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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362화 (362/1,214)

362화. 적은 누구인가

“아홉째야, 너와 심 도우가 눈이 침침하여 잘못 봤거나 다른 이의 환술에 걸려들었던 모양이구나. 심력이 약하면 그럴 수 있지. 하하하!”

오중은 후련한 듯 껄껄 웃었다.

“제가 알기로 세상에는 둔갑술이 많고도 많습니다. 감방 안의 거요는 비록 실물 같아 보이지만, 진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이 옥문 위에는 신묘한 금제가 걸려 있어 우리가 내부 상황을 살펴볼 수 없으니, 오중 전하께서 번거로우시더라도 옥문 금제의 한 귀퉁이만 열고 진위를 살피게 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심협은 감방 안의 거요를 잠시 쳐다보더니 불쑥 물었다.

“터무니없는 소리! 이 심연거요의 실력은 태을진선에 견줄 만하여 우리가 대적할 수 없거늘, 어찌 함부로 옥문의 금제를 연단 말인가!”

오중은 얼굴빛이 싸늘해지며 단칼에 이를 거절했다.

“그럼 좋습니다.”

심협은 화를 내지 않고 그저 온몸에서 세찬 금빛을 내뿜었다. 이 빛은 전부 그의 눈으로 몰려들어 두 눈동자가 순식간에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우렁찬 신혼의 힘이 벌떼처럼 몰려나와 두 눈으로 흘러들어갔다.

위잉 하는 소리와 함께 실체를 지닌 듯한 금빛이 심협의 눈에서 쏘아져 나와 감방으로 날아갔다.

“무얼 하는 것이냐!”

오중은 버럭 호통을 치며 두 줄기 금빛을 가로막으려 했다.

“둘째 형님,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심형은 그저 비술로 저 거대한 짐승의 진위를 파악하려는 것일 뿐, 금제를 풀려는 의도는 아니니까요.”

오홍이 손을 들고 오중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그 사이에 심협의 눈에서 쏘아져 나온 금빛 두 줄기가 옥문에 닿았다.

그 순간, 옥문 위의 아홉 돌기둥은 뭔가를 감지한 것처럼 밝고 하얀 빛을 뿜어냈다. 이 빛들은 하나로 응집해 순식간에 빛의 장막을 이루며 심협의 금빛을 막아섰다.

금빛은 빛의 장막에 막혀 잠시 주춤했으나, 이내 형태와 실체가 없는 것처럼 뚫고 감옥 안으로 들어가 머리 아홉 달린 거대한 짐승에게 닿았다.

그 순간, 구두(九頭) 요마의 온몸에 금빛이 한 층 떠오르면서 거대한 몸뚱이가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더니 푸시식 하는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커다란 짐승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집채만 한 머리 한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심연거요의 것이었다.

머리가 잘린 곳에서는 여전히 붉은 피가 흘렀는데, 잘려나간 지 얼마 안 된 듯했다.

“역시 사물을 빌려 모습을 바꾼 거였어!”

불길한 예감이 들어맞자 심협이 탄식했다.

오홍과 오중 등도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진짜…… 심연거요가…… 심연거요가 탈출했다!”

오중은 정신을 차리더니 나는 듯한 걸음으로 감옥 문 앞까지 달려가 손가락 마디가 다 하얘질 정도로 두 주먹을 꽉 그러쥐었다. 오흔과 청질도 아연실색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오직 오홍만은 담담한 표정으로 두 눈에 금빛을 반짝이며 뭔가를 관찰하는 듯, 옥문 밖의 아홉 돌기둥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다! 이 옥문 바깥에는 전에 부왕께서 직접 설치하신 구곡나천신금(九曲羅天神禁)이 있단 말이다! 심지어 태을의 경지에 이르렀다 해도 소리 소문 없이 탈출할 순 없어! 저 심연거요는 진선기 정점에 불과하단 말이다!”

오중은 눈앞의 상황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 듯 나지막이 소리쳤다.

한편, 오홍은 감방 바깥의 아홉 돌기둥을 살펴보고는 인상을 찡그리더니 가까이 다가가 오른손으로 그중 하나를 눌렀다. 그러자 그의 손바닥 위로 금빛이 한 겹 떠올랐다.

“구전하, 무얼 하시는 겁니까?”

청질이 주저하며 묻자 오중도 재빨리 그쪽을 돌아보았다.

오홍은 대답 없이 그저 눈을 감은 채 서 있더니, 잠시 뒤 눈을 번쩍 뜨고 천천히 오른손을 거둬들였다.

“과연 그랬군.”

그가 무거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과연 그렇다니, 무얼 발견한 것이냐?”

오중이 침울한 목소리로 물었다.

