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4화. 국공(國公)의 부름
심협 또한 당연히 하늘의 이상을 알아차렸다.
금책이 진동하며 번쩍이는 빈도와 하늘에서 비치는 금빛 파동은 완전히 일치하니, 이 금책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했다.
‘천책이 이리도 기이하다니, 허상만으로도 이토록 놀라운 천문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단 말인가!’
심협은 또다시 깜짝 놀랐다.
그때, 그의 눈에 멀리 허공에 빛이 번쩍 스치더니, 여러 줄기 둔광이 뭔가를 찾는 듯 왔다갔다 날아다니면서 빠르게 그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는 가슴이 철렁하여 재빨리 손에 든 천책 허상을 임랑환 안으로 챙겨 넣으려 했다.
그러나 천책 허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저물법기에 넣을 수 없는 것이 틀림없었다.
심협은 안색이 어두워져서는 손에 파란 빛을 크게 발하여 푸른 빛 장막을 만들어 천책의 허상을 가려 그 여파를 차단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빛 덮개를 아무리 두껍게 해도 천책이 뿜어내는 금빛은 쉽게 비쳐 나왔고, 하늘의 이상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바깥의 둔광들이 점점 가까워졌다. 오래지 않아 이곳을 찾아낼 것이고, 그 수사들이 신식으로 살핀다면 천책의 허상이 곧바로 드러날 터였다.
“이를 어쩌지?”
심협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다른 사람들에게 천책의 존재를 들키게 된다면 옥침의 비밀도 지킬 수 없게 될 테니 그리 되면 일이 복잡해질 것이다.
“맞다! 옥침!”
심협은 퍼뜩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곧장 몸을 날려 침상 옆으로 돌아가서는 옥침을 향해 손에 든 천책 허상을 던졌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말처럼, 이 천책 허상은 옥침에서 튀어나온 것이니 옥침으로 이 물건을 숨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과연 천책 허상은 번쩍하더니 옥침 속으로 사라졌고, 눈부신 금빛도 순간 사라지면서 파동도 완전히 없어졌다.
하늘의 이상 또한 근원지가 사라지자 금세 맑은 날씨를 되찾았다. 조금 전 천둥번개가 치던 광경은 마치 꿈속이었던 것만 같았다.
심협은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혹시라도 누가 정찰할 경우 들통나지 않도록 침상에 누워 잠든 척했다.
이후 반 시진을 숨죽여 기다렸지만, 다행히 아무도 오지 않았다.
심협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다시 일어나 앉은 뒤, 옥침을 가져다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천책 허상은 여전히 옥침 안에서 조용히 떠다니며 부드러운 금빛을 뿜어냈다.
‘이 천책 허상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여기 있는 것인가? 그럼 곤란한데……. 이 물건은 나와 법력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내가 옥침을 떠나면 이 천책이 곧바로 나타나 천지에 이상한 움직임을 일으킬 거야.’
심협은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이내 손으로 옥침을 누른 채 법력을 주입해보고는 곧 가벼운 탄성을 질렀다.
그는 법력을 갖게 된 후 여러 차례 이 옥침을 살펴보았지만 아무런 수확이 없었는데, 이번에 살펴보니 뜻밖에도 그 안에 가느다란 법력의 흔적이 감지됐다. 마치 법기와 법보 속의 금제 같았다.
심협은 재빨리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여 법력을 운공해 금제의 흔적을 따라 살펴보았다.
이 금제의 흔적들은 거미줄처럼 가늘어서 법력이 운행하기가 매우 어려웠기에 그는 온 정신을 쏟아야 했다.
그렇게 금제들을 따라 잠시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금제들은 갑자기 한곳으로 모여들어 하나의 교차점을 이루었다.
심협이 법력을 그곳에 주입하자 갑자기 이상이 생겼는데, 이 교차점에서 느닷없이 흡입력이 새어나와 그의 법력을 끊임없이 빨아들였다. 옥침의 천책 허상도 윙윙 진동하기 시작하는 것이 이 교차점과 분명 큰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심협은 정신이 번쩍 들어 계속 법력을 그 안으로 주입해보았다.
몇 호흡 뒤, 퍽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교차점에서 하얀 빛이 반짝였다. 그 속에는 별 문양이 어렴풋하게 나타났다.
한편, 옥침 안의 천책 허상도 즉시 반짝이더니 조금 더 커졌다.
