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61화 (361/1,214)
  • 361화. 마귀 떼의 옥

    ‘오형, 이 용연은 여러 층으로 나뉘어 있소?’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심협은 잠시 생각해본 뒤 오홍에게 전음으로 물었다.

    ‘용연은 모두 9층으로 나뉘어 있소. 여기는 1층이고, 깊이 들어갈수록 강력한 요마가 갇혀 있지. 심연거요는 본래 9층에 갇혀 있었소.’

    오홍의 말에 심협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사람들은 첫 번째 감방부터 들여다보기 시작했는데, 그 안에 갇힌 각양각색 요마들은 대부분 수족 요물들이었다.

    감방의 문짝 위에는 금제가 걸려 있어 신식을 차단했으므로 그 안에 있는 요마의 기운을 탐지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바깥에서 보기만 해도 심협은 이 마물들이 하나같이 최소 출규기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요마들 중 어떤 것은 쇠약해져서 심협과 사람들을 보고도 못 본 척했으나, 어떤 것들은 공격성이 변하지 않아 쉬지 않고 분노에 찬 고함을 질러댔다.

    심협이 자세히 들여다보니 모두 평번한 마물들인 데다 대부분 영지가 낮아 짐승과 같았다.

    ‘이 동굴들은 입구에만 금제가 쳐져 있는 듯한데, 이곳의 검은 바위들은 어떤 재질이기에 이 요마들이 동굴의 석벽 안에서 달아나지 않을 거라 보장할 수 있는 거요?’

    심협은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어느 감방 바깥의 검은 벽을 툭툭 치며 오홍에게 전음으로 물었다.

    ‘이 돌은 오침석(烏沈石)이라 하오. 우리 동해에서만 나는 광석으로, 재질이 단단하고 모든 힘의 전달을 차단할 수 있소. 요력이든 영력이든 귀기든 침투할 수 없으니 감방을 만드는 데 최고의 재료이지요. 이 산 전체가 오침석으로 되어 있고, 동굴 깊숙한 곳에는 얼마나 두꺼운지 알 수 없는 오침석 벽이 있어 태을 경지의 선인이라 해도 그 안에서 빠져나올 수 없소.’

    오홍의 설명에 심협은 크게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또 한 번 시야가 크게 트인 그는 진심으로 조물주의 신기함에 감탄했다.

    일행은 계속해서 빠르게 살폈고, 이내 1층 감방들을 전부 훑어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은 계단을 따라 계속 아래로 내려가 이내 용연의 2층에 이르렀다.

    이곳의 감방은 1층보다 훨씬 적어서 백여 개에 불과했지만, 그 안에 갇힌 요마들은 확실히 더 강력했다.

    심협은 시선을 돌려 평대 바깥에 우뚝 솟은 진해빈철곤을 바라보았다. 곤의 몸체는 눈부신 황금빛이 아니라 까맣고 반짝이는 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게다가 검게 반짝이는 곤의 몸체에는 진해(鎭海)라는 두 글자가 큼직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 아래에도 글자가 더 있는 것 같았으나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근처 허공에 걸린 보이지 않는 금제들은 더욱 강해져서 심연 안의 흑염선풍을 더 먼 곳까지 몰아냈다.

    일행은 이곳도 차례대로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이번 층에서도 별다른 문제는 찾아내지 못했다.

    심협과 사람들은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가 금세 여섯 층을 모두 검사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고, 어느새 7층에 이르렀다.

    심협의 예상과 달리 7층에는 옥이 하나뿐이었다.

    “7층부터는 모두 진선기의 대(大) 요마들이 갇혀 있는데, 하나같이 그 능력이 강력하고 위험하여 층마다 감방을 하나씩만 둔 것이오.”

    오홍이 진중한 표정으로 묵직하게 설명했고, 심협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감방을 바라보았다.

    이 감방은 바로 앞 6층보다도 훨씬 넓었다. 입구만 해도 높이가 무려 5장에 이르렀고, 문도 특수한 은색 재료로 만들어졌으며, 그 위에는 금빛 부적이 가득 붙어 있었다.

    또한 문 주위 벽에는 수많은 금제 부적 문양들이 법진을 이루며 그려져 있어 강력한 금제 파동을 내뿜었다. 이에 문 주변 공기에는 풍적(*風笛: 바람주머니와 관으로 만들어진 관악기. 백파이프) 소리 같은 무언가가 웅웅 울리며 메아리쳤다.

    반면 감방 깊숙한 곳은 온통 어둠에 휩싸여 있어 그 안의 형체를 볼 수가 없었다.

