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66화 (366/1,214)
  • 366화. 탈출

    육안으로도 보이는 검은 광채가 미친 듯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삽시간에 맹렬한 돌풍이 휘몰아쳤다.

    오홍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검은 광채와 정통으로 충돌했고, 명치에 만 근쯤 되는 무거운 망치를 맞은 듯 뒤로 나가떨어지면서 왈칵 피를 토했다.

    심협은 황급히 다가가 손에서 금빛을 뿜어내며 오홍의 몸을 떠받쳐 몸을 가눌 수 있게 도왔다.

    그때, 검은 광채가 퍼져 나가면서 공간이 부들부들 떨렸다.

    심협은 오홍을 데리고 얼른 몸을 피하려다가 눈썹을 움찔 떨더니 멈춰 서서 손을 흔들어 천책을 작동시켰다. 천책의 흡수 능력을 아직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했으니 이번 기회에 더 많이 시도해볼 생각이었다.

    심협의 전방 40여 장 안의 검은 광채와 그 광채가 일으킨 난폭한 기류가 한순간 사라져버렸다.

    이에 심협은 흡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책의 흡수 범위는 반경 40여 장인 듯했다.

    그가 오홍의 상태를 확인하려던 순간, 전방에서 우르릉하는 굉음이 들리더니 감옥 문짝 하나가 자욱한 먼지구름에 휩싸인 채 운석처럼 두 사람에게로 날아왔다.

    심협은 천책을 다시 작동시킬 겨를이 없어 황급히 오홍을 끌어당기며 가까스로 옥문을 피했다. 하지만 옥문이 몰고 온 울부짖는 바람 소리가 실체를 지닌 것처럼 두 사람의 얼굴을 할퀴고 지나갔다. 그야말로 두려운 위력이었다.

    “크하하! 내가 드디어 다시 햇빛을 보는구나!”

    먼지구름 속에서 처량하고도 스산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귀가 윙윙거리면서 마치 무수한 바늘이 귓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은 느낌에 참지 못하고 몸을 떨고 이를 딱딱 맞부딪치며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쿵!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먼지구름 속에서 뛰쳐나왔다. 키가 몇 장에 달하는 검은 거한(巨漢)으로, 전신의 근육들이 커다란 나무뿌리처럼 불끈불끈 불거져 있었고, 부릅뜬 두 눈에 눈썹과 머리칼은 불꽃같아서 사납고 위협적으로 보였다.

    게다가 거한은 목에 붉고 기다란 용을 한 마리 휘감고 있었는데, 이 용은 금빛 눈동자로 심협과 사람들을 둘러보며 끊임없이 낮게 쉭쉭거렸다.

    심협은 이 둘과 눈이 마주치자 마치 아득한 태곳적의 거대한 짐승과 마주한 것처럼 온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오홍 등도 안색이 크게 변했고, 오중은 경악하며 무의식중에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힐끗거렸다.

    “허! 변변치 못한 놈이로군. 동해 용왕의 아들이 줄행랑을 놓으려 하다니.”

    오중은 오늘 연이어 좌절을 맛본 탓에 정신이 흔들리며 위축된 기색을 드러내던 터였는데, 거한이 대놓고 비웃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결국 그는 참지 못하고 거한에게 달려들었다.

    오중의 황색 창 위로 눈부신 노란 빛이 치솟더니, 실체를 지닌 듯한 10여 줄기의 창 그림자가 거한의 몸 곳곳으로 날아들었다. 창 그림자가 지나간 곳마다 갈라진 것 같은 하얀 자국이 희미하게 생겨났다.

    “생각보다 제법이구나.”

    흑면거한은 한 줄기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그러자 10여 줄기의 창 그림자는 순식간에 흩어져 버렸고, 황색 창만 거한의 손에 붙잡혔다.

    오중은 두려움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창을 다시 뽑아내려 애썼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푸른 빛이 환하게 솟아나면서 거대한 파란색 용 그림자가 그의 몸속에서 솟구쳐 올라 허공을 한 바퀴 돌고는, 커다란 입을 아래로 쩍 벌렸다.

    무수한 파란색 광선이 용의 입에서 쏘아져 나와 귀를 찢을 듯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흑면거한에게 날아갔다. 오홍이 일찍이 시전했던 용권우격이었다.

    거한은 가소롭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오중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힘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철썩!

    짧은 격타음에 이어 황색 창은 그대로 부서졌고, 오중은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나가떨어졌다.

    반면 거한의 어깨에 있던 붉은 신룡은 머리를 살짝 치켜들고 허공을 향해 입을 쩍 벌려 숨을 들이마셨다. 순식간에 극에 달하는 흡인력이 허공에 줄줄이 물결을 일으켰고, 공중의 푸른 용 그림자와 하늘을 빼곡하게 뒤덮었던 빗줄기가 통제를 잃고 붉은 신룡의 입으로 모여들었다. 신룡은 이를 한입에 꿀꺽 삼켰다.

