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73화 (373/1,214)
  • 373화. 산을 점령하고 왕을 자칭하다

    오홍은 두 주먹을 꽉 쥔 채 고개를 들고 멀리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이미 완전히 황금빛이 되어버린 두 눈으로 오광이 화한 금룡이 조금씩 부서져 내리는 것을 보며 하늘을 뒤흔드는 포효를 내질렀다.

    이 소리에 사방 돌기둥 위의 반룡들도 감화한 듯 동시에 입을 쩍 벌리고 포효하기 시작했다. 다만 그들의 포효에는 아무런 소리가 없어, 순수하기 이를 데 없는 용원(龍元)만 입에서 뿜어져 나와 오홍에게 몰려들 뿐이었다.

    그와 동시에, 오홍 발밑의 석대에 새겨진 부적 문양도 밝아지기 시작하더니, 나선형 소용돌이가 그 주위에 나타나 끊임없이 밀려드는 용원을 그 안으로 끌어당기면서 그의 모습을 집어삼켰다.

    콰르릉!

    금빛 속에서 요란한 굉음이 울리면서 주위 사람들은 겁에 질려 찍소리도 내지 못한 채 그저 눈앞의 모든 광경을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다.

    한편, 금빛 속의 오홍은 처음의 포효 이후 더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겹겹이 금빛 사이로 마치 난공불락의 강철 조각상처럼 그의 모습이 줄곧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는 것만 보일 뿐이었다.

    심협은 큰 충격을 받았다. 금빛 속에서는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오홍의 뒤에 어른거리는 것이 보였는데, 이 그림자는 마치 오홍의 주위를 맴도는 신룡 같았고, 등 뒤에는 커다란 금빛 날개 한 쌍이 돋아 있었다. 놀랍게도 이는 바로 응룡의 모습이었다.

    응룡의 그림자가 나타난 순간, 엄청나게 강력한 기운이 승룡대에서 뿜어져 나오면서 주위의 동해 수족들은 순간 더없이 거센 압박감을 느끼고는 석대 주위에 있던 사람들 몇몇은 느닷없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심협은 무릎을 꿇지는 않았지만, 살짝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 손을 가슴 앞에 가로로 댄 채 존경을 표했다.

    한참 후, 모든 금빛이 오홍의 몸으로 들어가자 승룡대 위의 그는 온몸이 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가 온몸에서 뿜어내는 기운도 이전과는 사뭇 달랐고, 몸에 지닌 법력 파동의 강도는 이미 진선기 정점에 이르러 있었다.

    그는 하늘로 번쩍 솟구쳐 올라 몸에 금빛을 번쩍이며 순식간에 수백 장 길이의 금빛 신룡으로 변했다. 이어서 빙빙 선회하며 위로 올라가 용궁의 수정 장벽을 그대로 무시하고 단번에 통과하여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캬오오!”

    오홍의 포효에 온 동해가 격렬하게 요동치고, 해수면 곳곳에 바람이 일면서 구름이 솟았다. 하늘까지 닿는 거대한 물결들이 휘몰아치면서 한참이나 요동쳤다.

    깊은 바다 곳곳에서는 용궁 바깥을 둘러싼 수족들이 흥겹게 헤엄치거나 간간이 울음소리를 냈다.

    동해에 새로운 왕이 탄생했다. 그는 이전보다 응룡의 혼을 더 많이 이어받은 왕이었다.

    승룡대 밖에서는 원타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늙은 두 눈은 조금 흐릿하고 촉촉했지만, 위안과 기쁨이 더 많이 담겨 있었다.

    청질은 두 눈이 더욱 새빨개져서는 흐느끼지 않으려고 죽어라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청질의 어깨를 토닥이며 멀리 하늘을 올려다보는 심협의 눈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이틀 뒤, 오홍은 동해의 각 부(部)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미 몰락하여 드문드문 흩어졌던 동해의 각 부는 새로운 용왕의 탄생을 계기로 다시 뭉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분위기가 생겨났다.

    심협은 오홍에게 작별을 고하고 동해 용궁을 떠나 오래국으로 향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몇 개월이 지났다.

    오래국 바닷가, 수백 리에 걸쳐 이어진 해안선은 바닷물에 씻기고 침식되어 울퉁불퉁했고, 암초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해안가에는 온몸이 검푸르고 입안에 날카로운 이빨이 돋은 요족 몇몇이 한창 바닷바람을 맞으며 모닥불을 피우고 있었다. 불 위에 놓인 커다란 기름 솥에서 기름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기름 솥 옆에는 가무잡잡한 중년 사내가 누워 있었다. 그의 옷은 낡을 대로 낡았고, 굳은살이 잔뜩 박인 손에는 새로 생긴 상처들도, 오래된 상처들도 많아 척 봐도 바닷가에 살던 어민이었다. 온몸은 삼밧줄로 묶여 군데군데 피가 배어나왔고, 구부러진 몸뚱이는 마치 기름 솥에 들어가길 기다리는 새우 같았다.