    “오중 전하, 오홍 전하도 계시군요. 두 왕자 분들께서 함께 소녀를 보러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이지 소녀를 제대로 기쁘게 해주시는군요. 호호호!”

    끈적하고도 달짝지근한 목소리가 감방 깊숙한 곳에서 들려왔다. 이어서 한 인영이 어두침침한 곳에서 걸어 나왔는데, 놀랍게도 요족의 특징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연약한 인간족 소녀였다.

    심협은 잠시 멍하니 넋이 나갔다. 이 소녀는 다름 아닌…….

    ‘섭채주!’

    그녀가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심협을 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어머나, 두 분 전하께서 인간족 도우도 하나 데려오셨네요? 정말 드문 일인데……. 소녀 미아(媚兒) 도우를 뵙습니다.”

    섭채주는 심협에게 다소곳이 예를 갖추고는 깔깔대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뼛속까지 나른해질 정도로 교태로웠다.

    ‘환술?’

    심협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는 속으로 부주진신법을 운공했다. 그러자 섭채주의 고운 얼굴이 돌변하며 온몸 위아래로 분홍빛 안개가 가득 떠올랐다. 이어서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이 분홍빛 안개들은 부서져 흩어졌고, 섭채주의 형상도 크게 변해 커다란 몸집에 온몸에는 자홍색 비늘이 가득 돋은 붉은 머리칼의 여자 요마로 변했다.

    심협은 이 여자 요괴의 흩날리는 붉은 머리칼을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그 머리칼이 뜻밖에도 빨갛고 가느다란 뱀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뱀들은 감옥 바깥의 사람들을 향해 입을 쩍 벌리고 포효하는 듯했다.

    이 요괴의 허리춤에는 짙푸른 사슬이 하나 감긴 채 피부 깊이 파고들어 있었고, 반대편 끄트머리는 감방 깊숙한 곳으로 뻗어 있었다.

    사슬 위에는 용 모양 도안이 새겨져 있었는데, 강력한 법력 파동을 끊임없이 내뿜었다. 감옥 문의 금제에 가로막혀 있었지만, 바깥에서도 분명히 감지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금제였다.

    “어머, 여기 인간족 오라버니는 신혼의 힘이 아주 강하네. 이렇게나 빨리 소녀의 환술을 깨버리시다니요.”

    뱀 머리카락 요괴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심협을 훑어보았다. 목소리도 갈라졌지만 여전히 매혹적인 말투라 듣고 있던 심협은 오한이 날 정도였다.

    “이건 무슨 요물이오? 내가 아는 사람의 모습으로 둔갑할 수 있다니…….”

    심협은 뱀 요괴를 무시한 채 오홍에게 물었으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홍과 오중 등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혼란스런 기색이었다. 아직 감옥 안 뱀 요괴의 환술 속에 깊이 빠져 있는 것이리라.

    “그대가 당시 마제(魔帝) 치우를 추종했던 요마요?”

    심협은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사람들을 깨우려하지 않고 뱀 머리카락 요괴에게 물었다.

    “오, 오라버니는 치우 대신(大神)에게 흥미가 있나 보네요?”

    뱀 머리카락 요괴는 그 말을 듣고 약간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제 치우가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어 두렵기는 하나, 놀랄 만한 업적을 세운 큰 인물이라 할 수 있으니 당연히 관심이 갈 수밖에……. 한데 귀하는 언제 이 용연에 갇히게 되었소?”

    심협은 별다른 내색 없이 계속 물었다.

    “오라버니는 내게서 치우 대신의 일을 알아내려는 거구나? 헛수고 할 필요 없답니다. 그런 말장난은 다른 요마들에게는 통할지 몰라도 내게는 전혀 쓸모가 없거든. 호호호!”

    뱀 머리카락 요괴가 한눈에 자신의 목적을 간파하고는 깔깔대자 심협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때, 오홍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눈빛이 다시 맑아졌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오중도 환술에서 벗어났다.

    “오홍 전하께서는 역시 동해 용궁 제일의 왕자로군요. 소녀의 환술을 마주하고도 이렇게 빨리 깨어나시니 말이에요. 호호호!”

    붉은 머리칼의 뱀 요괴가 교태롭게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오중은 오홍을 슬쩍 보고는 주먹을 꽉 그러쥐었다.

