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80화 (380/1,214)

380화. 진해빈철곤이 하늘을 진동케 하다

한편, 이 장면을 보며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인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심협이었다. 아마 세 사람 중 그가 가장 기뻐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 요붕이 말한 금빛과 은빛 깃털은 지금 그에게 있었으니 말이다.

요붕은 망설이지 않고 즉시 법결을 읊으며 그 속의 요소들을 하나하나 손오공에게 들려주었다.

손오공은 타고난 명령석후(*明靈石猴: 현명하고 신령한 돌 원숭이라는 뜻)로, 본디 오채보천석(五彩補天石)이 변한 것이니 자연히 영리하고 사리에 밝은 자라, 불과 반 시진만에 이미 진시천리를 완전히 익혔다.

옆에서 지켜보던 심협 역시 꿈속 세계에서의 자질은 워낙 탁월한지라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수정벽 위에 어지러운 빛이 번쩍였고, 손오공과 요붕의 모습은 그 혼란스러운 빛 속에서 차츰 흐릿해지면서 사라져갔다.

수정벽의 빛이 완전히 사라지자 매끈했던 산벽도 평범함 산벽이 되어버렸다.

심협은 속으로 가만히 탄식하며 뭔가를 잃은 듯 허망해했다.

“이제 돌아갈 때도 되었지. 한데 이 절벽은 화과산 어디에 있는 걸까?”

심협은 다시 사방을 한 바퀴 둘러본 뒤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어서 그는 양손을 동시에 결인하여 방금 배운 진시천리를 운공했다. 동시에 양팔에서 따뜻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팔을 펼쳐 기러기처럼 날갯짓을 하자 몸이 순식간에 땅 위로 솟구쳐 눈 깜짝할 사이에 백여 장이나 날아갔다.

그러나 어느 순간, 부드러운 무형의 빛 장막에 부딪힌 듯한 느낌이 들더니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빛의 장막 속으로 휙 끌려 들어갔다.

쿵!

곧이어 빠른 속도로 추락해 땅바닥에 처박히면서 깊은 구덩이를 만들어냈다.

심협은 끙 하고 신음하며 일어나 몸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낸 뒤, 다시 주위를 슥 살펴보고는 이내 넋을 잃고 말았다. 그곳은 좀 전의 그 절벽이었다. 앞에는 여전히 아득한 운해가 펼쳐져 있었고, 뒤로는 사람이 비칠 정도로 반들반들한 수정벽이 보였다.

‘결계?’

심협은 미간을 찌푸리며 두 손을 다시 결인했고, 그의 모습이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쿵!

다음 순간, 그의 몸은 다시 한번 추락하여 또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왔다.

심협은 방향을 바꾸어 다시 둔술을 펼쳐봤지만, 결과는 그대로였다.

“물 분신일 뿐이라 안타깝구나. 본체가 지닌 전력의 6할 이상을 가질 수 있다고 해도 어쨌든 실체는 아니니 두 깃털을 제련할 수도 없지. 그렇지 않으면 그 요붕의 본명신통으로 이곳의 금제를 벗어나는 것 따위 어렵지 않을 텐데…….”

그는 속으로 탄식하다가 시선을 뒤에 있는 산벽으로 돌렸다. 이어서 신식의 힘을 그 위에 기울이자 산벽 표면이 갑자기 투명해지기 시작하더니, 안쪽에 쇠 정 같은 검은 기둥들이 보였다. 그 위에는 복잡하게 생긴 부적 문양이 가득 새겨져 있었고, 기둥끼리 서로 연결되어 금제 법진을 이루고 있었다.

심협은 의식을 움직여 법력을 법진 속으로 집어넣었다. 이에 법진 속의 검은 기둥들이 하나하나 밝아지기 시작하더니 보이지 않는 힘이 안에서 폭발하면서 심협의 법력을 그대로 튕겨냈다.

그러나 이 법진은 방어만 할 뿐 공격은 해오지 않았고, 심협의 법력을 튕겨낸 뒤 폭발했던 힘은 저절로 사라졌다.

이를 본 심협이 손목을 빙글 돌리자, 손바닥 한가운데에 육진편이 나타났다.

그는 법력을 움직이면서 황정경 공법을 운공했고, 손으로는 긴 철편을 꽉 움쳐 쥐었다. 그러자 가닥가닥 검은 기류가 철편의 몸통을 휘감고 회전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금빛 용의 허상이 뒤에서 유유히 헤엄쳐 나타나 육진편의 기류를 타고 올라가 강력한 금빛 기운으로 변해 검은 기류와 얽히며 똑같이 회전했다.

