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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347화 (347/1,214)

347화. 당(唐)의 황제를 구하다 (3)

“폭(爆)!”

심협이 두 손을 펼쳐 연꽃 모양 인계를 맺으며 크게 외쳤다.

퍼펑!

둔탁한 폭발음이 흑금색 빛기둥 속에서 울리며 홍련의 불꽃이 줄줄이 그 사이를 뚫고 나와 기둥을 불태워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흑금색 빛기둥은 심하게 떨리더니 곧 커다란 소리와 함께 완전히 폭발했다.

그 안에서 검은 빛 덩어리 하나가 튀어나와 길고 검은 무지개로 변해 먼 곳으로 번개처럼 날아갔다.

심협은 손을 흔들어 순양검배를 불러들인 뒤 어검술로 쫓아가려 했지만, 이 무지개의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라서 눈 깜빡하는 사이 몇 리를 날아갔다. 어차피 따라잡지 못할 것이 분명했기에 심협은 어쩔 수 없이 멈춰 섰다.

한데 한 줄기 금빛이 옆에서 쏘아져 날아와 검은 무지개를 뒤쫓았다. 자세히 보니 방금 전의 금빛 송곳 법보였다.

아마도 경하용왕이 부상을 입었기 때문인지, 금빛 송곳은 빛도 어두웠고 속도도 예전보다 훨씬 느렸다.

심협은 재빨리 손을 결인해 휘둘렀다. 그러자 허리춤의 건곤대가 즉각 날아올라 하얀 무지개 한 줄기를 내뿜어 순식간에 금빛 송곳을 휘감았다. 송곳 위로 삽시간에 두껍고 하얀 얼음결정이 맺혔고, 뿜어내던 금빛도 다시 어두워졌다. 그 순간, 건곤대에서는 강한 흡입력이 뿜어져 나와 송곳을 단단히 끌어당겼다.

심협의 오른손에서 파란빛도 날아가 금빛 송곳을 단숨에 뒤덮으며 힘껏 옭아맸다.

금빛 송곳은 여전히 거세게 진동하며 심협의 속박을 벗어나려 했다.

그때, 먼 곳의 검은 무지개 위로 금빛이 맹렬하게 치솟더니, 굵은 검영이 뚝 떨어지면서 검은 무지개를 절반 가까이 쪼갰고, 무지개 속에서는 처절한 포효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검은 무지개는 갑자기 속도를 몇 곱절로 높여 순식간에 멀리 하늘로 사라졌다.

“두 도적놈아, 이 원수는 나중에 다시 갚을 것이다!”

경하용왕의 분노 가득한 포효가 멀리서부터 전해져 왔는데, 큰 부상을 입은 듯 목소리에는 기력이 없었다.

경하용왕이 완전히 사라지자 금빛 송곳은 저항할 힘을 잃고 휙 소리와 함께 건곤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심협은 황급히 건곤대의 금제를 발동시켜 금빛 송곳을 겹겹이 감쌌다. 그리고는 목소리를 전해 귀장에게 조심해서 지키라는 분부를 내리고 나서야 안심하고 손을 거둔 뒤, 공중에서 내려왔다.

이때, 근처 제단 주위의 육각 금제의 빛이 번쩍거리더니, 갑자기 둔탁한 소리를 내며 와르르 무너져 흩어지고, 이씨 소녀를 비롯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심 공자 솜씨가 좋구먼. 홍련업화까지 지녔으니 훗날 반드시 큰 그릇이 될 게야. 이곳은 자네와 육 현질에게 맡기고, 나는 먼저 폐하와 이 두 소우를 데리고 떠나겠네.”

이씨 소녀는 심협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한 손으로 황제를 안고, 다른 한 손에서는 하얀 빛을 발하여 사우흔과 갈천청의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는 가까이에 있던 하얀 빛의 문으로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하얀 빛의 문이 살짝 일렁이더니 마치 한 번도 나타난 적조차 없는 것처럼 빠르게 희미해졌다.

심협은 경하용왕을 쫓아가야 할지 물어보려던 참이었으나, 그럴 틈도 없이 원천강이 떠나가자 잠시 넋을 놓고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어야 했다.

그때, 하늘에 금빛이 번쩍 스치더니 육화명이 허공에서 내려왔다. 그의 몸에서는 하얀 빛이 격렬하게 요동치다가 금세 사그라들었고, 그의 뒤에 있던 흐릿한 그림자도 몇 번 반짝이더니 사라졌다.

몸에 감돌았던 거대한 기운이 빠르게 물러가고 몇 호흡 사이에 본래의 경지로 돌아온 육화명은 털썩 쓰러졌다. 그의 안색은 온통 창백했으며 몸은 사시나무처럼 바들바들 떨렸다.