    그러나 오홍은 말없이 손을 들어 오흔과 청질을 가리켰다. 그러자 두 줄기 금빛이 그의 손끝에서 쏘아져 나와 오흔과 청질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두 사람은 몸을 바르르 떨더니 차례로 뱀 요괴의 환술에서 벗어나 재빨리 오홍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 요괴의 환술은 갈수록 대단해지는군요. 천강한쇄(天罡寒鎖)에 묶여 있음에도 여전히 옥문의 금제를 뚫고 우리의 신혼에 영향을 주다니 말입니다. 둘째 형님, 이번 일을 마치고 나면 이 일을 부왕께 아뢰어 이 요괴의 속박을 강화해야겠습니다.”

    오홍이 오중에게 말했다.

    “강화해야 마땅하나, 당장은 저 요괴에게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이니 어서 가자. 가서 8층이 도대체 어찌 되었다는 건지나 보자꾸나.”

    오중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서 떠났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심협은 속으로 의아했다. 감옥 안 요물들이 요력을 바깥까지 침투시킬 수 있건만, 문제가 없단 말인가?

    그러나 오홍 등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으니, 일개 외부인인 심협은 감히 끼어들기 어려워 그저 그들의 두를 따라가는 수박에 없었다.

    붉은 뱀 머리칼의 요괴는 그들이 사라지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깔깔대며 사악하게 웃어댔다. 그녀의 모습이 바위에 가려졌는데도 여전히 그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오형, 저 뱀 머리칼 요괴는 어떤 요물이오?’

    심협은 어쩐지 조금 불안한 예감이 들어 오홍에게 전음으로 물었다.

    ‘저 요괴는 누요(泪妖)라 하는데, 동해의 요족들 중에서도 아주 사악한 일족이오. 눈을 맞추기만 하면 상대의 신혼에 침입하여 수많은 기억들을 꿰뚫어볼 수 있고, 그 마음의 약점에 따라 경계를 가장 느슨하게 하는 모습으로 둔갑하오.’

    오홍은 기분이 좀 가라앉은 듯 나지막하게 답했다. 아마도 방금 누요라는 요괴의 환술에 빠져 영아를 봤으리라.

    ‘상대의 신혼에 침입하다니, 그거 정말 무시무시한 능력이구려.’

    심협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굳어갔다.

    그는 저 요괴가 단지 환술에 정통한 줄로만 알았을 뿐, 상대방의 신혼에 침입할 수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는 평범한 환술보다 열 배는 무서웠다.

    ‘그러게 말이오. 저 요괴의 신혼의 힘은 아주 강력하오. 그녀가 소란을 피우는 걸 막기 위해 부왕께서는 동굴 입구 바깥에 신식을 차단하는 강력한 금제를 설치해놓으셨소.

    허나 누요의 경지는 이미 진선기 단계에 다다른 터라 신혼이 강력하여 여전히 바깥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지. 허나 안심하시오. 이 요마는 천강한쇄에 묶여 절대로 탈출할 수 없으니…….’

    오홍의 설명을 듣고서야 심협은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일행은 계속 전진하여 곧 용연의 8층에 이르렀다.

    이곳의 감옥은 7층보다 네다섯 배는 넓었고, 옥문 위에도 봉인 부적이 잔뜩 붙어 있었으며, 옥문 주변의 석벽에는 9개의 돌기둥이 끼워져 있었다. 그 위로는 부적 문양이 가득했다.

    아홉 돌기둥의 위치는 그 위쪽의 부적 문양과 서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 역시 법진 금제인 게 분명했다.

    한편, 감방 안에는 하반신이 검은 비늘로 한 겹 덮인 뱀 몸뚱이의 더없이 거대한 요물이 방을 가득 채운 채 크게 똬리를 틀고 있었다. 이 거요의 상반신에는 커다란 머리가 아홉 개가 자라나 있었는데, 그 위로 안색이 창백하고 험상궂은 사람 얼굴이 달려 있어 보기만 해도 섬뜩했다.

    그는 눈을 감고 단잠에 빠져 있었는데, 바로 심협과 오홍이 만났던 그 심연거요였다.

    바깥의 기척을 눈치챈 듯, 거요는 거대한 아홉 머리를 살짝 치켜들고 사람들을 슥 쳐다보더니, 이내 다시 바닥에 엎드려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심연거요는 얌전히 여기 있지 않으냐? 어디로 탈출했단 말이냐?”

    오중이 코웃음 치며 나무라듯 말했다.

    “그럴 리가!”

    심협과 오홍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용궁으로 오는 길에 그들은 분명 이 요괴와 마주치지 않았던가!

    ‘혹시 이 또한 환술이 아닐까?’

    심협은 그런 생각이 들어 몰래 부주진신법을 운공했지만, 법력과 신혼의 힘 모두 조금도 이상이 없었다. 환술에 빠진 것은 분명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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