“둘째 형님도 아시다시피 우리는 전투 기술에 대해서는 신통력이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허나 금제술에 있어서는 일가견이 있지요. 부왕께서 친히 가르침을 주시면서 제게 이 구곡나천신금에 대해 설명해주신 바 있습니다.”

오홍이 말했다.

“그래서? 지금이 부왕께서 너를 편애하셨다고 자랑할 때가 아니지 않으냐! 결론만 말하란 말이다!”

오중이 싸늘하게 냉소하며 꾸짖었다.

오홍은 그런 오중을 쓱 보고는 잠시 후 놀라운 말을 꺼냈다.

“이 구곡나천신금에 최근 누군가 손을 댄 흔적이 있습니다.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여도 그 안에 수작을 부려 놓아 심연거요가 탈출한 것이지요.”

“누군가 수작을 부려 놓았다? 어찌 그럴 수 있느냐! 방금 심 도우가 법술을 썼을 때도 구곡나천신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더냐?”

오중은 그 말을 믿지 않는 게 분명했다.

오홍은 따로 변명하지 않고 오른손을 들어 올려 손바닥에서 거대하고 넓적한 칼 모양 금빛 한 줄기를 쏘아 아홉 돌기둥 위를 베었다. 그러자 눈부시게 하얀빛이 돌기둥에서 피어올랐으나 하나로 합쳐지지 않고 9층으로 나뉘더니 기둥 하나마다 한 층씩 하얀 빛을 내뿜었다. 빛들은 겹겹이 쌓여 매우 정교해 보였고, 금빛 검을 손쉽게 막아냈다.

“구곡나천신금이 난공불락인 이유는 이 9도 금제의 고리가 하나하나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금제를 깨뜨리려면 반드시 두 번째 금제를 먼저 깨야하고, 두 번째 금제를 깨뜨리려면 세 번째 금제를 깨야만 하지요.

이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해금법(解禁法)이 없으면 구곡나천신금을 흔들어놓을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9도 금제를 한꺼번에 파괴하는 것이지요. 이는 태을의 경지로도 불가합니다. 한데 이 구곡나천신금은 누군가가 제2금과 제7금을 몰래 망가뜨려 놨군요.”

오홍은 이렇게 말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 손가락을 구부려 가리켰다. 그러자 두 줄기 금빛이 쏘아져 나와 측면에서 아홉 돌기둥을 향해 날아갔다.

이 금빛들은 마치 미꾸라지 두 마리가 이리저리 몸을 뒤트는 것처럼 하얀 빛을 파고들더니, 놀랍게도 순식간에 빛들을 꿰뚫고 두 돌기둥 위를 때렸다. 그러자 두 돌기둥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이 어두워지더니 금제 전체의 하얀 빛도 크게 흐트러졌다.

오중은 구곡나천신금에 대해서 깊이 알지는 못했지만, 이제 이 금제에 문제가 생긴 게 확실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대체 누구 짓이란 말이더냐?”

그는 분노로 눈이 붉어진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손바닥으로 옥문 근처 석벽을 세게 내리쳤다.

쾅!

석벽이 크게 울리며 감방까지 가볍게 진동했다.

오중의 분노에 오흔과 청질은 황급히 고개를 숙인 반면, 심협은 일말의 당혹감을 느꼈다. 오중은 진선기의 강자이거늘 어찌 저리도 감정의 동요가 심하단 말인가?

“이번 요마의 습격으로 용궁 사람들이 용연으로 피난을 왔던 날, 아래층에 다녀간 이가 있습니까?”

오중은 감옥을 바라보며 아직도 울분이 풀리지 않은 듯 오홍의 물음에 답도 하지 않았다.

“구전하께서는 우리 용궁 사람의 소행이라 의심하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그날 용왕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용연 꼭대기로 대피하고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고 엄명을 내리셨습니다. 소인이 바로 질서를 유지하는 호위대 중 한 사람이었지요. 결단코 누구도 아래에 내려온 적이 없습니다.”

오홍의 질문에 청질이 대신 답했다.

“만약 누군가 심연거요를 풀어주려 했다면 분명 은밀하게 움직였을 터. 남에게 들키지 않았을 거요. 야차 도우가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해야겠소만, 귀하를 속이고 몰래 아래로 잠입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소.”

심협은 청질의 상태도 조금 이상하다 여기고는 잠시 생각한 뒤에 일부러 그를 자극해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요! 우리 동해 용궁의 일에 언제부터 그대 같은 외부인이 관여한 게요!”

심협을 노려보는 청질의 두 눈이 어렴풋이 붉어지는 게, 한 마디라도 더 했다가는 바로 달려들 태세였다.

“청질! 뭐하는 짓이냐! 심형은 내가 청해 온 귀한 손님이다! 네가 감히 무례를 범하려는 것이냐!”

오홍이 노기를 띤 채 청질을 큰 소리로 꾸짖었다.

