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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363화 (363/1,214)
  • 363화. 천책의 신위

    심협은 기괴한 다섯 마리 분홍 구렁이가 들러붙지 못하도록 두 발에 달빛을 반짝이며 순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가 10여 장 떨어진 곳에 나타났다.

    “역시 너였구나! 어떻게 감옥에서 나온 것이냐? 다들 멈추시오! 그대들은 이 매요(*魅妖: 사람들을 미혹하는 요괴, 누요의 일족)의 환술에 걸려든 것이오!”

    심협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마치 실체를 지닌 듯한 거대한 음파가 평대 부근에서 메아리치며 사람들의 정신을 뒤흔들어 놓았다.

    오홍과 오중을 비롯한 사람은 몸을 부르르 떨었고, 눈에 번득이는 시뻘건 빛이 약간 어두워졌다.

    “호호호! 내 미혹의 씨앗이 이미 그들의 의식에 뿌리를 내렸으니 그리 쉽게 풀릴 리 없지.”

    누요가 계속 요염한 웃음을 지으며 남은 손으로 허공을 그러쥐자, 또다시 커다란 연무 구렁이 다섯 마리가 튀어나와 심협을 휘감으려 했다. 여기에 조금 전의 연무 구렁이들까지, 총 열 마리가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네 이놈! 어딜 가느냐!”

    청질까지 심협을 바짝 쫓아오며 강차를 질풍처럼 내찔렀다. 주위 수원(水元)의 힘이 미친 듯이 솟구쳐 거대한 소용돌이를 이루면서 심협을 뒤덮고 모든 퇴로를 막았다.

    상황이 좋지 않자 심협의 안색이 싸늘하게 식었다. 동시에 몸이 금빛으로 번득이더니 그의 앞에서 가물가물한 금빛 용의 머리 두 개가 스치면서 하나는 소용돌이로, 하나는 청질에게로 달려들었다.

    쿵! 쿵!

    거대한 소용돌이는 일격에 산산조각이 나버렸고, 청질도 나가떨어져 감방 벽에 그대로 부딪히고는 붉은 피를 한 모금 토해냈다.

    심협은 쉬지 않고 양손을 휘둘러 좌우를 후려쳤다. 그러자 집채만 한 금빛 용의 발 두 개가 나타나 좌우에서 엄습해오는 분홍빛 안개 구렁이들을 내리쳤다.

    용의 발에서 숨 막히는 거대한 힘이 산사태처럼 뿜어져 나와 산이라도 충분히 끊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를 덮쳐오던 열 마리 분홍빛 안개 구렁이들은 손쉽게 격파되어, 전부 폭발해 어지러이 흩어져 거대한 안개가 되었다.

    심협은 거대한 안개 구렁이 열 마리를 이리도 쉽게 섬멸한 것에 약간 놀랐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들어 매요를 공격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두 개의 용 발에 분홍 빛이 번쩍이더니, 어디선가 분홍 광채가 덩이덩이 나타났다. 이 광채는 빠르게 하나로 합쳐져 뱀 같은 눈부신 두 빛줄기가 되어 지척에 있던 심협의 머리를 향해 쏜살같이 덮쳐왔다.

    그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빨라서 미처 피할 겨를이 없었던 심협은 전력으로 황정경을 운공해 휘황찬란한 금빛으로 온몸을 감쌌다.

    한데 뜻밖에도 뱀 같은 빛줄기들은 마치 금빛이 없는 것처럼 지나쳐 심협의 머릿속으로 들어간 뒤, 작은 사람 형태의 신혼을 거세게 때렸다.

    순간, 심협의 눈앞에 무지개 같은 빛들이 줄줄이 스쳐 지나며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신혼을 공격하다니!’

    심협은 깜짝 놀라 즉시 부주진신법을 운공했다. 그러자 머릿속 신혼의 힘은 소인(小人) 형태의 신혼을 중심으로 하늘을 떠받치며 우뚝 선 거대한 산봉우리가 되었다.

    험준한 산과 같은 굳세고 든든한 기운이 거대한 신혼의 봉우리에서 뿜어져 나오면서 눈앞의 환상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정신도 맑아졌다.

    심협이 신혼 공격을 무력화시키자 주위의 분홍빛 안개들이 맹렬히 요동쳤다. 하지만 흩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성난 파도처럼 달려들었고, 사방을 뒤덮어 달아날 틈조차 주지 않았다.

    분홍빛 안개 속에는 분홍색 광채가 점점이 반짝이고 있어 밤하늘의 별처럼 아름다웠다.

    심협은 이 분홍빛 광채의 위력을 이미 겪어봤기에, 휘감기지 않기 위해 온몸에 금빛을 내뿜으며 용 형상의 금빛으로 변해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그러나 몸 주변의 금빛이 분홍빛 안개와 닿자마자 안개 속의 분홍빛 광채가 다시 한번 체내로 밀려들면서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파고들었다.

