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2화. 다섯 갈래의 잔혼
심협은 속으로 탄식했다. 자신이 살던 시대에는 대승불법이 이미 대당 경내에 전파되어 여러 불가의 사원들이 세워지고, 불법(佛法)을 전하는 승려들도 세간에 두루 다니며 포교했지만, 요마들의 말썽은 여전히 갈수록 심해졌다.
“허나 불법의 교화만으로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알 수 없고, 세상 사람들이 불법을 익혀 예불을 드리는 것만으로도 너무 어렵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는 그저 영산계획의 일부일 뿐인 게다. 다른 일부는 삼장의 고기를 먹으면 장생의 행운을 거머쥐어 최고의 법력을 얻을 수 있다고 소문을 내는 것이었지. 이를 미끼로 못된 마음을 품은 채 잠복해 있는 요마들을 유인하여 일망타진하고, 겁운이 일어날 위험을 없애려 함이었다.”
이정의 말에 심협은 찬탄했다.
“좋은 방법입니다. 얼마나 많은 은둔 요괴들이 유혹에 이끌려 하나하나 처형당했는지는 말할 것도 없고, 손오공이라는 요왕(妖王)을 불가로 돌려보낸 것만으로도 훌륭한 선제공격이라 할 수 있겠지요.”
“허나 그리 간단치가 않다. 투전승불(*鬪戰勝佛: 손오공이 서천에 도달한 공으로 부처에게서 받은 이름)은 본디 당시 여와(女媧)가 하늘을 메우고 남겨둔 오채 신석(神石)이 변한 것으로, 진정한 의미의 요족이라고 할 수는 없느니라.”
이정은 고개를 저었고, 심협은 어렴풋이 짐작되는 바가 있어 되물었다.
“설마, 손오공이 원래부터 천계의 계획이었던 것입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어찌 보제조사의 총애를 얻어 직접 현공변화(玄功變化)를 전수받았겠느냐? 불경을 구하러 갔던 이가 삼장 한 사람뿐이었겠는가? 그렇지 않다. 손오공, 저오능(*猪悟能: 저팔계의 법명), 사오정과 백용마(白龍馬) 모두 불경을 구하러 갔던 이들로, 그들의 탄생은 천정과 영산에서 정한 계획이었다.”
심협의 뇌리에 전설 속 불경을 구하러 가는 길의 온갖 시련들이 번쩍 떠올랐고, 동시에 의문도 들었다.
“허나 당시 그들 사제가 불경을 구하러 가는 길에 마주쳤던 많은 요마들은 모두 신선과 불자들이 타고 다니던 짐승이 속세에 내려온 것이라 알고 있습니다. 이는 어찌하여 그런 것입니까?”
“천정과 영산에서 그 일로 요마들을 이끌어내 막아내는 동시에 분열시켰으니, 요마들이라고 천정과 영산을 겨냥한 수단이 어찌 없었겠느냐? 그들 또한 천상의 신선들과 서천의 불자들을 적극 현혹하였다. 도심이 굳세지 않은 많은 이들과 천도(天道)의 법규에 불만을 품은 자들이 그때 본색을 드러냈지.”
심협은 문득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으나 또다시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물었다.
“그리 된 것이었군요. 실로 현묘한 계책인데 어찌 실패한 것입니까?”
“그건…… 누구도 딱 잘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숙명이었다고 할 수밖에……. 현장과 제자들이 불경을 가지고 돌아온 지 예닐곱 해가 지났을 때, 진원자(鎭元子)와 보제조사 등을 포함한 대가들도 대승불법의 진경이 세상 사람들을 구제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천지간에 혼탁한 기운이 기승을 부리는 상황도 여전했지. 이에 영산계획이 실패했노라 선언했다. 그 와중에 또 다른 일이 생기는 바람에 상황은 더욱 나빠졌고…….”
이정은 길게 탄식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이정의 탄식에서 침통한 기색을 읽은 심협은 바짝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바탕 변고가 일어나 귀중한 보물인 산하사직도(山河社稷圖)가 부서졌고, 이로 인해 삼장은 죽은 뒤 윤회하여 환생했다. 그의 제자들도 차례로 산하사직도의 파편을 들고 환생하여 떠났지. 취경(*取經: 인도에 가서 불경을 구해 오는 것) 운명을 타고난 이 다섯 사람이 사라지자 더더욱 마겁에 맞서기가 어려워졌고, 결국 지금 상황으로까지 이어진 게야.”
