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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369화 (369/1,214)
  • 369화. 반역자

    진해빈철곤의 더없이 거대한 몸체가 빠르게 줄어들어 몇 호흡 사이에 길이 1장에 굵기는 손목만 한 곤봉이 되었다. 곤봉의 양쪽 끝은 황금색이었고, 중간은 칠흑같이 검었으며, 몸체에서는 엷은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얼핏 보기에는 평범했지만, 자세히 보니 그 금빛은 작디작은 무수한 금빛 부적 문양이 응집되어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 금빛 부적 문양들은 평범한 부적 문양과 달리 하나하나가 찬란하게 빛났고, 표면에는 가느다란 은백색 문양이 끊임없이 약동했다.

    천지를 뒤덮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이 곤에서 뿜어져 나와 주위의 허공이 흐릿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가까이 있던 심연 속 흑염선풍도 훌쩍 뒤로 밀려났다.

    뿐만 아니라 용연 공간 전체의 천지영기가 쉬지 않고 어지러이 흐르면서 깔때기처럼 곤봉을 중심으로 몰려들었다.

    심협은 곤봉을 쥐고 있었지만, 곤봉 안에 담긴 힘이 너무도 거대해 마치 거대한 용을 쥐고 있는 듯한 느낌에 저도 모르게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한편, 멀리 계단 위에서 이를 지켜보던 오홍은 경악하고야 말았다. 그도 방금 전 금빛 물결의 영향을 받았지만, 다행히 비교적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었던 데다가 제때 몸을 피한 덕에 다치지는 않았다.

    “심형! 지금 저 악마는 중상을 입었으니 완전히 제거해 후환을 남기지 말아야 하오!”

    오홍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아직 벽에 박혀 있는 우사를 노려보며 외쳤다.

    심협은 눈을 들어 우사를 바라보았다.

    우사는 꽤나 심각한 부상을 입긴 했지만, 죽음의 황금빛에서 벗어나 몸속에서 요동치는 마기를 억누르기 위해 온 힘을 다하던 중이었다. 그는 오홍의 목소리에 번쩍 고개를 들어 심협과 시선을 마주쳤다.

    심협의 싸늘한 눈빛에 우사는 복잡한 심정이 되어 순식간에 산벽에서 뛰쳐나와 검은빛이 되어 날아올라 달아났다.

    “달아날 생각 말고 내 곤봉 맛이나 보아라!”

    어찌 그를 놓아주겠는가? 심협은 결인하며 진해빈철곤을 작동시키려 했다.

    한데 그가 미처 결인하기도 전에 진해빈철곤이 한 줄기 금빛이 되어 눈으로도 쫓아갈 수 없는 속도로 날아가 우사의 머리 위에 번쩍 나타났다.

    진해빈철곤 위에 금빛이 번쩍이더니 빠른 속도로 커지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길이가 백 장에 아름들이 나무보다도 굵은 곤봉으로 변했다.

    거대한 곤봉은 무한한 위세를 휘감은 채, 공간을 격렬히 진동시키면서 우사를 향해 일격을 가했다.

    쾅!

    곤봉이 닿기도 전에 엄청난 힘이 거센 바람이 되어 먼저 아래를 뒤덮었고, 지나는 곳마다 허공이 심하게 떨려 곧 마디마디 부서질 것 같았다.

    우사는 빠르게 달아나다가 우뚝 멈추고는 마치 작은 새가 추락하는 것처럼, 완만한 경사의 산벽에 세게 처박혔다.

    “으으…….”

    이때 우사가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금빛 곤봉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며 미친 듯 포효하면서 두 손을 결인하여 연달아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곁에 있던 붉은 신룡의 몸에서 갑자기 검은 빛이 솟구쳐 나오면서 몸집이 빠른 속도로 팽창하더니, 돌연 폭발하면서 검은 물줄기가 되었다.

    이 검은 물줄기는 매우 깊어 보였고, 위에는 더없이 짙은 물의 영기가 요동쳤다. 삼원진수나 이원진수보다 몇 배는 더 진한 영기였다.

    우사가 두 손을 휘두르자 검은 물줄기가 눈앞에 펼쳐지면서 검은 물의 장막이 되어 머리 위를 막았다.

    물의 장막 위에는 법진과 부적 문양이 겹겹 떠올랐고, 무수한 검은 물결이 번득여 마치 바다의 축소판 같았다. 비할 데 없이 정묘해 보이는 것이 지극히 대단한 신통력임이 틀림없었다.

