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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354화 (354/1,214)
  • 354화. 친구의 적은 나의 적

    오청의 공격은 몇 장을 날아간 뒤, 시커먼 빛이 치솟고 마기에 휘감기며 순식간에 반달처럼 휘어진 거대한 호로 변했다. 그 상태로 금빛 진강과 충돌하면서 하늘을 뒤흔드는 굉음을 울렸다.

    눈부신 금빛이 검은 마기와 동시에 폭발하며 금빛 테를 두른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오홍이 한 걸음에 뛰어넘어 장창을 앞으로 쭉 뻗자 창의 몸체가 파르르 떨리더니 금빛 소용돌이가 생겨나 검은 구름을 휘저으며 커다란 구멍을 뚫었다.

    뒤이어 그의 몸도 바짝 따라붙어 앞으로 뛰어올라 그 구멍을 통과한 뒤, 곧장 뒤에 있는 오청을 향해 달려들려고 했다.

    한데 바로 그때, 갑자기 허리께가 확 조여들더니 수정처럼 파란 물줄기가 뒤에서 그를 휘감았다. 그리고는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홱 끌어당겼다.

    “심형, 대체 왜……?”

    오홍이 당황한 와중에 앞에서 쩅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그가 구멍을 뚫어둔 검은 구름이 완전히 흩어지고 진상이 드러났다.

    그것은 엄청나게 커다란 은빛 고리였다. 바깥쪽은 둥글고 무디지만, 안쪽은 뾰족하고 날카로웠다. 방금 오홍이 그대로 뛰어들었다가는 지금쯤 몸과 머리가 분리되었을 터였다.

    “심형, 정말 고맙소.”

    오홍이 장창을 든 손을 그러쥐며 심협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통찰력이 보통이 아니구나. 앞서 나의 쇄명비인(鎖命飛刃)을 피한 것도 우연이 아닌 모양이지?”

    오청이 오홍 너머 심협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심협은 그의 질문에 답할 마음이 없었기에 그저 싸늘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오홍은 그제야 심협이 그저 경지만 오른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지금부터는 내게 맡기시오.”

    심협은 씩 웃으며 오홍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말을 마친 그의 발밑으로 달빛이 번득였고, 몸은 이미 오홍 앞에 난데없이 나타났다가 다시 한번 번쩍였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오청 바로 앞에 나타났다. 두 사람의 거리는 불과 10장밖에 되지 않았다.

    발밑에 다시 한번 달빛이 흩어진 순간, 심협의 몸은 이미 오청의 곁으로 바짝 붙어 있었다. 그는 그대로 오청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헛!”

    오청도 심협이 이 정도로 빠를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기에 기겁하며 황급히 한쪽 팔을 들어 올려 막았다.

    퍽!

    한 줄기 장풍이 날아들며 둔탁한 소리가 울렸고, 오청은 거대한 힘이 팔뚝에 주입되는 것을 느끼며 비틀비틀 몇 걸음이나 물러나고서야 겨우 몸을 가누었다.

    한편, 오홍은 이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신식으로 심협을 살펴보니, 그 기운이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여 이미 대승 후기 상태에 이르러 있었다. 심지어 그가 놀라워하고 있는 중에도 심협은 다시 오청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오청 또한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는 심협의 기운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오홍보다 먼저 깨달았기에 조용히 부상을 진정시킨 뒤에야 공격을 가한 터였다.

    하지만 지금 보니 더욱 신중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와 나는 애초부터 원한이 없었으니 여기서 싸움을 멈추고 각자 갈 길을 가는 게 어떠한가?”

    오청이 손짓하여 은빛 고리를 불러들이며 심협에게 제안했다.

    오홍은 그 말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설령 심협이 대승기 정점의 경지라 해도 저 삼수마교(三首魔蛟)를 물리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렇다면 오청이 어떤 수작을 부리려는 것은 아닐까?

    그가 신식으로 주의를 주려는데, 심협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너와 나 사이에는 분명 원한이 없다. 허나 너는 오홍과 원한이 꽤 깊은 것 같더구나. 그는 나의 벗이니 이 원한은 내가 대신 갚아줄 것이다.”

    그 말에 오청은 얼굴빛이 어두워지며 냉랭하게 말했다.

    “뭐라? 곱게 보내주려 했더니 기고만장하구나! 설마 정말로 내가 너를 두려워한다고 여기는 것이더냐!”

    그러나 심협은 대답 없이 씩 웃으며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한편, 오홍은 반쯤 넋을 놓고 있었다. 그는 심협이 왜 싸움을 피하기는커녕 자진해서 싸움을 거는 것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설마 심형이 저자를 죽여 없앨 만한 실력을 지닌 것인가?’

    오홍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는 그가 보기에도 황당한 생각이었다. 곤붕의 뱃속에 있던 시간 동안 자신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수행하면서 곤붕에게 침식당해 흡수되지 않도록 힘겹게 저항했다. 그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절대 오랜 세월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한데 그사이 심협의 경지에는 천지개벽할 만한 변화가 일어났으니, 그런 기연이 얼마나 하늘을 거스르는 것이겠는가?

