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55화 (355/1,214)
  • 355화. 용궁

    오홍은 완전히 넋을 잃고 멍하니 서서 높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청도 천지가 서로 충돌하는 듯한 기세에 잠시 넋이 나간 모습이었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단호한 눈빛으로 온몸의 법력을 동원해 자폭을 가속화하기 시작했다.

    그의 미간 앞의 검은 단환에서 검은 번갯불이 폭발하는 순간, 진홍색 별 세 개가 떨어져 내리면서 세 개의 별이 이룬 공간이 짓눌러왔다.

    오청은 형언하기 어려운 힘에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그리고 온몸이 묶여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온몸의 법력은 순간 회전을 멈췄고, 폭발 직전이었던 요단은 미간에서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의식만큼은 멀쩡해 두 눈이 끊임없이 흔들렸지만, 자신의 움직임을 전혀 통제할 수 없어 세 개의 별과 함께 최후가 다가오는 것을 두 눈 뜨고 빤히 바라보았다.

    꽈르릉!

    세 개의 별빛이 동시에 폭발하면서 금색 빛기둥 세 줄기가 하늘로부터 떨어져 내려, 일순 삼수교의 몸을 집어삼켰다.

    “끄아아아!”

    금색 빛기둥 사이로 처참한 비명이 몇 호흡 동안이나 울려 퍼지다 서서히 사라졌다. 삼수교의 모습 또한 이 금빛 속에서 빠르게 재가 되어 흩어졌다.

    금빛이 떨어진 아래쪽 섬의 절반은 이미 완전히 붕괴되었고, 바닷물도 그 힘에 밀려나면서 백 장에 달하는 거대한 파도가 일어나 사방으로 흩어졌다.

    바닷속, 금빛이 뻗어나가는 곳에 금빛 별 세 개가 엇갈리고 둘레가 구름무늬로 감싸인 금빛 도안이 드러났다. 이 도안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심협이 가볍게 손짓하자 삼성금광(三星金光) 도안 위의 허공에서 짙은 검은 빛으로 번득이는 단환이 날아와 그의 손바닥에 내려앉았다. 오청의 요단이었다.

    심협은 다시 돌아가 오홍 곁에 내려섰다.

    오홍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심협을 바라보았다.

    “정말 내가 알던 그 심형이 맞소? 아까 그 곤붕에게 원신을 빼앗긴 것은 아니겠지요?”

    그는 이제 심협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이미 진선 초기에 도달한 것을 알아채고는 그렇게 물었다. 농담 반 진담 밤이라 할 만한 질문이었다.

    “그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요? 당연히 심협이오. 아니면 내가 왜 그대를 도왔겠소?”

    심협이 어이없다는 듯 웃자, 오홍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짧은 시간에 어찌 이리 강해졌소?”

    “아, 긴 이야기요. 그저 금탑에서 얻은 기연이라 해둡시다. 혹시 다른 이들의 흔적을 본 적이 있소?”

    심협은 모든 것을 설명할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말을 돌렸다.

    “없소. 우리 외에 곤붕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간 이들은 아마도 이미…….”

    오홍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앞서 곤붕의 몸속에 있을 때, 그는 침식과 흡수에 저항하기 위해 엄청난 힘을 들여야 했다. 그러나 경지가 자신이나 삼수마교에 미치지 못한 이들은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심협은 부정하고 싶었으나, 현실을 직시하고는 무거운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곤붕의 몸속에 빨려 들어갔던 모든 요마와 용궁의 수족(水族), 백벽과 심옥 등도 이미 곤붕에게 흡수되었으리라.

    심협은 이 곤붕이 이정의 잔혼에게 몸을 빼앗긴 뒤 벌써 죽었으나, 그 많은 요마와 수족의 법력, 나아가 생명력까지 흡수하여 가까스로 지금껏 버틸 수 있었을 거라고 어렴풋이 짐작했다. 그의 잔혼이 심협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사라지면서 빼앗았던 곤붕의 몸도 완전히 부패하여 마침내 연기처럼 사라진 것이리라.

    “심형, 앞으로 어찌 할 계획이오? 다른 중한 일이 없다면 나와 함께 용궁으로 가줄 수 있겠소?”

    오홍이 조심스레 물었다.

    “전에 용궁은 이미 함락되었다 하지 않았소?”

    “용궁의 대부분 지역이 함락된 것은 사실이오. 부왕(父王)께서도 물러나 용연(龍淵)을 지키셨는데, 내가 군사를 이끌고 출정했다가 지원하러 돌아왔을 때 해변에서 그 일이 일어난 거요. 마족 대부분은 이미 소멸되었으나 용궁의 상황이 어떤지 알 수 없으니 돌아가 보려는 것이오.”

