의 가옥과 건물들이 공중에서 흘러나오는 압력을 견디지 못하여 크게 떨리기 시작했다.
하인들은 정신을 차리고 달아나려 했지만,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자 두려움과 절망으로 얼굴이 굳어갔다.
그때, 허공에 사람 그림자가 난데없이 나타났다. 바로 정교금이었다.
“이토록 빨리 출규기를 돌파하다니! 훌륭하다!”
그는 흐뭇한 표정으로 소매를 가볍게 떨쳤다. 그러자 금빛이 쏘아져 나와 거대한 빛의 장막을 이루더니, 거꾸로 뒤집힌 금빛 우산처럼 정부 전체를 뒤덮으며 허공의 푸른 파도를 에워쌌다. 흔들리던 건물들이 진정되었고, 몸을 짓눌렀던 압력이 사라지면서 하인들이 황급히 일어났다.
“모두 물러가거라.”
정교금의 담담한 목소리에 그들은 허리를 숙여 예를 한 번 갖춘 뒤 냉큼 자리를 떠났다.
이때, 하늘에서 쉭쉭거리는 소리가 몇 차례 울리더니 둔광 두 줄기가 저 아래 저택에서 날아와 정교금 곁에 내려섰다.
둔광에서 나타난 두 사람 중 하나는 백의의 40대 남자로, 기품 넘치는 그는 손에 하얀 종이부채를 들고 있었다. 바로 면월거사였다.
다른 사람은 아름다운 중년 부인이었는데, 푸른 치마 차림에 서늘한 기운을 내뿜는 청화선고였다.
“기운이 이리도 비범하다니, 어느 도우입니까? 대당관부에 또 대단한 장군이 하나 늘어난 모양이군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면월거사가 하늘의 푸른 파도를 살피며 정교금에게 웃으며 공수했다.
“면월 현질이 과찬을 하는구먼. 아래 있는 사람은 정모의 어린 친구로, 대당관부 휘하가 아니라네.”
“관부 휘하가 아니라고요?”
정교금의 답에 면월 거사와 청화선고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
“심협이라고 들어봤을 걸세. 요전에 대전에서 이름을 꽤 날렸지.”
“아, 그였군요.”
면월거사와 청화선고는 퍼뜩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들은 적이 있었다. 심협은 귀환대전 초기에 순양검배로 꽤 명성을 얻었고, 마지막엔 육화명 등과 함께 연신단의 소환대진을 파괴하여 더욱 이름을 날렸던 것이다.
“제가 기억하기로 그는 일개 산수인 데다 당시 응혼 초기에 불과했는데 벌써 출규기에 접어들다니, 잠재력을 불러일으키는 단약을 먹었거나 비슷한 효과의 비술을 익힌 듯하군요. 자질이 뛰어난 자인 줄 알아 눈여겨보고 있었건만, 눈앞의 성공과 이익에 급급한 자였을 줄이야…….”
경하용왕이 머리를 되찾았을 때 심협을 만났던 면월거사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반면 청화선고는 여전히 차가운 낯빛이었으나, 면월거사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눈빛이었다.
바로 그때, 허공에서 요동치던 푸른 파도가 갑자기 빠르게 흩어지더니 하늘을 뒤덮었던 무시무시한 압력도 서서히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건물 전체를 뒤덮은 황사 빛은 여전히 짙게 드리워진 채 거세게 요동치고 있어, 심협이 한동안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원 국사와 정 국공께서 말씀하신 일에 대해서는 곧바로 종문에 보고할 터이니, 곧 답이 있을 것입니다.”
면월거사가 공수하며 말했다.
“이 일은 천하의 안위와 연관되어 있으니 최대한 서두르시게.”
“예.”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하고는 몸을 돌려 멀리로 빠르게 날아갔다.
정교금은 떠나는 두 사람을 눈으로 배웅하다가 또다시 심협이 있는 곳을 잠시 바라보고는 돌아서서 대청으로 날아 돌아갔다.
* * *
대청 허공에 한 차례 파동이 일더니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원천강이었다.
“그네들과는 얘기가 어찌 되었습니까?”
원천강이 물었다.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면월과 청화 모두 국사의 점괘를 종문에 보고하겠다고 답했습니다. 한데, 확실한 겁니까? 천하에 정말 대겁이 닥치겠습니까?”
“나도 아니길 바라지만, 내 아무리 점을 쳐봐도 결과는 같았습니다.”
원천강이 탄식했다.
“점괘에 따르면, 이 대겁을 넘기기 위해서는 두 가지 힘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는 그때 사라졌던 취경인들을 찾는 것이고, 두 번째는 천명을 받은 사람들을 모아 함께 저항하는 것입니다. 화생사와 보타산에서 찾아낸 천명을 받은 자들 모두가 진짜이길 바랄 뿐이지요.”
“심협 그 아이의 점괘도 나왔습니까? 그 아이가 천명을 받은 사람입니까?”
“심협의 상황은 기이합니다. 점괘에 따르면, 그의 명격(命格: 타고난 명운)은 귀중하여 천명을 받은 이들과 비슷하지만, 또 다른 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나의 점술을 방해하는지 그의 점괘는 분명히 볼 수가 없더이다.”
원천강의 탄식에 정교금은 깜짝 놀랐다.
“오, 국사의 점술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단 말입니까?”
“그가 누구든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으니, 앞으로의 일은 그에게 함께 하자고 청해야 할 것 같소.”
“그것도 좋겠지요.”
정교금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천리황사진 안에서는 심협이 하늘에서 내려온 푸른 빛을 흡수하고는 눈을 뜨더니 환희에 찬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가 두 손을 결인하자 머리 꼭대기에서 푸른 빛이 번쩍이더니 조그맣고 파란 사람이 나타나 방 안을 노닐었다.
삼원개태 비술의 도움에 꿈속 경험까지 더해져 그는 단번에 출규기 경지에 도달했고, 수명 또한 어림잡아 300년은 늘어났으니 시름을 덜게 되었다.
무명공법은 역시 선계에 전해 내려오는 신묘한 법결인 모양이다. 그는 이제 실력이 크게 발전했다. 체내에 주입된 용혈과 용원, 꿈속의 경험 덕에 특히 어수지술에 있어서는 거의 신기에 가까운 경지에 이르렀다.
심협이 결인하고 끌어당기자 허공에 물줄기가 응집되더니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는데, 마치 이름난 화가가 한 획 한 획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았다. 물줄기는 먼저 여러 동의 건물이 되었고, 그 아래로 널따란 길거리가 만들어져 수많은 행인들이 그 위를 걸어 다니며 북적이는 것이, 진짜와 똑같아 보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온 방안이 번화한 저잣거리로 옮겨간 것 같았다.
물 속성 공법을 수련하는 다른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보았더라면, 기겁했을 것이다. 이렇게 가짜를 진짜처럼 만드는 어수환화법(御水幻化法)은 일부 대승기, 심지어 반선 경지의 수사들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심협은 막 출규기에 접어든 데다, 경지가 아직 안정되지 않아 체내 법력이 한 차례 요동쳤다. 이에 방 안에 그려진 저잣거리는 펑 소리와 함께 산산이 부서지면서 여러 물줄기로 변해 허공에 흩어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