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67화 (367/1,214)
  • 367화. 진해빈철곤(鎭海鑌鐵棍)

    거한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성큼성큼 다가오며 몸에서 짙은 검은 빛을 뿜어냈다. 거대한 위압감이 그의 몸에서 터져 나왔다.

    심협과 오홍의 낯빛이 변했다. 그들의 몸은 만 장 높이의 거대한 봉우리에 짓눌린 듯 옴짝달싹하기도 힘들었으며, 법력의 운행도 열 배는 느려졌다.

    흑면거한의 어깨에서 붉은 신룡이 입을 벌리자, 아까와 같은 수십 갈래의 푸른 수인이 폭발하듯 쏘아져 나와 두 사람에게 날아들었다.

    천책을 작동시킬 수도 없는 상황.

    그러나 다행히 소환해둔 천병들은 의식을 통해 소통할 수 있었다. 게다가 천병들 모두 자의식이 없는 상태였기에 거한의 위압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심협이 천병들을 동원해 적에 맞서려던 순간, 온 평대가 갑자기 예고도 없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동시에 바깥에서 느닷없이 수많은 금빛 빛줄기가 밀려와 평대 위를 비추었다. 이 금빛들은 갑자기 하나로 뭉쳐 10여 장 굵기의 거대한 금빛 몽둥이로 변해 심협과 오홍의 앞을 쓸고 지나갔다.

    그들을 엄습해오던 수십 줄기의 푸른 수인들은 순식간에 터져 나가면서 산산이 흩어져 무수한 물방울로 변했다.

    몽둥이는 멈추지 않고 감히 대적할 수 없는 기세로 흑면거한에게로 향했다.

    흑면거한은 얼굴빛이 변해서는 양손에 검은 빛을 번쩍이며 순식간에 거대한 용의 발로 변하게 한 뒤 앞으로 쭉 뻗었다. 거대하고 시커먼 용의 발 허상 두 개가 불쑥 나타나 금빛 몽둥이를 매섭게 내리쳤다.

    꽝!

    짧지만 경천동지할 굉음이 울려 퍼졌다.

    검은 용의 발과 금빛이 격렬하게 서로 얽히는가 싶더니, 용의 발들은 흩어져 사라졌고, 흑면거한의 몸도 크게 진동하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금빛 몽둥이 역시 두어 번 깜빡거리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 순간, 심협과 오홍의 몸을 무겁게 짓누르던 위압은 말끔히 쓸려갔다. 두 사람은 다시 몸을 추스르고 고개를 돌려 뒤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곳에서는 오중이 평대 가장자리에 서서 금빛 영패를 쥔 채 진해빈철곤 위를 누르고 있었다.

    그 금빛 영패는 심연거요가 앗아갔던 용왕령이었는데, 어느새 오중의 손으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용왕령은 전체가 반투명한 상태로 변해 진해빈철곤 안으로 반쯤 녹아들었다. 그 수많은 금색 노을빛은 바로 진해빈철곤에서 피어난 것이었다.

    “이게……? 용왕령으로 진해빈철곤의 힘을 끌어다 쓸 수 있단 말인가?”

    심협이 반쯤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그렇소. 용왕령은 부친께서 친히 만드신 것으로, 아버님의 정혈의 힘이 담겨 있소. 하여, 용궁 안의 금제 대부분은 용왕령으로 작동시킬 수 있지. 이 봉마비 속 금제의 힘은 진해빈철곤의 줄어든 그림자이니 용왕령으로 충분히 움직일 수 있소. 빌어먹을! 왜 진즉 이 생각을 못 했을까!”

    오홍은 내심 안도하면서도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한탄했다. 미리 이 생각을 해냈더라면 오흔은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진해빈철곤은 감히 등급을 예상하기도 힘들 만큼 뛰어난 보물인지라 그 위력이 무서울 정도로 강해 심협의 육진편조차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 이 곤봉의 신력(神力)을 빌리면 정말로 우사를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심협은 공격을 감행할 것인지 잠시 고민했지만, 오중의 상황을 보고는 즉시 평대 바깥문 쪽으로 후퇴하여 흑면거한과의 거리를 벌렸다.

    20여 명의 천병과 천장들도 날아와 그의 곁에 내려섰다.

    잠시 멍해 있던 오홍도 곧 오중을 곁눈질로 흘끗 보고는 몸을 날렸다.

    한편, 원래도 평대 바깥에 있던 청질은 아예 위층으로 통하는 계단에 숨었다.

    “악마야! 네놈이 오흔을 죽였으니 네 목숨도 내놓아라!”

    오중은 심협과 오홍을 아랑곳하지 않고 두 눈에 핏발을 세우며 흑면거한을 노려보았다. 그는 완전히 이지를 잃은 듯 용왕령을 누른 손바닥에 맹렬히 힘을 주었다.

    콰르릉!

