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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382화 (382/1,214)
  • 382화. 푸른 소와의 싸움

    건곤로에 빛이 번쩍이더니 단로 뚜껑이 떠올랐고, 이어서 하늘을 찌를 듯한 화염이 곧장 솟구쳐 나왔다.

    청우요괴는 하늘로 몸을 날려 단로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그 순간 안색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단로 안에서는 이글이글한 화염과 불씨 하나만 남아 있을 뿐, 앞서 그가 던져 넣은 온간 진귀한 재료들은 물론 심협마저 온데간데없었던 것이다.

    “어찌 된 일이지?”

    청우요괴는 신식을 뻗어 사방을 훑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흐릿한 금빛과 은빛 한 줄기가 불가사의한 속도로 청우요괴에게 돌진해왔다. 거의 동시에 그 안에서 기다란 금빛 곤봉이 튀어나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청우요괴의 등줄기를 내리쳤다.

    쾅!

    “컥!”

    청우요괴는 상대의 그림자를 제대로 보기도 전에 곤봉에 얻어맞고 날아가 천갱의 산벽에 처박혔다.

    온 화과산이 거세게 흔들리고 천갱 산벽 위의 바위가 갈라지면서 그대로 깊이가 수십 장에 달하는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그 안에서는 먼지구름이 풀풀 일었고, 자잘한 돌멩이들이 사방으로 격렬하게 튀었다.

    “심 도우!”

    기련미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놀람과 의아함이 뒤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공중에는 한 사람이 떠 있었다. 수려한 용모에 새것 같은 푸른 장포를 입고 손에 진해빈곤철을 들었으며, 좌우 양팔에는 금빛과 은빛 실이 번쩍이는 것만 같은 이 사람이 심협이 아니면 또 누구겠는가?

    “저 녀석, 이런 재주도 있었다니! 와하하!”

    화덕성군이 이를 보고 깜짝 놀라 기뻐하며 채통도 잊은 듯 껄껄댔다.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오래 기다리게 했군요.”

    심협이 씩 웃으며 답했다.

    말을 마친 그가 손을 흔들자, 푸른 빛이 마치 천녀가 꽃을 뿌리는 듯 날아 내려왔고, 아래쪽에 있던 수많은 요족들은 기겁하며 줄행랑을 쳤다.

    그런데 그때, 맞은편 부서진 산벽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리더니 낭아봉이 심협의 가슴팍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심협은 진해빈철곤을 휙 쳐올려 낭아봉을 튕겨냈다.

    낭아봉은 높이 하늘로 날아간 뒤, 이내 푸른 빛에 감싸여 돌벽의 먼지 구름 속으로 날아 들어갔다.

    곧이어 청우요괴가 낭아봉을 든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날아 나왔다.

    “그럴 리가…… 네놈이 어찌 건곤로의 금제에서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단 말이냐!”

    “고작 낡아빠진 단로에서 빠져나온 게 무어 대수인가? 아니면 다시 한번 제련하게 해주랴? 어쨌든 안에 있는 영재들 맛은 썩 괜찮던데, 좀 더 먹고 싶긴 하더군.”

    심협은 피식 웃으며 여유로운 목소리로 답했다.

    조금 전, 그는 단로 속에서 황금승의 속박이 사라지자 곧장 요붕의 선천령우를 제련했다. 또한 달아나기 전에 안에서 이미 응련되어 액화된 갖가지 영약들을 전부 집어삼켜, 상황이 조금 안정된 뒤에 정제하고 흡수하기만을 기다렸다.

    본래 삼매진화의 불씨도 가져갈 생각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물건은 너무나 뜨거워서 살짝만 닿아도 피와 살이 다 녹을 것이었다. 다행히도 대개박술이 있었기에 중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결국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청우요괴는 심협의 말에 노여움을 참지 못하고는 고함을 내질렀다. 그의 두 눈에는 붉은빛이 떠올랐고, 온몸에서는 푸른 빛이 솟아오르기 시작했으며, 온몸의 뼈에서 빠드득 하는 소리가 울리면서 몸집이 갑자기 배로 불어났다. 그의 발을 감싼 포화(*布靴: 헝겊으로 만든 신발)가 펑 하고 터져나가면서 커다랗고 검푸른 두 개의 소 발굽이 드러났다.

