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81화 (381/1,214)
  • 381화. 단로(丹盧)에 들어가다

    감방 밖 어둠에서는 살기 어린 고함과 애절한 울부짖음이 뒤섞여 들려왔고, 싸우는 소리도 점점 더 가까워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감방을 탈출했던 사람들은 이미 되돌아왔고, 청우요괴도 무리를 이끌고 옥문 밖까지 그들을 뒤쫓아 왔다.

    청우요괴는 온몸에 피칠갑을 한 채 퉁방울 같은 눈에 분노를 가득 담아 매섭게 부라렸다.

    “죽기만을 기다리는 죄수 놈들이 내 크게 선심을 쓴 덕에 지금까지 살 수 있었거늘, 은혜를 저버리고 탈옥하다니! 원한다면 죽여주마!”

    그는 손을 들어 한 사람을 곧장 손아귀로 끌어들인 뒤 그 목을 죽일 듯 움켜쥐었다. 상대는 쉬지 않고 발버둥 쳤지만, 청우요괴의 집게 같은 커다란 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어서 청우요괴가 손목을 슬쩍 돌리자 그대로 목이 꺾여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앞장선 자와 금제를 푼 자의 이름을 대라!”

    청우요괴는 그 사람의 시신을 손 가는 대로 군중 속에 처넣은 뒤 싸늘하게 말했다. 그리고 말을 마치기도 전에 선천령우를 제련 중인 심협을 알아차렸다.

    “흥! 네놈은 정말이지 손이 많이 가는 놈이로구나! 이곳의 음모는 분명 네가 꾸민 것일 터! 너부터 손봐주마!”

    말을 마친 청우요괴가 한 손을 들어 움켜쥐자, 푸른 빛이 응집되어 심협의 목덜미를 휘감았다.

    그때, 갑자기 그림자 하나가 가로질러와 심협의 앞을 막아서며 푸른 빛을 한 손으로 내리쳐 흩어버렸다.

    “기련미? 흥! 너도 죽고 싶은 것이냐?”

    청우요괴는 콧방귀를 뀌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우린 이곳에 갇힌 지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으로, 본래 도살장의 소처럼 죽을 날만을 기다렸습니다. 한데 심 도우가 나타나고서야 비로소 우리는 다시 햇빛을 볼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지요. 오늘 죽는다하더라도 이 가능성을 지켜야만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떳떳하게 사람 노릇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입니다!”

    기련미는 청우요괴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형형한 눈으로 공장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나 그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푸른 빛으로 된 거대한 손바닥에 맞아 나동그라졌다. 청우요괴의 모습이 곧이어 불쑥 나타나서 한 발로 가슴팍을 짓밟자 그는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피를 한 사발이나 토해냈다.

    “네 자질과 근골이 제법 쓸 만하고 일신의 기골도 그럭저럭 훌륭하여 육신단을 만들 생각이었지. 덕분에 네가 지금껏 살아 있었던 게다. 한데 저놈에게 기대 햇빛을 다시 보려 하다니……. 흐흐, 잘 보아라, 내 저놈 먼저 제련해주마.”

    청우요괴는 곁눈질로 심협을 흘끗 보고는 차게 웃으며 기련미를 발로 뻥 차버리고 심협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바로 그때, 칠흑 같은 동굴 안에서 갑자기 빛이 번쩍하더니 진홍색 화룡(火龍)이 화르륵 소리를 내며 뛰쳐나와 곧장 청우요괴에게 돌진했다. 작열하는 화염이 빙빙 휘감고 지나가면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의 고리가 되어 청우요괴를 한가운데에 가두었다.

    “회록, 내 자네를 이곳에 가둔 것은 본디 옛정을 생각하여 그런 것일세. 그러니 벌주를 마시지 말고 권하는 술을 마시게.”

    화염에 휩싸인 채 청우요괴가 서슬 퍼런 얼굴로 경고했다.

    “늙은 소야, 네놈이 천정을 배반한 뒤부터 내 지난날의 술은 전부 효천견(*哮天犬: 중국 신화 속 이랑신이 데리고 다니는 하늘의 개)한테나 줘버렸다고 여겼느니라. 한데 너와 내게 무슨 옛정이 더 있단 말이냐? 네놈에 의해 이곳에 갇혀 있으니 개 돼지와 다를 게 무엇이냐! 이 몸은 진작 기다리다 싫증이 난 터다.”

    화덕성군이 비웃듯 내뱉었다.

    “이런, 이런! 그렇다면야 뭐, 내 자네를 황천길로 보내주지.”

    청우요괴는 눈빛이 싸늘하게 식은 채 내뱉었다.