    진해빈철곤에서 맹렬한 금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조금 전과 거의 비슷한 금빛 몽둥이 두 개가 다시 나타나더니 끝없는 위세를 발하며 나아갔다.

    흑면거한 또한 두 용의 발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1장 크기의 검은 빛 덩어리 두 개가 나타났고, 그 안에서는 검은 빛이 넘실거리며 해일 같은 낮은 소리를 냈다.

    “가라!”

    거한이 낮게 외치며 양손을 휘둘렀다. 그의 어깨에서는 붉은 신룡이 입을 쩍 벌려 푸른 빛기둥을 내뿜어 금빛 몽둥이를 공격했다.

    콰르르릉!

    허공을 진동시키는 굉음이 지나간 뒤, 금색, 검은색, 푸른색 세 가지 영광(靈光)이 동시에 폭발했다. 하지만 빛들은 완전히 흩어지지 않고 격렬히 충돌하면서 금빛이 잠깐 우세를 점했다가, 검은 빛과 푸른 빛이 금빛을 압도하기도 했다. 실로 기이한 광경이었다.

    오중이 낮게 포효하며 용왕령을 향해 결인 하자, 진해빈철곤 위로 금빛이 번쩍이면서 또다시 금빛 몽둥이 두 개가 나타나 흑면거한에게로 날아갔다.

    흑면거한은 안색이 어둡게 가라앉았지만, 별수 없이 손을 써서 막아냈다.

    한순간 평대 위로 굉음이 쩌렁쩌렁 울리면서 삼색 빛이 맹렬하게 충돌했다.

    사방으로 흩어진 빛이 휩쓸고 지나가자, 견고하기 이를 데 없었던 벽이 가볍게 쓸려 내려갔다.

    오중은 오흔의 죽음으로 정신을 놓은 듯 거의 마구잡이로 진해빈철곤의 힘을 움직여 흑면거한을 공격했다.

    심협과 오홍은 흩어져 내리는 빛들을 이리저리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자리를 떠나지는 않았다.

    진해빈철곤의 위력은 끝이 없어서 지금은 오홍이 그 힘을 빌려 우세를 점하고 있지만, 우사의 실력도 보통이 아니라 맨손으로 오중의 연이은 공격을 막아냈다. 그는 열세에 처해 있었지만, 아직 큰 위기에 처하지는 않았다.

    심협은 눈앞의 상황을 보면서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우사가 조금 밀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어쩐지 여기에 어떤 의도가 담겨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심형, 왜 그러오?’

    오홍은 심협의 표정을 보고는 전음으로 물었다.

    심협이 막 대답하려는 순간, 하늘을 찌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진해빈철곤에서 터져 나왔다. 동시에 곤의 몸체에는 크고 작은 무수한 금빛 글자들로 이루어진 사각형 도안이 떠올랐다.

    이 금빛 글자들은 가볍게 떨리면서 강력한 영성의 파동을 내뿜었는데, 눈을 뜨기 힘든 금빛을 피워내는 것이 더없이 신비로워 보였다.

    “하하하! 드디어 나타났다!”

    흑면거한, 우사는 흥분한 듯 웃음을 터뜨리며 커다란 몸을 움직여 얇은 종잇장 같은 검은 그림자로 변했다. 그리고는 세 줄기 금빛 몽둥이 사이로 튀어나와 오중에게 달려들었다.

    “형님, 조심하십시오!”

    오홍이 화들짝 놀라 뛰쳐나갔다. 그의 손에서 용창이 금빛을 강하게 내뿜었고, 수십 줄기 창 그림자가 튀어나와 검은 그림자로 변한 우사를 향해 날아갔다.

    한편, 심협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눈으로 진해빈철곤 위의 금빛 글자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는 오중에게 달려드는 우사를 보고는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즉시 진해빈철곤을 향해 날아가더니 입을 쩍 벌리고 정혈 한 모금을 뿜어내면서 양손을 빠르게 결인했다.

    펑!

    정혈이 터지면서 핏빛 안개가 되어 진해빈철곤의 금빛 도안으로 녹아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도안 꼭대기에 순간 핏빛이 떠오르면서 수많은 자그마한 부적 문양이 어렴풋이 나타나 빠르게 아래쪽으로 퍼져 나갔다.

    “이런 망할 인간 수사 나부랭이가!”

    우사가 노기 어린 포효를 내질렀다.

    그는 진해빈철곤에 셀 수 없이 오랜 세월을 봉인당해 있으면서 남몰래 이 보물을 연구해왔다. 비록 비바람을 부르는 신통력으로 이름이 났지만, 사실 그는 매우 고명한 연기사(煉器師)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암암리에 진해빈철곤을 연구해 큰 성과를 거두었다는 사실은 그 자신 외에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우사는 얼마 전, 외부인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진해빈철곤의 핵심 금제를 건드렸다.

    진해빈철곤의 핵심 금제를 제련할 수만 있다면 이 기이한 보물을 지배할 수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동해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해역을 제패하는 것도 문제가 아니었으니, 치우 대인 휘하로 되돌아갈 때 지위도 크게 오를 것이다.

