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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349화 (349/1,214)

349화. 길고 긴 꿈

“아악!”

마수수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그녀의 피부에는 마디마디 균열이 생기고 겹겹이 비늘무늬가 드러났다.

퍽!

주먹만 한 하얀 용주(龍珠)가 경하용왕의 미간에서 분리되어 나와 부서졌다.

조각난 용주 사이로 수많은 반딧불 같은 순수한 용원이 흩어지면서, 허공에 눈처럼 새하얀 은하를 이루며 마수수의 미간으로 향했다.

“아버지!”

마수수는 아버지의 몸이 조금씩 흐릿해지면서 잿더미처럼 흩날리더니 자신의 손목을 잡았던 손바닥마저 사라지자, 끝내 참지 못하고 목 놓아 울부짖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미간에는 강렬히 불타오르는 느낌이 전해져왔다. 끊이지 않는 용의 원기가 강과 바다처럼 체내로 쏟아져 들어와 그녀의 몸에서도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마수수는 고통에 울부짖었고, 이내 바닥에 쓰러져 쉬지 않고 경련했다.

심협은 즉시 다가가 그녀를 부축해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손을 뻗기가 무섭게 피가 끓어오르는 듯, 온몸에 건조하고 뜨거운 느낌이 전해져 왔다. 동시에 하얀 용원 한 가닥이 은하수 속에서 떨어져 나와 그의 손끝을 향해 흘러왔다.

심협의 손끝이 용원에 닿는 순간, 그 빛줄기가 돌연 그의 피부를 뚫고 그의 체내로 밀려들었다.

“크으윽!”

심협 역시 쓰러지더니 크게 경련했다.

어렴풋이 그는 체내의 피가 방금 흘러들어온 용원과 결합하는 것을 느꼈다. 둘은 심협의 체내에서 쉬지 않고 서로를 요동치게 했다.

심협의 법력도 이 힘에 이끌려 스스로 운행되기 시작했는데, 홀로 수련할 때보다 그 속도가 훨씬 빨라 꿈속 세상에서 수련할 때와 비슷했다.

다만 이 힘이 충돌하는 속도는 너무나 빨라 그는 견디지 못하고 거의 의식을 잃을 지경이었다.

생각과 함께 시선도 흐릿해졌지만, 거의 투명에 가까운 하얀 광채 속에서 마수수의 몸이 점점 더 밝아지고 호리호리한 몸매도 갈수록 길어지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캬오오!”

우렁찬 용 울음소리와 함께 마수수는 사람의 형체를 벗고 검은 비늘 위로 하얀 빛을 뿜어내는 진짜 용이 되어 하늘로 솟구쳤다.

종규는 이 모든 것을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한편, 그의 발치에 있던 심협은 이미 남은 용원을 전부 흡수하여 전신 피부가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한쪽에 고통스럽게 몸을 웅크린 것이 마치 익어버리기 직전의 새우 같았다.

“대인, 이 녀석 이거 무슨 일 생기는 것은 아니겠지요?”

구혼마면이 걱정스레 지켜보다가 물었다.

“안심하게. 그는 엄청난 기연을 얻은 것이야. 다만…… 용원이 왜 그에게 들어갔는지가 의아할 뿐…….”

종규는 의아한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의 혈통에 뭔가 특별한 구석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구혼마면이 아래턱을 문지르며 물었다.

“그의 몸에 용의 피가 흘렀다면 내가 알아차렸을 걸세. 한데 단지 그뿐이었다면, 용원이 그의 체내로 들어갈 수는 있어도 지금처럼 이리 평온하지는 않았겠지.”

종규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답하자 구혼마면이 어이 없다는 듯 되물었다.

“대인께서는 이런 걸 평온하다고 하십니까?”

실제로 심협은 데굴데굴 구르면서 죽음 앞에 몸부림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보통은 용원이 사람 몸속에 들어가면 심각한 거부반응으로 몸이 폭발한다네. 한데 그는 이 지경까지 버티고 있으니 평온하다 해도 할 말이 없는 셈이지.”

말을 마친 종규는 정말로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경하용왕이 이 용원을 그에게 줄 마음이 있었던 것인가?

구혼마면은 종규의 설명을 듣고는 더 놀란 눈으로 심협을 살폈다.

“지부에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니 내 먼저 가보겠네. 자네가 그를 돌보게.”

종규는 그 말만을 남기고 멀어져 갔다.