휙! 휙!

육진편에 응집된 기류는 점점 빨리 회전했다. 철편 전체가 마치 금색과 검은색 두 가지 빛깔의 거대한 송곳이 된 것만 같았고, 그 안에는 강력한 관통력이 무럭무럭 생겨났다.

심협은 표정을 굳히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손에든 장편(長鞭)을 훅 찔러 넣었다.

펑!

폭발음이 울리면서 산벽 위에서는 불티가 사방으로 튀었고, 바위들이 무너져 날아다녔으며, 한바탕 혼란스러운 먼지구름이 일어나 온 절벽이 진동했다.

이를 본 심협은 크게 기뻐하며 손에 힘을 계속 더해 일격에 금제를 깨뜨리려 했다.

그러나 산벽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 갑자기 그 안의 검은 기둥 금제에서 시커먼 빛이 불어나더니 강력한 힘이 심협을 튕겨냈다. 그는 백여 장이나 날아간 뒤에야 가까스로 몸을 가누고 설 수 있었다.

심협은 눈길을 거두고 손에 든 육진편을 흘끗 본 뒤 그것을 거둬들였다. 이어서 그의 손바닥에 금빛이 번쩍하더니 이번에는 진해빈철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좋아, 발천난봉을 시험해볼 기회로군.”

심협은 허공에 멈춰 선 채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 머릿속에는 곤법의 초식들이 하나하나 떠올랐고, 온몸에는 보이지 않는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는 두 눈을 번쩍 뜨고 기다란 곤봉을 꽉 움켜쥔 채, 허공에서 발걸음을 내딛으며 두 팔을 빠르게 휘둘렀다. 그의 몸에서는 금빛 곤봉 그림자가 줄줄이 나타나 군사들이 진을 친 것처럼 응집되어 흩어지지 않았다.

뒤이어 겹겹이 곤봉 그림자가 떠오르면서 사방의 허공에 응집된 힘도 점점 강해졌고, 하늘과 땅에도 보이지 않는 위압이 나타난 것처럼 그를 압박해오기 시작했다.

그가 만들어내는 곤봉 그림자가 많아질수록 천지간의 압력도 더욱 강해졌다.

‘기세로써 기세를 취하고, 위압으로 위압을 바꾼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압력이 클수록 이 곤봉 그림자는 더 많이 응집되고 그 위력도 더 커지는구나!’

발천난방에 대한 깨달음은 점점 깊어져갔다.

무려 마흔아홉 줄기의 곤봉 그림자를 만들어낸 순간, 심협은 마침내 이 수혼술 분신의 한계에 이르렀음을 깨달았다. 이에 그는 억지로 더 이어가지 않고, 앞으로 몸을 휙 날려 산벽을 향해 곤봉을 휘둘렀다.

콰콰쾅!

진해빈철곤이 정말 내려치기도 전에 허공에서는 이미 쩌렁쩌렁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허공에 응집되어 있던 곤봉 그림자들은 하나하나 날아와 심협 손에 들린 기다란 곤봉과 하나로 합쳐졌다.

곤봉 그림자 하나가 돌아올 때마다 곤봉의 힘은 세져서, 급기야는 본인조차 놀랄 정도가 되었다.

마침내 긴 곤봉이 떨어져 내리자 산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소리가 너른 하늘을 진동시켰다.

콰르릉!

커다란 소리와 함께 산벽 위의 검은 기둥 금제가 부서지고, 온 산벽이 쩍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산사태가 난 것처럼 와르르 무너져 내려 절벽 전체가 파묻혔다.

한편, 허공에는 검은 소용돌이가 나타나 심협을 끌어당겼다.

다음 순간, 수렴동 안 돌벽에 홀연히 물결무늬가 일렁이더니 사람 형체 하나가 연기와 먼지에 휩싸인 채 불쑥 튀어나왔다. 이어서 후다닥 달려온 늙은 개코원숭이가 심협을 부축했다.

“대왕…….”

노마후는 감격한 기색으로 심협을 올려다봤다.

심협이 자세를 바로잡고 서서 옷에 붙은 흙먼지를 털어낸 뒤 막 입을 열려는데, 갑자기 대지가 크게 흔들리고 뒤에서는 쩌적 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깜짝 놀라 돌아보고서야 뒤쪽 돌벽에 균열이 생겨났음을 발견했다.