    뒤이어 붉은 신룡이 다시 입을 벌리자 5장 길이의 푸른 수인(水刃)이 튀어나와 오중에게로 날아들었다.

    이렇게 들이마시고 내뱉는 과정이 번개처럼 빨라서 오중 같은 강자조차 제대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저 자신이 시전했던 용권우격이 갑자기 사라졌다가 한 줄기 푸른 수인이 번개처럼 날아오는 것만 느꼈을 뿐이었다.

    그는 양손을 재빨리 휘둘러 금빛 원형 방패를 소환했다. 방패 위에는 금빛 용 비늘이 빽빽하게 돋아 있었는데, 깨부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해 보였다.

    금빛 방패는 나타나자마자 순식간에 폭이 1장 정도로 커지더니, 쉬지 않고 빠르게 회전하면서 푸른 수인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푸른 수인은 조금도 멈추지 않고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금빛 방패를 단번에 베고 지나갔다. 난공불락 같았던 용 비늘 방패는 진흙처럼 소리도 없이 둘로 나뉘어 땅에 떨어졌다.

    “헛!”

    오중은 대경실색하여 몸을 날려 피했지만, 속도가 전혀 줄지 않은 푸른 수인은 순식간에 그의 코앞에 이르렀다. 도저히 피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을 것만 같았다.

    그때 누군가가 불쑥 나타나 오중을 밀쳐냈다. 덕분에 오중은 수인의 일격을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지만, 그를 밀어낸 그림자는 허리가 두 동강이 난 채 땅에 고꾸라졌다.

    “둘째 형님!”

    오홍이 화들짝 놀라 달려왔다. 그 또한 좀 전에 일어난 일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그저 오중이 위험에 빠진 것만 보고는 즉시 날아온 것이다.

    반면 심협은 강력한 신식 덕에 방금 전의 상황을 분명히 꿰뚫어보고는 동공이 바짝 수축했다. 흑면거한과 붉은 신룡에게 어렴풋이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그는 약간 주저했지만 그래도 몸을 날려 오홍을 뒤쫓아 갔다.

    한편, 죽음의 위기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오중이 고개를 돌려 보니, 그의 목숨을 구한 이는 바로 오흔이었다.

    오흔은 허리가 잘려 나가 붉은 피를 콸콸 쏟아냈다. 더욱이 푸른 수인은 오흔의 단전을 정확하게 파괴해버린 상태였다.

    오흔은 화교(火蛟) 일족으로, 타고난 체질이 특이해서 신혼이 머릿속이 아닌 단전에 있다. 그러니 그녀는 신혼까지도 함께 참살당하고 만 것이다.

    “오흔!”

    오중이 황급히 달려갔다.

    “전하……께서…… 무사하시……니…… 저는…… 안심…….”

    오흔은 피가 울컥 솟구쳐 목이 막히고 신혼이 빠르게 흩어지는 와중에도 힘겹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한 것이냐! 도대체 왜! 나는 진룡(眞龍)의 몸이라 머리가 잘린다 해도 신혼만 파괴되지 않으면 죽지 않는단 말이다!”

    오중은 비통한 목소리로 오열했다.

    그 역시 알고 있었다. 호위무사인 오흔이 자신을 그저 주인으로만 여기고 있지 않는다는 것을…… 자신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화교 일족으로서 동해 용족과의 신분 차이 때문에 단 한 번도 그 감정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고 그저 묵묵히 헌신했을 뿐.

    오중 역시 그녀를 그저 호위무사로만 여긴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 그녀는…….

    “전하께서는…… 만금보다 귀하신 몸…… 제…… 목숨으로…… 당신이 평안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옵니다.”

    오흔의 목소리는 갈수록 작아지더니 결국 멎었고, 그녀는 눈을 감았다.

    “오흔!”

    오홍 또한 땅에 무릎을 처박으며 하늘을 향해 슬피 울부짖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오홍은 손에 금빛 뇌광(雷光)을 번쩍이며 다시 뇌랑천운을 시전했다. 무수히 많은 번갯불이 허공을 가르며 흑면거한에게 내리꽂혔다.

    “뇌랑천운? 늙은 용왕이 좋은 아들을 두었구나. 다만 네가 그 신통한 위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진정한 뇌랑천운이 어떤 것인지 내 한 수 가르쳐주마!”

    흑면거한은 제법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오홍을 바라보다가 돌연 손끝에서 거센 뇌광을 발하며 허공을 휙 그었다.

