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46화 (346/1,214)
  • 346화. 당(唐)의 황제를 구하다 (2)

    이씨 소녀는 금빛 서책 한 권을 꺼내 심협에게 건넸다.

    심협은 그녀를 흘끗 보고는 금빛 서책을 받지 않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허리를 굽히고 예를 갖췄다.

    “국사님, 제가 무례를 범하였습니다. 용서를 청합니다.”

    “오, 자네는 옥첩금책을 검사해보지도 않고 왜 갑자기 내 말을 믿는 것인가?”

    이씨 소녀가 눈썹을 으쓱 올리고는 금책을 거두며 웃었다.

    “귀하께서 악인이셨다면 방금 전 저를 구하지 않으셨겠지요. 단칼에 가뿐히 제 목숨을 취할 수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사실 진즉 귀하의 말이 사실이라 느꼈지만, 폐하의 신혼과 관련된 일인 만큼 신중히 처리할 수밖에 없어 탐색해본 것입니다. 국사 대인께서는 죄를 탓하지 말아주십시오.”

    심협은 다시 한번 공수하더니 황제의 혼백을 이씨 소녀에게 넘겼다.

    “젊은이가 교만하거나 조급하지도 않고 일을 냉정히 처리하는 데다 용기와 지략을 고루 갖추었으니, 정 국공이 소우를 그리 좋아할 만하군.”

    이씨 소녀는 황제의 혼백을 넘겨받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국사 대인의 과분한 칭찬에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심협은 겸손한 표정으로 답했다.

    “자, 한담은 나중에 다시 하고. 육 현질이 이번에 원기가 크게 상하는 것도 마다치 않고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잠재력이 곧 바닥날 걸세. 심 소우는 어서 가서 그를 돕게나. 육 현질이 패하면 우리 목숨이 위험할 뿐만 아니라 대당의 사직에도 큰 어려움이 닥칠 것이네.”

    십구공주는 허공을 올려다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심협 역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안색이 살짝 변했다.

    공중에 있던 육화명의 몸에서는 하얀 빛이 많이 어두워졌고, 손에 든 참룡검이 뿜어내던 검망도 반절 가까이 줄어 이전만큼 휘황찬란하지 않았다. 서로 비등비등하던 전투에서 육화명은 밀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심협은 자신이 결코 경하용왕의 적수가 아님을 알면서도 물러설 마음은 없었기에 잠시 계획을 하나 세우고는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한데 국사가 갑자기 그를 불러 세웠다.

    “심 소우, 잠깐 기다리게. 내 지금 신혼으로 공주 전하의 옥체에 빙의되어 있어 자네들을 도울 수는 없으나, 공주 전하께 드린 오채와와부(五彩娃娃符)가 여기 있으니 자네에게 주겠네. 세 번까지는 치명적인 공격을 대신 막아줄 걸세.”

    그러더니 은빛 부적 하나를 꺼내 심협에게 건넸다.

    부적 가장자리에는 신기한 무늬들이 여러 줄 새겨져 테두리를 이루었는데, 테두리 중앙에는 진짜처럼 생생한 사람 형태의 도안이 세 개 있었다. 이들은 특별한 파동을 뿜어내고 있어서 더없이 심오해 보였다.

    “감사합니다. 원 국사님.”

    심협은 크게 기뻐하며 부적을 받아 몸에 달았다.

    ‘이 부적이 있으니 계획의 성공 가능성도 훨씬 커졌군.’

    오채와와부는 그의 몸에 닿자마자 은색 빛으로 변해 그의 체내로 녹아들었다. 게다가 순수한 원기가 부적에서 솟아나와 그의 법력도 곧 적잖이 회복되어 절반 이상은 채워졌다.

    심협은 이 또한 매우 기뻐했으나, 지금은 오채와와부를 자세히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그는 곧바로 금제를 뛰쳐나가 어검술로 하늘을 향해 솟구쳐 곧장 경하용왕에게로 돌진했다.

    이어서 양손을 휘두르자 청황의 두 줄기 보광이 다시 튀어나와 유성처럼 빠르게 경하용왕에게로 날아갔다. 푸른 단부와 오악진형인이었다.

    경하용왕은 이 광경에 깜짝 놀란 기색이었다. 윤회 금제는 그와 지부(地府) 사람들이 힘을 합쳐 설치한 것이라 그 자신조차 막아낼 자신이 없는데 뜻밖에도 심협이 거기서 벗어났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냉정함을 되찾고 침착하게 오른손으로 푸른 용도를 휘둘러 육화명을 상대하는 한편, 왼손 다섯 손가락을 쫙 펼쳤다. 손가락 끝에는 금빛이 번쩍 스쳐 지나더니 그의 몸 앞에 짧은 금빛 송곳이 하나 나타났다.