“육형, 괜찮소?”

심협이 황급히 달려가 육화명을 부축하며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소. 그저 힘을 너무 지나치게 소모했을 뿐이오. 어서 쫓아가시오. 저 악룡을 달아나게 해서는 절대 안 되오. 그렇지 않으면 장안의 귀환은 가라앉기 힘들 것이고 무고한 백성들이 얼마나 더 죽어나갈지 모르오.”

육화명은 종잇장처럼 파리한 얼굴로도 애써 눈을 뜨며 당부했다. 그러면서 참룡검을 심협의 손에 쥐여 주었다.

심협은 그 말에 잠시 망설이다가 검자루를 꽉 움켜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심하고 내게 맡기시오. 몸조심하시고…….”

말을 마친 심협은 장검을 들고 신행갑마부 두 장을 꺼내 다리 위에 붙였다. 곧 문양이 빛나면서 부적이 불타올라 잿더미가 되어 그의 다리를 휘감았고, 심협은 불쑥 앞으로 뛰쳐나갔다.

뒤에 있던 육화명은 바위에 기대어 한참이나 숨을 고르고 나서야 얼굴에 혈색을 조금 되찾았고, 황금빛 단약을 먹은 뒤 두 손으로 결인하여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체내에 마지막 한 가닥 법력까지 동원한 터라 강렬한 피로감이 엄습해왔다.

그는 눈앞의 천지가 그의 눈꺼풀을 따라 천천히 가라앉는 것을 느꼈고, 신식이 차츰 흐릿해지면서 곧 옆으로 쓰러졌다.

* * *

심협은 1리쯤 추격했지만, 경하용왕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그러나 그의 몸에서 풍기는 용혈의 기운만은 어렴풋이나마 느껴졌다. 다만 그 기운은 오홍과는 달리 음산하고 사악한 느낌이었다.

반 시진 뒤, 심협은 어느 갯벌에 도착했다.

앞쪽 땅바닥은 온통 시커먼 진흙이었는데, 물이 없어서인지 이미 바싹 말라 있었고, 땅 위 곳곳에는 촘촘한 균열도 있었다.

갯벌의 더 먼 곳은 흐릿한 안개로 덮여 있어서 커다란 검은 그림자만 어렴풋이 보일 뿐이었다.

심협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코를 찡긋거리며 짙은 피비린내를 맡았다.

그때, 문득 바람의 울부짖음이 들려오더니 오른쪽 바닥에서 모래바람이 일어나 광포한 힘을 담은 채 심협에게로 휘몰아쳤다.

심협은 두 발로 땅을 세차게 굴러 하늘로 수십 장을 솟구쳤다.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의 발아래로 굵고 탄탄한 용꼬리가 휩쓸고 지나갔다.

심협의 몸이 떨어져 내리자 진홍빛 검광이 그를 받아냈다.

“악룡아, 그런 중상을 입고도 순순히 잡히지 않으려 한단 말이냐?”

심협은 어검술로 허공에 뜬 채 참룡검을 들고 일갈했다.

“크아아악!”

그에게 돌아온 것은 원한이 가득 담긴 용의 포효였다.

마치 용이 숨을 몰아쉬는 듯 자욱한 검은 연기가 뒤따랐고, 연기가 지나간 허공에는 썩고 쇠락한 기운이 생겨났다.

“우둔하고 미련하구나!”

심협은 낮게 호통을 친 뒤, 양손으로 참룡검을 쥐고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었다가 순양검결 공법을 전력으로 운공하며 세차게 내려베었다.

참룡검이 적금색으로 빛나면서 한 줄기 용 그림자가 그 위를 이리저리 떠다녔고, 곧이어 높이가 백 장에 이르는 거대한 검영으로 변하면서 날카로운 기세가 사방을 대낮처럼 환하게 비추었다.

심협이 단칼에 베자 외로이 우뚝 선 산봉우리가 무너지듯이 검영이 찬란한 하늘의 위엄을 휩쓸며 강렬한 파동을 일으켰다.

쿠르릉!

검은 연기는 금빛 칼날과 닿자마자 차디찬 눈발에 뜨거운 물을 뿌린 것처럼 순식간에 증발해버렸고, 검광이 갯벌 위로 떨어졌다.

쿵!

강렬한 바람이 두 개의 공기 벽처럼 검광 한가운데에서 바깥으로 밀려나와 갯벌에 가득 퍼진 몽롱한 안개들을 걷어내면서 중앙에 거대한 빈터가 생겨났다.

그 위로는 깊이 10여 장의 거대한 골짜기가 나타났는데, 그 안에는 아직도 간간이 검기의 잔재가 하늘로 솟아올라 허공까지 어지럽게 휘저었다. 그리고 그 골짜기 끝에 전신이 핏자국으로 얼룩덜룩하고 꼿꼿한 형체가 하나 서 있었으니, 바로 경하용왕이었다.