심협은 이정의 설명을 듣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불쑥 물었다.
“마겁이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발발하는지 기억하십니까?”
“마겁이 발발했을 때의 사소한 것들과 천정이 몰락하는 과정 그리고 신선들과 불자들이 전사했던 상황도 기억나지 않는다. 심지어 나 자신이 누구에게 죽임을 당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구나.”
이정이 비통한 목소리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선배님께서는…… 정작 중요한 일을 하나도 기억을 못 하시는 거군요.”
심협은 실망감에 다소 퉁명스레 말했으나, 이정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지 않다. 가장 중요한 일은 줄곧 기억하고 있었다.”
“그게 어떤 일입니까?”
“그해 영산계획이 실패한 것은 마겁이 발발하기 전에 봉인된 치우가 이미 봉인 속에서 잔혼을 암암리에 다섯 갈래로 나눴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동시에 각각 환생하여 훗날 마겁이 발발하는 도화선이 되었지.”
이정의 목소리는 다소 긴장된 듯했다.
“그 다섯 갈래 잔혼은 언제 환생했습니까?”
지극히 중요한 문제였다. 만약 이 다섯 잔혼이 그가 살고 있는 현생 이전에 환생했다면? 그렇다면 돌아가서 대당관부에 알림으로써 천정에 연락하여 힘을 합쳐 봉인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잔혼의 환생을 막기만 한다면 마겁이 닥치는 것도 막을 수 있을 터였다.
“천정에서는 지금까지도 그의 잔혼이 어떻게 나뉘어 나왔는지, 또 봉인된 곳을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니 정확한 탈출 시기도 확신할 수는 없지. 다만 사후 분석한 바에 따르면, 취경의 운명을 타고난 다섯 사람이 환생한 때와 일치할 가능성이 높다.”
이정의 답에 심협은 맥이 탁 풀렸다.
그가 살아가는 시간은 삼장을 비롯한 사람들이 환생한 때로부터 이미 백여 년이나 지난 시기였다. 즉, 다섯 개로 나뉜 치우의 혼백도 이미 환생했다는 말과 같다.
“선배님, 그 다섯 갈래 잔혼이 누구로 환생했는지는 혹시 아십니까?”
그들의 신분을 알 수만 있다면 미리 멸살해 마겁의 강림을 막을 수 있으리라.
그 질문에 이정은 미간을 잔뜩 구기며 뭔가를 기억해내려 애썼다.
한참 지난 뒤에야 그는 입을 열었다.
“기억할 수 있는 단서는 단 두 가지…… 그들 중 두 사람에 관한 것이다. 하나는 장안성에, 다른 하나는…… 서역에서 환생한 듯하다.”
심협은 드디어 유용한 정보가 나오자 기뻐하며 즉시 물었다.
“그들의 이름은 무엇이고, 뭘 하는 자들입니까?”
“난 그저 장안성의 그 사람은…… 손목에 매화 문양 표식을 지닌 여인이고, 서역에 환생한 이는 승려 같았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날 뿐이다.”
“겨우 그것뿐입니까? 그들의 이름은 모르십니까?”
심협은 저도 모르게 다그치는 목소리가 되어버렸다.
“내 말했지 않느냐. 내 기억은 온전치 않아 사소한 부분을 모두 기억하지는 못할 거라고……. 게다가 환생한 다섯 잔혼은 각성하기 전까지는 치우의 기억이 없다. 스스로도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게지.
각성할 때가 되어서야 진정한 자신을 보고 사명을 완성할 것이다. 그들이 일을 일으키기 전에는 누구도 그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까닭에 그들에 대한 정보도 많지가 않아.”
심협은 속으로 탄식했다. 장안성은 가히 방대하고, 가히 천만 명도 넘는 아득한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손목에 매화 표식을 지닌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더욱이 서역은 족히 수천 리는 떨어져 있고, 인구가 장안성에는 못 미쳐도 면적은 무한할 정도였다. 그 광활한 지역에서 승려 하나 찾기란 더욱 어려웠다.
“치우에 관한 소식이라면 동해용궁의 용왕 오광(敖廣)을 찾아가 보거라. 그가 아직 살아 있다면 뭔가 알려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심협이 고민에 빠진 듯하자 이정은 뭔가가 떠오른 듯 일러주었다. 그러나 심협은 그 말에 오히려 더욱 답답해졌다. 일전에 오홍은 용궁이 요마들에게 함락되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는데, 용왕을 만날 수나 있을까 의문이었다.