    “좋소, 그렇다면 함께 갑시다.”

    심협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협이 시원스레 응낙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오홍 홀로 위험을 무릅쓰게 할 수 없었고, 동해 용왕을 만나 치우에 관한 정보를 알아낼 생각이었다.

    치우나 그의 나누어진 혼백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자신이 꿈에서 깨 현실로 돌아갔을 때 그 단서들을 통해 다섯 혼백의 환생을 찾아낼 수도 있으리라. 그리되면 마겁의 강림을 막을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

    또한 심협은 현실에서의 수행을 위해, 기회를 보아 응혼기에서 출규기로 돌파하는 비결을 알아볼 생각이었다. 예전에 꿈속에서 출규기를 돌파할 때는 방촌산에서 설법을 몇 마디 들었을 뿐, 표본으로 삼을 만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오홍은 심협의 말에 더없이 반가워하며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함께 가준다니, 고맙소. 지체하여 좋을 게 없으니 바로 출발합시다.”

    “너무 서두르지 마시오. 찾을 물건이 좀 있소.”

    심협이 웃으며 말하고는 섬의 반대편 끝으로 걸어가 곤붕의 흩어진 하얀 뼈 무더기를 헤집기 시작했다.

    이윽고 굵직한 꼬리뼈를 옮기자 어지럽게 쌓인 뼈들 틈새로 금빛이 홀연히 새어 나왔다. 심협은 기뻐하며 더욱 서둘러 백골들을 옮기고 손을 뻗어 한 차례 더듬었다.

    그가 팔을 뽑아냈을 때, 손에는 길이가 2척쯤 되는 곤붕의 깃털 두 개가 들려 있었다. 하나는 맑은 금빛을 발했고, 다른 하나는 은빛으로 찬란했으며, 그 위로는 강력한 영력 파동이 전해져 왔다.

    심협은 곤붕의 몸속에서 나오자마자 이미 두 깃털의 존재를 느꼈다. 하지만 그간 찾을 겨를이 없어 마교를 물리친 뒤에야 거둬들이게 된 것이다.

    그는 깃털을 쓱 살펴보며 깃털에서 전해지는 파동을 느껴보기만 하고는 손을 뒤집어 챙겼다.

    “됐소. 갑시다.”

    심협이 돌아서며 말했다.

    “용궁은 해저 깊은 곳에 있소. 그대가 피수결을 쓰면 내가 안내하리다.”

    오홍의 말에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 손으로 결인하며 조용히 무언가를 읊조렸다. 곧 파란빛이 뻗어 나와 그의 온몸을 뒤덮었다.

    오홍은 체내 법력을 움직이며 몸을 훌쩍 솟구치더니 느닷없이 우렁찬 용 울음소리를 냈다. 뒤이어 온몸에서 환한 금빛이 뿜어져 나왔고, 몸이 눈부신 빛 속에 계속해서 길어지더니 곧 길이가 백 장쯤 되는 금빛 신룡(神龍)으로 변해 꿈틀꿈틀 움직이며 심협에게로 날아왔다.

    “심형, 올라타시오.”

    금룡의 입에서 인간의 말이 흘러나오자 심협은 곧바로 몸을 날려 그 등에 내려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오홍은 곧 다시 높은 하늘로 돌진하여 백 장 높이에 이른 후에 방향을 돌려 빠른 속도로 급강하했다. 그의 몸이 마치 운석처럼 드넓은 바닷속으로 꼿꼿이 떨어지면서 수면 위로 수백 장 높이까지 하얀 물보라가 일었다.

    심협이 오홍을 따라 바다 밑바닥으로 곧장 돌진하는 동안 물결도 그들을 방해하지 못했다. 그 속도는 심지어 어공비행보다도 빨랐다.

    ‘역시 동해 용족!’

    심협은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막 바닷속으로 들어갔을 때는 사방에 빛도 스며들고 주위의 바닷물은 짙푸르고도 그윽했으며, 때때로 많은 물고기들이 무리를 이루어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주변의 빛은 점점 더 어두워졌고, 물고기 수도 점차 줄어들었다.

    심협은 조금 불안한 마음에 신식을 뻗어 사위를 살펴보았다.

    금탑에서는 끊임없는 수련과 천병, 천장들의 잔혼을 흡수하면서 신혼의 힘에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고, 신식으로는 무려 반경 천 장을 뒤덮을 수 있었다.

    꽤 많은 강력한 기운들이 느껴졌다. 어떤 이는 근처에서 헤엄쳐가는 중이었고, 어떤 이는 심연에 틀어박혀 있었으며, 꿈틀거리면서 그들에게 다가오려 하는 놈들도 있었다.