    그러나 진해빈철곤의 핵심 금제를 작동시키는 것은 그 혼자만의 힘만으로 역부족이다. 그래서 그는 방금 오중에게 제압당하는 척하며 쉬지 않고 진해빈철곤을 작동시키게끔 유도했고, 자신도 몰래 법술을 써서 도운 끝에 마침내 진해빈철곤의 핵심 금제를 이끌어냈다. 그런데 심협이 먼저 선수를 쳤으니, 그가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

    우사가 변신한 검은 그림자 위로 물결 같은 빛무리가 일더니 속도가 순식간에 배나 빨라졌다. 그림자는 거의 순식간에 오홍의 수많은 창 그림자 사이를 뚫고 눈 깜짝할 사이 오중 앞에 이르렀다.

    이 무렵, 오중은 반쯤 미친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위험이 닥쳐오는 것을 느끼고는 용왕령을 재촉했다.

    금빛 두 줄기가 진해빈철곤 안에서 쏘아져 나와 우사를 향해 엇갈리게 날아갔다. 하지만 우사는 너무도 빨라서 그 공격을 가볍게 피하고는 손을 휘둘렀다.

    퍽!

    검은 용의 발이 오중의 명치에 꽂히면서 뼈가 몇 개나 부러져 나가는 소리가 울렸고, 오중은 의식을 잃고 끈 떨어진 연처럼 훌훌 날아갔다.

    “둘째 형님!”

    오홍은 우사를 향한 공격을 재빨리 거두고는 황급히 손을 휘둘러 오중을 받아낸 뒤, 곧장 뒤로 물러났다.

    우사도 두 사람을 추격하는 대신 검은 피를 한 모금 토해내며 두 손으로 빠르게 결인했다.

    이 피는 곧장 검은 빛으로 변해 진해빈철곤의 금빛 도안으로 녹아들었다.

    검은 빛은 금빛 도안 밑바닥 쪽에 나타나더니 빠르게 위로 스며들었다. 심협이 조종하는 핏빛보다 속도가 훨씬 빨랐다.

    금빛 도안은 두 줄기 빛에 뒤덮였고, 윗면의 글자도 가려져 다른 사람들이 더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이 금빛 도안이 진해빈철곤의 봉령금제(棒靈禁制)임을 알아채다니, 약삭빠른 놈! 허나 네놈 경지로 감히 이 어르신의 물건을 빼앗으려 하다니, 죽여주마!’

    우사는 눈을 매섭게 번득이며 차게 웃었다. 그러자 붉은 신룡이 커다란 입을 벌려 푸른 빛을 뿜어냈다. 다음 순간, 파란색 빛줄기가 무수히 쏟아져 나와 심협을 뒤덮었다.

    이 빛줄기는 가냘퍼 보였지만, 맹렬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허공에 하얀 자국을 줄줄이 남겼다.

    허나 심협은 아랑곳하지 않고 두 손을 재빨리 결인해 금빛 도안을 제련했다. 그리고 하늘을 빽빽하게 뒤덮은 빗줄기가 날아드는 순간, 그의 몸에 금빛 그림자가 번쩍 스치더니 모든 빗줄기가 사라져버렸다.

    이를 본 우사는 미간을 찌푸리는 순간, 심협이 의식으로 명령을 내렸다.

    ‘가라!’

    그의 곁에 있던 천병과 천장들이 동시에 튀어나가 강력한 법력 파동을 지닌 검망과 도영(刀影)을 발산하며 우사를 몰아붙였다.

    이 금빛 도안은 바로 진해빈철곤의 봉령금제였고, 금빛 글자들은 제련 방법이었다.

    심협은 그게 왜 나타났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우사보다 먼저 그 금제를 제련하면 진해빈철곤이라는 이 보물을 손에 넣을 수 있을 터였다.

    우사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어깨의 붉은 신룡이 입을 벌리고 파란 물빛을 쏘아 보내자 푸른 장막이 순식간에 응결하면서 무수한 소용돌이가 번쩍거렸다.

    수많은 천병들의 공격은 푸른 장막 위에 떨어져 이내 소용돌이에 흡수되고 말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우사의 머리 위에 은빛 번갯불이 번쩍이더니 뇌부천장이 나타났다. 그가 손에 든 황금곤의 몸체에 뇌운 무늬가 환하게 밝아지더니, 굵고 튼튼한 청자색 번갯불이 세차게 솟구쳐 나와 황금곤을 휘감으며 굉음을 발했다.

    황금곤은 청자색 허상으로 변해 푸른 장막 위를 맹렬히 내리쳤다.

    쫙!

    푸른 장막은 종잇장처럼 단숨에 찢어졌다. 그 과정에서 황금곤의 속도는 약간 느려졌지만, 여전히 번개처럼 빠르게 우사에게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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