‘역시 관계가 있었어!’
심협은 흥분을 가라앉히며 법력을 운공해 하얀 빛 속의 별 문양을 살폈다. 그러자 별 문양이 곧바로 격렬하게 반짝이기 시작하더니, 작고 가느다란 글자들이 그 안에서 무수히 쏟아져 나와 법력을 타고 그의 체내로 흘러들어 머릿속으로 몰려들었다.
“윽!”
심협은 짧게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감싸 안고 침상 위로 쓰러졌다. 마치 머릿속을 막대기로 휘젓는 것처럼 극심한 고통이 느껴져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는 급히 부주진신법을 운공하여 신혼을 안정시켰지만, 머릿속의 통증은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힘이 그 안에서 부풀어 오르는 듯했다. 이 힘이 계속 팽창한다면 머리가 터져나갈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통증은 이내 가라앉았고, 작고 하얀 글씨들은 그의 머릿속으로 녹아들었다.
심협은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참 뒤에야 평정을 되찾고 눈을 떴다.
그는 이제 그 하얀 글자들의 의미를 분명히 깨달았다. 그것들은 통령역요와 비슷한 소환술이었다. 다만 온전하지 않아 일부분밖에 없었다.
“머리도 꼬리도 다 떨어져 나간 이런 구결이 무슨 쓸모가 있다고……?”
심협은 자조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러나 잠시 뒤, 그는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은 듯 다시 옥침 위에 손을 얹고 이 소환술을 운공했다.
그러자 순간 옥침 위에 하얀 빛이 떠오르더니, 그 안의 천책 허상이 몇 번 반짝이며 갑자기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역시! 이 소환술은 천책의 허상을 위한 거였어!”
심협은 놀랍고도 기뻐하며 계속 옥침에 대고 법술을 시전했다.
몇 호흡 뒤, 옥침 안에 금빛이 번쩍이면서 천책 허상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또다시 연달아 소환술을 운공하여 이 비술을 완전히 익힌 뒤에야 멈추었다.
옥침을 보는 그의 입가에는 참을 수 없는 미소가 배어 나왔다. 옥침을 그렇게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야 약간이나마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로도 한동안 심협은 법력을 움직여 그 안의 금제를 살피며 옥침의 더 많은 비밀을 파헤쳐보려 했지만, 금제 무늬들이 하얀 별 문양에 이르면 사라져 버리는 통에 더는 나아갈 수 없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떼고 방향을 틀어 천책 허상의 능력을 연구하며 법력을 그 안에 주입했다.
천책 허상이 희미하게 밝아지더니 무수한 금빛 부적 문양이 그 속에서 약동하며 책자가 촤라락 하고 펼쳐졌다.
옥침에서는 한 가닥 금빛 그림자가 스쳐 지나면서 몸 아래 나무 침상이 돌연 사라져 버렸지만, 침상 옆의 찻상은 무사했다.
침상 위에 있던 심협과 옥침은 방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심협은 옥침을 움켜잡으며 속으로 기뻐했다.
이 천책은 비록 허상이었지만, 흡수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다만 허상이라서 그런지 흡수 범위는 진짜 천책에 한참 뒤떨어져서 반경 1장 정도의 사물만 거둬들일 수 있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천책의 허상은 더없이 유용했다. 이 신통력이 법력 형태의 공격이라면 거두지 못할 것이 거의 없음을 꿈속에서 이미 경험했으니까.
다만 천책 허상을 작동시켜 거둬들이는 데에는 법력의 소모가 뒤따른다. 꿈속 세계에서의 그에게는 별것 아닐지 모르나, 현실의 그는 경지도 높지 않고 법력도 얕은 터라 세 번 정도 작동시키는 것이 현재로서는 한계였다.
“뭐, 세 번이라도 적시에 활용하면 충분히 전세를 바꿀 수 있으니까.”
심협은 욕심 부리지 않기로 했다.
그는 거둬들인 나무 침상을 다시 꺼내 놓은 뒤, 계속해서 천책이 천병을 현실에 소환해내거나 다른 일도 할 수 있는지 살펴보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천병은 소환할 수 없었다.
“허상은 결국 허상이로군. 천병까지는 소환할 수 없는 모양이야.”
심협은 몇 번 시도해보고는 곧 포기했다.