구혼마면은 한숨을 내쉬고는 옆에 묵묵히 쪼그려 앉아 심협이 이리저리 뒹구는 것을 빤히 지켜보았다. 그가 보는 와중에 심협의 기운은 응혼 초기에서부터 차츰 올라가 두 관문을 연달아 돌파하고 응혼 후기에 접어들었다.

“허허, 이놈아. 이러다가는 몇 번 더 구르면 내가 너를 선배님이라고 부르게 생겼구나. 허허허!”

구혼마면은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그때, 심협의 몸이 갑자기 꼿꼿해지더니 그 자리에 누운 채 움직임을 멈췄다.

구혼마면은 깜짝 놀라 황급히 다가가서 살펴봤지만, 심협은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다만 혼절했을 뿐임을 알고는 구혼마면은 마음을 놓았다.

* * *

이른 아침, 한 줄기 햇살이 창틈으로 비쳐 들어와 심협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그는 속눈썹을 파르르 떨더니 천천히 두 눈을 떴다. 무의식적으로 눈을 가린 그는 조심스레 일어나 앉아 침상에서 내려왔다.

창문을 밀어젖히자 문가에 아담한 시녀 두 명이 서 있었고, 뜰에는 갑옷을 입은 수위들도 적잖이 서 있었다. 그는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물었다.

“여기가 어디요?”

“선사님, 일어나셨습니까? 여긴 국공부입니다.”

시녀 하나가 즉시 예를 갖추며 말했다.

다른 한 사람은 정 국공께 알리러 간다며 재빨리 인사를 올리고는 총총걸음으로 물러났다.

심협은 다른 사람의 상태를 물어보려다가 눈앞의 시녀도 모를 거란 생각에 조용히 방문을 닫고 방 안으로 돌아와 책상 옆에 앉았다.

그는 가만히 법력을 운행하면서 신념(神念)으로 몸 상태를 살펴보고는 안색이 급변했다.

“내 법력이…… 대체 언제……?”

눈을 떠보니 이미 응혼 후기 수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용원이 자기 몸에 주입된 것은 잠시 동안 떠올리지 못했다.

그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방문이 열리며 정부(程府)의 하인 여덟 명이 첩첩이 차려진 산해진미 한 상을 받쳐 들고 들어와 심협 앞에 내려놓았다.

심협은 이미 벽곡기를 지나 배고픔을 느끼지 않았지만, 산해진미의 향기를 맡으니 참기 힘든 식욕이 동했다. 그는 후딱 몸을 씻은 뒤 자리에 앉아 게걸스레 먹어댔다.

똑똑!

잠시 뒤, 누군가가 열려 있는 문을 두드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늘씬한 몸매에 피부가 희고 매끄러운, 붉은 옷의 여인이 문가에 서서 눈가에 웃음을 가득 띤 채 그를 살펴보고 있었다.

“사 도우, 어서 들어와 앉으시지요.”

심협은 씩 웃으며 일어나지도 않고 곧바로 그녀에게 청했다.

“좋아 보이는군요. 완전히 회복되셨나 봅니다.”

사우흔은 사양하지 않고 성큼성큼 들어와 곧장 심협의 맞은편에 앉았다.

아까 그 영특한 시녀가 벌써 그릇과 수저 한 벌을 그녀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사우흔은 젓가락을 들지도 않은 채 그저 술을 한 잔 따라 심협에게 건넨 뒤, 자기 잔에도 따르고는 심협을 향해 들었다.

“무슨 의미입니까?”

심협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목숨을 구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심 대형.”

사우흔은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더니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사소한 수고였을 뿐입니다. 한데 사 도우의 부상이 가볍지 않았는데, 어찌 이리 빨리 회복했습니까?”

심협은 그 말에 재빨리 손사래를 치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빠르다고요? 심 대형, 우리가 저승에서 경하용왕과 혈투를 벌인 게 벌써 보름 전입니다.”

사우흔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뭐라고요? 그럼 내 보름 동안이나 혼수상태였다는 말이오?”

심협은 예상치 못했던 말에 진심으로 놀랐다.

사우흔이 막 답을 하려는데 문득 문 밖에서 시원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심 소자, 드디어 깨어났구나. 내 저승으로 찾아가 보려던 참이었다. 구혼마면이 너를 데려다줄 때 사흘도 안 되어 깨어날 거라 했는데 이리 오래 걸릴 줄 어디 생각이나 했겠느냐?”

정교금이 뜰 밖에서 문지방을 성큼 넘어 탁자 옆에 와 앉았다.

“정 국공 선배님을 뵈옵니다.”

심협과 사우흔이 동시에 일어나 포권하며 예를 갖췄다.