    말을 마친 그가 발을 들어 땅을 세차게 내리밟자 지하 동굴 전체가 격렬하게 진동하면서 푸른 빛 무리가 그의 체내 밖으로 퍼져 나왔다. 동시에 이 빛 무리는 강력한 기운으로 변해 모든 화염을 흩어버렸다. 뒤이어 그의 몸이 한걸음에 뛰어나오더니 다섯 손가락이 갈고리처럼 화덕성군의 가슴팍을 향해 곧장 날아들었다.

    그때, 가볍지만 근엄한 외침이 들려왔다.

    “멈춰라!”

    그 소리에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보니 어느새 심협이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청우요괴는 손을 멈추지 않고 방향만 바꾸어 한 손으로 화덕성군의 목덜미를 홱 잡아채고는, 차가운 눈으로 심협을 노려보았다.

    이를 본 심협은 속으로 작게 탄식했다. 황금승이 법력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커 지금처럼 제련하다가는 일을 완성할 수 없을 터. 기련미와 화덕성군이 목숨을 걸고 시간을 벌어준다 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곳의 소란은 모두 내가 일으킨 것이니 저들과는 상관이 없다. 너는 사람으로 단약을 만들지 않느냐. 솔직히 말해, 나는 얼마 전 반도 한 알을 먹었으니, 네가 서둘러 나를 재료삼아 단약을 만든다면 그 정수를 추출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심협이 천천히 말했다.

    “심 도우!”

    기련미가 애써 몸을 일으키며 심협을 만류해보려 했다.

    “좋다. 아직까지는 제법 기개가 굳건하구나. 나의 건곤로(乾坤爐)에 들어가 49일 동안 불타고도 그 대쪽 같은 성질머리나 남아 있을지 모르겠구나.”

    청우요괴는 감탄한 듯 칭찬을 던지더니 이어서 화덕성군의 목을 놓았다.

    그는 손을 들고 허공을 움켜쥐어 심협을 손아귀 안으로 끌어들였다.

    “여봐라, 천지분간 못하고 함부로 날뛴 이놈들을 전부 끌고 나와라! 내 저놈들에게 이놈을 상품 육신단으로 만드는 모습을 직접 보여줄 것이다!”

    청우요괴는 크게 고함을 지른 뒤, 먼저 심협을 데리고 옆 동굴 밖으로 성큼성큼 나갔다.

    한 무리의 작은 요괴들이 기련미를 비롯한 사람들을 붙들고 청우요괴를 따라 수렴동으로 돌아간 뒤, 다른 한쪽 옆의 동굴을 통과해 산중턱 통로로 들어갔다.

    이 통로를 지나자, 갑자기 앞에 햇빛이 환하게 밝아졌다. 뜻밖에도 화과산 뒤쪽의 천갱에 도착한 것이다.

    천갱은 높이가 백 장이 안 되었지만 둘레는 수백 장에 달했는데, 그 안에는 물이 고여 만들어진 깊은 못이 하나 있었다. 한가운데에는 둘레가 수십 장에 불과한 작은 섬이 하나 있었고, 그 위에는 3장 높이의 청동 단로가 놓여 있었다.

    이 화로는 발이 세 개에 양옆으로는 손잡이가 하나씩 달렸으며, 위에는 갖가지 복잡한 부적 문양이 새겨져 있어 한눈에 봐도 범상한 물건이 아니었다. 옆에는 열서너 살 쯤 먹은 아이 두 명이 하나는 검고 네모난 상자 하나를, 다른 하나는 하얀 깃털부채를 든 채 서 있었다.

    청우요괴는 심협을 데리고 못 한가운데의 섬으로 몸을 날렸다. 그가 손을 휘두르자 단로를 덮고 있던 두껍고 묵직한 뚜껑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곧장 하늘로 높이 날아올랐다. 단로 안에서는 불길이 1장 높이까지 화르륵 솟구쳐 올랐고, 이글이글 뜨거운 열기가 순식간에 온 천갱을 가득 채웠다.

    사방을 둘러싼 벽수담에서는 뜨거운 열기로 주위에 갑자기 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올라 천갱 안을 마치 선경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분위기만 본다면 그야말로 신선이 단약을 만드는 곳과도 같았다.

    “내 이미 이 단로에 많은 영재와 선약들을 정제해놓고 주재료가 들어가기만을 기다렸으니, 네가 육신단 제련에 성공하도록 도와야 한다. 하하하!”

    청우요괴가 크게 웃으며 손을 들어 심협을 곧장 단로 속으로 던져 넣었다.

    곧이어 무거운 단로 뚜껑이 묵직하게 떨어져 내리며 닫히는 순간, 금빛 한 줄기가 밖으로 쏘아져 나왔다.

    기련미는 그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건 바로 심협의 몸을 묶고 있던 황금승이었다.