    수천 길 물 속으로 자맥질을 하다가, 심협은 문득 칠흑 같았던 저 아래 심해에서 흐릿한 빛이 번득이는 것을 보았다. 여러 빛깔로 알록달록하게 번득여 마치 무수한 채색 등롱을 밝혀놓은 것만 같았다.

    가까워진 후에야 심협은 빛의 정체를 알아보고는 깜짝 놀라 입이 떡 벌어졌다.

    오홍이 몸을 낮추며 바다 밑바닥으로 자맥질하자, 놀랍게도 사방에 높이가 백 장에 달하는 거대한 산호들이 우뚝 서서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 알록달록한 빛은 바로 이 산호 숲에서 나는 것이었다.

    오홍의 몸을 타고 산호 숲을 가로지르며 주위의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있자니 어째서인지 꿈결 같은 허무감이 들었다.

    두 사람이 해저 삼림을 지나자 푸르른 해저 초원이 나타났다. 그 속에는 형광 수초들이 무성해, 바다 밑바닥에 요동치는 암류(暗流)를 따라 앞뒤로 흔들렸는데, 그 모습은 마치 초원에 바람이 불 때와 흡사했다.

    심협이 이제껏 본 적 없는 해저의 물고기들과 기괴한 모습의 갖가지 해저 생물들이 초원에서 느릿느릿 튀어나왔는데, 오홍을 보고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심지어 반기는 느낌마저 들었고, 어떤 것들은 뒤에서 길게 줄을 지어 따랐다.

    심협은 이토록 생기 넘치는 해저 세계를 처음 봤기에 실로 경이로웠다. 그는 손을 뻗어 머리에 등불 같은 것이 달린 둥글둥글한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아봤다. 자세히 살펴보니 물고기에 두꺼운 뼈 갑옷이 자라나 있었다.

    그는 잠시 어리둥절해 있다가 비로소 해저의 수압이 만 장에 달하는 산봉우리가 내리누르는 것 못지않게 강해서, 특수한 뼈대가 없는 평범한 물고기들은 아예 견뎌내기 힘들 것임을 깨달았다.

    “뭔가 왔소.”

    심협이 문득 미간을 찌푸리며 마음속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

    “괜찮소. 자극수(刺棘獸)일 뿐이오.”

    오홍이 답을 하기가 무섭게 앞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어서 방대하기 이를 데 없는 몸뚱이가 나타나 바다 밑바닥을 밀고 나아가면서 거센 암류가 용솟음쳐 해저 초원을 끊임없이 뒤흔들었다.

    심협이 멀리 바라보니, 온몸에 단단한 껍데기가 돋아 있고 그 위로 커다랗고 날카로운 가시가 튀어나온 검푸른 물고기가 천천히 헤엄쳐 오는 게 보였다.

    이 괴어(怪魚)에게는 거대하고 노란 눈이 한 쌍 달려 있었고, 커다란 입 바깥으로 삐죽삐죽 튀어나온 촘촘하고 날카로운 이빨들이 더없이 험상궂어 보였다.

    이 괴어와의 거리가 백 장도 안 되게 좁혀졌을 무렵, 그 흉악해보이던 자극수가 깜짝 놀라는 듯하더니 거대한 몸뚱이를 뒤틀어 위쪽으로 빠르게 달아났다.

    “저놈은 겉모습만 험악해 보일 뿐, 본디 겁이 아주 많고 시력도 나빠서 늘 자기 스스로에게 놀란다오. 허나 튼튼한 비늘 덕분에 웬만한 요수들도 녀석을 해치기는 어렵소.”

    오홍의 설명을 들으며 심협은 시선을 올려 자극수를 더 보려 했는데, 그때 갑자기 표정이 변했다.

    머리 위쪽에서 난데없이 처참한 울부짖음이 한 차례 들리더니, 깊은 바닷속에 강력한 파동이 전해지며 바닷물이 격렬하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위에서부터 갑자기 많은 피가 솟구치며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검푸른 껍데기가 해저를 향해 뚝뚝 떨어져 내려왔다.

    “왔다!”

    심협은 눈빛이 바짝 졸아든 채 크게 소리를 질렀다.

    위 바닷물에서 솟구치던 피가 갑자기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면서 거대하고 사나운 사람 얼굴이 그 사이로 불쑥 튀어나와 심연처럼 검고 거대한 입을 쩍 벌려 심협과 오홍을 집어삼키려 했다.

    그 거대한 얼굴은 길이가 족히 백 장은 되었고, 위에는 두꺼운 연지분이 한 겹 발라져 있는 것처럼 몹시 창백했다. 쩍 벌린 커다란 입이 얼굴을 가로지른 채 더없이 과장된 각도로 벌어져 있었는데, 그 안에는 어렴풋이 검은 소용돌이가 끊임없이 회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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