    송곳은 길이가 반 척쯤 되었고, 전체가 황금색이었으며, 끄트머리는 매우 뾰족하고 날카로웠다. 마치 용의 뿔로 만든 것처럼 몸체는 살짝 구부러진 형태였고, 흐릿한 금빛에 한 층 뒤덮여 있었다. 무시무시한 영력 파동을 뿜어내는 것이, 법기의 범주를 훨씬 뛰어넘었다.

    경하용왕이 결인한 손으로 가리키자 송곳이 긴 울음소리를 내며 금빛을 크게 내뿜었다.

    쉬쉬쉭!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며 사발만 한 금빛 송곳 그림자가 무수히 튀어나와 폭우처럼 심협을 향해 몰려왔다. 송곳의 수가 많을 뿐만 아니라 속도도 엄청나 심협은 동공이 바짝 졸아들었다.

    그는 입을 벌려 순수한 법력을 내뿜어 단숨에 푸른 단부와 오악진형인에 주입했다. 두 보물은 환하게 번득이며 무수한 초승달 모양 빛과 맞부딪쳤다.

    픽, 픽 하는 소리가 연거푸 울리고 푸른 단부가 번갯불을 연이어 번쩍이더니 곧 애처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금빛 송곳 그림자에 부서져 점점이 수많은 불빛으로 흩어졌다.

    송곳의 폭우가 쏟아져 내리자 오악진형인 주위의 다섯 산봉우리 그림자도 격렬하게 떨리더니, 눈 깜짝할 사이 무너지고 도장이 몸체를 드러냈다. 그러고도 엄청난 규모의 송곳 그림자가 계속해서 밀려들자, 오악진형인의 본체에도 종횡으로 엇갈린 참흔(斬痕)이 생겨나더니 빠르게 어두워졌다. 하지만 여전히 꿋꿋하게 심협 앞을 막아선 채 버텨냈다.

    이를 본 심협은 어두운 안색으로 재빨리 결인한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묵갑순이 즉시 튀어나와 오악진형인 앞을 막아섰다.

    방패의 몸체에서 푸른 빛이 폭발하며 주위로 검은 거북이 허상이 떠올라 더할 나위 없이 굳건하고 든든해 보였다.

    무수한 금빛 송곳 그림자가 묵갑순 위로 쏟아지며 끊임없이 굉음을 울렸다.

    묵갑순은 12도 금제를 지닌 극품 방어법기답게 심하게 떨리고 빛을 미친 듯 번쩍이면서도 손상을 입지는 않았다.

    심협은 그제야 조금 안도하며 이번에는 왼손을 곧장 휘둘렀다. 그러자 금빛과 은빛, 잿빛의 세 줄기 빛이 그의 몸에서 쏘아져 나왔다. 이 빛들은 빽빽하게 쏟아져 내리는 금빛 송곳 그림자들을 우회해 경하용왕을 향해 날아갔다. 세 가지 상품법기인 금빛 원보와 은옥탁 그리고 회색 톱니바퀴였다.

    그의 오른손도 놀고 있지 않았다. 곧장 낙뢰부를 세 장 꺼내 한꺼번에 던졌다.

    콰콰쾅!

    커다란 우렛소리가 연이어 울리며 굵직한 벼락 세 줄기가 대기를 찢고 경하용왕에게 내리꽂혔다.

    “이 도적놈이 기고만장했구나!”

    경하용왕이 눈에 노기를 띤 채 고개를 돌려 세 갈래 벼락을 향해 입을 벌렸다. 그러자 어지간한 성인 남자 팔뚝만 한 굵기의 금빛 용염(龍炎)이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와 굵은 벼락과 한데 얽혔다. 그 불꽃 속에는 섬뜩한 검푸른 빛도 섞여 있어 몹시 기괴해 보였다.

    콰지직! 퍼펑!

    이어진 굉음과 함께 세 줄기 벼락은 뜨거운 불길이 물을 만난 것처럼 팍 하고 꺼져 푸른 연기로 변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한편, 용왕이 왼손을 결인하고 가리키자 심협에게로 날아들던 무수한 금빛 송곳 그림자들이 즉각 방향을 틀어 세 가지 법기를 향해 엄습해왔다.

    퍼펑! 펑!

    또다시 몇 번의 폭발음이 울려 퍼졌고, 세 법기도 폭발해 부서져버렸다.

    심협은 법기가 부서진 것이 전혀 아쉽지 않은 듯 평온한 얼굴로 무언가를 중얼중얼 읊조렸다. 이윽고 두 발 위에 달빛이 환하게 감돌았고, 몸 주위에도 가느다란 녹색 빛이 떠오르더니 그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음 순간, 그는 경하용왕 뒤 몇 장 거리에서 나타나 양손을 다시 한번 휘둘렀다.

    수백 장의 부적이 빽빽하게 날아가 자그마한 번개와 화염들로 변하면서 엄청난 크기의 벼락과 불바다를 이루어 경하용왕을 향해 거칠게 밀어닥쳤다.