“대왕, 무엇을 하신 겁니까? 어찌 이 수렴동까지 영향을 받는단 말입니까?”

노마후가 깜짝 놀라 물었으나, 심협도 일순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청우요괴가 달려올 겁니다. 우선 돌아가서 사람들을 구합시다.”

말을 마친 그가 다급히 떠나려 하는데, 노마후가 그의 옷자락을 끌어당기더니 무언가를 건넸다.

심협이 받아들고 보니, 그것은 바로 기련미를 비롯한 사람들이 갇혀 있는 감옥의 영패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심협은 포권하며 감사를 표하고는 돌아서서 빠르게 옆의 동굴로 향했다.

한편, 노마후는 몸을 돌려 양손을 휘둘러 산벽에 생긴 균열을 메워 가리기 시작했다.

심협은 금세 동굴 가장 깊숙한 곳에 이르러 영패로 감옥의 대문을 열었다.

사람들은 크게 기뻐하며 감격한 듯 감사 인사를 건넸다.

“이 녀석, 정말 재주가 있구나.”

화덕성군도 한껏 웃으며 칭찬했다.

“수고스럽겠지만 여러분께서는 갇혀 있는 다른 이들을 구해주십시오. 저는 우선 황금승의 속박을 벗어날 방법을 생각해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사람들은 심협의 말에 짧게 대답하고는 각자 옥문으로 향해 갇혀 있던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시작했다. 오직 화덕성군과 기련미만은 움직이질 않았다.

“심 도우, 어서 법술을 써서 벗어나시오. 내 당분간 그대를 지켜주겠소.”

기련미가 말했다.

심협은 감격하여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 시선을 화덕성군 회록에게로 옮겼다.

화덕장군은 갑자기 눈을 부라렸다.

“보긴 뭘 봐? 이 어르신은 제 몸의 금제도 아직 못 풀었으니 별 도움은 줄 수가 없다!”

심협은 멋쩍은 듯 씩 웃고는 자신의 본체 곁으로 다가가 양손으로 결인했다.

곧 그의 몸에서 푸른 빛이 번득이더니 신혼의 허상이 떠올라 본체와 다시 합쳐졌다. 한편, 남아 있던 물 분신은 점점이 희미한 빛으로 변해 그의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곧이어 심협의 본체가 두 눈을 번쩍 뜨고는 벌떡 일어나 앉아서 숨을 한 모금 깊이 들이마셨다.

그는 막 손을 뻗어 자기 몸을 떠받치고 일어나려다가 자신이 아직 황금승에 묶여 있음을 깨닫고는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 생각으로 곤붕의 선천령우 두 가닥을 불러냈다.

그가 의식을 움직이자, 두 가닥 물줄기가 소매 사이로 불쑥 튀어나와 마치 영사(靈蛇)처럼 두 깃털을 물고 각자 소매 사이로 되돌아가 좌우 팔뚝에 하나씩 붙였다.

그러자 그의 체내에서 뿜어져 나온 법력 일부가 황금승에 흡수되어버렸다.

심협은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지만, 다행히도 법보와 기물을 제련하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법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구구통보결을 운공해 두 깃털을 제련하여 자기 두 팔에 녹여 넣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옆 동굴 입구에서 분노가 폭발하는 듯한 포효가 들려왔다.

“어찌된 일이냐! 약인들이 어떻게 도망 나온 게야?”

뒤이어 병사들이 맞붙어 싸우는 듯한 함성과 이따금 둔탁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젠장, 청우요괴요.”

기련미의 표정이 급변했다.

“저 늙은 짐승이 왔으니 나의 봉인이 풀린다 해도 그의 적수가 되지 않는다.”

화덕성군은 눈썹을 찡그리며 할 수 없다는 듯 탄식했다.

“심 도우…….”

기련미는 어찌해야 할지 물어보려던 참이었지만, 그가 고개를 돌려 보니 심협의 양쪽 소매 사이로 희미한 빛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쉬지 않고 깜빡였다.

“방해하지 마라. 녀석이 어떤 법보를 제련하고 있는 것 같구나. 다만 애석하게도 이 황금승 때문에 쓸 수 있는 법력이 적어서 짧은 시간에 성사되긴 어려울 듯하구나.”

화덕성군이 탄식했다.

기련미는 어쩔 수 없이 입을 꾹 다물고는 주먹을 움켜쥔 채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