용왕은 회복하기 어려운 중상으로 더는 싸울 힘이 없었다.

심협은 앞으로 날아갔다가 천천히 내려오며 손에 든 장검으로 그를 가리키면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끝없는 분노와 원한을 안고 돌아왔거늘, 네놈들 같은 애송이들 때문에 실패할 줄이야. 보아하니 대당의 국운은 여전히 왕성한가 보구나.”

경하용왕은 그 자리에 선 채 허탈한 투로 말했다.

“악룡아, 너는 이미 달아날 길이 없다. 그런데도 얌전히 대당관부로 돌아가 심판을 받지 않을 생각이냐?”

심협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당관부의 심판을 받으라고? 그들이 그럴 자격이나 된다더냐! 본왕은 이미 과룡대에서 참수의 형벌을 받았다. 왜? 나를 한 번 더 베고 싶으냐?”

경하용왕이 차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겠구나.”

심협은 싸늘한 눈으로 참룡검을 다시 치켜들었다.

“하늘의 불공평함이 원망스럽구나. 억울함은 호소하기 어렵고 원한을 갚기도 어려우니…… 네 이놈! 그럴 담력이 있거든 얼마든지 와서 내 머리를 가져가보아라. 크하하하!”

경하용왕은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이마를 툭툭 치며 광기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이를 본 심협의 마음도 조금 일렁였다. 이 용은 비록 수많은 살생을 저질렀지만, 그 기백은 실로 존경스러웠다.

“네놈의 행동거지와 기백을 보면 어느 한편으로는 효웅(*梟雄: 사납고 용맹스런 영웅)이라 할 수 있겠구나. 나 심협은 비록 무명인사에 불과하나 훗날 큰일을 해낼 사람이니, 오늘 내 손에 죽더라도 치욕이 아닐 것이다!”

심협은 호기가 솟아올라 이렇게 말했다.

“모름지기 젊은 날 천하제일이 되겠다던 큰 포부를 기억해야 하는 법. 그런 웅지를 품었다면 미래에도 분명 하잘것없는 놈은 아니겠구나! 와라! 와서 내 목을 베어라!”

경하용왕은 심협의 기개에 뜻밖에도 감탄한 기색이 역력했다.

심협 역시 용왕의 언행에 또다시 감탄해 눈빛이 살짝 굳어졌고, 말없이 장검을 치켜들며 허공으로 훌쩍 뛰어올라 목을 베려 했다.

그때였다.

“심 대형! 인정을 베푸세요!”

멀리서 다급한 외침이 들리더니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다가왔다.

심협은 낯익은 목소리에 멈칫하며 검을 거둬들였다.

곧이어 그의 앞에 아리따운 그림자 하나가 내려섰다. 놀랍게도 마수수였다. 다만 평소와 달리 오늘 그녀는 자흑색 장포에 허리에는 옥띠를 둘렀고, 긴 머리는 높이 묶어, 지금까지의 아담하고 천진난만한 모습이 아니라 세련되고 날카로운 느낌이었다.

“마 소저, 이게……?”

심협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지만 내심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다.

“심 대형, 오늘 인정을 베푸신다면 제가 반드시 무엇이든 원하시는 보상을 해드리겠습니다.”

마수수가 포권하며 심협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였다.

“마 소저, 왜 이러는 것입니까?”

심협이 물었다.

“수수, 너…….”

경하용왕은 가볍게 외치더니 뜻밖에도 목이 메는 듯 울먹이기 시작했다.

심협은 이 상황을 보고 추측에 더 확신을 가지게 됐다.

“심 대형, 그의 목숨을 한 번만 살려주신다면 제가 알고 있는 연신단의 모든 비밀을 털어놓겠습니다.”

마수수는 말을 마치고 털썩 무릎을 꿇었다.

“마수수, 역시 연신단과 관계를 맺었구려.”

심협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차갑게 변해 있었다.

“심 대형, 오늘 인정을 베풀어주시기만 한다면 어찌하든 좋습니다. 제 목숨과 바꾸자 하신대도 따를 것입니다.”

마수수는 고개를 더 깊이 숙이며 다시 말했다.

“안 돼!”

경하용왕은 그녀의 말에 놀라 벌컥 성을 냈다.

“그대는 여기 경하용왕과 도대체 무슨 관계요?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냔 말입니다.”

심협의 안색이 한층 어두워졌고,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심 대형, 이분은 제 생부이십니다. 그러니 제가 어찌 두고 보겠습니까?”

마수수는 그렇게 반문하며 고개를 들었는데,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심협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으나 마수수의 입을 통해 듣자 또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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