    뿐만 아니라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상황에서 어두운 검광을 띤 붉은 소검(小劍)이 한 자루 그의 소매에서 튀어나와 벼락과 불바다 사이로 섞여들었다. 이는 바로 순양검배였다.

    소뢰부와 열화부는 한 장의 위력은 미미한 편이지만, 수백 장이 한데 겹쳐지자 무시무시한 뇌화(雷火)의 파동이 폭발했다.

    경하용왕은 심협의 이번 반격을 예상치 못했는지 벼락과 불길에 맞아 비틀거렸고, 그의 몸을 보호하던 빛도 적잖이 흩어졌으며, 등은 검게 그을렸다.

    그 순간, 육화명을 막아내던 검푸른 용도가 미세하게 흐트러졌다. 이에 경하용왕과 정면으로 맞서던 육화명이 한숨 돌렸고, 눈빛이 밝아지더니 두 손을 수레바퀴처럼 결인했다. 그러자 참룡검이 눈부신 금빛을 발하며 용의 모습을 한 금빛 한 줄기가 검에서 쏘아져 나와 용도를 휘감았다. 동시에 참룡검에서 길이가 10여 장에 이르는 초승달 모양 검망이 경하용왕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네놈들이 정녕 죽고 싶은 게냐!”

    경하용왕은 벌컥 분노를 터뜨리면서 오른손에 금빛을 뿜어내며 빠르게 앞으로 뻗었다.

    그의 손바닥이 순간 날카롭고 매서운 용의 발로 변하더니, 놀랍게도 참룡검이 뿜어낸 검망을 홱 잡아채 단번에 으스러뜨렸다. 뒤이어 용왕은 입을 쩍 벌리고 용원(*龍元: 용의 정수가 응집되어 만들어진 원기 덩어리)을 뿜어냈다.

    용원은 번쩍 하며 금빛 송곳 안으로 녹아들어갔고, 이에 송곳은 금빛을 활짝 피워내며 섬뜩하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튀어나와 뇌화의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거의 동시에 뇌화의 바다 반대편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금빛 잔상 한 줄기가 쏜살같이 날아와 반응할 틈도 없이 심협의 명치를 뚫고 지나갔다.

    “크헉!”

    심협의 가슴팍에는 사발만 한 구멍이 뚫렸고, 심장이 갈려나가 붉은 피가 폭우처럼 쏟아졌다.

    경하용왕은 냉소하며 심협에게서 시선을 떼고 육화명을 상대하는 데 집중하려 했다.

    한데 바로 그때, 심협의 몸에서 눈부신 은빛이 반짝이더니 가슴의 구멍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상처 하나 남지 않은 깨끗한 가슴이 드러났다. 거의 동시에 그는 손을 결인하여 용왕쪽을 가리켰다.

    그 순간, 경하용왕 곁에 있던 뇌화의 바다가 눈을 찌르는 붉은 빛을 번득였고, 붉은 소검 한 자루가 번개처럼 튀어나와 경하 용왕의 등 뒤, 검게 그을렸던 상처 부위를 푹 하고 찔렀다.

    “큭! 뭐, 뭐야!”

    경하용왕은 안색이 변해 즉시 체내의 요력을 운공했다. 그의 몸 표면에는 금빛과 흑빛이 강하게 피어올랐고, 몸의 근육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쇳조각이 진동하는 듯한 웅웅 소리를 내며 붉은 소검을 튕겨내려 했다.

    “일어나라!”

    심협이 법결을 연달아 바꾸며 버럭 외쳤다.

    그러자 소검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며 커다란 홍련업화가 치솟아 사람 몸통만 한 홍련 화염을 이루고는 경하용왕의 체내로 녹아들었다.

    “홍련업화!”

    경하용왕의 눈에는 두려움이 역력했다.

    앞서 장안성 금광하에서 싸울 때에도 심협은 순양검배를 꺼낸 바 있지만, 그때는 검배가 갓 생겨난 때라 위력이 약했고, 홍련업화의 강력함도 온전히 발휘할 수 없었다. 게다가 경하용왕은 당시 용 머리를 되찾는 것에 몰두한 나머지 홍련업화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경하용왕은 크게 포효하면서 온몸에서 흑금색 빛을 미친 듯이 내뿜어 길이 10여 장의 빛기둥을 만들어냈다. 그리고는 맹렬하게 회전시키면서 몸속에 녹아든 홍련업화를 몰아내려 애썼다.

    허나 그가 용의 몸이었다면 그 깊고 두터운 법력으로 몰아낼 수 있었을지 모르나, 머리만 되찾아왔을 뿐 몸의 대부분은 여전히 혼백인 상태라 홍련업화에 꼼짝없이 제압당하고 말았다. 홍련업화는 그의 몸 밖으로 몰려나가기는커녕 오히려 체내 가장 깊은 곳으로 녹아들었고, 순양검배도 뒤따라 경하용왕의 몸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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