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65화 (365/1,214)
  • 365화. 봉마비(封魔碑)

    하얀 한기 한 가닥과 검은 요화 한 줄기가 엇갈리며 심협에게 날아들었다.

    “천책수섭(*天冊收攝: 수섭은 흡수한다는 뜻)!”

    심협은 곧장 법술로 천책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그의 몸에 금빛 그림자가 번쩍 지나가더니, 하얀 한기와 검은 요화가 순식간에 천책 속 금빛 공간으로 사라져 버렸다.

    “뭐, 뭐야!”

    검은 빛 속에서 경악하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때, 심협의 몸 표면에 녹색 그림자가 번쩍이더니 다시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요화를 내뿜는 요괴 머리 옆에 느닷없이 나타나 육진편을 내리꽂았다.

    푸슉!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요괴 머리가 또 하나 잘려 나갔다.

    오중 등은 저 요괴 머리와 맞붙으면서 그 강력함을 잘 알고 있었다. 한데 심협이 마치 도살장의 고기 다루듯 손쉽게 잘라내자 모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심연거요의 머리는 한기를 내뿜는 것 하나만 남았는데, 그 눈빛은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거요는 그 상태로 쏜살같이 뒤로 물러났다.

    “심형, 악은 뿌리를 뽑아야 하오! 저 요물은 용왕령으로 봉마비(封魔碑) 금제를 열던 중이었으니 절대 저자의 뜻대로 되게 해서는 안 되오!”

    오홍은 용창을 소환해 재빨리 뒤쫓으면서 크게 외쳤다.

    심협도 심연거요를 놓아줄 마음이 전혀 없었기에 다시 을목선둔을 시전하여 마지막 요괴 머리 곁에 번쩍 나타나 육진편을 내리쳤다.

    한데 바로 그때, 아래쪽 검은 빛 덩어리에서 검은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커다란 요괴 머리 두 개가 불쑥 튀어나왔다.

    심협이 알 수 없는 방법으로 공격을 흡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지 이 요괴 머리들은 요력을 내뿜지도 않고 곧장 부딪쳐왔다.

    꽈르릉!

    하늘을 뒤덮을 듯 거대한 두 줄기 힘이 심협을 기습해오면서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고, 동시에 빙글빙글 도는 무형의 파동이 터져 나왔다.

    심협은 간담이 서늘해져서 온몸에서 금빛을 미친 듯이 내뿜었다. 그러자 여섯 용과 코끼리의 허상이 그의 옆에 떠올라 두 요괴 머리를 향해 돌진했다.

    쿵! 쿵!

    굉음이 연달아 울리면서 용과 코끼리의 허상들은 산산이 부서졌지만, 덕분에 두 요괴 머리 또한 뒤로 조금 물러났다.

    심협은 그 틈에 육진편을 크게 휘둘렀고, 겹겹이 철편 그림자가 두 요괴 머리 위에 나타나 내리쳤다. 본래도 강한 육진편을 황정경으로 발동시키자, 그 위력이 순식간에 몇 배로 증가했다.

    겹겹이 철편의 그림자가 채 떨어져 내리기도 전에 거대한 압력이 먼저 덮쳐오면서 두 요괴 머리는 보이지 않는 힘에 묶이기라도 한 것처럼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한데 심협이 황정경을 운공할 때, 평대 밖에 떠 있던 진해빈철곤에 갑자기 금빛이 한 층 떠오르며 몇 차례 깜빡였으나, 싸움에 집중하느라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이미 힘을 합쳐 싸워본 경험이 있는 오홍과 심협은 손발이 잘 맞았다.

    “용권우격(龍卷雨擊)!”

    오홍의 외침에 이어 우렁찬 용울음이 울리면서 푸른 신룡(神龍)의 허상이 공중에 나타났다. 용이 입을 쩍 벌리자 무수한 푸른색 빗줄기가 용의 입에서 쏘아져 나와 날카롭고 무시무시한 파공음을 내며 곧장 요괴의 두 머리를 뒤덮었다.

    오중 등은 둘에 비해 다소 반응이 늦었지만, 그럼에도 모두가 최선을 다해 정면으로 갖은 공격을 퍼부었다.

    심연거요가 분노하며 포효하자, 몸 주위를 휘감았던 검은 빛이 맹렬히 불어나면서 요괴 머리 몇 개를 감쌌다.

    겹겹의 편영(鞭影)과 수천수만의 빗줄기, 그리고 오중 등 사람들의 공격이 검은빛 덩어리 위를 때렸지만, 그대로 뚫고 지났을 뿐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심협은 이 모습을 보고도 놀라기는커녕 도리어 기뻐했다.

    “거둬라!”