    이때, 진해빈철곤이 격렬히 진동하며 떨어져 내려 검은 물의 장막을 두들겼다.

    꽝!

    현묘하기 이를 데 없어 보였던 장막은 잠시도 버텨내질 못하고 폭발하며 흩어졌다.

    반면 진해빈철곤은 조금도 느려지지 않고 우사를 내리쳤다.

    “크아악!”

    퍼펑!

    우사의 몸은 수박처럼 터져나갔고, 신혼조차 미처 몸을 떠날 새도 없이 거대한 힘에 짓이겨졌다. 그가 있던 산벽마저 일격에 무너져 내리면서 크고 작은 돌 무더기가 와르르 굴러 떨어졌다.

    심협과 오홍은 그제야 가까이 다가와 넋을 놓고 눈앞의 광경을 보고 있었다.

    한편, 진해빈철곤은 다시 빠르게 줄어들어 길이 1장의 곤봉으로 변해 번쩍하고 사라졌다가 다음 순간 심협 앞에 나타났다.

    심협은 진해빈철곤을 움켜쥐고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곤봉에 있던 무수한 부적 문양으로 이루어진 금빛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너무나 거대해 그로서는 통제조차 할 수 없었던 위력도 보이지 않았다. 진해빈철곤은 평범한 곤봉이 된 것처럼 온순하게 그의 손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이지? 방금 그 일격에 곤봉 속 위력을 전부 써버린 걸까?’

    심협은 의아해하며 묵묵히 제련법을 운공해 곤봉을 감지해 보았지만, 여전히 하늘을 뒤덮었던 엄청난 위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옆에 있던 오홍은 진해빈철곤을 흘끗 보고는 눈빛을 살짝 빛냈다.

    심협이 오홍의 시선을 알아차리고는 뭔가 설명하려는데, 오홍은 시선을 거두고는 무너진 산벽으로 돌렸다. 이에 심협도 생각을 바꿔 그를 따라갔다.

    오홍은 무너진 바위들 앞에 서서 소매를 한 번 떨쳤다. 그러자 금빛 한 가닥이 바위들을 훑으며 날아갔고, 피와 살이 한데 뒤엉킨 유골이 드러났다. 우사의 유해였다.

    “이 우사란 자는 비록 요마이지만 보아하니 용족의 구성원인 듯하구려.”

    심협은 그런대로 온전히 남은 용의 발을 보며 말했다.

    “그렇소. 내 알기로는 상고시대 묵룡(墨龍) 일족이었소. 말하자면 우리 동해 용족과는 약간의 혈연관계가 있는 셈이지. 다만 당시 마제 치우의 휘하에 들어가 끝내 이런 최후를 맞게 되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오.”

    오홍은 깊게 탄식하더니 입을 벌리고 우사의 유해 위에 금빛 화염을 한 조각 토해냈고, 불길은 이글이글 타올랐다.

    “내 용염(龍炎)으로 왕생을 도와줄 터이니, 다음 생에는 마도(魔道)에 들지 않길 바라오.”

    오홍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심협은 이를 보며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다. 우사의 경지는 높고 깊어 이미 태을진선의 경지에 이른 듯했으니, 용혈과 용골 모두 지극히 진귀한 재료들이었을 터였다.

    그러나 용족은 인간족 수사들이 용혈과 용골을 사고파는 것을 매우 증오하기에 동족이 죽으면 시신이 모욕당하지 않도록 용염으로 불태워 천지에서 소멸시킨다. 이 사실을 알기에 심협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더욱이 동해 용궁에 와 있는 지금 그들의 분노를 사는 짓을 저지를 수는 없었다.

    오홍이 내뿜은 금빛 용염은 금세 우사의 몸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잿가루는 이내 바람을 타고 흩어졌지만, 유골 한 토막만은 남아서 반짝였다.

    “음? 이게 뭐지?”

    심협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유골을 끌어들여 움켜쥔 뒤 신식을 뻗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신식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이 유골 토막은 저물법기로, 내부가 제법 넓었다. 다만 그 안에 보관된 물건은 많지 않았고, 재료나 단약, 법보 등이 아닌 약간의 서책들과 옥간 따위만 있었다.

    심협은 그 이유를 금방 깨달았다. 우사는 옥에 갇혀 있느라 천지영기를 흡수해 원기를 보충할 수는 없었을 테니 영력이 담긴 재료들과 법보들을 흡수해버렸을 것이다. 그러니 영력이 담기지 않은 이런 물건들만 남게 됐으리라.