    오홍의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에 커다란 굉음이 터져 나왔다.

    오청이 양손을 휘두르자 공중에 떠 있던 거대한 은빛 고리가 빠르게 회전하면서 심협의 머리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고리에서는 바람이 울부짖는 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은빛이 줄줄이 쏘아져 나와 새장처럼 하늘에서 드리웠다.

    허나 심협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손목을 슥 돌렸다. 그러자 손바닥에 검은 철편이 한 자루 더 나타났다. 심협은 이 철편을 위쪽 하늘로 휙 집어 던졌다.

    육진편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곧 이글대는 검은 햇빛으로 변해 곤붕의 갈비뼈 한 토막을 부러뜨리고 하늘로 날아올라 은빛 고리와 맞부딪쳤다. 그 순간, 맹렬한 빛이 치솟으며 은빛 고리를 집어삼켰다. 이어서 그 안에서는 격렬한 충돌음이 한 차례 들려왔다.

    콰르릉!

    오청은 공중의 새카만 빛 덩어리를 빤히 바라보면서 양손으로 온힘을 다해 법결의 효력을 불러일으키느라 관자놀이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더욱 놀라운 것은, 불과 몇 호흡 만에 그가 갑자기 앞가슴을 격렬하게 들썩이더니, 풉 하고 피를 토해냈다는 것이다.

    멀리 하늘에 있던 검은 빛이 폭발했다. 이어서 육진편은 다시 돌아와 심협의 손에 떨어졌다. 은빛 고리도 다시 본체를 드러냈지만, 이미 심하게 뒤틀려 다시는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상태였다.

    오홍이 더욱 놀라 다시 심협을 살펴보니, 놀랍게도 그의 기운은 전투 중에도 끊임없이 치솟아 어느덧 대승 후에 이르러 있었다.

    한편, 오청은 입가의 핏자국을 쓱 닦아내고는 눈에 불이라도 뿜을 듯한 노기를 띤 채 손목을 빙글 돌렸다. 그러자 손바닥에 진홍색 자그마한 단환(丹丸)이 한 알 나타났다. 그 위에는 아주 가느다란 검은 교룡의 허상이 맴돌고 있었다.

    “네가 죽고 싶은 모양이니 내 손수 황천길로 보내주마.”

    말을 마친 그는 단숨에 단환을 입속으로 털어 넣었다. 뒤이어 얼굴에 고통스런 표정이 스쳤고,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힘겹게 기침을 몇 번하자 손가락 틈새로 약간의 핏자국과 많은 양의 검은 안개가 쏟아져 나와 온 얼굴을 덮었다. 심지어 몸 표면에서도 몽롱한 검은 빛이 번득였고, 온몸의 기운은 빠르게 불어나기 시작했다.

    “심형, 큰일이소! 저놈이 연혼단(燃魂丹)을 먹었으니, 짧은 시간 안에 적어도 진선 중기 단계까지 회복할 수 있을 거요. 그리되면 도저히 저자의 적수가 될 수 없으니 어서 갑시다!”

    오홍이 황급히 주의를 주었다.

    심협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잠깐 헤아려본 뒤 손에 든 육진편을 거두었다.

    “크크큭. 도망치겠다고? 허나 이미 늦었다!”

    오청은 심협이 싸움을 멈추고 달아나려는 것으로 알고 기괴하게 웃으며 외쳤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의 온몸에서 마기가 뭉게뭉게 솟아오르기 시작했고, 몸도 급속도로 불어나면서 피부 위에 검은 비늘 갑옷이 조각조각 나타났다. 그는 순식간에 엄청나게 거대한 삼수마교로 변했다.

    마교의 세 머리는 오르락내리락 흔들렸고, 등불같이 커다랗고 노란 여섯 개의 눈에서는 소용돌이 같은 암황색 빛이 피어올랐다. 또한 입으로는 분노에 찬 포효를 발하며 입을 쩍 벌려 심협을 물어뜯으려 했다.

    심협은 그때까지도 꼼짝 않고 서서 거대한 세 개의 머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들은 하나는 왼쪽, 하나는 오른쪽, 하나는 정중앙, 각기 다른 방향에서 돌진해와 허공을 끊임없이 뒤흔들었고, 사방 천지영기가 거세게 굽이치며 성이라도 무너뜨릴 듯한 기세를 이루었다.

    오홍은 안색이 급변해 금룡의 진신(眞身)을 드러낼 준비를 했다. 그러나 이내 시선이 심협에게로 향하자 우뚝 움직임을 멈추었다.

    심협의 뒤에는 어느새 희뿌연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올랐고, 그 사이로 금빛이 감돌면서 커다란 금빛 허상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거대한 금빛 코끼리 여섯 마리가 심협의 뒤로 나란히 늘어섰고, 하늘에는 여섯 마리 금빛 장룡이 빙빙 돌았다. 하나하나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든 것이 전의가 아주 대단했다.