    청우요괴의 기세가 폭발적으로 치솟자, 심협도 진중해졌다. 그는 두 손으로 진해빈철곤을 쥔 채 청우요괴를 가리키며 맞설 자세를 취했다.

    청우요괴는 그 자세를 보고는 더욱 의아한 기색으로 살짝 당황했다. 그러나 기억을 되짚어 봐도 자세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자 불길함을 떨쳐내고는 두 발로 허공을 세차게 밟으며 달려들었다.

    그의 두 발굽이 땅을 박차는 순간, 허공에서 굉음이 울리고 강력한 반동이 돌연 치솟았다. 그의 몸은 잠깐 흐릿해졌다가 쏜살처럼 심협 앞에 이르렀다.

    “핫!”

    청우요괴의 입에서 커다란 고함이 터져 나왔고, 양팔에는 푸른 빛이 감돌았다. 그는 낭아봉을 꽉 움켜쥔 채 심협의 머리를 향해 내리치며 거대한 힘으로 압박해왔다.

    심협의 눈빛은 바짝 움츠러들었고, 발밑에는 달빛 잔영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옆으로 비켜서며 낭아봉의 거센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하지만 낭아봉이 그의 몸을 비껴 지나는 동시에 청우요괴가 입꼬리를 올리고  씩 웃었다. 동시에 그의 낭아봉에서 갑자기 푸른 빛이 터져 나오면서 날카로운 가시 같은 푸른 송곳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심협은 이를 미처 피하지 못했고, 가슴에서 피를 뿜으며 튕겨 날아갔다.

    청우요괴는 기세를 몰아 다시 두 발에 힘을 주어 눈 깜짝할 사이 쫓아와서는 정면으로 심협을 매섭게 내리쳤다.

    심협은 자세도 제대로 잡지 못한 상태에서 곤봉으로 가로막을 수밖에 없었다.

    펑!

    심협은 양팔에 얼얼함을 느꼈고, 태산이 머리 위를 짓누르는 듯한 거대한 힘이 밀려 천갱의 못으로 세차게 내동댕이쳐졌다.

    퍼펑!

    새파란 연못의 물이 한순간 백여 장이나 치솟았고, 심협은 밑바닥 암초 위에 그대로 처박혔다.

    청우요괴는 또다시 급강하하면서 한 손으로 결인했다. 그러자 그의 뒤로 푸른빛이 빠르게 부풀어 오르면서 거대한 몸집의 푸른 소 법상(法相)이 응집되었고, 낭아봉이 아래로 돌진하는 기세를 따라 연못을 향해 돌진했다.

    바로 그때, 우렁찬 포효가 들려오더니 연못 전체의 물이 순식간에 하나로 뭉쳐 비늘갑옷이 겹겹이 포개진, 살아 숨 쉬는 듯 생생한 교룡이 되었다. 교룡은 머리를 높이 치켜들고 거칠게 돌진해 푸른 소 법상을 향해 날아들었다.

    교룡의 몸 위에는 심협이 두 손으로 곤봉을 쥔 채 우뚝 서 있었는데, 가슴의 상처는 말끔히 회복된 상태였다.

    그는 두 눈을 집중하고 발아래로 빠르게 강보를 밟으며 두 팔을 빠른 속도로 휘둘렀다. 그러자 발천난봉의 곤봉 그림자들이 그의 몸 밖에 줄줄이 맺히기 시작했다.

    마침내 작은 산 같은 푸른 소 법상과 강줄기 같은 교룡이 충돌했다.

    콰쾅!