바로 그때, 노란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더니 재빠르게 오홍의 등 한복판을 찔러 들어갔다. 이 노란 그림자는 노란 창 한 자루였다.

그러나 거의 동시에 찬란한 금빛 주먹 하나가 옆에서 날아왔다.

땅!

굉음과 함께 노란 창이 튕겨 날아갔다.

심협이 천천히 금빛 주먹을 거두어들이는 동안 노란 창 뒤로 그림자 하나가 비틀비틀 물러섰다. 바로 오중이었다.

지금 오중의 두 눈은 벌겋게 핏발이 서 있었고, 원한 가득한 얼굴은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를 바라보는 표정이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자는 오홍이었다.

“둘째 형님, 저를 죽이시려고요? 왜죠? 왕위 때문입니까?”

오홍도 이미 상황을 알아차리고는 오중을 돌아보았는데, 눈에는 악기마저 솟아오르고 있었다.

오중은 대답하지 않고 몸을 가눈 뒤, 다시 창을 쥐고 빠르게 달려들었다. 창끝에서는 노란 빛이 크게 번득이며 분노한 용이 하늘로 치솟듯 거세게 내찔렀다.

“먼저 형제간의 정을 저버린 것은 당신이니 나를 탓하지 마시오!”

오홍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치며 손에 거센 금빛을 발했고, 금빛 창으로 앞을 크게 찔러 들어갔다.

쾅!

두 창이 한데 맞부딪치면서 우렛소리 같은 굉음이 울렸고, 눈에 보일 정도의 뚜렷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면서 주위의 사람들을 날려버렸다.

“구전하! 이전하를 상하게 하지 마십시오!”

줄곧 옆에 서있던 오흔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폭이 좁은 흑금색 검 두 자루를 꺼내어 미친 듯이 오홍에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다른 쪽에 서 있던 청질도 버럭 고함을 지르며 손을 뒤집어 새하얀 강차(*鋼叉: 고대의 무기 중 하나. 삼지창과 비슷하게 생김)를 꺼내 휙 하고 심협을 향해 찔러왔다.

“심가 놈아, 방금 그 말이 무슨 뜻이냐! 한낱 인간족 주제에 감히 나를 무시하다니! 네놈에게 우리 동해 수족의 대단함을 보여주마!”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모두 정신이 나간 건가?”

심협은 갑자기 발광하는 사람들을 보며 어안이 벙벙했다.

청질의 강차는 공기를 찢고 무시무시하게 울부짖으며 비검 법보의 공격 못지않은 기세로 순식간에 심협 앞 3척 거리에 이르렀다.

청질은 온힘을 다했지만, 지금의 심협에게 그의 동작은 너무 느렸다.

심협은 몸을 엇갈려 그 일격을 가뿐히 피하고는, 청질의 등에 있는 경맥의 중요 혈자리들을 눌러 그를 제압하려 했다.

한데 그때, 심협이 미간을 움찔 찌푸렸다. 그의 머릿속에 난데없이 아주 엷은 분홍빛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포악하고 잔인한 감정이 치솟았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청질을 보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혐오감을 느꼈고, 주먹을 휘둘러 상대의 뼈와 살을 진흙덩이처럼 짓이기려 했다.

하지만 그는 금탑에서 패배한 천병들의 잔혼을 흡수함으로써 신혼의 힘이 보통의 진선기보다 훨씬 강했기에 금세 부주진신법을 운공하여 곧 이 포악한 마음을 억눌렀다.

“이 분홍색 안개…… 뭔가 잘못됐어. 그 누요인가!”

심협은 문득 상황을 깨닫고 청질을 제압하는 것도 내팽개친 채, 거대한 신식의 힘을 사방팔방으로 뻗었다.

“나와!”

그는 예리한 눈빛으로 오른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검은 빛 한 줄기가 그의 소매에서 튀어나와 7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향해 날아갔다. 육진편이었다.

수십 장을 단숨에 뛰어넘은 육진편은 순식간에 계단 근처 벽을 찔렀다.

팍!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육진편은 자루까지 벽을 파고들어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붉은 그림자 하나가 그쪽 벽에서 나타나 눈 깜짝할 사이 수십 장을 날아 내렸다.

“호호호! 심 도우, 내가 과연 잘못 보지 않았네. 그대야말로 저들 중 가장 까다로운 사람이었어.”

붉은 그림자가 누요의 본모습을 드러내며 교태롭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고 손을 들어 심협을 향해 허공을 움켜쥐었다.

연무 같은 다섯 줄기의 분홍 빛이 그녀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와 심협을 향해 휘몰아쳤다. 빛줄기들은 마치 연기로 만든 거대한 다섯 마리 구렁이 같았는데, 하나하나가 길이는 10여 장에 굵기는 맷돌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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