    그가 외치는 순간, 다시 한번 천책의 신통력이 검은 빛 덩어리를 휘감았다. 뒤이어 비단 찢어지듯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심연거요를 뒤덮었던 검은 빛 덩어리가 절반가량 그대로 찢겨나가 천책 안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심연거요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어느덧 목이 아홉 달린 괴물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으나, 머리는 네 개뿐이었다. 세 개는 감옥의 금제를 벗어날 때 잘려나갔고, 방금 심협의 손에 두 개가 또다시 잘려나간 결과였다. 게다가 그중 하나는 꽤나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는데, 용궁으로 오는 길에 심협이 상처를 입혔던 그 머리였다.

    그 요괴 머리는 입에 금빛 영패 하나를 문 채 요력을 쉬지 않고 주입했다. 그 영패는 바로 용왕령이었다.

    용왕령이 위잉하고 큰 소리를 내자, 용 모양 금빛이 그 속에서 줄줄이 쏘아져 나와 봉마비 안으로 끊임없이 녹아들었다. 그러자 봉마비는 금빛을 번쩍이며 계속해서 부들부들 떨리더니 어렴풋이 붕괴할 조짐을 보였다.

    “네 이놈, 죽어라!”

    오홍은 봉마비의 반응을 보고는 버럭 화를 내더니 다급해진 듯 주문을 읊조렸다. 그러자 몸 주위에 푸른 빛이 세차게 피어났고, 용창에서는 푸른 번갯불이 가닥가닥 뿜어져 나와 심연거요 머리 위의 허공을 향해 뻗어 나갔다. 그러자 그 공간이 심하게 진동하더니, 찌익 하는 소리와 함께 길이 수십 장의 검은 균열이 생겨났다. 마치 공간이 찢겨나간 것만 같았다.

    콰르릉!

    무수한 굵은 벼락들이 이 검은 틈새로 튀어나와 아래쪽을 마치 벼락의 숲처럼 뒤덮었다. 온 평대를 눈처럼 빛나는 벼락으로 밝게 비추었는데, 그 기세가 무시무시했다.

    수만의 벼락이 땅에 내리꽂히면서 사악한 마귀가 죽었다.

    ‘이건 무슨 신통력이지? 벼락의 힘을 소환해 적을 공격하다니!’

    심협의 눈동자에도 감탄이 스쳤다. 그러면서도 그는 손을 쉴 새 없이 움직여 다시 육진편을 작동시켰다. 칠흑같이 검은 편영들이 무수히 떠올라 성난 파도가 되어 심연거요를 향해 밀어닥쳤다.

    한편, 오중은 짙게 그늘이 드리운 얼굴로 오홍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뇌랑천운(雷浪穿雲)! 벌써 저런 신통력도 익혔단 말인가?”

    오흔과 청질도 놀라서 넋이 나갔다. 뇌랑천운은 동해 용궁 궁극의 뇌전(雷電) 신통력으로, 오직 동해 용왕만이 완벽히 익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데 오홍이 이를 익혔을 줄이야!

    세 사람도 곧 정신을 차리고 각자 법보를 움직여 공격에 나섰지만, 기세로는 심협과 오홍의 공격에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한편, 심연거요의 얼굴에는 격노한 기색이 드러났다. 심협이 계속해서 자신의 공격을 거둬가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수동적으로 굴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나 거요는 어째서인지 피하지 않고 거대한 몸뚱이를 둥글게 움츠리며 봉마비를 중심으로 똬리를 틀더니, 네 개의 머리를 전부 몸 아래로 숨겼다.

    그 순간, 심연거요의 몸에서 검은 빛이 세차게 뿜어져 나왔다. 그의 피부 위에는 자흑색 무늬들이 줄줄이 떠올라 강력한 마기의 파동을 일으켰는데, 몸에 돋은 검은 비늘들이 순식간에 크고 두꺼워졌다. 심협과 오홍의 공격에 몸으로 저항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하늘을 겹겹이 덮은 편영이 벼락처럼 떨어져 내리자, 심연거요의 몸에 돋은 비늘 조각들이 산산이 부서지면서 피와 살점들이 어지러이 흩날렸고, 몸이 반쯤 날아가 섬뜩한 백골과 내장까지 드러났다.

    하지만 심연거요는 여전히 옥문 앞에 자리를 잡은 채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거요의 몸뚱이 아래에서는 네 개의 요괴 머리가 동시에 칠흑 같은 요력을 뿜어내 용왕령 안으로 미친 듯이 주입했다.

    용왕령은 달갑지 않은 듯 날카롭게 포효했지만, 다음 순간 눈부신 금빛을 발하면서 영패 전체가 반투명하게 변하여 봉마비 안으로 박혀 들어갔다.

    봉마비는 즉시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하더니 쩍 하고 가벼운 소리와 함께 윗면에 균열이 생겨났다.

    감방 안에 있던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흥분에 찬 포효를 내지르자 두 눈의 핏빛이 불꽃처럼 요동쳤다. 이어서 그는 거대한 주먹을 세차게 휘둘러 감옥 문을 두들겼다.

    쾅!

    옥문과 평대까지 격렬하게 진동하면서 먼지가 치솟았다.

    “멈춰라! 뇌랑천운!”

    오홍은 질겁해 다시 용창에 번갯불을 번쩍이며 허공을 찔렀다.

