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64화 (364/1,214)
  • 364화. 용연의 9번째 층

    누요가 시체로 변하자 오중과 오홍 등의 눈에 가득했던 핏빛이 빠르게 흩어지면서 정신을 차리고는 싸움을 멈췄다. 이들은 다소 얼빠진 얼굴로 서로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동해 용궁의 중요한 위치에 있는 거물들이 환술에 빠져 서로 죽자고 싸워댔으니,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아마 온 동해의 웃음거리로 전락할 것이다.

    “심형, 그대 덕분에 불행한 일을 막을 수 있었소. 실로 감사하오.”

    오홍이 심협에게 진심을 담아 감사를 표했다.

    지금껏 인간족 수사를 업신여겼던 오중은 복잡한 표정으로 심협을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용족은 타고난 육신이 강하고 천부적인 수련 자질을 지녔기에 인간족보다 몇 배는 더 강력했다. 하지만 심협이라는 이 인간족 수사의 실력은 놀랍게도 자신들보다 훨씬 위인 듯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니 마음에 두지 마시오.”

    심협은 가볍게 웃으며 손을 휘둘러 금빛을 한 줄기 쏘아 보냈다. 이에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경계태세를 취했으나, 금빛은 유유히 나아가 커다란 구덩이 근처 바닥을 휩쓸었다.

    금빛이 날아가 채 닿기도 전에 그곳 땅바닥에서 분홍 빛이 불쑥 솟아나더니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위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향해 번개처럼 날아갔다. 믿기 힘들 정도의 속도였다.

    “매요의 신혼이다! 놓쳐서는 안 돼!”

    오중은 눈에 노기를 번득이며 즉시 나서려고 했다.

    한데 그때, 검은 빛줄기가 계단 옆에서 날아와 분홍색 빛 덩어리를 후려쳤다. 바로 육진편이었다.

    “끼야아악!”

    처참한 비명이 분홍빛 속에서 울렸고, 빛 덩어리는 절반가량 흩어졌다. 이어서 나머지 부분도 뒤로 튕겨 날아왔다.

    심협은 손목을 돌려 손바닥에서 환한 금빛을 내뿜으며 분홍빛을 손에 움켜쥐었다.

    “심 도우, 살려주세요! 이번에 나를 한 번만 살려준다면 내 그대의 영수(*靈獸: 특수한 능력과 영성을 지닌 상서로운 동물)가 되겠습니다. 우리 매요 일족은 독특한 재능을 타고났으니 내 비록 신혼 상태라고는 해도 분명 큰 쓸모가 있을 거예요. 나중에 빼앗을 몸을 찾기만 하면 경지도 곧 다시 회복할 거고요.”

    뱀 머리칼을 지닌 자그마한 여자 요괴가 분홍 빛 속에서 나타나 애원했다.

    ‘그리고 치우 대신에 대해서도 아는 건 전부 알려줄게요.’

    누요는 곧 다시 신혼으로 소리를 전했다.

    “목숨을 부지하고 싶다면 우선 어찌 감옥에서 탈출했는지부터 말해라. 방금 그 검은 그림자는 또 누구냐?”

    심협의 담담한 심문에 누요는 주저하며 선뜻 답하지 못했다.

    “답하지 않겠다면 살려둘 필요가 없지.”

    심협은 차가운 표정으로 다섯 손가락에 금빛을 발하며 분홍빛 덩어리를 으스러뜨리려 했다.

    “아, 안 돼요! 마, 말할게요. 그 검은 그림자는 패산입니다. 역시 이 층에 갇혀있는 심연거요인데, 그가 저를 풀어줬어요.”

    누요가 황급히 말했다.

    “심연거요라……. 과연 그랬군.”

    심협은 예상했다는 듯 침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실 그는 검은 그림자의 기운이 용궁으로 오는 길에 마주친 심연거요와 비슷했기에 예상은 했지만, 확신은 없었다. 한데 진짜 그자였다니…….

    그나저나 심연거요는 이미 탈출했는데 왜 갑자기 돌아오려 했단 말인가?

    “검은 그림자라니? 심연거요는 또 뭐고! 심형, 아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거요?”

    오홍이 어두운 안색으로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말없이 심협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방금 전 조종당하는 상태였던지라, 이곳에서 벌어진 일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심협은 숨기지 않고 방금 일어났던 일과 자신의 추측, 특히 검은 그림자가 오중에게서 뭔가를 가져간 듯하다는 것을 빠르게 이야기해주었다.

    오중은 그 말에 황급히 품안을 더듬어 보고는 일순 굳어버렸다.

    “형님, 왜 그러십니까?”

    오홍이 이 모습을 보고 급히 물었다.

    “젠장! 내 용왕령(龍王令)이 없어졌어!”

    오중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경악하자 오홍과 오흔, 청질의 표정도 급변했다.