    신식으로 서책들의 표지를 훑어보니, 뜻밖에도 연기(煉器)에 관련된 고서들이었다.

    심협은 더 보지 않고 재빨리 신식을 거둔 뒤 짧게 설명하며 오홍에게 유골을 건넸다.

    “이제 심형 거요.”

    오홍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심협도 사양하지 않고 챙겼다.

    “구전하! 심형!”

    어디선가 외침이 들려오더니, 두 줄기 그림자가 날아왔다. 청질과 오중이었다.

    오중은 품에 오흔의 시신을 안고 있었는데, 두 토막 났던 시신은 온전히 하나가 되어 있었다.

    청질은 경이로운 눈으로 심협을 바라보았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오중은 가슴의 부상이 수습되어 무사해 보였지만, 안색은 여전히 창백했다. 더욱이 오흔의 죽음에 대한 충격으로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둘째 형님, 좀 어떠십니까?”

    오홍이 조심스레 묻자, 오중은 무너져 내린 산벽과 오홍, 심협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복잡한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무사하시니 다행입니다. 당장 용궁으로 돌아가 부왕께 알리도록 하지요.”

    오홍의 말에 오중은 대답이 없었고, 청질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때였다.

    “잠깐.”

    심협이 불쑥 입을 열었다.

    “심형, 아직 할 일이 남았소?”

    오홍이 물었다.

    “아까는 상황이 긴박하여 용궁의 귀한 보물을 잠깐 빌려 썼는데, 지금은 상황이 완료되었으니 돌려주어야 마땅하다 보오. 다만…… 이 물건을 어찌 원래 자리에 되돌려 놓아야 하는지 모르니, 두 분께서 가르쳐 주시지요.”

    심협은 손에 든 진해빈철곤을 흔들며 오홍과 오중에게 말했다.

    오중은 심협의 물음을 듣지 못한 것인지 그저 품속의 오흔을 들여다보았다.

    “이 진해빈철곤은 부왕께서 친히 이곳에 봉인하신 것이오. 우리도 어찌 법술을 써야할지 모르니 용궁에 돌아가 부왕께 가르침을 청합시다.”

    “아까 용연은 이 진해빈철곤에 의지하여 흑염선풍을 막아낸다 들었소. 그러니 이것을 가지고 나가면 흑염선풍이 용연에서 나와 난리를 일으키지 않겠소?”

    심협은 심연에서 용솟음치는 검은 바람을 굳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괜찮소. 용연의 금제는 진해빈철곤을 기반으로 삼고 있긴 하나, 단지 그것에만 의지하지는 않소. 이곳 자체의 금제만으로도 한동안은 충분히 막아낼 수 있지. 이런 일은 예전에도 있었다오.”

    오홍이 웃으며 답하자 심협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곧장 위로 올라가 금세 용연 입구에 도착했고, 전송 법진에서 떠나 바깥의 청동 대전에 이르렀다.

    용연의 묵직한 대문이 천천히 열리고, 일행이 피로가 가득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을 때, 이미 원타가 용궁 사람들과 함께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원타는 오중의 품에 안긴 오흔의 시신을 보고는 눈썹이 들썩였고, 비통하고도 슬픈 기색을 내비쳤다.

    수수궁으로 돌아오는 내내 무거운 분위기에서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대전 안에서는 용왕 오광이 높은 보좌에 앉아 있었다. 그는 정신을 적잖이 회복한 듯 두 눈에 생기가 돌았지만,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대전 아래에는 수많은 용궁의 신하들이 서 있었는데, 하나같이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본왕은 용궁이 철통같아 마족에게 함락당한 것은 그저 실력이 모자라 그런 줄로만 알았거늘, 알고 보니 성벽 아래부터 좀이 슬었을 줄이야……. 한데 대체 누가 그런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오광이 차가운 눈으로 계단 아래를 훑으며 말했다.

    감히 입을 여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용왕 폐하. 그 사람이 누구인지, 이 후배는 알 듯하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 심협에게로 쏠렸다.

    “자네가 안다고?”

    오광이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예, 알고 있사옵니다. 또한, 그 사람은 지금 이 대전 안에 있지요.”

    심협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 말에 사람들은 두리번거리면서 서로를 살피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작은 소란이 일었다

    “심형, 그 말이 사실이오?”

    오홍이 한 걸음 다가왔다.

    “그게 누구인가?”

    오중도 노여움으로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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