    사내의 눈가에는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고,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리는 것이 극한의 공포를 느끼는 게 틀림없었다. 그는 여전히 쉬지 않고 몸을 비틀었고, 찢어진 천 뭉치 너머로 무슨 말인가를 하려 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만이 새어나왔다.

    “조용히 해! 이 몸을 화나게 하면 산 채로 껍질을 벗겨 먹을 테니까.”

    한쪽 옆에 있던 푸른 피부의 요괴가 벌컥 화를 내며 사내의 몸을 걷어찼다.

    옆에 있던 요괴들은 장난스레 웃으며 킬킬댔다.

    “큰형님, 겁 좀 그만 주쇼. 그러다 똥오줌, 방귀까지 다 나오면 맛이 없어진다니까요.”

    “허! 그게 뭐 대수라고……. 예전에는 말이야, 항상 반으로 찢어서 생으로 먹었어. 한데 지금은 인간족들 방식을 따라서 찌고 삶고, 지지고 튀기고…… 이렇게 귀찮을 수가 없어.”

    나이 지긋한 요괴가 얼굴 가득 싫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늙다리! 우리 대왕께서 말씀하셨잖아. 생으로 피와 살을 먹는 건 너무 잔인하다고, 혈기만으로도 온 산을 더럽히니까 우리더러 좀 교양 있게 지내라고 말이야. 그리고 튀겨 먹는 게 날로 먹는 것보다 더 맛있지 않아?”

    우두머리 요괴가 웃으며 말하자 나이 많은 요괴도 헤벌쭉 웃었다.

    “그건 그렇지만. 헤헤…….”

    “됐어, 솥에 넣을 때가 된 것 같으니까 옷부터 벗겨서 던져 넣자.”

    우두머리 요괴는 기름 솥을 흘끗 보고 히히 웃으면서 말했다.

    “좋았어.”

    작은 요괴 한 마리가 소리를 지르며 사내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바닷가의 물결이 갑자기 촥 하고 솟구치더니, 그윽한 푸른 빛을 번쩍이는 수인(水刃)이 물결 속에서 불쑥 튀어나와 칼로 두부 자르듯 가볍게 작은 요괴의 머리통을 꿰뚫어버렸다.

    다른 요괴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수인은 공중에서 활 같은 곡선을 그렸고, 푹 하는 가벼운 소리가 이어지면서 나머지 요괴들의 머리통도 연달아 관통했다.

    마지막으로 수인은 중년 남자의 몸을 긋고 지난 뒤, 기름 솥 아래 불길 속으로 들어가 부서져 내리면서 불을 꺼버렸다.

    한편, 중년 사내는 몸의 속박이 느슨해진 것을 느끼고는 즉시 몸부림치며 일어났다가, 요괴들의 머리통에 구멍이 하나씩 뚫린 것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이때, 그는 맞은편 해안가에 어느새 회색 두봉(*斗篷: 소매가 없는 외투, 망토)을 두른 청년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

    두봉을 쓴 남자가 느린 걸음으로 다가와 모자를 벗자 깨끗하고 준수한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바로 동해 용궁에서 이곳까지 길을 서두른 심협이었다.

    중년 사내는 다가오는 사람이 인간임을 알고는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거듭 절을 했다.

    심협은 어렵사리 사내를 멈춰 세우고는 부축해 일으킨 뒤 물었다.

    “여기가 오래국 국경입니까?”

    “서, 선사님. 오래국은 진작…… 진작 없어졌습니다. 수도며 도시, 관청 모두…… 요괴와 마귀들에게 점령당해 황제 폐하부터 고관대작들까지 전부…… 전부 잡아 먹혔지요.”

    안 그래도 겁에 질려 있던 중년 남자는 잔뜩 주눅이 들어 말했다.

    “그럼, 화과산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아십니까?”

    심협은 속으로 탄식하면서도 물었다.

    한편, 그 질문에 중년 사내는 화들짝 놀라더니 거듭 손사래를 치며 만류했다.

    “안 됩니다! 그곳에 가시면 안 돼요! 선사님, 거기는 가시면 아니 됩니다요.”

    “왜요? 그곳도 요마들에게 점령당했습니까?”

    심협이 의아한 목소리로다.

    “점령뿐이겠습니까. 그곳은 그야말로 마굴입니다. 아주 그냥 요괴 판입니다요. 그놈들이 산을 점령하고 왕 노릇을 하고 있고, 오래국에서 먹다 남은 사람들을 대부분 거기에 가둬두고 있습니다.”

    중년 남자는 이제야 좀 진정하고는 막힘없이 말했다.

    “당신은 어쩌다 이런 일을 겪게 된 겁니까?”

    심협은 엉망인 남자의 몰골을 흘끗 보고는 물었다.

    “저는 본디 이곳의 어민인데, 요마들이 온 뒤로 사람을 보면 죽이고 잡아먹어서 우리 마을 사람들도 더는 살 수가 없어 바다 위로 도망쳤습니다. 저도 이번에 위험을 무릅쓰고 돌아와 처자식에게 먹을 것을 좀 구해다주려 했는데, 이 천 번을 죽여도 시원찮을 요괴 놈들과 맞닥뜨리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사내가 거듭 하소연하듯 말했다.