    “네놈이 무슨 속셈인지 내가 모를 거라 생각 마라. 단로에 들어가기 전에 내가 황금승을 거둬들이는 사이에 달아나려 했겠지만, 뜻대로 되도록 놔둘 것 같으냐! 크하하!”

    청우요괴는 황금승을 허리춤에 두르고는 단로에 대고 냉소했다.

    그가 말을 마치자 단로 전체가 심하게 흔들리더니, 단로 뚜껑이 벌컥 솟구쳐 올라 하마터면 열릴 뻔했다. 보아하니 심협이 그 안에서 나오려 기를 쓰는 것 같았다.

    하지만 뒤이어 단로 바깥의 부적 문양이 밝아지기 시작하더니, 화로 바닥에서부터 촘촘한 금빛이 뻗어 나오면서 한데 모여 무수히 많은 가느다란 금실을 이루었다. 그리고 단로가 이 금빛에 완전히 뒤덮히자 끊임없이 흔들리던 단로는 갑자기 천근추(*千斤墜: 무공의 하나로 기를 이용해 몸의 무게를 무겁게 하는 것)라도 쓴 것처럼 묵직하게 땅에 내려앉아 더 이상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단로 옆에 있던 두 아이 중 하나가 잽싸게 네모난 상자를 열어 그 안에 담긴 조연분(*助燃粉: 불이 잘 붙게 도와주는 가루)을 필사적으로 뿌렸고, 다른 한 아이는 깃털부채를 연신 흔들어 조연분을 단로 쪽으로 날려보냈다.

    이미 황금빛으로 달아오른 단로가 가루를 그대로 흡수하자, 그 바깥의 붉은 화염이 한층 더 타올랐다.

    청우요괴는 흡족한 눈으로 이를 바라보며 손을 뒤집었다. 그의 손바닥에 다시 손바닥만 한 작은 향로가 나타났는데, 일전에 심협과 싸울 때 썼던 것이었다.

    향로에는 새빨간 불꽃 한 점이 켜져 있었고, 안에 연기 한 가닥 없었지만 간간이 불길처럼 뜨거운 힘이 사방으로 쏟아져 나왔다.

    “망할! 삼매진화잖아!”

    화덕성군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삼매진화? 설마 전설 속의 그 천화(天火)란 말입니까?”

    기련미가 이를 보고 재빨리 물었다.

    “그래! 삼매진화는 십대천화 중 하나로, 원래 태상노군의 팔괘로(八卦爐) 속에 있던 불꽃이지. 손오공이 단로를 뒤엎은 뒤 대부분 하계의 화염산(火焰山)에 뿌려졌는데, 태상노군께서 극히 일부만 거둬 모으셨어. 저놈 수중에도 불씨가 남아 있을 줄이야……. 저 불길의 위력은 심협이 절대 감당할 수 없을 텐데…….”

    화덕성군이 미간을 찌푸리며 탄식했다.

    그때, 청우요괴가 손에 향로를 받쳐 들고 한 손을 결인하며 향로를 어루만졌다. 그러자 법결 한 줄기가 번쩍하고 향로 속으로 떨어져 들어갔고, 향로 뚜껑이 뒤집히면서 용안만 한 빨간 불씨가 튀어나와 건곤로를 향해 곧장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건곤로 몸체에 새겨진 태극음양 도안에서 한 줄기 빛이 비쳐 그 새빨간 불씨를 휘감고 단로 속으로 곧장 빨아들였다.

    금실에 휘감겨 황금빛을 띠었던 단로는 이내 몸통 전체가 적금색으로 변했고, 희미한 날짐승의 허상이 단로 위를 잠시 맴돌다 이내 그 안으로 사라졌다.

    삽시간에 뜨거운 기운이 하늘로 치솟으면서 온도가 갑자기 올라갔다. 이에 못에 고인 푸른 물이 격렬하게 증발되어 하얀 수증기가 펄펄 솟아올랐다.

    두 아이는 황급히 뒤로 날아가 못 한가운데 있는 섬을 떠났고, 오직 청우요괴만이 건곤로 곁에 남아 있었다. 그의 눈에는 탐욕과 기대감이 가득했다.

    “끄아악!”

    단로 속에서 처참한 비명이 들려왔다.

    “심 도우!”

    기련미가 피를 토하듯 외쳐댔고, 화덕성군은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으며 차마 더는 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단로 안에서는 비명이 끊이지 않아 듣는 사람의 머리털이 쭈뼛 곤두설 정도였지만, 청우요괴는 오히려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처절한 울부짖음이 갑자기 뚝 끊겼다.

    ‘이제 죽은 건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이런 의문이 솟아났다.

    그러나 화덕성군은 무언가 다른 조짐을 알아차리고는 눈빛을 희미하게 번득였다.

    반면 청우요괴는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눈빛이 약간 무거워졌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한 손으로 결인하여 건곤로를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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