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83화 (383/1,214)
  • 383화. 새로운 터전

    한편, 천갱 안에서 얼떨떨해 있던 청우요괴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 수 없어 땅에 떨어진 황금승을 주워들고 법보에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살펴보려 했다.

    그런데 그때, 뒤에서 느닷없이 거센 바람이 불어닥치더니 심협이 순식간에 나타나 진해빈철곤에 금빛을 휘감은 채로 청우요괴의 등 한복판을 찔렀다.

    푹!

    진해빈철곤은 창처럼 청우요괴의 몸을 관통했고, 이 소 요괴가 온몸이 뻣뻣하게 굳은 채 반사적으로 법력을 운행하려던 순간 곤봉이 빛을 번쩍이더니 눈 깜짝할 새 백배로 굵어졌다.

    펑!

    기이한 소리와 함께 청우요괴의 온몸이 조각조각 터져나가면서 뼈와 살점이 어지러이 흩날리고 핏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부서진 몸뚱이에서 원신이 튀어나와 품속에 금빛 요단 하나를 품은 채 멀리 날아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뒤를 바짝 쫓은 심협의 모습도 뒤엉킨 금빛과 은빛 속에 사라져버렸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반쯤 넋이 나가 있던 그때, 노마후가 앞장서서 외쳤다.

    “청우요괴는 이미 죽었다! 어서 투항하지 않고 뭣들 하느냐!”

    그의 외침에 심호와 화덕성군은 잠시 어안이 벙벙해져 일순 그가 누구에게 투항하라고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어진 그의 행동이 그 답을 알려주었다. 그가 자색 등나무 지팡이를 번쩍 휘둘러 옆에 있던 여우요괴를 내리친 것이다.

    “이게 무슨 짓이냐!”

    심호는 대경실색하며 훌쩍 몸을 날려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를 본 화덕성군은 즉시 한 손을 결인하고 다른 손의 손가락을 구부려 하늘을 향해 튕겼다. 그러자 불덩이가 곧바로 날아가 여우 요괴를 명중시켰다.

    “꺄아앗!”

    심호는 새된 비명을 내질렀고, 그녀의 온몸은 별안간 뜨거운 불길에 휩싸였다.

    맹렬히 타오르는 불빛 속에 거대한 하얀 여우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스스로 꼬리 두 개를 잘라내 몸에 붙은 불길을 쓸어내고는 곧장 하늘로 달아났다.

    천갱 속 작은 요괴 무리는 이끌어줄 자가 사라지자 우왕좌왕하며 사방으로 뿔뿔이 도망쳤다.

    불로 몇 마리를 태워 죽이던 화덕성군은 이내 녀석들을 내버려둔 채 기련미를 비롯한 사람들을 불러들였고, 뜬금없이 마음을 바꾼 노마후와 대치했다.

    노마후는 별다른 해명 없이 그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모양새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높은 하늘에서 둔광이 한 줄기가 빠르게 날아오더니, 심협이 천천히 내려왔다.

    “대왕을 뵙사옵니다.”

    노마후가 곧바로 다가가며 포권했다.

    이에 기련미 등은 놀라서 입이 쩍 벌어졌지만, 화덕성군만은 무언가를 눈치채고는 있었던 듯 심협에게 전음으로 물었다.

    ‘심 도우, 네가 정말 제천대성 손오공의 환생이냐?’

    ‘그게…….’

    심협은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다.

    ‘곤란하다면 굳이 답하지 않아도 된다. 허허!’

    화덕성군이 시원스레 웃으면서 답하자 심협도 더는 말을 잇지 않고 손을 흔들어 땅 위의 황금승과 낭아봉을 거둬들였다.

    어렵사리 탈출한 사람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제야 하나둘 다가와 심협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이제 다시 자유를 얻었는데, 여러분의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심협이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 말에 모두가 막연히 생각에 잠겼다.

    이들 대다수는 이미 집과 가족을 잃었고, 종문이 전멸하여 몇 년간 갇혀 있다가 갑자기 자유를 되찾은 터라, 한순간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던 것이다.

    “심 도우, 나는 이제 천지를 홀로 떠도는 외로운 기러기와 같소. 나무를 세 바퀴나 돌아봐도 깃들 가지가 없으니, 앞으로는 그대의 뒤를 따르고자 하오.”

    한 사람이 잠시 묵묵히 있다가 그렇게 답했다.

    그러자 마치 이 말이 기폭제라도 된 것처럼 몇 사람이 연이어 심협을 따르겠노라고 말했다.