    “어서 제일 아래층으로 가시지요!”

    오홍은 문득 뭔가 떠올랐는지 한 줄기 금빛으로 변해 앞장서서 돌진했다.

    다른 사람들도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는 즉시 뒤를 따랐다.

    한편, 심협은 이 광경을 보면서 눈썹을 찌푸렸다. 상황을 보아하니 오홍 등은 뭔가를 발견한 듯했다.

    한데 그가 따라가려는 순간, 손에 쥔 누요의 혼백이 갑자기 밝아지면서 강력한 환각력이 흘러나와 순식간에 심협의 머릿속으로 밀려들었다.

    심협은 눈앞이 아득해졌고, 누요의 신혼을 쥐고 있던 손도 슬쩍 느슨해졌다. 그 틈에 누요의 혼백은 몸을 비틀며 심협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향해 달아났고, 순식간에 수십 장을 날아가 시야 밖으로 사라지려 했다.

    “네가 정녕 죽고 싶은 게로구나!”

    심협은 시야가 정상으로 되돌아오자마자 싸늘한 눈빛으로 손을 뒤집어 육진편을 꺼낸 뒤 세차게 휘둘렀다.

    죽을힘을 다해 달아나던 누요의 혼백은 갑자기 허공에서 윙 하고 울리는 소리를 들었고, 다음 순간 보이지 않는 강력한 힘과 충돌했다.

    “꺄악!”

    누요의 혼백은 이 강력한 힘을 견뎌내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그곳은 끝없는 심연, 검은 바람이 분노에 차 울부짖고 있는 곳이었다.

    누요의 혼백은 겁에 질려 신혼에서 환하게 빛을 발하며, 갑자기 팽창했다 수축하는 변화로 무형의 힘이 가하는 공격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힘은 아무런 빈틈이 없었고, 매우 거대했다. 이전의 심협의 용 발 공격에 못지않은 이 힘을 한낱 혼백이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안 돼!”

    누요의 신혼은 파리처럼 날아가 바깥의 심연 속으로 떨어졌다.

    무시무시한 흑염선풍이 벌 떼처럼 몰려와 눈 깜짝할 새에 누요의 혼백을 갈기갈기 찢어 집어삼켰다.

    진해빈철곤의 금제는 바깥쪽의 흑염선풍만 막는 것으로, 안에서 바깥으로 내동댕이친 것은 막지 않았다.

    심협은 일격에 누요를 처치했으나, 곧바로 후회하고야 말았다. 누요에게서 치우에 대해 듣지 못하지 않았는가.

    그는 한숨을 내쉬고 육진편을 거둔 뒤, 다시 오홍과 사람들을 쫓아갔다.

    심협의 두 발에서 달그림자의 빛이 번득인 순간, 그는 오중 등을 지나쳐 오홍 곁에 나타났다.

    다른 사람들은 방금 심협이 지나쳐 간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기에, 갑자기 나타난 그의 모습에 안색이 굳어졌다.

    “오형, 용왕령이라는 게 무엇이오?”

    “용왕령은 부왕께서 하사하신 비보(秘寶)요. 용연 아홉 번째 층의 금제를 열 수 있는데, 심연거요가 9층에 갇힌 그 요마를 풀어주려 한 것이오!”

    오홍은 전력으로 9층 계단을 향해 돌진하며 말했다.

    “9층의 요마는 무엇이오?”

    “그 요물의 이름은 우사(雨師). 일찍이 마제 치우 휘하의 대장(大將) 중 하나였소. 비바람을 다스릴 수 있는데, 결코 우리가 대적할 상대가 아니니 심연거요의 뜻대로 되게 해서는 절대 아니 되오!”

    “치우 휘하의 대장!”

    심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정이 말했던 실마리가 이것이었던가!

    “심형, 한번만 더 도와줄 수 있겠소?”

    “용궁의 안위와 관련된 일이니, 이 심모, 당연히 최선을 다할 것이오.”

    오홍의 부탁에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고맙소.”

    다시 한번 심협에게 감사를 전한 오홍을 필두로 사람들은 쉴 새 없이 내달렸고, 이내 용연의 아홉 번째 층에 도착했다.

    그곳에 감방은 하나뿐이었고, 그 앞에는 거대한 평대가 하나 있었다. 감방 바깥에는 부적 하나 붙어 있지 않았고, 아무런 법진 문양도 새겨져 있지 않았다. 오직 옥문 앞에 1장 높이의 금빛 비석 하나만 서 있을 뿐이었다.

    비석 앞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 형체가 손에 금빛 영패를 든 채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한편, 감방 깊숙한 곳에는 거대한 그림자가 어렴풋이 보였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얼음처럼 차가운 기색이 가득한 커다란 핏빛 두만눈은 똑똑히 보였다.