    수십 장 길이의 검은 균열이 나타나 빽빽하게 내리꽂히던 번갯불들을 모조리 집어삼켰다. 마치 강줄기들이 바다로 들어가는 것처럼 모든 번갯불들이 사라지면서 흑면거한은 아무런 손상도 입지 않았다.

    “가라!”

    오홍이 두 눈을 홉뜨는 사이 흑면거한은 손가락을 구부려 앞을 가리켰다. 그러자 검은 균열 속에서 거센 뇌광이 터져 나오면서 맷돌만 한 뇌구(雷球)가 무수히 쏟아져 나와 오홍에게로 날아왔다.

    뇌구는 하나하나가 놀라운 번개의 파동을 일으켰고, 거대한 우렛소리를 내면서 평대 전체를 울렸다. 그 위세가 오홍이 발휘한 것보다 열 배는 강력했다.

    오홍은 막아낼 수도, 피할 수도 없어 곧 무수한 번개에 파묻힐 지경이었다.

    그때, 그의 앞에 그림자가 아른거리더니 심협이 불쑥 나타났고, 금빛 그림자가 스쳐 지났다. 뒤이어 하늘을 가득 채웠던 무시무시한 뇌구들이 저 멀리 떨어진 곳의 몇 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라졌다.

    “아니!”

    흑면거한의 두 눈은 방금 전 오홍만큼이나 커졌다.

    “돌려주마!”

    심협이 낮게 외치자, 그의 몸에서 금빛 그림자가 번득이면서 그의 앞 허공이 일렁였다. 이어서 무수한 뇌구가 난데없이 나타나 흑면거한에게로 날아갔다.

    그는 천책수섭을 수차례 발동시키는 와중에 금빛 공간 속에 담긴 것들을 발산해낼 방법도 함께 모색해왔고, 지금 그 결과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흑면거한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뒤로 몇 장을 물러났다.

    그의 어깨 위에서는 붉은 신룡이 입을 벌려 푸른 빛을 쏘아 보냈다. 이 빛은 거한의 몸 앞에 커다란 물의 장막을 이루었다. 수많은 소용돌이가 콸콸 소리를 내며 그 위로 솟구쳐 나왔다.

    온 하늘에 꽉 들어찬 뇌구들은 파란 물의 장막에 닿자 모조리 소용돌이에 삼켜져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이번에는 심협의 안색이 약간 어두워졌고, 그는 두 손을 급하게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환한 금빛이 뿜어져 나오며 몸 앞에 수십 줄기의 금빛 그림자가 나타났다. 과거 금탑에서 맞붙었던 천병과 천장들이었다.

    이 천병과 천장들은 몸이 반투명한 상태라 마치 그림자 같았지만, 뿜어내는 기운만큼은 전혀 약해지지 않았다.

    천병과 천장 중 우두머리는 등에 푸른 날개가 한 쌍 달렸고, 몸에는 은빛 갑옷을 입은 깡마른 남자였다. 그는 손에 금빛 장곤을 들고 있었는데, 바로 심협이 전에 애를 먹으며 가까스로 격파했던 진선, 뇌부천장이었다.

    뇌부천장의 뒤에는 천병 스무 명이 서 있었는데, 그들의 경지도 모두 대승기였다.

    “어찌 이럴 수가! 하늘의 군대를 불러내다니, 넌 도대체 누구냐?”

    흑면거한은 굳어진 눈빛으로 심협을 빤히 노려볼 뿐, 곧바로 공격하지 않았다.

    ‘오형, 이 사람의 실력은 우리보다 훨씬 윗길이라 더 싸우다가는 분명 낭패를 볼 것이오. 용왕 어른께 사람을 보내 도움을 청할 수 있겠소?’

    심협은 흑면거한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전음으로 오홍과 소통했다.

    ‘안 되오. 용연의 요마들이 바깥으로 달아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용연 전체가 금제로 싸여 있어 이 안에서는 바깥 세계와 소식을 주고받을 수 없소. 심형, 이 일은 본디 그대와 무관하니 먼저 떠나시오. 부디 부왕께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알려주시오. 그 동안 내가 우사를 막겠소.’

    오홍은 전음으로 답하고는 용창을 꼿꼿이 치켜세우며 돌진하려 했다.

    ‘그대는 이미 상처를 입은 데다 방금 연이어 큰 신통력을 썼으니 법력도 얼마 남지 않았을 텐데 어찌 그를 막는단 말이오?’

    심협이 다급히 오홍을 말리는데, 흑면거한이 콧방귀를 뀌었다.

    “흥! 그딴 논의가 무슨 소용이냐! 내 이미 감옥을 벗어났으니 너희들 모두 여기서 죽을 것인데 말이다!”

    이 말에 심협과 오홍 모두 깜짝 놀랐다. 놀랍게도 저자는 자신들의 전음을 엿들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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