    심협은 속으로 쓰게 웃었다. 자신은 언제 현세로 되돌아갈지 모르는데 어찌 이들에게 자신을 따르라 할 수 있겠는가?

    “심 도우는 경지가 심오하고 신통력이 막강하니, 모두가 그대에게 의지하여 함께 동행한다면 이 말세에 정말 좋은 선택이 될지도 모르오.”

    기련미의 그 말에 화덕성군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들어보니 여러분은 오랫동안 환난을 겪고 생사를 함께한 사이로, 서로 의지하는 것도 좋은 일일 것입니다. 이 화과산은 제천대성이 당시 뜻을 이룬 곳이고, 산수의 지세(地勢)가 훌륭한 복된 땅입니다. 요마들에게 수년간 점거 당했다가 이제 빛을 되찾았으니, 이곳을 새로운 터전으로 삼는 게 어떻습니까?”

    심협은 생각 끝에 그렇게 말하고는 의견을 묻듯 노마후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대왕의 분부대로 할 것이옵니다.”

    노마후가 몸을 굽히며 말했다.

    “어쨌거나 이 하늘 아래로는 모두 난세이니 여기 남는 것도 괜찮기는 하오.”

    기련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모두가 여기 남아 똘똘 뭉쳐 온기를 나눈다면 안온한 터전이 생기는 셈이니, 여기저기 떠도는 것보다야 나을 거요.”

    누군가가 호응했고, 이어서 모두가 한두 마디씩 덧붙였다.

    “선배님, 지금 이곳 화과산에는 요마들의 동굴이 몇 개나 있습니까?”

    심협의 물음에 노마후가 공손한 목소리로 답했다.

    “대왕께 아룁니다. 모두 세 개의 동굴이 있사온데, 우두머리는 각각 청우요괴, 여우요괴 그리고 삼수교이옵니다. 다만, 이 삼수교는 용궁을 공격하겠노라 동해로 떠난 후로 아직 돌아오지 않았사옵니다.”

    심협은 이 말을 듣자마자 화색이 돌았다. 그는 사람들에게 동해의 근황을 이야기해주었고, 그 안에는 당연히 삼수교가 이미 죽었다는 말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사람들은 더욱 크게 기뻐했다.

    심협은 곧 사람들을 이끌고 화과산으로 돌아갔고, 노마후의 인솔 하에 그곳에 도사리고 있던 요마들을 말끔히 제거했다.

    그제야 노마후는 자기가 몰래 숨겨놓았던 화과산 원숭이족의 후손들과 청우요괴에게 들키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을 은밀한 곳에서 데리고 나왔다.

    온 화과산 전체가 차츰 옛날의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 * *

    며칠 뒤, 수렴동의 어느 밀실. 심협의 온몸에서 빛이 번득였고, 온몸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불어나면서 경지를 돌파하려는 기세를 띠었다. 하지만 빛은 잠시 반짝이다가 기운이 평온해지기 시작하더니 더는 상승세를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아직 조금 부족한가 보군.”

    심협이 천천히 두 눈을 뜨고는 입맛을 다셨다.

    그가 손목을 돌리자 자그맣고 정교한 보탑이 나타났다. 그는 속으로 구구통보결을 묵묵히 읊조리며 다시 한번 제련을 시도했다.

    그러나 잠시 뒤, 그는 법결을 거두고는 탄식했다.

    “역시나 안 되는군그래.”

    이 정교하고 아름다운 보탑은 무슨 연유인지 구구통보결로도 제련할 수가 없었다.

    “됐다. 육진편과 진해빈곤철도 손에 넣었고, 황금승과 낭아봉도 얻었으니 한동안 법보가 모자라지는 않겠지. 다만…….”

    심협은 말을 끝맺기도 전에 갑자기 머리가 핑 도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미처 호흡을 가다듬기도 전에 강렬한 현기증이 밀려왔다. 천지가 빙빙 돌고 의식이 점점 흐릿해졌다.

    * * *

    눈을 떴을 때, 익숙한 침상 휘장의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머리를 가볍게 흔들고는 다시 사방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정부(程府)에서 준 그의 처소였다. 천 년 후의 꿈속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그는 천장을 바라보며 한동안 그대로 누워 있었다.

    “마제 치우, 환생한 다섯 잔혼…….”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그의 표정은 어두워졌다가 밝아지기를 반복했다.

    이번 꿈에서는 특히 많은 일을 겪었다. 꿈속에 있을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 다시 떠올려보니 실로 충격적이었다.