    아득한 와중에도 오홍은 자기 앞에 서 있는 이가 더는 일개 인간족 수사가 아니라 오랜 옛날의 사나운 짐승이라도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심협이 뿜어내는 기세는 삼수마교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마교가 가까이 돌진해 오자 심협은 돌연 두 눈에서 금빛을 내뿜었다. 그리고 크게 한 걸음 앞으로 내딛으며 오른 주먹을 힘차게 휘둘렀다.

    코끼리들이 일제히 울부짖었고, 뒤에서 금룡이 꿈틀꿈틀 뛰쳐나왔다. 금빛의 거대한 코끼리가 힘차게 돌진해 천지영기를 휘감은 채 찬란한 위세를 떨치며 삼수마교를 들이받았다.

    콰르릉!

    삽시간에 섬 전체가 검은색과 금색 빛의 벽으로 나뉜 것처럼 충돌하며 온 세상이 심하게 요동쳤다.

    펑! 퍼펑!

    폭발음이 끊이지 않았고, 그 파장으로 곤붕의 남은 뼈대가 산산이 무너져 내려 주위의 바다로 흩어졌다. 심지어 섬 한가운데부터 거대한 골짜기가 생겨나면서 양쪽으로 빠르게 무너지며 갈라져버렸다.

    심협은 눈을 번득이며 공중으로 솟구쳐 올라 또 한 차례 주먹을 휘둘렀다. 용과 코끼리의 포효가 다시 울려 퍼졌고, 휘황찬란한 하늘의 위엄이 하늘로부터 떨어져내려 이미 기세가 한 풀 꺾인 삼수마교를 그대로 바닥에 쓰러뜨렸다.

    “흥! 목숨을 걸 거라면 밑천이 있어야지!”

    심협은 공중에 우뚝 선 채 양손을 빠르게 결인하기 시작했다.

    삼수마교는 거대한 머리를 높이 치켜들며 노여움에 차서 외쳐댔다.

    “한낱 인간족 따위가 감히 나를 모욕하다니! 원한다면 죽여주마!”

    말을 마치자 그의 가운데 머리의 미간에서 돌연 짙고 검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어서 삼수마교의 몸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차츰 인간의 모습을 되찾았다.

    한편, 그의 머리에서 빛나던 짙은 검은 빛은 점점 줄어들면서 빠르게 회전하는 검은 소용돌이가 되었다. 소용돌이 주위에는 눈에 보일 정도의 천지영기가 끊임없이 모여들었다.

    오홍은 그 검은 소용돌이가 삼수마교의 요단(妖丹)임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요단은 마치 불만을 메우려는 검은 소용돌이처럼 쉬지 않고 미친 듯이 주위의 천지영기를 흡수하며 내리눌렀다.

    불과 몇 호흡 뒤, 검은 소용돌이에서 검은 단환 하나가 나타났고, 그 위에는 검은 번갯불이 감긴 듯 지직하는 소리가 울리는 것이 곧 폭발할 것만 같았다.

    바로 그때, 심협이 강보(罡步)를 밟으며 양손을 결인해 멀리 하늘을 가리켰다. 두 눈에는 빛이 반짝였고, 온몸은 더할 수 없이 짙은 별빛에 휩싸였다.

    “삼성…… 멸마!”

    심협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오자, 단전과 전신의 법맥 서른세 줄기가 동시에 빛을 발했고, 법력이 강물처럼 세차게 솟구쳐 두 팔에 주입되었다. 그리고는 두 손바닥에 눈처럼 하얀 빛을 번쩍이며 허공을 확 잡아당겼다.

    멀리 아득한 은하 속에서 이름 모를 기운 한 줄기가 그와 호응하더니, 이어서 천 장 높이의 하늘 깊숙한 곳에서 금빛 찬란한 별의 허상 세 줄기가 나타났다. 이어서 별똥별처럼 하늘에 빛 자국을 드리우며 바다로 떨어져 내렸다.

    불과 몇 호흡 사이에 바다 위 하늘의 구름층은 온통 작열하는 금빛에 물들어 더없이 눈부시게 변했다.

    뒤이어 구름층에 커다란 구멍 세 개가 생겨나면서 무려 천 장에 가까운, 거대한 금빛 별 세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별들은 떨어져 내리는 동안 마치 불이 붙기라도 한 것처럼 표면이 온통 시뻘겋게 변했다.

    아래로 내려올수록 이 붉은 빛은 더욱 뜨거워져서, 사방의 천지영기까지도 이 작열하는 힘에 증발해버린 듯했고, 허공이 온통 굳어버린 것 같았다.

    세 개의 별은 크기가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지만, 대신 붉은 빛은 점점 더 환해졌고, 내뿜는 기세는 더욱 강력해져서 서로 멀찍이 떨어진 채 호응하며 거대한 세모꼴을 이루었다.

    그 세모 공간에는 더없이 강력한 금제의 힘이 응결해 마치 무형의 결계처럼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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