    “어쨌든 이곳은 안전하지 않으니 어서 떠나는 것이 좋겠군요.”

    “돌아가야지요! 당장 돌아갈 겁니다. 선사님, 목숨을 구해주신 은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사님.”

    심협의 말에 중년 남자는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다시 엎드려 삼세 번 절을 올린 후에야 화과산 방향을 알려주고는 황급히 해안가 방향으로 달려갔다.

    심협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한 손으로 결인하여 몸의 기운을 가린 후, 화과산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기슭을 따라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촌이 하나 나타났는데, 멀리서 보니 인적 없이 휑했고,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조심스레 숨어 들어가 사방을 살펴보았다. 마을의 가옥들은 대부분 무너져서 곳곳마다 무너진 토담이 즐비했고, 그 위로 잡초와 이끼가 가득 자라난 것이 버려진 지 오래인 게 틀림없었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 길을 따라 보이는 곳 대부분이 불에 타 있었고, 불길이 지난 흔적이 남은 곳도 보였다.

    적지 않은 가옥의 구석과 담벼락 아래로는 사람과 짐승의 백골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는데, 어떤 것들은 이미 달랑게들과 지네들이 갈라진 해골의 입과 눈구멍으로 들락거렸다.

    마을을 빠져나오자 풀숲에 묻혀 있는 굽은 오솔길 하나가 곧장 뒤편 산림으로 이어졌다.

    심협은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반 시진쯤 걷자 앞에서 어지러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조심스레 소리 나는 곳으로 향해보니, 산 입구에 기괴한 모습의 요괴 몇몇이 서 있었다.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요괴는 사람의 몸에 머리는 곰이었고, 몸집이 기이할 정도로 거대했으며, 온몸에는 검은 털이 수북했다. 낡아빠진 철제 갑옷을 입은 그의 경지는 벽곡기에 불과했고, 손에는 길이 1척 정도의 작고 붉은 깃발을 하나 들고 있었다. 그 깃발을 푸른 피부의 작은 요괴들에게 휘두르면서 우쭐대는 중이었다.

    “헤헤, 봤느냐? 삼동주(三洞主)께서 친히 하사하신 순산령(巡山令)이다. 내게 주신 거야!

    “이야, 웅(熊) 노형의 재주는 참으로 대단하오! 삼동주를 뵙고 거기다 그분께 직접 깃발까지 받다니요!”

    작은 요괴 하나가 놀라며 말했다.

    “대단해요! 정말 대단해! 우리 작은 요괴들도 웅 노형 덕분에 덩달아 체면이 섭니다요. 헤헤!”

    다른 작은 요괴들도 따라서 박수를 치며 공손하게 말했다.

    그때, 머리에 외뿔이 달린 작은 요괴 하나가 아리송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 순산령은 산을 순찰하는 순산소대(巡山小隊)마다 있지 않습니까? 저야오(猪野五)도 하나 있는 것 같던데. 제가 멀리서 한 번 봤는데 모양도 거의 비슷한 것 같고요…….”

    “네가 뭘 안다고 지껄이느냐! 저야오의 깃발도 삼동주께서 친히 주신 것이라더냐? 그놈의 깃발에도 삼동주의 향기가 배어 있느냔 말이다!”

    흑곰 요괴는 순간 안색이 어두워지며 화가 난 듯 버럭 고함을 쳤다.

    “무슨 향기요?”

    그 작은 요괴는 올곧은 것인지 처세에 약한 것인지, 계속해서 물었다.

    그러자 흑곰 요괴는 눈을 부라리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손에 든 순산령을 외뿔요괴의 눈앞에 내밀고 빠르게 흔들더니, 곧바로 다시 거둬들였다.

    “맡았느냐?”

    “맡았어요. 그게…… 숫여우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요?”

    외뿔요괴는 미간을 찌푸리며 재빨리 코를 막고는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그와 친해 보이는 작은 요괴 하나가 재빨리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흑곰 요괴 또한 그 말을 들었지만, 그저 깃발을 코앞에 가져다 대며 깊이 숨을 한 모금 들이마셨다. 그러더니 만족하고 도취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삼동주가 떠올랐다. 그 천 년 묵은 여우가 사람으로 변한 뒤의 모습, 그 나올 데는 나오고 들어갈 데는 들어간 개미허리와 풍만한 엉덩이가 그의 마음을 못 견딜 정도로 자극했다.

    “네 녀석도 이 어르신을 따라다녀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고 그런 말을 했다면 골백번도 더 죽었을 게다!”

    흑곰 요괴는 회상을 마치며 입가에 흐른 침을 슥 닦고는 부들부채 같은 커다란 손바닥으로 외뿔요괴의 머리통을 찰싹 때리면서 말했다.

    그 작은 요괴는 머리를 감싸 쥔 채 말대꾸를 하려다가 갑자기 눈빛을 빛내더니, 오랫동안 인적이 없었던 앞쪽에 난 오솔길을 돌아보았다. 굵은 천으로 된 옷을 입은, 기운 없는 발걸음의 청년 서생이 허청허청 다가오고 있었다.

    “저기 사람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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