    이정이 남긴 말을 보면, 환생한 다섯 잔혼의 존재가 결국 천하에 대겁(大劫)을 불러온다. 그 모든 것을 바로잡으려면 환생한 다섯 마혼(魔魂)을 찾아내 숨통을 끊어놓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걸림돌이 되는 것은 그의 실력이었다. 그 마혼들은 치우의 혼백들이니 분명 그 경지가 낮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자신은 이제 겨우 응혼 후기로, 이곳 대당에서도 강자 축에 끼지도 못한다. 그러니 섣불리 다섯 마혼에 대해 알아보려 나섰다가는 죽음을 피할 길이 없으리라.

    그때, 옆에 있던 옥침에서 갑자기 밝은 금빛이 번득이더니 빠르게 움직이며 쉬지 않고 날카롭게 울부짖었다. 뒤이어 금빛 그림자 하나가 옥침 안에서 튀어나왔다.

    심협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잡고 보니, 손에 금빛 서책 한 권이 쥐여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천책! 이 물건이 어떻게 현실에 나타날 수 있지?”

    심협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러나 그는 곧 저 천책은 진짜가 아니라 꿈속의 천책이 현실에 투영된 듯한 허상임을 깨달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금책에서는 강력한 위력이 느껴지는 것이 단순한 허상만은 아닌 듯했다.

    심협이 자세히 살펴보려는데, 손에 든 천책이 돌연 강한 금빛을 발하며 뭔가와 공명하듯 하늘을 향해 쉬지 않고 윙윙 진동했다.

    그 순간, 장안성 하늘의 색이 느닷없이 크게 변하여 검은 구름이 머리 위를 뒤덮었고, 은빛 뱀 같은 번개가 어지러이 춤추었으며, 반경 백여 리의 천지영기가 물 끓듯이 혼란스러워졌다.

    검은 구름 깊숙한 곳에서는 마치 천계에서 내려온 선광(仙光)인 듯, 실오라기 같은 금빛이 비치고 있었다.

    이 금빛도 끊임없이 반짝였고, 그때마다 천둥같이 거대한 굉음을 일으켰다.

    장안성의 백성들이 이런 상황에 발걸음을 멈춘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겁을 먹거나 의아해하는 모습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천지의 이상(異象)이라니, 설마 신선이 영험을 보이는 것인가!”

    누가 외쳤는지, 평범한 백성들은 얼굴에 겁먹은 표정으로 후다닥 사방에 꿇어앉아 하늘을 향해 연신 절하며 하늘에 있는 온갖 부처님들의 이름을 읊조렸다.

    반면 수사들은 그리 우매하지 않았다. 이들은 이런 현상에 분명 원인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어쩌면 어떤 수사의 경지가 크게 오르면서 일어난 현상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어떤 보물이 세상에 나온 징조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성급한 이들은 성안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 * *

    황궁. 한 차례 풍파를 겪은 당의 황제는 침상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빼어난 풍채의 궁군(宮裙) 차림 소녀가 옆에서 그릇을 받쳐 들고 그를 돌보았는데, 바로 이씨 성의 소녀, 십구공주였다.

    하늘에는 이상 현상이 일어나 우렛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커다란 궁전들까지도 윙윙 울리는 소리를 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설마 또 요마들이 난동을 피우는 것은 아니겠지? 여봐라!”

    황제는 놀라고 분노한 기색으로 이부자리를 벌컥 들추고 일어났다.

    “부황, 옥체가 아직 미령하시니 고정하셔야 하옵니다.”

    십구공주가 황급히 황제를 붙잡았다.

    그때, 침궁에 그림자 하나가 나는 듯 빠르게 나타났다. 바로 원천강이었다.

    “폐하, 조급해하지 마시옵소서. 신이 망기술(望氣術)로 살펴본 바, 하늘의 이상은 요마가 일으킨 것이 아니오라 진기한 보물의 파동 때문인 듯하옵니다.”

    원천강의 예를 갖춘 말을 듣고서야 요마들의 소란이 아님을 알게 된 황제는 안색이 누그러졌다.

    “원인이 무엇이든 즉각 이 일을 철저히 조사하여 백성들이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늘에 나타난 현상을 없애도록 하라.”

    “이미 대당관부 사람들을 보냈으니, 곧 결과가 있을 것이옵니다.”

    황제의 명에 원천강이 공손하게 말했다.

    * * *

    대당관부. 정교금이 주전(主殿) 문 앞에 서서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하늘의 이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줄줄이 둔광들이 대당관부에서 쏘아져 나와 사람들이 놀랄 틈도 없이 성안 곳곳으로 향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