    심협은 전력으로 부주진신법을 운공해 이를 막아냈다.

    분홍 안개는 공격력 자체는 강하지 않았기에 금빛은 손쉽게 안개 범위를 벗어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때, 전방의 허공이 콰르릉 하고 울리더니, 맷돌만 한 검고 커다란 주먹이 느닷없이 나타나 이 금빛을 가격했다.

    펑!

    쟁쟁한 소리가 울리면서 용 모양 금빛은 일격에 부서졌고, 검은 주먹은 그대로 번개처럼 심협에게 날아들었다.

    심협은 대경실색하여 황급히 주먹을 마주 휘둘렀다. 그의 주먹이 검은 주먹과 한데 맞부딪쳤다.

    꽈르릉!

    둔탁한 굉음과 함께 주위의 허공이 진동했다.

    도저히 막아낼 수 없는 거대한 힘에 금빛은 썩은 나무처럼 깨져버렸고, 심협은 피를 토해내며 튕겨나가 분홍빛 안개 속으로 다시 내동댕이쳐졌다.

    “패(霸) 형, 고마워요! 호호호!”

    매요는 애교 섞인 웃음을 지으며 열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여 결인했다.

    심협 주위의 분홍빛 안개 속에서 붉은 그림자가 스치더니, 길이가 수십 장에 굵기는 사발만 한 붉은 뱀이 튀어나와 번개처럼 빙빙 돌며 단숨에 그를 휘감았다. 그것은 분명 매요의 뱀 머리칼이었다.

    주위의 분홍빛 안개도 벌 떼처럼 몰려들어 심협의 몸을 집어삼켰다.

    대량의 분홍빛 광채가 심협의 체내로 밀고 들어와 이전보다 열 배는 큰 뱀 모양 광채를 이루더니, 신혼이 변하여 만들어진 거대한 봉우리 허상에 충돌했다.

    우르릉!

    심협의 머릿속이 진동했고, 거대한 봉우리 허상이 심하게 떨리면서 절반 가까이 무너져 내렸다. 시야는 무수한 색색의 빛에 파묻혔고, 마음속에는 포악하고 잔인한 감정이 강렬하게 일어났다. 이성 따위는 사라져버리고 당장 눈앞의 모든 사람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싶다는 욕구와 분노가 치솟았다.

    “젠장!”

    심협은 모든 의지력을 끌어모으고, 온 힘을 다해 부주진신법을 운공하여 가까스로 눈앞의 환상과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잔학한 살의에 저항했다.

    “호오, 제법이군. 하지만 과연 이것도 막아낼 수 있을까?”

    매요는 다소 감탄한 듯한 표정으로 다섯 손가락을 그러쥐었다. 그러더니 선홍빛 연무가 손바닥 한가운데에서 솟아나 응결된 구슬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선홍색 연기 구슬은 순식간에 10여 장을 뛰어넘고 심협에게 꽂혔다.

    그 순간, 실체 같은 뱀 모양 광채가 선홍빛 구슬에서 튀어나와 주위에 흩어져 있는 분홍빛 광채보다 훨씬 강력한 신혼의 파동을 뿜어내며 체내로 돌진했다.

    심협은 일순 낯빛이 변했다. 그는 주변 안개의 신혼 공격을 막아내는 것만으로도 이미 한계였다. 만약 다시 한번 이토록 강력한 신혼의 공격이 이어진다면 분명 그의 신혼이 견뎌내지 못할 터였다.

    “천책!”

    그는 법력을 움직여 품속의 천책에 주입하면서 그 안의 천병들을 소환했다.

    그 순간, 천책 안에서 갑자기 다시 뜨거운 기운이 솟구치면서 눈부신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비록 그 속에서 천병이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휘리릭 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천책이 펼쳐졌다. 그리고 심협의 눈앞에 금빛이 스쳐 지나면서 선홍빛 안개 구슬과 그 속에서 쏘아져 나오던 분홍빛 광채 그리고 주위를 뒤덮은 절반 이상의 분홍 안개가 갑자기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는 반쯤 넋이 나갔는데, 멀리 있던 누요의 표정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분홍빛 안개가 절반쯤 사라지자, 심협의 신혼을 짓누르던 압력도 훨씬 줄어들었다. 이에 그는 한숨 돌리면서 신식으로 즉시 품속의 천책을 살펴보았다.

    위잉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신식은 순조롭게 천책 안으로 들어가 금빛 공간에 나타났다.

    이 금빛 공간은 면적이 광활해 신식으로는 그 끝을 볼 수도 없었다. 눈짐작으로 보기에 적어도 수백 리쯤은 될 듯한 공간은 하늘과 땅을 가리지 않고 온통 짙은 금빛으로 가득했다.

    ‘이곳은…… 그때 이정(李靖)이 나를 억지로 밀어 넣었던 금빛 공간과 비슷해. 분명 같은 곳일 거야!’