“앉거라. 뭘 그리 예의를 차리고 그러느냐. 이번 장안의 귀환에 너희 모두 적잖은 공을 세웠다.”

정교금의 말에 심협과 사우흔은 서로를 보고 웃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선배님, 성안 상황은 어찌되었습니까?”

“너희가 그 악룡을 물리치고 연신단의 음모도 좌절시켜 이 재난을 주도한 놈들을 뿌리 뽑은 덕에 성안의 귀환은 이미 거의 다 제거 되었다. 잃었던 성 남쪽도 대부분 다시 되찾았지. 다만 백성들을 원래 살던 곳으로 돌려보내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하구나.”

“그럼 되었습니다.”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던 심협의 머릿속에 번쩍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때 육형도 중상을 입었는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그놈은…… 이번에 정말이지 지나치게 무리를 했어. 그런 상황에서 그런 수를 쓰다가는 몸이 지나치게 축나서 자칫하다간 근본을 다치게 될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다행히 제때 구조하여 국사께서 친히 그 아이의 부상을 치료해주시고 체내에 남은 위험을 제거했으나 어쩔 도리 없이 경지가 떨어지고 말았지.”

정교금은 그 말을 듣고 언뜻 책망하는 듯한 기색을 내비치며 말했다.

“그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심협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경하용왕은 심협에게 붙잡혀 스스로 용원을 흩어 버리고 죽음을 맞았지만, 진정으로 그를 물리친 것은 육화명이라 할 수 있었다.

“이틀 전에 깨어나 너를 보러 왔다가 폐관에 들어갔다. 보아하니 이전 경지를 뛰어넘어야만 출관할 듯하구나. 허나 걱정할 것 없다. 본래 타고난 자질이 뛰어나니 이번 경험은 그 아이에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닐게다. 너야말로 갑자기 경지가 한 단계 올라갔는데,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느냐?”

정교금이 불쑥 물었다.

심협은 그 말을 듣고 다시 한번 무의식적으로 자기 몸을 살펴본 뒤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조금 피곤한 것 외에 아무런 불편한 점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너희들이 황제폐하를 구했으니 폐하께서 후한 상을 내리실 게다. 허나 당장은 피해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니 기다려야 할 게야. 일전에 약조한 이원진수도 그때 함께 줄 것이다.”

“감사하옵니다, 폐하. 감사합니다, 선배님.”

심협과 사우흔은 깊은 감사를 표했다.

“자고로 영웅은 소년에서 난다더니, 너와 육화명 또래 사람들은 우리 젊을 때에 비하면 뒤떨어질 게 없구나. 앞길이 아주 무궁무진해. 하하하!”

정교금은 세월이 야속하게 느껴졌는지 처음에는 탄식하는 듯했으나, 이내 대당의 앞날이 밝아 보이자 시원스레 웃었다.

하지만 심협은 그 말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는 이 국공 대인이 그들을 칭찬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화자찬하는 것인지 일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정교금은 잠시 한담을 나눈 후에 심협과 사우흔에게 단약을 한 병씩 선물한 뒤 떠났다.

사우흔은 약병을 집어 들고 살펴보더니, 그 위에 적힌 세 글자를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흠천감단허(欽天監丹墟)에서 독점 생산하는 대황단(大黃丹)! 이것은 수련을 증진시켜주는 상승단약이에요.”

심협도 병마개를 열어 단약을 쏟아내고는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작은 병에는 대황단이 일곱 개 들어 있었는데, 하나하나가 용안(*龍眼: 무환자나뭇과의 상록 교목 또는 그 열매) 씨앗만 했고, 누르스름하고 동글동글한 것이 표면에는 광택이 돌았으며, 약초 향기를 솔솔 풍겼다.

“정 국공 선배님이 내리신 포상이 이 정도라니, 폐하의 상이 기대되는군요.”

심협은 씩 웃으며 단약을 챙겼다.

그때, 사우흔이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심 대형, 제가 이번에 온 것은 사실 작별을 고하기 위함입니다.”

“작별이라니요. 멀리 떠나십니까? 관부의 포상이 아직 지급되지도 않았는데 이리 급하게 떠날 이유가 있습니까?”

“제가 오라버니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기억하세요? 일찍이 악인에게 해를 입어 신혼이 손상되고 단전이 망가졌다던……. 도우 덕에 신혼을 회복시키는 연신단의 비술을 얻었고, 대당관부에서 단전을 대신 만드는 방법도 얻었답니다. 그러니 될 수 있으면 빨리 돌아가야지요.”

사우흔의 말에 심협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이군요.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돌아가야 마땅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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