    심연거요의 머리 위 검은 틈에서 눈부신 번갯불이 번뜩이며 쏟아져 나와 다시 한번 내리꽂혔다.

    동시에 오중 등도 모든 힘을 쏟았다.

    한편, 심협은 살짝 굳은 얼굴로 온 힘을 다해 황정경을 운공했다. 그러자 그의 몸 바깥으로 거의 실체에 가까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용과 코끼리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거대한 금빛 허상들이 하나둘 나타나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여섯 용과 코끼리의 힘도 방향을 틀어 육진편 안으로 주입되었다.

    육진편은 긴 울음소리를 내며 영광(靈光)을 크게 내뿜더니, 갑자기 검고 날카로운 도끼로 변했다.

    검은 도끼 위에는 시커멓고 살벌한 빛이 번득였는데, 그 안에서 도끼가 갑자기 커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길이가 10여 장에 이르는 거대한 도끼가 되었다.

    그 순간, 육진편은 마치 봉인이 풀린 것처럼 하늘을 찌를 듯한 살기를 폭발시켰다. 10여 장쯤 떨어진 오중 등도 검은 도끼의 광기 어린 살의를 느끼고는 두려움에 표정이 굳었다.

    한편, 심협 또한 온몸에 금빛이 미친 듯이 불어났고, 키가 10여 장에 이르도록 늘어났다. 두 손은 이미 용의 발로 변해 있었고, 두 다리는 코끼리 다리가 되어 몸 전체가 순식간에 반인반수(半人半獸)의 금빛 거인이 되었다.

    그는 두 손으로 거대한 검은 도끼를 쥔 채, 심연거요를 향해 휘둘렀다.

    도끼날에서는 흑금색 부망(*斧芒: 도끼날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기다란 초승달처럼 느릿느릿 날아갔는데, 지나는 곳마다 허공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면서 베인 듯한 하얀 자국이 생겨났다.

    심연거요는 줄곧 낮추고 있던 머리를 번쩍 쳐들고는 초승달 같은 부망이 날아오는 것을 쳐다보더니 겁에 질린 표정으로 굵은 꼬리를 홱 휘둘렀다.

    팟!

    싸늘한 소리와 함께 검은 부망이 거요의 꼬리를 가볍게 잘라버리고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은 것처럼 날아가 번쩍하며 심연거요마저 가뿐하게 베어버렸다.

    “크아악!”

    똬리를 틀고 있던 심연거요의 거대한 몸뚱이가 마치 무처럼 가볍게 둘로 나뉘며 붉은 피가 끊이지 않고 쏟아져 평대를 붉게 물들였다.

    검은 부망은 그러고도 계속해서 날아가 평대 위를 매섭게 베었다.

    쾅!

    평대가 심하게 진동하고 먼지구름이 흩날리면서 뜻밖에도 길이가 20여 장에 깊이는 반 장에 이르는 거대한 골이 생겨났다.

    검은 부망은 느린 듯했지만 실제로는 매우 빨라서 다른 사람들의 공격이 다가오기도 전에 심연거요를 베었다. 그런 뒤에야 다른 사람들의 공격이 떨어져 내렸다.

    콰르릉!

    오홍이 소환한 벼락들이 떨어져 내리면서 심연거요의 남은 몸을 수많은 살점들로 찢어발겼다. 그 아래쪽에 드러난 봉마비 위에는 세 갈래 균열이 생겨나 곧 무너질 것만 같았다.

    심연거요의 신혼인 아홉 머리 뱀 형상의 검은 기운이 봉마비를 휘감고 있었는데, 주위에는 여전히 상당히 많은 요력이 들러붙어 있었다.

    신혼의 등 뒤에는 핏빛이 한 가닥 붙어 있어 무척 기괴해 보였다.

    심연거요 혼백의 아홉 머리에 달린 열여덟 개의 눈에서는 핏빛이 번쩍이며 광기가 가득했다. 그는 어째서인지 육신이 망가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빠르게 주문을 외워 신혼을 빠르게 팽창시켰다.

    이에 오홍은 안색이 크게 변하여 그 자리에 아직 남은 번개가 사방에 내리꽂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금빛 그림자로 변해 봉마비를 향해 돌진했다.

    “멈추시오, 오형! 그는 원신(元神)을 스스로 폭파시키려는 거요! 막기엔 이미 늦었소!”

    심협은 안색이 돌변하여 외쳤다.

    그러나 오홍은 그 말을 듣고도 멈추지 않고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그가 막 절반쯤 날아갔을 때, 심연거요의 혼백이 갑자기 무시무시한 검은 빛을 내뿜더니 팽창했다 줄어들면서 하늘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그대로 폭발해버렸다.

    꽝!

    지름이 10장이 넘는 검은 빛 덩어리가 허공에 번쩍이며 나타나 작고 검은 태양처럼 기이하게 번쩍이며 반경 10장 안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봉마비 위의 빛은 빠르게 몇 번 깜빡이더니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사분오열로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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