    심협은 눈앞 광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금빛 공간 안에는 분홍빛 무언가가 한 덩이 떠다녔는데, 바로 방금 거둬들인 환각을 일으키는 연무였다. 이 공간의 금빛에 감도는 은은한 금제의 힘이 이 연무가 흩어지지 않게 압박하고 있었다.

    지금은 적절한 때가 아니었기에 심협은 금빛 공간을 자세히 둘러보지 못하고 금세 신식을 거둬들였다.

    “천책에 이런 신통력도 있었나?”

    생각해보면 이정이 자신을 이 천책 안으로 거둬들여 천병들과 싸우게 했으니, 연무를 거둬가는 것도 그리 이상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방금 저 안개를 거둬들인 것은 우연에 불과하니, 천책의 흡수 능력을 자유자재로 발휘하려면 더 많은 깨달음이 필요했다.

    한편, 누요는 경악한 표정으로 몸을 홱 틀어 멀리 달아나려 했다. 방금 8할이 넘는 혼력(魂力)으로 공격했건만, 심협이 단번에 그 공격을 절반이나 거둬갔으니 이제 그녀의 혼력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니 어찌 심협에게 맞설 수 있겠는가?

    “어딜 도망치려 하느냐! 이미 늦었다!”

    심협은 온몸에서 강렬한 금빛을 내뿜었고, 거대한 힘이 세차게 터져 나왔다. 그의 몸을 휘감은 붉고 긴 뱀들이 폭발하듯 잘려나갔고, 금빛이 성난 파도처럼 휘몰아치며 한바탕 광풍을 일으켰다.

    이 분홍빛 안개에는 매우 강한 환각의 힘이 담겨 있지만, 공격력은 터무니없이 약해서 금빛에 휘말리자 모두 단번에 날아갔고 시야가 다시 확 트였다.

    심협은 냉혹한 눈으로 누요를 노려보며 손을 들어 반격하려 했다. 한데 그 순간, 갑자기 그의 눈동자가 확 움츠러들었다.

    여전히 멀리서 미친 듯 맞붙어 싸우던 사람들의 뒤쪽 허공이 일렁이더니, 검은 그림자 하나가 불쑥 나타나 오중의 옆을 쏜살같이 스쳐 지난 뒤, 다시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마치 오중에게서 무언가를 훔쳐간 것만 같았다.

    심협은 그 검은 그림자가 좀 전에 자신을 일격에 물러나게 한 거대한 검은 주먹임을 확신했다.

    그는 검은 주먹을 내버려둔 채 돌려 오른팔을 들어 올려 다섯 손가락을 쫙 펴더니 달아나는 누요를 향해 허공을 내리눌렀다.

    쿠르릉!

    누요의 머리 위 허공이 크게 울리면서 커다란 금빛 용의 발이 난데없이 나타나 떨어져 내렸다. 느린 듯하면서도 빠르고, 쏜살같으면서도 더딘 움직임이었다.

    누요의 사방이 바짝 조여들면서 무시무시한 힘이 짓눌러 그녀의 몸을 감싸 분홍 빛은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녀는 땅바닥에 짓눌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장기는 신혼이라 육신의 힘이나 요력 등은 특별할 게 없었으니, 어찌 황정경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누요도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만은 않았다. 그녀는 빽 소리를 지르며 양손을 위로 번쩍 쳐들었다.

    분홍색 빛기둥 두 개가 그녀의 손바닥 한가운데서 쏘아져 나와 공중에서 떨어지는 용의 발을 떠받쳤다. 동시에 그녀 머리 위의 붉은 뱀 머리칼도 붉은 빛을 반짝이며 빠르게 불어나, 장정 셋이 손을 맞잡아도 둘러싸기 힘들 만큼 굵은 구렁이들로 변해 금빛 용의 발에 맞섰다.

    하지만 분홍색 빛기둥도, 거대한 구렁이도 소용이 없엇다. 용의 발에 부딪히자마자 마디마디 부서져 떨어져 내린 것이다.

    “패산(霸山)!”

    누요는 뾰족한 수가 없자 겁에 질려 고개를 돌리고 주변을 향해 외쳤다. 아까 자신을 도와준 자에게 또다시 도움을 청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고, 누요의 안색은 한순간 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그녀는 확실히 진선기 경지다웠다. 곧장 정신을 가다듬더니 몸 표면을 붉은 빛으로 번득였다.

    심협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곧바로 다섯 손가락을 연달아 움직였다. 그러자 공중에 있던 금빛 용의 발이 세찬 금빛을 발하며 몇 배는 빨리 떨어져 내리면서 단숨에 분홍색 빛기둥을 꺾어버렸다. 이어서 뱀 머리칼들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기며 순식간에 누요를 덮쳤다.

    콰르릉!

    굉음과 함께 단단하기 이를 데 없던 지면이 심하게 진동하면서 깊은 구덩이가 생겨났다. 누요의 몸은 그 안에 있었지만, 뼈와 살이 한 덩이가 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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