그는 옥침을 잘 챙겨 넣고 다시 장안에 환생한 마혼을 어떻게 찾을지를 궁리하기 시작했다.
이정의 말한 대로라면, 그 사람의 손목 어딘가에 매화 모양 표식이 있다고 했다. 한데 장안의 인구가 백만이 넘거늘 그런 사람을 어디 가서 찾는단 말인가?
심협은 고심 끝에 대당관부에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그가 연거푸 세운 공로를 보아서라도 정교금은 분명 거절하지 않을 터였다.
그가 한창 생각에 잠겨 있는데, 발소리가 문밖에 이르렀다.
“심 공자님, 기침하셨습니까?”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협이 신식으로 훑어보니 정부의 시녀였다.
“무슨 일이오?”
그는 옥침을 챙긴 뒤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국공대인께서 돌아오셨사온데, 공자님과 상의하실 일이 있으니 대청에서 뵙자 청하셨습니다.”
시녀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심협은 정교금이 하필 지금 자신을 부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해보았다.
‘꿈속에서의 시간은 오래였지만 현실에서는 고작 하룻밤이 지났을 뿐이었다. 그러니 황제 폐하의 하사품이 내려온 것은 아닐 터인데,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심협은 우선 알겠노라 답하고는 시녀를 따라 부(府) 안으로 향했고, 곧 거대한 건물 바깥에 도착했다.
“이곳입니다. 노비는 물러가겠습니다.”
시녀는 다시 한번 예를 갖추고는 곧 자리를 떴다.
심협이 안을 들여다보니 뜰에는 커다란 정청(*正廳: 건물 정면에 있는 주 건물)이 있었고, 안에는 두 사람이 서 있는 게 어렴풋이 보였다.
‘다른 한 명은 누구지?’
심협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가 곧 다시 펴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 있던 두 사람은 정교금과 한 청년 도사였다. 젊은 도사는 손에 새하얀 불진을 든 채 가볍게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 도사는 정교금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심협이 들어서자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심협은 문득 왠지 모를 두려움이 들었다. 상대가 온몸을 꿰뚫어보기라도 한 것처럼 손발을 통제할 수 없이 부들부들 떨려 와 그 자리에서 우뚝 서 있었다.
“허허, 이분이 바로 심 소우구먼. 우리 이미 한 번 만난 적이 있지?”
청년 도사가 웃음을 머금은 채 건넨 인사에 심협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분명 귀에 익은 목소리였던 것이다.
“귀하께서는 원 국사이십니까?”
그 청년 도사의 목소리는 예전 저승의 명하 근처에서 만났던 십구공주의 목을 타고 나왔던 목소리와 똑같았다.
“그렇다네. 내가 바로 원천강일세. 지난번 명하 강가에서는 도우와 황급히 헤어지느라 통성명도 제대로 못했었지. 소우가 이해해주게나. 콜록콜록…….”
원천강은 한쪽 손바닥을 세워 예를 갖춘 뒤, 갑자기 기침을 몇 번 한 후에야 진정했다. 몸이 좋지 않아 보였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심협이 황급히 답례하며 눈을 내리 깔았다.
그는 꿈속에서 이미 진선의 경지에 이르러서 안목이 뛰어났는데, 눈앞의 원천강은 헤아릴 수 없이 심오하고 마치 끝없는 바다와 같은, 밑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느낌이었다. 지금껏 적잖은 고수를 만나봤지만, 정교금이나 황목상인, 경하용왕, 심지어는 꿈속의 동해용왕조차 원천강만큼 두렵지는 않았다.
한데 원천강을 만나니 심협은 내심 불안해졌다. 원천강의 도력은 하늘에 닿은 데다 또 정부(程府)에 있으니 옥침과 천책 허상의 존재를 눈치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오늘 이 원모는 그저 정부에 방문한 객이니, 심 소우는 그리 예의 차릴 것 없네.”
원천강이 웃음을 머금은 채 말했다.
“자, 둘이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예의 차리지 마십시다. 심 소자, 오늘 너를 부른 것은 이원진수가 도착했기 때문이다.”
정교금이 두 사람의 말을 끊었다.
심협은 그제야 원천강에 대한 생각을 접고 얼굴에 희색을 드러냈다. 그는 대당관부에게서 이원진수를 받기로 약속했지만, 장안의 귀환 때문에 줄곧 지체된 터라 하마터면 그조차 이 일을 잊어버릴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