그때였다. 이정이 갑자기 급변한 표정으로 뭔가를 중얼중얼 읊조렸다. 이어서 한 손으로 결인하고 손가락을 모아 공중을 가리켰다. 그의 손에서 금빛 광채가 한 줄기 쏘아져 나와 허공에 걸린 금빛 천책에 닿았다.
금빛 천책은 바르르 떨리더니 표면에서 눈부신 금빛을 발하며 수십 장짜리 거대한 금빛 그림자가 되었다. 그 위로는 고대 전서(篆書) 문자로 쓰인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떠올랐다.
그 이름들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렸고, 그 안에서는 강렬한 법력 파동이 전해져왔다.
심협이 신기해하며 보고 있는 와중에 금빛 천책에서 금색 빛다발이 불쑥 솟아나와 등불처럼 그를 뒤덮었다.
“헛!”
심협은 순간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졌고, 뭔가 둔중한 물체로 얻어맞은 것처럼 뒤통수에 묵직한 느낌이 전해져왔다.
다음 순간, 그의 머릿속에 더없이 날카롭고 거센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아악!”
심협은 신혼(神魂)에서부터 엄습해오는 극심한 통증에 마치 온몸이 찢겨 나가는 것만 같아 참지 못하고 머리를 감싸 안으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는 지금껏 온갖 고통을 겪어봤기에 스스로 고통을 제법 잘 참는다고 여겨왔지만, 이번에는 그 인내심을 한참 넘어섰다.
다행히 이러한 통증은 몇 호흡쯤 지속된 후 이내 사라졌다.
심협이 천천히 양손을 늘어뜨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미간에서 한 점 영광(靈光)이 천천히 날아가 자신과 똑 닮은 사람 형태의 허상이 되어 하늘 높이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 인영(人影)의 허상이 떠나는 순간, 심협은 신혼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 느낌은 너무도 미묘해서 여전히 서로 간에 희미한 연결고리가 남아 있는 듯도 했다.
“선배님, 무얼 하신 겁니까?”
심협이 다소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으나, 이정은 듣지 못한 것인지 표정의 변화조차 없이 계속해서 결인해 금빛 천책을 맞혔다.
심협에게서 나온 허상의 인영은 가물가물 날아올라 하늘 높이 떠 있는 금빛 천책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금빛이 번득이면서 금빛 허상에 심협(沈俠)이라는 커다란 두 글자가 옛 전서체로 맺혔다. 이어서 금빛 천책 위의 빛은 차츰 사그라들기 시작했고, 잠시 후에는 본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이정이 가볍게 손짓하자, 금빛 천책은 고분고분하게 그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네게 선록(*仙籙: 신선들의 명부책)을 넘겨줄 수는 없다만, 이제 너의 신혼이 천책에 녹아들었으니 한동안 이 천책의 제자가 된 셈이다. 허나 천책을 완전히 통제하려면 천책의 나머지 부분들을 찾아야만 해.”
이정의 말에 심협은 기쁘기는커녕 슬며시 걱정이 되었다.
“선배님, 이 천책을 통제하여 어디에 씁니까?”
심협은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더니 불쑥 물었다.
“천책에는 거의 모든 천선(天仙)의 신혼이 간직되어 있다. 그들이 아직 살아 있다면, 신혼으로 그들의 본체를 소환해 함께 싸울 수 있다. 일단 한번 시도해보거라.”
이정은 격려하듯 말했으나 심협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건 저승의 계약소환부(契約召喚符)와 똑같지 아니한가?
그가 허공에 손짓하자, 과연 금빛 천책이 이정의 손에서 날아와 그의 앞을 떠다녔다.
심협은 의식을 움직이며 손을 들어 천책 표면을 한 차례 쓸었다. 그러자 천책 위의 광채가 환하게 밝아지더니 짙은 금빛이 솟아났고, 옛 전서체로 적힌 이름들이 그 사이로 하나하나 떠올랐다.
심협은 두 눈을 감은 채 신념(神念) 한 가닥을 그 안에 투영하여, 신혼의 힘으로 천책 속 천선들의 혼백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적지 않은 신혼이 반응했고, 아직 일부 천선은 죽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심협의 의식은 그중 어느 혼백 위에 내려앉아 신혼의 힘으로 소환해보기로 했다. 그가 신혼의 힘을 움직이자, 나누어진 혼백은 불빛을 한 번 깜빡였으나 이내 그 이상의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