    폭발음이 온 숲을 뒤흔들었다.

    푸른 교룡이 먼저 무너지면서 하늘을 뒤덮는 폭우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소 법상은 그대로 거침없이 심협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허상 속에서는 청우요괴가 두 손으로 낭아봉을 꽉 움켜쥔 것이 심협을 일격에 죽여 버릴 기세였다.

    심협은 싸늘한 눈빛으로 찬웃음을 지었다. 그의 온몸 밖은 이미 겹겹이 곤봉 그림자에 휩싸여 있었지만, 마치 금색 빛의 장막이 온몸을 보호하는 것처럼 푸른 소 법상을 그대로 뚫고 청우요괴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죽어라!”

    청우요괴는 크게 소리를 내지르더니 모든 힘을 낭아봉에 주입했다. 그러자 낭아봉 머리 부분에는 마치 실체처럼 검푸른 빛이 한 겹 맺혀 공간마저 뒤틀어버렸다.

    “하앗!”

    심협 역시 크게 기합을 넣으며 기다란 곤봉을 비스듬히 위로 올려쳤다.

    별안간 그의 온몸 바깥을 뒤덮었던 64줄기 곤봉 그림자가 빠르게 거꾸로 날아 돌아와 겹겹이 합쳐져 하나가 되었다. 그 안에는 전에 없이 거대한 힘이 응집되어 거대한 금빛 곤봉으로 변해 하늘로 치솟았다.

    “발천난봉!”

    이 순간, 청우요괴는 마침내 그 까마득한 기억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리고 그의 눈에 맺힌 경악이 사라지기도 전에 강력한 두 힘이 충돌했다.

    콰콰쾅! 펑! 쿠르릉!

    끊임없는 폭발음이 울리면서 푸른 빛과 금빛이 뒤섞여 터져 나왔다. 마치 화려한 빛깔로 물든 햇빛이 천갱 속에서 천천히 솟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 폭발과 동시에 뜨거운 열기가 폭풍이 되어 사방으로 솟구쳐, 한순간 수백 장에 달하는 천갱에 깊이가 백 장이나 되는 구멍을 수십 개나 만들어냈다.

    기련미 등은 화들짝 놀라 물러났다.

    혼란 속에 튕겨 날아온 건곤로가 웅웅 소리를 내며 빙빙 돌다가 산벽 하나를 들이받더니 그대로 처박혔다. 기울어진 화로 입구에서는 새빨간 불씨 한 알이 떨어져 나와 먼지구름 속에서 밝아졌다 어두워지며 쉬지 않고 깜박거렸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화덕성군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재빨리 그 불씨 앞으로 달려가더니 결인하고 주문을 읊으며 화법신통(火法神通)을 운공했다. 그 읊조림이 울려 퍼지자, 온몸이 봉인당한 뒤 얼마 남지 않았던 법력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얼굴 전체가 벌겋게 변해갔고, 미간과 이마 위에는 예스러운 부적 문양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기해와 단중, 부곡 등 중요한 혈자리들에서 상사한침 일곱 개가 검게 빛났고, 검은 사기(死氣)가 퍼져 나가면서 그의 몸 절반을 집어삼켰다.

    화덕성군은 응어리가 질 정도로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고통으로 표정을 일그러뜨렸지만, 법력 운행을 끝내 멈추지 않았다.

    목덜미를 타고 뻗어 올라간 검은 사기가 얼굴로 흘려가려 할 때, 그가 갑자기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러자 목구멍에 화염 소용돌이가 나타나 그 불씨를 뱃속으로 빨아들였다.

    삼매진화의 불씨가 뱃속으로 들어가자 화덕성군의 얼굴에는 고통스런 기색이 더욱 짙어졌지만, 눈빛만은 희색으로 번득였다.