    그 핏빛 눈 옆에는 조금 더 작은 금빛 눈동자 한 쌍이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싸늘한 빛을 번득이고 있었다.

    “멈춰라!”

    오홍이 고함을 내지르더니 금색 용창(龍槍)에 거센 금빛을 불어넣으며 검은 옷의 형체를 향해 있는 힘껏 던졌다.

    창에서 금빛 화염이 불타오르더니 찬란한 금색의 빛줄기로 변해 순식간에 10여 장을 뛰어넘었다.

    그러나 검은 옷의 형체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검은 그림자 하나가 그 뒤에 아른거렸다.

    땅!

    굉음이 울리면서 금빛 창이 바깥쪽 심연으로 튕겨 날아갔다.

    오홍은 깜짝 놀라 황급히 결인해 창을 불러들였고, 용창은 가까스로 심연 가장자리에 멈추더니 돌아왔다.

    오중와 오흔, 청질도 곧장 공격에 나섰다. 황색 창과 구릿빛 검광 두 줄기 그리고 새하얀 강차 한 자루가 검은 옷의 형체를 향해 날아들었다.

    “네놈들이 굳이 죽고 싶다면, 내 그 원을 들어주마.”

    검은 옷의 형체는 짜증이 난 듯 고개를 홱 틀었는데, 뜻밖에도 그는 얼굴에 검은 비늘이 가득 자란 사내였다. 그의 몸에서 세찬 검은 빛이 뿜어져 나와 반경 10여 장의 검은 빛 덩어리를 이루어 전신을 파묻었다.

    다음 순간, 휙 하는 소리와 함께 세 줄기 검은 그림자가 검은 빛 속에서 쏘아져 나왔다. 하나하나가 집채만 한, 심연거요의 머리 세 개였다.

    요괴 머리들 중 하나는 희뿌연 한기를 뿜어냈고, 하나는 검은 요화(妖火)를 토해냈으며, 또 하나는 녹색 독 구름을 내뿜으면서 오중과 두 사람을 각각 공격했다.

    검은 빛 속에서는 주문을 외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거요는 심협 일행을 상대하면서도 여전히 용왕령을 작동시켜 금제를 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때, 심협의 몸에 푸른 빛이 번쩍 스치더니 그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엇!”

    다음 순간, 검은 빛 속에서 가벼운 탄성이 울렸다.

    녹색 독 구름을 내뿜던 요괴의 머리 옆으로 녹색 그림자가 스쳐 지나더니, 심협이 난데없이 나타났다. 그는 육진편을 양손으로 쥔 채 철편에서 길이 10여 장의 검은 빛을 뿜어내며 산을 쪼개고 돌을 가를 기세로 거대한 요괴 머리의 목 부분을 향해 휘둘렀다.

    “간사한 도적놈 같으니!”

    검은 빛 속에서 노기를 띤 포효가 들려왔고, 독 구름을 내뿜던 요괴의 머리는 순간 움츠러들더니 뒤로 몸을 피했다. 동시에 검은 요화를 토해내던 요괴의 머리가 즉시 심협 쪽으로 방향을 틀고 굵직한 검은 화염을 내뿜었다.

    요괴의 머리는 거대한 크기에 어울리지 않게 재빠르게 반응했고, 이글거리는 검은 화염이 눈 깜짝할 새에 코앞까지 이르렀다.

    이 화염은 더없이 뜨거워서 가까워지는 것만으로도 마치 화로에 들어온 것처럼 참기 힘들었다.

    심협은 을목선둔을 시전하여 기습했으나 뜻밖에도 실패하자 상대의 실력에 내심 놀랐다. 하지만 곧장 침착함을 되찾고는 곧장 몸을 날려 옆으로 피하면서 천책에 다시 법력을 주입해 천책의 능력을 불러일으키려 했다.

    천책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거대한 금빛이 피어오르더니 책자가 다시금 촤라락 하고 펼쳐졌다. 이어서 한 줄기 금빛이 스쳐 지나며 그를 덮쳐오던 굵직한 검은 화염이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심협은 단번에 천책의 흡수 능력을 발휘한 것에 속으로 크게 기뻐하면서, 독 구름을 내뿜는 요괴 머리를 향해 육진편을 계속해서 내리꽂았다.

    이미 심협을 물리친 줄 알고 방심했던 심연거요는 화들짝 놀라 피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진선의 경지에 도달한 심협이 육진편의 위력을 온전히 발휘하자, 그 위의 검은 빛은 비검 법보보다도 날카로웠다.

    “크아악! 네…… 네놈이 감히!”

    머리 하나가 깔끔하게 잘려 나가면서 피가 폭포처럼 사방으로 쏟아져 내렸고, 심연거요는 고통과 분노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다른 요괴 머리 두 개는 오중을 비롯한 사람들을 내버려두고 심협에게로 돌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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