    잠시 뒤, 그의 가슴과 배 부분이 온통 새빨갛게 달아오르더니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이 온몸에서 화르륵 솟아올라 온몸을 뒤덮었다. 또한 그의 가슴과 배의 혈규에 꽂혀 있던 상사한침들은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 아래 부서져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하하하! 아하하하!”

    화덕성군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통쾌하게 웃었다.

    그러다가 문득 허공의 어떤 형체에 시선이 닿자, 그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뚝 그쳤다. 그 순간, 머릿속에는 오만불손하게 천궁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녀석이 떠올랐고, 두 눈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차올랐다.

    그 무렵, 심협은 공중에 뜬 채로 손에 진해빈철곤을 들고 몸을 살짝 굽히고는 격하게 숨을 몰아쉬던 참이었다.

    발천난봉은 정묘하지만 시전하는 데에는 많은 힘이 필요했기에 몸의 부담도 커서 64번까지 압곤(*壓棍: 곤술 동작 중 하나)하는 것만으로도 무척 힘들었다.

    심협은 저 아래 화덕성군의 시선을 알아차리고 몸을 돌려 굽어보면서 싱긋 웃어보였다.

    “조금 닮기도 했는데, 또 안 닮았단 말이지…….”

    화덕성군은 웃음기를 머금은 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때, 위쪽 허공에 금빛 광흔이 번쩍 지나갔다. 이에 화덕성군은 순간 뭔가 잘못 되었음을 느끼고 소리쳐 주의를 주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금빛 광흔은 뒤에서부터 심협을 칭칭 휘감았다. 동시에 심협은 온몸의 법력이 사라지면서 곧장 추락해 이미 산산이 부서진 작은 섬 위로 곤두박질쳤다.

    콰직!

    하늘에서 그림자 하나가 내려와 손에 쥔 낭아봉으로 심협의 어깨를 세게 두들겨 그를 절반이나 땅속으로 박아 넣었다.

    이때 청우요괴는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데다가 갑주도 너덜너덜해 낭패를 겪은 모습이었다. 또한 두 눈은 검붉게 충혈되어 있어 얼핏 봐도 이미 분노가 극에 달한 것 같았다.

    화덕성군은 심협이 결박당한 것을 보고 다가가서 구하려 했지만, 어느새 구미호가 작은 요괴 수십 명을 데리고 달려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노마후 역시 그들 사이에 있었다.

    “음탕한 여우야, 썩 꺼지거라!”

    화덕성군이 노하여 호통쳤다.

    “회록, 조급해하지 마라. 내 이놈을 죽이고 곧 너도 보내주마.”

    청우요괴가 그쪽을 돌아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이 소내장탕거리야! 효천견이 너를 그리 불렀을 때 이 몸이 너를 대신해 한마디 해줬거늘, 지금 보니 너는 정말로 개만도 못한 놈이로구나! 담력이 있으면 어디 이 몸부터 상대해보거라.”

    본래 성미가 불같은 화덕성군은 큰 소리로 욕설을 퍼부었다.

    잊고 지낸 별명을 들은 청우요괴는 과연 분노가 폭발하여 콧구멍으로 김을 쉭쉭 내뿜으면서 당장 달려들 기세였다.

    한데 발을 들어 올린 순간, 그는 멍하니 넋을 잃었다.

    바로 그의 발밑에서 한 줄기 맑은 바람이 휘몰아치는 듯하더니, 심협의 모습이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백리 밖 수역의 하늘에 심협의 모습이 불쑥 나타났다. 그의 두 팔 위에는 금빛과 은빛 광선이 쉬지 않고 맴돌았다.

    심협은 즉시 가부좌를 틀고 호흡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그의 뱃속에서는 액화된 영약의 정수가 유유히 회전하고 있었는데, 가닥가닥 법력들에 둘러싸여 정제되기 시작했다.

    불과 10여 호흡 뒤, 1할에도 미치지 못하는 약효만을 정제한 상태였으나 심협은 눈을 뜨고 두 손을 결인하여 다시 진시천리를 시전해 번쩍 하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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